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왕 엘퀴네스-411화 (411/608)

제411화

어릴 때 본 공상 과학 영화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인공 지능 컴퓨터가 발달하고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면서, 인간이 로봇을 혐오하게 되는 시대 배경을 다룬 작품이었다. 그 안에서 인간은 버려지거나 납치한 로봇들을 한데 모아 처형하는 오락을 즐겼는데, 그때 로봇들은 처형당하기 직전에 신경계통을 관리하는 기관을 남몰래 분리했다. 정말 편리하겠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비로소 그 영화의 주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로봇과 인간의 차이점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통증은 몸이 보내는 경고라고 한다. 위험하다는 신호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쓸데없기만 한 기능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영원히 죽지 않을 걸 알면서도 통증을 느끼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래도 생물이라는 증거인가, 아니면 벌인가.”

어쩌면 지상과의 공감을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자기가 아파봐야 남이 아픈 것도 알 수 있으니까. 적어도 정령이 통증을 느끼는 이유는 그쪽에 가깝긴 했다. 하지만 필요 없을 때도 분리할 수 없다는 점에선 아무래도 벌 같기는 하지. 자칫 잘못되면 영원히 고통을 느낄 수도 있는 몸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천만하잖아.

“넌 뭐인 것 같아?”

나는 눈앞에서 꿈틀거리는 형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딱히 대답을 기대하고 건넨 질문은 아니었다. 어차피 놈은 지금 내 목소리를 듣지도 못하는 상태니까. 하지만 아마 들었더라도 대답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그래도 생생한 반응을 보여주더니, 심장 괴사가 오십 번이 넘어가고 나면서부터는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는 중이었다. 숨을 허덕이다가 축 늘어졌다가 다시 허덕이기만 한다. 끊임없이 같은 구간을 반복하는 테이프를 틀어둔 느낌이었다. 심장이 완전히 멈추면 잠시 기절했다가 재생된 후에는 체력을 다시 조금 되찾는데, 그때 보이는 반응도 한결같았다.

“크으…… 죽이겠…다.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

이번에도 역시 놈은 비틀거리는 상태로 일어나 무의미하게 허공을 허우적거렸다. 아무리 그래 봐야 자연체인 나는 잡을 수 없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아직도 포기를 못 한다. 끈기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 긴 시간 동안 악신이 될 준비를 해왔던 거겠지. 머리는 상당히 나쁜 것 같지만.

“커헉!”

얼음 창으로 심장을 꿰뚫자 펄쩍 경련을 일으킨 몸이 그대로 엎어졌다.

“오십 오번.”

심장이 멎는 모습을 확인하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이 방법도 이제 많이 써서 슬슬 다른 방법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데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실컷 얼렸으니 다음엔 반대로 이프리트한테 태워달라고 해볼까. 엘뤼엔이 다친 걸 알면 그 녀석도 꽤 복수심에 불타오를 텐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엘뤼엔은 어떻게 되었을까. 많이 다쳤는데 루세프든 페르데스든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든 그를 신계로 데려갔을까. 치유의 신이라면 낫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아직도 그대로 방치 중인 거면 어쩌지. 설마 소멸해버린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내가, 날 용서할 수 있을까.

그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안쪽이 저릿해진다. 이 기분을 계속 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참기 힘든 기분이 들었다. 역시 없앨 수 없는 고통은 벌이다.

그사이 잠잠했던 카류안이 다시 몸을 꿈틀거렸다. 그 꼴을 보는 것만으로도 비위가 상해서 곧바로 다시 손을 쓰려고 할 때였다.

“흐으, 이봐. 잠깐 기다려, 기다려 봐라.”

정신을 차린 놈에게서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까부터 고장 난 기계처럼 죽인다는 말만 반복하던 놈이 이번엔 웬일로 다른 대화를 시도하려는 모양이었다. 그게 신기해서 잠시 기다렸더니 기운을 얻었는지 놈의 눈빛이 살아났다.

“제안을 하나 하지. 내 손을 잡아라.”

……이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야.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갔다. 협박이 안 통하니 이번엔 날 회유하기로 노선을 바꿨나 보다. 본인이 심하게 불리하다는 걸 결국은 인정하고 받아들인 모양이다. 고작 오십 번대에서 흔들리다니 솔직히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동안의 악행을 생각하면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지난 후에야 나올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고통에 약하구나. 하긴 날 때부터 강한 마족으로 태어나 왕으로서 호의호식하며 살던 애가 이렇게 아플 일이 얼마나 있었을까.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르지. 이래선 오늘이 지나기 전에 제발 죽여달라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아까 보니, 형벌의 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더군.”

다시 심장을 얼리려는데 이어진 목소리에 몸이 멈췄다.

“그가 네 아버지가 되어주겠다 했나?”

낮게 끌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놈이 물었다. 이 순간에도 놈의 눈동자는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나를 찾고 있었다. 뻔한 수작인 걸 알아서 모습을 드러내는 대신 혈관을 얼렸다. 고통스럽게 신음한 놈은 그래도 굴하지 않고 중얼거렸다.

“넌 그에게 이용당하는 것뿐이다. 그가 진심으로 널 위한다고 생각하나? 아니, 신은 어차피 아무에게도 관심 없어.”

핏물이 흐르는 눈동자가 증오를 담고 번들거렸다. 복수심을 불태우는 표정인데 그게 나를 향한 건 아니다. 그게 조금 의아했다. 대체 무엇을 향한 원망이지?

“제가 만든 피조물이 죽어 나가도, 도와 달라 간절히 요청해도 무시하는 것들이 신이다. 그저 찬양을 받기 위해 만들었을 뿐, 필요 없어지면 얼마든지 방관하지. 다른 이가 도륙하도록 선뜻 내어주고 무참히 버린다. 알겠나, 물의 왕? 그게 바로 신이란 족속이다!”

귀를 가볍게 후볐다. 구구절절 쓸데없는 설명이 길어지는 걸 보면 아무래도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단지 내 방심을 끌어내기 위한 시도인지, 정말인 건지. 진위도 모르겠고 그리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단지 저 녀석이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정령왕 앞에서 신을 논하다니. 쟨 정령왕이 나중에 신이 된다는 사실도 모르는 모양이다. 하기야 이건 우리도 최근에야 알게 된 거니 모르는 게 오히려 당연한가. 그마저도 내가 잘못 태어났다 돌아왔기 때문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저놈 덕분에 알게 된 거라고 할 수 있겠다. 놈은 자신이 기여한 바를 꿈에도 모를 테지만.

“신을 아버지라 여긴다고?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지! 날 택해라! 넌 속고 있는 거다! 너도 결국 버림받을 것이다! 무참히 이용당하다가 필요 없어지면 쓰레기가 될 것이다! 나라면 네게 지금보다 더한 권능을 줄 수 있다! 널 농락한 신들을 찢어 죽일 수 있게 해주마! 널 기만한 형벌의 신이 네게 엎드려 빌게 해주겠다!”

그냥 처음부터 입을 막아버릴 걸,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 세 치 혀로 엘뤼엔을 건드려서 이 꼴이 되고도 감히 또 그 더러운 입에 형벌의 신을 담다니. 머리가 나쁜 줄은 알았지만 학습 능력조차 없나 보다. 그대로 놈의 하반신을 얼린 후 힘을 주어 부서트렸다.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지르는 입을 틀어막고 혀를 얼리려고 할 때였다.

“자, 자. 엘, 진정해.”

누군가가 나를 뒤에서 가볍게 끌어안고 행위를 말렸다. 자연체인 지금의 나를 만질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다.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는 알았지만 나는 시선을 돌려 내 뒤에 있는 이를 확인했다. 새카만 흑발 아래, 부드러운 빛을 띤 금안이 시선을 맞춰왔다.

“왜 멈추게 하는 거야, 트로웰.”

“충분히 괴롭히지 않았어?”

“아직 멀었는데.”

“저런, 그래도 이제 그만하는 게 좋겠어. 엘의 이런 모습도 나쁘진 않지만 난 역시 엘이 행복할 때가 좋거든.”

“지금도 행복해.”

“아니지. 지금은 화가 난 거잖아?”

틀린 말은 아니라서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만둬야 한다는 것엔 여전히 동의할 수 없었지만. 그 의지를 읽었는지 트로웰이 살짝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기분은 이해해. 솔직히 나도 여기서 끝내게 하는 건 아쉬워. 하지만 이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할 순 없어. 놈은 각성을 눈앞에 둔 상태야. 이대로 두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커. 지금처럼 하면 계속 묶어둘 수는 있겠지. 하지만 언제까지? 우리가 세대교체를 이어가며 의무처럼 놈을 감시해야 할까?”

“그건…….”

“게다가 악신의 기운은 극독에 가까워. 그 숨결과 피는 치명적인 오염 물질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오염구역이 점차 넓어지겠지. 설마 이 지역을 폐허로 만들 생각은 아니지? 여긴 네 계약자가 사는 나라이기도 하잖아.”

그 말에 나는 곧장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카류안의 피가 스며든 곳마다 흙이 썩어 있었다. 정화를 시도했던 구역도 이런 꼴이 되었었지. 여기도 한동안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폐쇄해야 할 것 같은데, 벌써 범위가 꽤 넓었다. 살짝 혀를 차니 트로웰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너도 이미 알고 있지, 엘? 지금은 놈을 소멸시키는 게 최우선이야.”

“하지만 달리 뭘 어쩔 수 있어? 소멸진은 실패했잖아.”

“그거야 다시 만들면 되지.”

그 순간 들려온 낭랑한 음성에 나는 곧바로 손을 뻗었다. 마침 재생을 마친 카류안의 몸을 완전히 얼리고 산산이 부서트렸다. 기습적인 행위에 놈은 신음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그대로 흩어졌다. 분리된 덩어리마다 시큐엘더러 붙잡고 있게 했으니 아무리 놈이라도 재생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그런 후에야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보았다. 그곳에 새카만 머리칼을 지닌 남자가 서 있었다.

“카노스.”

“안녕, 엘뤼엔의 아들? 그사이에 꽤 박력 있어졌네?”

그가 언제 온 건지 그 존재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내가 정말 정신이 없기는 했었나 보다. 물론 조금도 반갑지 않은 만남이었다. 가만히 쳐다봤더니 카노스의 웃는 얼굴이 살짝 움찔했다.

“이제 보니 일부러 트로웰을 앞세웠군요. 내가 그에겐 화를 못 낼 거라고 생각한 건가요.”

“냐하하, 눈치챘어?”

나는 그 즉시 얼음창을 만들어 카노스에게 그대로 휘둘렀다. 그러나 회심의 일격은 중간에 가로막혔다. 언제 꺼내 들었는지 그가 낫으로 막아냈기 때문이었다. 자연체 상태인 나를 볼 수 있는 존재이니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생각보다도 가볍게 막히니 얼굴이 절로 굳었다. 카노스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기색으로 눈을 휘어 접어 웃었다.

“이런, 경고도 없이 바로 공격부터 하기야?”

“당신 얼굴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올라서요. 열 받으니까 한 대만 맞아요.”

“음, 그거 한 대만 맞아도 졸도할 것 같은데?”

“그러니까 하는 말인데요.”

“하핫, 누가 엘뤼엔의 아들 아니랄까 봐. 우리 엘, 이런 점은 아버지랑 완전히 판박이구나? 갈등을 폭력으로 해결하는 건 아주 나쁜 방식이야.”

“폭력 대신 법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경우에는 그렇겠죠. 물론 그 법이 폭력보다 더 가혹한 처벌이 되어야 할 거고요. 지금 상황에선 어느 것도 해당하지 않네요. 유감이지만 그냥 폭력으로 해결하죠.”

“말투는 전혀 유감이 아닌데? 여기서 연대 책임은 너무 가혹하다고 주장해 봤자 하나도 안 통하겠지?”

“당연한 소리를 하네요.”

“그럼 엘뤼엔을 살린 건? 그거로는 정상 참작이 안 될까?”

“……그건 무슨 의미죠?”

“엘뤼엔에게 의식이 없었잖아. 내가 응급조치한 덕분에 다시 정신을 차렸거든. 나 아니었으면 그대로 숨넘어갔을걸? 이건 정말이야.”

트로웰을 돌아보니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내키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 말이 사실이긴 한 듯했다. 나는 그제야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새카맣던 하늘이 어느새 다시 맑아져 있었다. 페르데스가 멀쩡히 서 있는 모습도 보였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를 끌어안고 있는 시벨리우스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앞을 아스가 지키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엘뤼엔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돌아본 카노스는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쉰 후 얼음창을 거두고 증발시켰다.

“엘뤼엔은, 아버지는 지금 어딨어요?”

“아, 이제 드디어 아버지라고 부르기로 한 거야?”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요.”

“우와아, 엘, 정말 볼수록 다른 사람 같……알았어, 알았어. 엘뤼엔은 당연히 신계로 돌려보냈지. 지금쯤 치유의 신이 살피고 있을 거야.”

자꾸만 화제를 흩트리려는 시도에 노려보았더니 카노스가 얼른 웃으며 제대로 된 대답을 했다. 루세프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아마도 그가 데려간 모양이다. 고개를 숙여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엘뤼엔의 피로 붉게 물들었던 부분은 내가 육체를 벗은 후로는 다시 깨끗해진 상태였다. 그의 상처에 내 치유력은 통하지 않았다. 여기가 정령계였다면 좀 더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

아크아돈에선 전체적으로 능력에 제한을 받는다. 육체와 물은 오히려 더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고―가령 지금처럼 카류안 몸 안의 물을 제어한다거나―, 치유력 역시 어지간한 부상에는 다 통하다 보니 지금까지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그를 낫게 할 수 없었을 땐 그 차이를 적나라하게 실감했다. 하지만 아마 본계였더라도 완치할 수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유의 상급신은 나보다 치유력이 더 강하겠죠. 그라면 아버지를 낫게 할 수 있나요.”

“음, 정화와 치유의 신인 사나시드는 이프리트 출신이라 타고난 운 자체가 좋아. 신계엔 선과나 천상수 같은 치유를 보조해 줄 수 있는 것들도 있고. 그러니 괜찮을 거야.”

거기까지 듣고 나니 점차 현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아른거렸던 잔상이 점차 지워지며 안도감이 차올랐다.

엘뤼엔이 살아 있다.

살아날 수 있는 거구나.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주먹을 한번 쥐었다 폈다. 아직 치료 중이라면 결과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은 최악을 면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이제 좀 진정했어?”

“……당신을 당장 패지 않고 참을 수 있을 정도로는요.”

“오, 꽤 많이 진정했네.”

카노스는 싱글거렸다.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 안쪽이 왠지 거북해졌다. 단숨에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에 직면한 기분이다.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자였다.

“카……노스…….”

그때 바닥에서 미약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사이 머리의 재생을 마친 카류안이 눈을 희게 뜨고 카노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걸 내려다본 카노스가 빙긋 웃었다.

“안녕, 카류안. 그새 꽤 험한 몰골이 됐구나?”

“네……놈이……왜…….”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내가 널 구한 거라고 오해하진 마. 네겐 안 들렸겠지만 엘을 멈추게 한 건 널 완벽하게 소멸하기 위해서거든.”

“크흐흐……그게 과연, 가능할까?”

히죽 이를 드러내고 웃는 놈의 눈에 선명한 핏발이 섰다. 카노스를 뚫어질 듯 응시하는 시선엔 격렬한 감정이 가득 차올라 있었다. 그 눈동자를 보고 나는 조금 전에 했던 생각을 다시 확신했다. 카류안은 카노스를 증오하고 있었다. 아마도 꽤 오래전부터 쌓아온 감정이 분명했다. 카노스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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