제438화
밤부터 꾸물꾸물하던 하늘이 날이 밝기 무섭게 기어코 안에 든 것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설픈 추위에 설익은 진눈깨비였다. 짙은 잿빛으로 추적추적한 날씨를 맞이한 도시는 평소의 활기를 잊은 채 고요해졌다. 그러나 기차역만은 이른 오전부터 인파로 북적거렸다. 일주일에 많아야 한두 번, 드문 간격으로만 운행하는 로함 행 열차를 타기 위한 인원이었다. 제 몸보다 큰 여행 가방을 들고 비장한 표정으로 오르는 이, 많은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작별 인사를 하느라 바쁜 이, 설레는 얼굴을 하며 신이 나서 오르는 이, 가지각색 다양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그에 걸맞은 모습으로 열차에 올랐다. 그들 사이를 종횡무진 오가며 개표하는 역무원의 표정엔 벌써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모두 선로에서 물러나세요!”
오래지 않아 기관사가 외치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작별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의 행동이 더 애틋해지는 순간이었다. 보다 못한 역무원들이 적극적으로 만류하고 나서면서, 열차에 밀착해있던 무리가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이윽고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차체가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긴 시간 창문 너머에 고정되어 있던 바깥 풍경이 순식간에 멀어지더니, 어느덧 보이지 않게 됐다. 몰려 있는 사람들도, 그 사이에서 배회하는 병사들의 모습도 없었다. 객실 문 옆에 바짝 붙어있던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의자에 편히 몸을 기댔다.
하룻밤 고생이 온전한 결실을 이뤘다.
마침내 탈출이었다.
“오늘 역에 유난히 병사들이 많지 않았어요?”
“어제 살인 사건이 있었던 모양이야. 달아난 범인을 찾는 중이라더군.”
“어머, 살인이요?”
“세상에 그런 무서운 일이.”
어느 순간 깜빡 잠들었던 모양이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대화 소리에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공간이 규칙적으로 진동하는 걸 보면 열차는 여전히 운행 중인 상태였다. 창밖으로 낯선 풍경이 스치는 것도 보였다. 그런데 문 쪽에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쪽에 용건을 갖고 다가오는 기척이었다. 경계하며 주시하고 있으려니 곧 노크 소리와 함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 점심시간입니다. 식사를 준비해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된 건가. 긴장이 확 풀렸다. 식당칸이 따로 보이지 않더라니, 식사를 직접 가져다주는 구조였던 모양이다. “들어오세요.” 허가를 내리자 문이 열리며 음식이 놓인 이동식 테이블이 안으로 들어왔다. 테이블을 끌고 들어온 승무원이 맞은편 공간이 빈 것을 확인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손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네? 아, 잠시 화장실에 갔어요. 곧 돌아올 거예요. 신경 쓰지 말고 가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다 드신 후에 테이블은 밖으로 내주십시오. 그럼 편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정중한 인사를 마지막으로 승무원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는 얼굴인 걸 보면 내 연기가 어색하진 않은 듯했다. 닫히는 문을 보며 내심 안도하고 있는데 그 틈새로 승무원들 간의 대화 소리가 다시 흘러들어 왔다.
“그래서 살인범은 잡았대요?”
“못 잡았으니까 그렇게 서성거리고 있었겠지.”
“혹시 우리 열차에 숨어있는 건 아니에요?”
“에이, 설마.”
일단은 그 설마가 맞긴 했다. 숨어있다기보다는 당당히 타고 있고, 살인범이라기보다는 같이 도주하는 바람에 졸지에 공범이 된 쪽이긴 하지만.
물론 이런 사실을 꿈에도 모를 승무원들은 잡담을 나누며 다음 칸으로 멀어져갔다. 바퀴가 구르는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면서 나는 따끈따끈한 김이 오르는 수프를 숟가락으로 떠서 한 모금 삼켰다. 바짝 마른 혀에 달콤하고 짭짤한 맛이 퍼져나가니 정신이 조금 드는 것 같다. 그대로 빵을 뜯어 입에 집어넣고 씹었다. 밤새 주렸던 속이 채워지기 시작하니 파란만장했던 어제의 여정이 다시금 스쳐 지나갔다.
이런 걸 두고 고생을 사서 한다는 거겠지.
각오한 일이긴 했지만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트로웰을 데리고 도망친 건 정말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한낮에 광장에서 벌어진 대담한 살인 사건, 심지어 연쇄살인의 증거까지 남긴 채다. 나야 그가 정령왕이라는 것도 알고 왜 죽인 건지도 알지만, 남들이 보기엔 그냥 흉악한 범죄자일 뿐이다. 거리마다 나와 트로웰을 찾는 경비대가 깔린 건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금발은 흔한 편이라 그런지 수사망이 바로 좁혀지진 않았다. 경비대 쪽도 트로웰 쪽을 더 집중해서 추격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으므로 예정보다 일찍 짐을 꾸려 여관을 나와야 했다.
다음날 기차를 타야 했기에 근방을 서성이느니 그냥 곧장 역사로 향했다. 기차역처럼 사람이 많은 곳은 수색 범위일 게 뻔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는 선조의 지혜를 믿었다. 다행스럽게도 이곳이 시발역이자 종착역인 덕분에 철로엔 정차한 채 방치된 기차가 많았다. 그중 적당한 기차를 골라 숨어 들어가니 역시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 상태로 밤을 지새운 다음, 아침이 되자마자 로함 행 푯말이 걸리는 열차를 확인하고 냉큼 갈아탔다. 아주 첩보물이 따로 없었다.
‘표를 미리 사두길 잘했지.’
물론 경비대 쪽도 만만치는 않았다. 이른 오전부터 역사를 장악한 병사들은 진눈깨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수색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나는 사람의 외모를 일일이 확인하는 건 물론 열차 안까지 수색했다. 아마 일반 칸에 탔더라면 그대로 발각되었을지도 모른다.
수색을 피한 건 내가 있는 객실이 이등 칸인 덕분이었다. 열차의 객실 칸은 네 가지 등급으로 구분되는데, 그중에서 일등 칸과 이등 칸은 귀족과 부호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이 칸들의 가장 큰 장점은 각자 일인실과 이인실로 이뤄진 독립적인 구조라는 점이다. 귀족을 위한 곳이기에 보안이 철저한 데다가 함부로 들어오거나 수색하지도 못했다. 개표만 통과하고 나면 그 이후로는 완벽한 개인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소리였다. 일반 칸으로 할까 하다가 혹시나 엘뤼엔이 돌아올 때를 생각해 비싼 표를 사둔 거였는데, 그게 신이 마련해준 안배였다.
다만 불편한 점은 이등칸은 당연히 두 사람이 쓴다는 인식이 있다는 것 정도. 객실을 구매하는 형식이라 푯값 자체가 두 명분을 전제하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굳이 혼자 쓴다는 걸 알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오해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 솔직히 이건 장점이 더 컸다. 일단 식사가 두 명분이 나온다.
“어쨌든 이만큼 멀어졌으니 이제 안심해도 되려나.”
빠르게 스치는 창밖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진눈깨비가 함박눈으로 바뀌어 가는 중이었는데, 지금은 흐린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했다. 정확히 어딘지는 몰라도 지역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건 분명했다. 적어도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진 평탄할 거다 싶으니 마음이 무척 평화로워졌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내 뜻대로 흘러가는 법이 있던가. 그게 얼마나 안이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한동안 빠르게 스치던 풍경이 점차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완전히 정지했다. 슬슬 그럴 시간이다 싶더니 다음 역에 도착한 것 같았다. 창문 커튼을 들어 올리자 역시나 지붕을 세운 정거장 건물이 보였다. 자갈을 깔아둔 길 위에 하차하는 사람들과 탑승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서로 어지러이 섞이기 시작했다.
이제 한동안 쉬겠구나. 나는 지난 이틀간 학습된 과정을 토대로 느긋하게 다음 일을 유추했다. 로함 행 열차는 야간을 제외하면 두세 시간에 한 번꼴로 정차하는 편이었다. 장거리 여행자가 많아서인지 그때마다 정차하는 시간이 꽤 길었다. 이 시간을 활용해서 산책하거나 간단한 용무를 보고 오는 승객도 곧잘 있을 정도였다.
나도 나가볼까 했으나 최대한 눈에 띄지 않고 지내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배낭에서 얌전히 책을 꺼내 들었다. 간단한 일러스트가 포함된 기초 몬스터 도감은 이제 거의 다 외울 지경이었지만 이게 아니고는 시간을 때울 만한 방법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기차 여행은 생각보다 굉장히 무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책을 더 살걸. 왜 한 권만 집었는지 과거의 내게 항의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이번엔 유난히 정차가 더 길었다. 평소라면 슬슬 준비에 들어가야 할 가동 소리가 시간이 지나서도 계속 잠잠하기만 했다. 혹시 기차에 결함이라도 생긴 건 아닌가 의심이 들 무렵, 문득 위에서 이상한 진동이 느껴졌다. 창문을 열고 내다봤더니 진동의 정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늘에 봉황을 닮은 거대한 새가 떠 있었다. 비조였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십수 마리의 떼였다.
‘뭐지?’
한동안 공중을 선회하던 비조 무리는 곧 역 안으로 착지했다. 그 위에 타고 있던 이들이 차례로 몸을 내렸다. 그들 대다수가 무장한 기사였다. 선두의 몇 사람이 제복을 입고 있는 걸 보아 이들을 이끄는 대장인 것 같았다. 잠시 후 기관사를 비롯한 모든 역무원이 헐레벌떡 뛰어가 그들을 맞이했다. 그들은 한동안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 듯하더니 곧 우르르 열차에 올랐다.
‘높은 사람이 열차를 타는 건가?’
처음엔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칸에서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투는 듯한 소리가 들리다 잠잠해지더니, 무언가 분주히 돌아다니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까 올라탄 무리가 객실마다 차례차례 들르고 있는 것 같았다.
‘뭐야. 설마 날 쫓아온 경찰인 건 아니겠지?’
경비대의 옷과는 다르지만 다른 쪽에서 사건을 인수한 건지도 모른다. 무장한 기사들이 객실을 들쑤시는 이유를 그것 말고는 떠올릴 수가 없었다. 이틀이나 지나서 안심하고 있었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하고 있는 동안 마침내 내 차례가 닥쳤다. 노크도 없이 객실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기사들이 표정 없는 얼굴로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반응하려고 노력했다.
“……뭐죠?”
그러자 그들 사이에서 두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까 선두에 있던, 제복을 입은 이들이었다. 둘 다 키는 비슷했는데 한쪽은 한눈에도 무인으로 보이는 건장한 체형이었고, 다른 한쪽은 적당히 단련한 듯한 체형이었다. 무인 쪽은 검은색 제복을, 다른 쪽은 군청색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군청색 쪽엔 무늬와 장식이 있어서 한눈에도 더 화려해 보였다. 외모 역시 그쪽이 더 화사해서, 갈색 머리칼에 갈색 머리칼을 지닌 무인과는 달리 군청색 제복 쪽은 은회색 머리칼에 노란빛이 도는 눈동자라 여러모로 눈에 띄었다. 타고난 듯한 냉랭한 분위기만 봐도 그의 신분이 더 높다는 걸 알 것 같았다.
“갑작스레 실례하겠소. 우리는 에펜 왕국의 근위대고, 나는 제2 기사단의 단장인 미올이오. 그리고 여기 계신 이분은 왕국의 왕세자이신 루시엘 님이시오. 왕세자 전하께 예의를 갖추시오.”
“……네?”
하지만 결코 여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왕세자라니. 왜 여기서 왜 왕세자가 나와? 황당해서 바라보니 왕세자라 불린, 은회색 머리칼을 지닌 남자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와 동시에 기사단장이라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얼굴 가득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 신분을 밝혔는데도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발끈한 게 분명했다. 자기들이 멋대로 나타난 주제에 정중한 인사까지 받으려고 하다니 아주 제멋대로인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이곳에서 왕족을 대하는 예우 같은 건 배운 적이 없었으므로 대충 스왈트 제국에서 봤던 귀족들을 흉내 내기로 했다. “왕국의 존귀하신 분, 태양을 이어가실 분을 뵙습니다.” 한 손을 앞으로 내리고 가볍게 허리를 숙이니 그제야 기사단장의 얼굴이 펴졌다. 다행히 여기서도 흠 잡히는 인사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와는 별개로 내 마음은 더 초조해졌다. 어쩐지 이쪽 칸을 거침없이 수색하더라니, 왕족이 직접 나섰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신지……?”
“불온한 자가 이 열차에 숨어들었다는 제보를 받았소. 잠시 내부를 수색해야겠으니 협조해주시오.”
“불온한 자요?”
“자세한 건 알 것 없소.”
기사단장이 눈짓을 보내자 근위대 기사들이 본격적으로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의자와 침대를 비롯한 모든 구석을 샅샅이 뒤졌다. 심지어 내 몸도 수색하고 배낭도 열어 안의 내용물까지 다 꺼내 들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져서 이게 무슨 짓이냐고 항의할 겨를도 없었다. 어이가 없어서 입만 벌리고 있자니 어디선가 뚫어질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왕세자가 흥미로운 듯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얜 또 왜 이래? 살짝 얼굴을 찌푸리는데 수색을 끝마친 기사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체 뭘 찾는 건지는 몰라도 다행히 이들이 찾는 게 나오진 않은 모양이다. 다 끝났으면 나가라는 의미를 담아 바라보았더니 왕세자가 재밌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이름이 엘이라고 했나?”
“네, 그런데요.”
그러자 거기서 뭔가를 떠올렸는지 기사단장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왕국 국민이 맞소?”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이시죠?”
“인사법이 조금 달라서 물어봤소. 게다가 본래 전하께 인사드릴 땐 본인의 성명과 출신지를 함께 밝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으시더군. 귀하의 출신지를 비롯한 가문 명과 성함을 밝혀 주시겠소?”
“왜 그런 걸 밝혀야 하죠?”
“협조하지 않으면 공무집행 방해죄로 체포하겠소.”
처음 알았는데 이 세계에도 공무집행 방해죄가 있는 모양이다. 아니, 그러면 수색 영장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뭐가 이렇게 자기들 마음대로야? 이래서 전제주의 왕권이란! 깊은 짜증이 치솟아 올랐지만 상대가 왕세자라는 점을 떠올리며 애써 가라앉혔다. 일단 어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건 아닌 것 같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인 셈이다. 마음을 가라앉힌 후 나는 대충 아무렇게나 지어냈다.
“출신지는 에바스 에덴이고, 이름은 엘입니다. 성은 엘뤼엔이구요.”
“에바스 에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군.”
“그럴 겁니다. 굉장히 먼 곳에 있거든요.”
아무렴, 너무 멀어서 인간은 가지도 못하는 곳이지. 참고로 그게 왕국에 있다는 말은 안 했다. 나머지는 알아서 상상하라지.
나름대로 자제했다고 여겼는데 나도 모르게 빈정거리는 태도가 비친 모양이다. 미간을 꿈틀거린 기사단장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 듯 입을 열던 때였다. 주위를 가볍게 두리번거리던 왕세자가 지나가는 듯한 어조로 물었다.
“이등 칸인데 왜 혼자지? 일행은 어디에 있나?”
“아, 일행은 잠시 화장실에…….”
“배낭도 하나뿐이군.”
“짐을 제가 다 보관하고 있거든요.”
“들여보내라.”
왕세자가 지시한 대상은 내가 아니라 뒤에 있는 문 쪽이었다. 그러자 그곳에 서 있던 기사들이 얼어 붙어있는 이들을 앞으로 내세웠다. 내 객실을 담당하는 승무원들이었다. 낭패감에 얼굴이 굳었다.
“이자의 일행을 본 적이 있나?”
그 질문에 승무원들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라 쓴 한숨이 흘러나왔다.
젠장, 그냥 처음부터 혼자서 쓰는 거라고 할걸. 나름대로 엘뤼엔이 돌아올 때를 대비한 건데 (절대 이인분의 식사 때문은 아니다) 그게 이번엔 발목을 잡으려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