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왕 엘퀴네스-409화 (409/608)

제409화

루세프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 곧 진정하고 표정을 바로 했다. 어쨌든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는 아직 의식이 없는 엘뤼엔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엘퀴네스가 치유력을 퍼부은 덕분인지 출혈은 간신히 멈춘 듯했지만, 상황이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치유의 신에게 데려간다 해도 곧장 좋은 결과가 나오진 않을 것 같았다.

‘우선 신계로 옮겨야 할 것 같은데…… 이 몸으로 차원 이동을 감당할 수나 있을까.’

물론 지금은 차원 이동 자체가 될지를 걱정해야 하는 판국이긴 했다. 벌써 움직였어야 할 신계가 아직도 조용하다.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먹구름도 그대로였다. 아무래도 결계에 갇힌 상태인 것 같았다. 루세프는 일단 제 선에서 필요한 응급 처치를 한 후 이번엔 페르데스 쪽을 향했다. 엘뤼엔과 마찬가지로 페르데스 역시 아직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그녀를 보살피고 있던 트로웰이 고개를 들고 차분한 시선을 보내왔다.

“엘뤼엔은 어때?”

“그리 좋진 않아. 페르데스는?”

“페르데스는 괜찮아. 곧 의식을 차릴 것 같아.”

그 말대로 페르데스는 생각보다 상태가 좋아 보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루세프는 다시금 엘퀴네스와 악신이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트로웰 역시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엘퀴네스 덕분에 시간을 벌었어.”

“응, 저렇게 화가 난 엘은 처음 봐. 멋있네.”

“……너희, 단체로 무슨 최면에 걸렸어?”

“실제로 멋있잖아?”

“음, 그래. 분명 멋진 거긴 한데 말이야…….”

그래도 그거 말고 좀 더 다른 표현이 있을 것 같은데. 루세프가 머릿속에 떠오를 듯 말 듯한 단어를 생각해내느라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트로웰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채 한없이 엘퀴네스를 바라보기만 했다. 따스한 빛을 품은 눈동자가 지난 추억을 담고 아련해졌다.

“저 모습을 보니 예전에 들었던 말이 떠올라. 전대의 이프리트가 알려줬던 거였는데. 정령왕의 힘은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지만, 인간들은 선호도 면에서 엘퀴네스를 가장 높이 평가한다고 했었지.”

“그게 뭔 말이야?”

“언젠가 그들 사이에서 돌던 말이래. 상대를 빠르게 죽이고 싶다면 바람의 힘을, 반대로 천천히 말려 죽이고 싶다면 땅의 힘을, 가장 아프게 죽이고 싶다면 불의 힘을, 그리고 절대적인 공포 속에 죽이고 싶다면 물의 힘을 추구하라고 한다나.”

“거참, 누가 인간 아니랄까 봐 구분하는 방식하곤.”

페르데스가 의식을 차린 건 그때였다. 속눈썹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하다 굳게 닫혀 있던 눈꺼풀이 열렸다. 선명히 드러나는 보라색 눈동자를 보고 트로웰이 살짝 웃었다.

“정신이 들어, 페르데스?”

“……트로웰.”

의식을 차린 후에도 페르데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러나 상황을 인지할수록 그의 표정은 점차 굳어갔다. 소멸했어야 할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건 한 가지 의미밖에 없었으니까. 그는 서둘러 몸을 일으키고 가늘게 뜬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왜…….”

“소멸진이 실패했어.”

대답은 바로 이어졌다. 이 상황에선 누구라도 예상할 수밖에 없는 답변이기도 했다. 숨을 삼킨 페르데스가 참담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결국 악신이 각성한 거구나.”

“아니, 다행히 완전히 각성하진 못했어. 그리고 아무래도 한동안은 각성하지 못할 것 같네.”

“뭐? 그게 무슨…….”

“엘이 화가 많이 났거든.”

당황하는 페르데스에게 루세프가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제야 그녀도 엘퀴네스가 진노하고 있는 현장을 알아보았다. 더불어 그가 분노한 이유 역시 바로 깨달았다.

“맙소사, 엘뤼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남자를 발견한 페르데스가 숨을 삼켰다. 급히 움직이는 그의 뒤를 따라 루세프와 트로웰도 이동했다. 엘뤼엔의 곁을 지키고 있던 아스모델이 약간 뒤로 물러나 그들이 편히 살필 수 있도록 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엘이 위험했어. 자칫 소멸할 위기였는데 그걸 엘뤼엔이 자신의 몸으로 보호했지.”

“그럴 수가…….”

“솔직히 놀라워. 아버지가 되어준다곤 했지만 그가 설마 엘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아버지…….”

얼굴을 굳힌 페르데스가 고개를 들고 루세프를 바라보았다. 불안감을 담고 일렁이는 시선에 당황한 루세프가 곧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고 덩달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냐, 시계를 반대로 돌린 건 아닐 거야.”

“확실합니까?”

“엘뤼엔이 선택된 거라면 다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바로 소멸했겠지. 그리고 거기서 전부 끝났을 거야. 하지만 아직 살아 있잖아.”

“그건, 확실히 그렇군요.”

“지금 이게 다 무슨 말이야?”

대화에서 거슬리는 흐름을 감지한 트로웰이 물었다. 동시에 멈칫한 페르데스와 루세프가 서로 난처한 시선을 주고받는 걸 보고 그의 눈빛이 더 날카로워졌다.

“라데카의 운명의 시계는 반대로 돌리면 운명에 강제성을 부여하지. 설마 라데카가 희생자에 적합한 운명을 읽어냈어? 그중에 ‘아버지’가 있었던 거야?”

“……맞아. 하지만 내가 자원했기 때문에 시계는 돌리지 않기로 했어.”

“페르데스, 네가 소멸진에 자원한 이유가…….”

“엘을 의식한 마음이 전혀 없었다곤 할 수 없지. 하지만 희생이라는 게 원래 다른 이를 위한 거잖아. 그리고 그건 마음을 정한 이유 중 하나일 뿐이야. 본심은 말했던 그대로야.”

잠시간 복잡한 표정을 지은 후 트로웰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엘에겐 알리지 않을게. 안 그래도 죄책감을 느끼던데 이런 내막까지 알면 더 힘들어할 거야.”

“그렇겠지. 배려 고마워, 트로웰.”

“반기지 마. 좋아서 하는 배려가 아니야.”

불만스러운 타박이 이어졌지만 페르데스는 오히려 더 웃기만 했다. 속 편하게 기뻐하는 그녀를 보고 트로웰은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원래는 희생자를 운명의 시계로 정하기로 되어 있었다는 거지. 이번 소멸이 실패한 탓에 원래 계획대로 갔을 수도 있다는 거고.”

“그래.”

“소멸진은? 그게 저절로 생성되는 구조는 아닐 텐데.”

“그건 원래 악신과 쉽게 연결하도록 돕는 장치에 불과해. 어떤 식으로든 연결만 한다면 진행할 수 있어.”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휘말릴 수 있다는 말이구나. 그럼 엘뤼엔이 이렇게 된 것 자체가 그 운명의 흐름을 탄 것일 수도 있겠네.”

정곡을 정확히 짚어낸 것에 페르데스는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루세프 역시 인상을 잔뜩 구긴 채 머리를 북북 긁었다.

“으으음,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말했다시피 엘뤼엔은 살아 있어. 아직 라데카가 시계를 돌렸다고 판단하기엔 일러.”

“응, 맞아, 맞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그 순간 경쾌한 울림을 담은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깜짝 놀라 돌아본 그들은 그 앞에 서 있는 이를 발견하고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장신의 남자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리도록 하얀 피부 위에 먹물을 머금은 것처럼 짙은 흑발이 강렬했다. 미풍 속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에 드러난 눈동자 역시 밤하늘보다 짙은 암흑을 품고 있었다.

“카노스!”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아스모델의 눈이 한계까지 커졌다. 경악을 담은 시선에 눈웃음으로 화답한 카노스가 주위를 느긋하게 돌아보았다. 쓰러져 있는 엘뤼엔 쪽을 한 번, 그리고 악신이 있는 쪽을 한 번 바라본 그에게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야, 정말 막장이네.”

비꼬는 건지 정말 감탄하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말투였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다시 굳어 있는 이들을 향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는 그들에게, 카노스가 장난치듯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경례했다.

“안녕, 여러분. 주인공 등장입니다. 오래 기다렸지?”

* * *

“마, 마신이 결계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얼굴이 희게 질린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보고했다. 그에 화답하듯 여기저기에서 신음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사방은 폭풍이 갓 휩쓸고 지나간 현장 같았다. 모여 있던 이들 중 반은 쓰러져 의식이 없었고, 나머지 반은 극심하게 탈진했다.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섀넌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이게 소멸진이 실패한 반동이었다면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전혀 다른 게 원인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 이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 처참한 현실을 돌아보는 것보다 그 원인을 떠올리는 게 더 괴로웠으니까. 모든 게 다 엉망진창이었다.

섀넌은 한숨을 내쉰 후 옆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선 이오웬이 쓰러져 있는 소녀를 살피는 중이었다. 의식이 없는 소녀는 흑단처럼 검은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그 어두운 피부 위에 흐르던 머리칼은 달빛을 옮겨 담은 듯한 순백이라 평소 밤하늘의 은하수 같다는 평을 받아왔었다. 별을 통해 지침을 알리는 운명의 여신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평이었다. 그런데 그 상징적이기도 한 머리칼이 지금은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라데카는 어떻습니까?”

“한동안 깨어나지 못할 것 같아.”

고개를 든 이오웬이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답했다. 섀넌은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새삼스럽게 당황하기엔 이미 그럴 거라 짐작했던 바였다. 그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안경을 고쳐 썼다.

모든 일은 한순간이었다.

신계가 마지막 희망으로 걸고 있던 소멸진이 실패했다. 페르데스에게 걸어둔 술법이 파괴되면서 아크아돈과 연결되어 있던 시야가 빠르게 닫혔다. 다시 곧바로 연결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악신 쪽에서 결계를 친 것 같았다. 그러나 모두를 혼란에 빠트린 건 다음으로 이어진 카노스의 행동이었다.

“미안, 라데카. 원망은 나중에 들을게.”

그때까지 카노스는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느긋한 모습이라 그를 본 모두가 무심코 안심했다. 그가 괜찮다면 분명 다 괜찮을 테니까. 그런데 생긋 웃은 그가 돌연 라데카를 돌아보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건넸다. 너무 태연해서 당사자인 라데카조차 그가 한 말을 곧바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직후 그에게서 강한 힘이 터져 나왔고 얼굴을 찌푸리던 라데카의 표정에 경악이 서렸다. 그게 모두가 기억하는 마지막 광경이었다.

파장이 크게 일어나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곳에 있던 모두가 아무런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휘말렸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어진 상태였다.

‘카노스. 당신은 도대체…….’

눈앞의 참상을 고통스럽게 응시하며 섀넌은 낮게 탄식했다. 바닥엔 투명한 파편들이 가득했다. 엉망으로 파손된 조각들 사이에서 튀어나온 초침과 글자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조금 전 카노스가 산산조각으로 부서트린, 운명의 시계가 남긴 흔적이었다.

* * *

“지금…… 뭐라고 했어?”

얼빠진 루세프의 표정에 카노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조금 전 도저히 믿기지 않는 한마디로 모두를 충격에 빠트린 당사자라기엔 지나치게 태연자약한 태도였다. 역시 자신이 잘못 들은 게 분명했다. 루세프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다시 물었다.

“네가 뭘 해? 시계를 파괴했다고? 설마 그게 라데카의 운명의 시계를 말하는 건 아니지?”

“그거 맞는데.”

“이 미친놈아!”

더는 참을 수 없어진 루세프가 카노스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그가 멱살을 움켜쥐기 전에 카노스가 피하는 게 더 빨랐다. 간발의 차이로 분노를 터트릴 곳을 잃은 루세프는 더 크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걸 대체 왜 파괴해!”

“라데카가 돌리려고 해서 막은 거야.”

“그러니까 돌리면 돌리는 거지 그걸 왜 막냐고!”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할 수 없잖아. 누가 내 경고를 참 맛있게 잘도 드셔서 말이지.”

“대체 무슨…….”

“하필 적합자가 사건 현장에 너무 가까이 있더란 말이야. 결국 다쳤잖아. 이래서 가만히 있으라고 한 건데.”

전혀 안타까워하지 않는 얼굴로 혀를 차는 카노스를 루세프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향한 곳이 어딘지 분명했기에 하려는 말이 뭔지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설마 엘뤼엔이 죽을까 봐 시계를 부쉈다는 거야?”

“아, 그게 그렇게 되네.”

“뭘 새삼 깨달은 척이야! 처음부터 대놓고 말해놓고!”

카노스가 생글 웃었다. 루세프는 다시금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마신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신이었다. 그가 하는 말이나 행동을 통해 진위를 판단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면서도 일단 확인해보고 싶은 게 본능적인 심리였다.

“진짜 그래서 부순 거라고? 그냥 상황 다 망쳐놓고 파국을 즐기려고 한 게 아니라?”

“너무하네. 내가 그런 성향이 강한 건 맞지만. 이런 때까지 장난을 치진 않거든?”

“아니, 믿을 수가 없잖아. 네가 남의 목숨을 걱정하는 놈이었냐는 건 둘째치고…… 대체 엘뤼엔을 언제부터 알았다고?”

“어, 몰랐어? 우리 아주 절친한 사인데.”

“……그거 엘뤼엔도 동의한 부분이야?”

미심쩍은 표정으로 한 질문에 카노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일부러 외면하는 게 분명한 모습이었다.

“어쨌든 이제 운명이 강제로 희생자를 정할 일은 없어.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니 잘됐잖아?”

“그게 지금 잘됐다고만 하고 끝낼 일이야? 그보다 시계가 부서졌으면 라데카는 어떻게 된 건데! 신계는!”

“뭐, 조금 정신이 없긴 하겠지.”

아니, 고작 그 정도 수준일 리가 없었다. 시계가 부서졌으니 라데카는 힘을 잃었을 거고 폭발하면서 일어난 파장으로 신계 전체가 엉망이 되었을 게 분명했다. 소멸진이 실패했는데도 바로 이어서 대응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했더니 바로 이게 원인이었구나. 루세프는 신음을 삼켰다. 자신의 힘이 부족한 탓에 화근을 눈앞에 두고도 주먹 하나 제대로 날리지 못하는 게 천추의 한이었다. 물론 루세프가 그러거나 말거나 카노스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건 페르데스 쪽이었다.

“내가 일을 이렇게 만들어서 야속한가, 죽음의 여신? 네겐 무거운 짐을 넘길 기회였을 텐데.”

그 질문에 페르데스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처음부터 무겁다고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안심했습니다.”

“아, 맞아. 넌 꽤 시원시원한 성격이었지. 야속한 건 오히려 이쪽이려나?”

웃음기를 머금은 눈동자가 페르데스 옆에 있던 트로웰을 향했다. 트로웰은 잠시 얼굴을 찌푸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만나본 적도 없던 신이 제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이 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신의 악명은 워낙 잘 알고 있었다. 그 앞에선 모든 게 의미 없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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