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7화
“엘, 헌터 일이 궁금하시면 우리 엄마랑 만나보실래요?”
“음? 아아, 어머니가 헌터라고 했던가?”
“네, 우리 엄마도 마나테스급 헌터예요. 지금은 비전속으로 활동하지만 결혼 전엔 대륙 7대 헌터 길드 중 하나인 ‘여명의 활’에 있으셨어요. 마을에선 우리 엄마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다부지게 답하는 얼굴엔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랑시처럼 친절한 아이라니, 운이 꽤 좋았다. 마을을 곧장 찾았다면 훨씬 더 번거롭고 고단한 과정을 거쳤을 게 뻔했다.
신세를 갚는 셈 치고 우물이나 파줄까. 인간이 되긴 했지만 왠지 그 정도는 지금도 가능할 것 같았다. 처음 하천을 발견했을 때도 꽤 먼 곳에 있는 물소리가 들렸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수맥을 찾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눈을 감고 집중하니 역시나 희미하게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거리도 가까운 데다가 크게 깊지도 않은 것 같았다. 우물이 생기면 랑시도 한결 편해지겠지. 좋아할 걸 생각하니 벌써 완성해둔 양 마음이 뿌듯했다. 잔잔한 물소리에 돌연 이질적인 소리가 섞여들기 전까진.
“왜 그러세요, 엘?”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자 랑시가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나는 문 쪽을 한번 바라본 다음 랑시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랑시, 내 뒤로 와.”
“네?”
“어서.”
낮아진 목소리에 긴장했는지 랑시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황급히 지시를 따랐다. 쿵쿵쿵! 잠시 후 바깥에서 사납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깜짝 놀란 랑시가 내 옷자락을 부여잡은 것과 동시에 굵고 거친 음성이 들려왔다.
“랑시! 랑시, 집에 있느냐! 랑시!”
요란하게 외치는 남자의 목소리는 다급함을 담고 있었다. 랑시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시몬 아저씨?”
“아는 사람이야?”
“엄마랑 친한 헌터 아저씨예요. 오늘도 엄마랑 같이 사냥 가셨을 텐데……. 어,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봐요!”
랑시의 얼굴에 겁이 스미기 시작했다. 수상한 사람이 아닌 건 다행인데 왠지 돌아가는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서 나는 일단 계속 랑시를 뒤에 있게 한 뒤 앞으로 나섰다. 단단히 잠가둔 문고리를 풀자 열리는 문 사이로 우람한 덩치의 남자가 나타났다.
“랑시! 정말 다행이다! 집에 있었……누, 누구?”
반색하던 남자의 얼굴이 나를 보고 얼어붙었다. 나는 답하는 대신 차분히 그의 모습을 살폈다. 두꺼운 가죽에 강철을 덧댄 경장비. 허리춤엔 장검이, 등엔 제법 큰 방패를 짊어진 상태였다. 아크아돈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전형적인 전사의 차림이었다. 총기나 포탄 같은 무기는 보이지 않았다. 성냥이 있으니 화약도 발달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무기 수준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당신이 시몬인가요?”
“마, 맞소만. 넌, 아니, 당신은 누구요? 누군데 에리나의 집에…… 아니, 그보다 랑시는?”
혼란스럽게 흔들리던 눈동자가 이내 사납게 일그러졌다. 어린애 혼자 지키고 있는 집에서 낯선 사람이 나왔으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뻔했다. 다행히 오해가 깊어지기 전에 랑시가 내 뒤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시몬 아저씨?”
“어? 아, 랑시! 거기 있었구나. 이 사람은 대체 누구냐? 아무 일 없는 거지?”
“아무 일 없어요. 엘은 제 손님이에요. 그보다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엄마는요?”
그 말에 본래의 목적을 상기했는지 허둥거리던 남자, 시몬의 표정이 침착해졌다.
“랑시, 어서 깨끗한 물을 준비해라. 깨끗한 천도 있는 대로 다 가져오고.”
“네?”
“에리나가…….”
입술을 악문 남자의 시선이 뒤를 향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그와 비슷한 복장을 한 열 명 남짓의 무리가 보였다. 그쪽에 시선을 보낸 랑시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안 좋은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들 중 하나가 축 늘어진 여성을 업고 있었다. 랑시와 닮은 흑갈색 머리칼만 봐도 누군지 모를 수가 없었다.
“엄마!”
비명이 퍼지는 동안 그들은 우르르 집 안으로 들어와 의식이 없는 여인을 침대에 눕혔다. 똑바로 누운 그녀는 온통 피투성이였다. 왼쪽 어깨에서부터 복부까지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긴 상처가 원인인 것 같았다. 응급처치에 분주한 사람들 틈에서 상처를 살피다 나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날카로운 것으로 한 번에 베였다는 건 알겠는데 아무래도 그게 평범한 무기는 아닌 듯했다. 상처에서 조금 미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서늘하면서 약간 저릿한 기분이 드는, 어딘가 낯익은 느낌을 떠올리게 하는 기운이었다.
“어, 어떻게 된 거예요, 시몬 아저씨? 엄마가 왜 이렇게 다치신 거예요? 오늘은 위험한 곳엔 안 가신다고 했는데…….”
“면목이 없다, 랑시. 사고였어. 설마 이 시기에 마수가 나타날 줄은…….”
“마, 마수요?”
눈물이 범벅된 랑시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아, 역시 마수에게 당한 건가. 긴가민가했는데 상처에 서려 있는 기운이 마기가 맞는 모양이다. 왜 한눈에 알아보지 못한 건지는 이유가 너무 분명해서 내심 기가 막혔다. 카노스의 기운에 익숙해진 나머지 이제 이 정도는 마기로 느껴지지도 않는구나. 하긴 내 주위에서 가장 약하다고 할 만한 마족이 마공작인 데르온이었으니 오죽하겠나 싶다. 커피 원액만 마시다가 커피 향이 첨가된 물을 마셔본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주변 환경의 영향력을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냥 중에 아라네아가 갑자기 튀어나왔어. 마계 외각에 서식한다는 거대한 독거미지. 4급 마수라 우리 힘으로도 간신히 잡기는 잡았는데, 에리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어서 피하지 못하는 바람에…….”
“말도 안 돼요. 왜 마수가 지금 나타나요? 지금은 콴제르도 아니잖아요? 균열이 발생하는 시기가 아닌데…….”
“우리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일단 마을로 바로 가기엔 에리나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여기로 온 거야. 네브가 치료사를 부르러 갔으니 그때까지 어떻게든 에리나가 버티게 해야 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랑시?”
시몬의 말에 랑시는 구슬 같은 눈물을 떨어트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공포와 설움을 억지로 밀어낸 얼굴이 어린애답지 않은 의연함으로 무장했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깨달은 얼굴이었다. “물이랑 천 가져올게요.” 차분하게 말한 후 랑시는 부지런히 집 안을 오가며 필요한 도구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몬이 환부를 살피는 동료를 향해 물었다.
“에리나는 좀 어떤 것 같아, 델라?”
“상처는 생각보다 깊지 않아. 장기가 다치는 건 피했어.”
돌아온 답은 희망적이었다. 그러나 델라라고 불린 여자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듯 시몬의 얼굴이 굳어졌다.
“문제가 뭐야?”
“열이 너무 심한 데다가 지혈이 잘 안 되고 있어. 혀도 보라색으로 변했고. 아무래도 중독된 것 같다.”
“중독이라니. 물린 것도 아니고 그냥 스치기만 했잖아?”
“독니에 닿은 걸지도 모르지.”
“젠장, 마수 중에서도 하필이면 독을 쓰는 놈이 나타나서는. 이렇게 되면 치료사가 와도 소용없는 거 아냐?”
“집에 리타스의 뿌리가 있어요. 바로 끓여올게요.”
대화를 듣던 랑시의 움직임이 더 분주해졌다. 그러나 델라가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을 것 같다, 랑시. 물론 리타스의 뿌리는 훌륭한 해독초지만 이건 그거론 안 돼. 마수의 독은 일반적인 독과는 달라. 탁한 마기에 더 가까워서 중독되면 저주에 걸린 거나 다름없어. 신관에게 보여야 해.”
“신관이요? 우리 마을엔 신전이 없잖아요?”
“그렇지. 일단 누구든 아무나 길드에 다녀와. 콴제르를 대비해 상비해둔 성수나 성물이 있을 거야. 에리나는 길드원이 아니지만 우리가 쓸 거라고 하면 되겠지. 그거면 급한 고비는 넘길 수 있어.”
“성수나 성물은 엄청 까다롭게 관리하잖아. 우리 같은 말단이 응급 상황이라 해봤자 쉽게 내주진 않을걸. 가벼운 서류 작성만 해도 한두 시간은 걸릴 텐데, 다녀올 때까지 에리나가 버틸 수 있겠어?”
“그건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탄식과도 같은 말에 공기가 급속도로 무거워졌다. 경직된 분위기는 몇 사람이 일단 길드에 다녀오겠다며 급히 나간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얗게 질린 랑시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듯이 보였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다들 같은 결말을 예감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랑시, 우선 리타스의 뿌리라도 써보자. 해열 효과도 있으니 열이라도 식힐 수 있겠지.”
“……네.”
델라의 말에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는 작은 얼굴에서 다시 솟아오른 눈물이 애처롭게 떨어졌다. 그 모습을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보다 나는 침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랑시의 엄마, 에리나는 들끓는 열에 가파른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사경을 헤매는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한숨이 흘러나왔다.
환자를 눈앞에 두고 무력한 기분을 느껴보는 건 엔딜의 동생 세실 때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저주라곤 해도 미약한 수준인 데다가 성력으로 내린 저주와는 결이 달라서 카웰 공작 때처럼 특정 조건을 채워야 하는 것도 아니다. 원래의 나였다면 이 정도는 쉽게 정화할 수 있었을 텐데. 잃어버린 치유력이 아쉽기만 했다.
“커헉!”
“에리나!”
안 그래도 좋지 않던 상황은 더 빠르게 나빠졌다. 돌연 긁는 듯한 숨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누워 있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전신이 기형적으로 뒤틀리고 눈꺼풀이 하얗게 뒤집히고 있었다. 독이 잠식하면서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 같았다.
“이런, 에리나! 정신 차려, 에리나!”
“다들 붙잡아!”
곁에 있던 시몬이 급히 붙잡았지만 타고난 힘인지 발작의 영향인지 버둥거리는 몸을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랑시를 제외한 사람들이 모두 달려들어 제압하는 걸 도왔다. 나 역시 그들 사이에 섞여들었다.
“……?”
그런데 버둥거리는 다리를 막 붙잡았을 때였다. 문득 손에서 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수면 위에 파동이 일듯, 무언가가 출렁거리는 느낌이었다. 끈적한 액체가 진득하게 달라붙는 감각 같기도 했다.
그 이상한 느낌은 손을 떼어낼 땐 사라지고 접촉하면 다시 나타났다. 처음엔 착각인가 했지만 여러 번 반복한 끝에 착각일 수가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의식을 집중하자 더 큰 감각이 돌아왔다. 역시 틀림없었다. 에리나의 몸에 스며있는 마기가 내게 반응하고 있었다.
‘뭐지? 치유력이 있을 리가 없는데?’
치유력은 아니다. 그것과는 분명 느낌이 달랐다. 치유력이 스스로 생성한 기운을 불어넣어 영향을 주는 거라면 지금은 그냥 남의 것을 끌어당기는 쪽에 가까웠다. 중구난방으로 퍼져있는 마기가 내 손이 닿은 부분으로 모이고 있었다. 마치 내가 자석이라도 된 것 같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 행위가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만은 분명했으니까. 기운을 움직일 수 있다면 없애는 것도 가능할지 몰랐다.
나는 깊이 심호흡한 다음 의식을 집중했다. 기운을 더 강하게 끌어모은다는 의지를 품자 예상대로 별다른 저항 없이 마기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조금 뜻밖이었던 건 그 기운이 내게로 넘어온다는 거였다. 정확히는 나를 통해 외부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생각지 못한 현상이라 잠시 움찔했지만 몸에 해를 주지는 않는 것 같아서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안 그래도 모은 다음엔 어떻게 하나 했는데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나름 잘됐다 싶었다. 왠지 손등 쪽이 간질거렸다.
“이, 이봐. 당신 그거 뭐야? 지금 뭐하는 거야?”
그 순간 누군가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고개를 드니 시몬이 경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귀신이라도 본 듯 굳은 얼굴이었다.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는 이유를 곧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집중하느라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언젠가부터 내 몸에서 검은 기운이 일고 있었다. 에리나에게서 건네받은 마기가 빠져나가면서 일시적으로 일어난 현상 같았다.
“괜찮아요. 도우려는 거예요.”
“대체 무슨…….”
시몬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버둥거리고 있던 에리나가 축 늘어졌기 때문이었다. 발작이 끝난 것이다. 당황한 사람들이 쓰러진 몸을 부축하는 동안 나는 천천히 손을 떼어냈다. 가만히 잠든 듯한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그게 기분 탓은 아니었는지 조심스럽게 살피던 델라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혀 색깔이 돌아왔어.”
숨을 삼킨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돌아보았다. 다들 뭐라 형용할 수 없이 복잡한 표정이었다.
“대체 뭘 한 거지?”
“마기를 빼냈어요.”
“뭐?”
“신관이 필요한 이유는 정화하기 위해서잖아요. 그 비슷한 일을 했다고요. 마기가 전부 빠져나갔으니 이제 괜찮을 거예요. 지혈도 될 거고요. 근데 상처엔 감염이 제일 위험한 거 알죠? 여긴 한두 사람만 남고 나머진 치료사가 올 때까지 나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사실은 진작 이 말부터 해주고 싶었다. 부상자를 치료할 땐 위생도 중요하다고 들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빈말로도 환자에게 좋다고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장소도 병실이 아닐뿐더러 침대와 기구를 소독한 것도 아니다. 하물며 돌보는 사람들의 차림새마저 땀과 먼지에 얽혀 불결했다. 이대론 나을 상처도 낫지 못할 게 뻔했다. 그러나 모처럼 건넨 조언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반응이 없었다. 다들 어딘지 넋이 나간듯한 얼굴인 게, 아직 상황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엘.”
그나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랑시였다. 집주인이 말하는 건 듣겠지 싶어 나는 가까이 다가오는 랑시를 기쁜 마음으로 반겼다.
“랑시, 네가 사람들 좀 설득해 줄래? 나가 있을 거 아니면 씻고 옷이라도 갈아입게 해. 환자가 있는 곳은 청결해야 하거든.”
“네, 알겠어요. 그런데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엄마가 나았어요? 엘이 낫게 해준 거예요?”
“음? 아니, 아직 완전히 나은 건 아냐. 독만 빼낸 거야.”
“독을 빼내요? 어떻게요?”
“음, 그러게. 나도 어떻게 한 건지는 잘 모르겠어. 그냥 저절로 되던데.”
“세상에…….”
나와 랑시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나직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다들 하나같이 의심과 안도가 뒤섞인 복잡한 얼굴이었다. 동료가 나은 건 좋은데 내 정체가 수상하니 마음껏 기뻐하지도 못하는 모양이다.
왠지 이런 광경을 본 게 오늘이 처음은 아닌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익숙한지 의아해하려니 곧 지나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이사나 일행을 처음 만났을 때도 위급한 부상자를 치료했었던가. 당시 친위기사들 역시 지금처럼 복잡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었다. 정령왕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신관이냐고 물어봤었지.
“당신, 마신의 사제였소?”
그래, 바로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무심코 반색하다 뒤늦게 미친 위화감에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도 넋 놓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몬이 수상쩍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탐색하듯 매서운 시선이었지만 그런 건 조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또 그때와 비슷한 오해를 받아서는 아니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아, 실례. 우선은 감사 인사가 먼저겠지. 에리나를 구해줘서 고맙소. 생김새가 너무 멀끔해서 귀족인가 했는데 설마 사제님이셨을 줄이야. 더 대단한 분이셨군.”
“아뇨, 그런 거 말고요. 지금 마신이라고 한 거 맞아요?”
“왜요? 설마 마신관이 아니오? 하지만 그 신력의 색은 틀림없는…….”
“아니, 그게 아니라…… 마신을 알아요?”
그러자 시몬만이 아니라 주위에 있던 모두가 일제히 얼굴을 찌푸렸다. 세상에서 가장 해괴한 질문을 들었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황당해한다 한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만큼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상식에선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마신을 아냐니. 이 세상에서 마신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이어진 말은 더 혼란스럽기만 했다. 나는 얼굴이 일그러지려는 걸 억지로 참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