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왕 엘퀴네스-405화 (405/608)

제405화

언제였던가. 미네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갓 탄생한 그와 인사를 마쳤을 무렵이었을 거다. 물의 영역으로 쉬러 가는 중에 문득 정령계를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홀린 듯이 에바스 에덴으로 향했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보석 꽃들과 달콤하고 짙은 향을 풍기는 나무숲, 눈이 시릴 정도로 새파란 하늘을 한참이나 구경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본계는 분주한 아크아돈에선 느낄 수 없는 평온과 안락함이 있었다. 따스한 햇볕에 흠뻑 취하며 한참 단잠에 빠져든 듯한 기분이었다. 아마 말을 걸어오는 이가 없었다면 며칠이고 하염없이 그렇게 서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엘, 여기서 뭐 해?”

부유감으로 멍해진 머릿속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약간 노곤해진 기분으로 돌아본 곳엔 트로웰이 있었다.

“아, 트로웰. 그냥 잠시 정원을 구경하고 있었어. 뭔가 좀 신기해서.”

“신기하다니?”

“정원이 새삼스럽게 보인다고 해야 하나. 미네가 태어나고 나니까 분위기가 조금 바뀐 것 같아.”

“아아, 그렇네. 화풍이 달라진 것 같지?”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 줄 알았는데 트로웰은 오히려 선뜻 동조해왔다.

“트로웰도 그렇게 느꼈어?”

“응, 이번이 세 번째야.”

“세 번째?”

“이프리트랑 엘 너랑 미네까지 말이야. 난 정령왕의 세대 교체를 전부 다 봤으니까. 그럴 때마다 조금씩 느낌이 달라지더라고.”

“헉, 그렇구나.”

그 정도면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닌 게 분명했다. 내심 놀라워하는 날 보며 트로웰이 빙긋 웃었다.

“재밌지? 같은 성질의 정령왕인데도 외형이나 성격만이 아니라 기운까지도 다르다는 게 말이야. 분명 똑같은 존재라는 건 알겠는데 동일시하기는 어렵지. 아마 눈을 가리고 있어도 누가 누군지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을걸.”

“그건 좋은 것 같아. 헷갈리지 않을 수 있잖아.”

“응, 맞아.”

쏴아아―

때마침 세찬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을 온통 흐트러트렸다. 품고 있는 기운이 달라진 탓인지 그 흐름에 온몸을 맡긴 트로웰의 분위기도 이전과는 달라 보였다. 아마 그래서였을 거다.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던 화제를 내가 먼저 꺼내고 만 것은.

“미네르바 말이야, 신이 되겠지?”

트로웰이 하늘을 응시하던 시선을 거두어 나를 돌아보았다. 기분 좋게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을 그대로 유지한 채였다. 그래서 더 용기를 냈다.

“트로웰은 미네르바가 무슨 신이 될 것 같아?”

“음……글쎄, 무슨 신이든 상관없어. 하지만 그를 위해서 마속성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그쪽은 일이 많다고 들었거든.”

“아, 맞아. 엘뤼엔만 해도 서류 더미에 파묻혀 지내더라구. 집무실뿐만 아니라 복도까지 서류가 산처럼 쌓여 있었어.”

“저런.”

“그래도 상급신이라 그런지 궁은 크고 멋있었어. 다른 상급신들도 다 엄청 큰 궁을 갖고 있더라고. 고유 문장이 생기는 것도 멋진 것 같아.”

“그렇네.”

“저기, 트로웰.”

“응?”

“금방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말에 살짝 커진 금안이 곧 이내 부드럽게 휘어졌다.

“……응.”

비록 예전과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상황이 변하더라도, 그래도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 지내는 곳이 달라진 것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이별의 상실감을 금방 털어낼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다시 만날 땐 어떤 기분이 들지, 그에게 어떤 말부터 할지 상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재회의 순간에 이런 장면은 없었다.

말도 안 돼.

머릿속을 채우는 건 오직 한 문장뿐이었다. 너무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워서 몇 번이나 확인하는 과정을 다시 거쳤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판단이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미네르바잖아. 틀림없이 미네르바야. 저 상급신…… 우리가 아는 미네르바, 맞는 거죠?”

“그럴 거야.”

돌아오는 대답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조금도 기쁘지 않은 확인이었다. 아니, 오히려 믿을 수 없는 기분만 더 커졌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 상황이 더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나는 루세프를 바라보았다. 씁쓸한 표정을 한 그는 이쪽을 똑바로 마주 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째서……? 미네르바는 소멸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이제 막 신이 됐단 소리잖아요?”

“맞아, 그렇지.”

“그런데 왜…….”

“그가 자원했어.”

자원?

또다시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다. 잠시 자원이란 단어의 뜻이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달라진 건가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의미 따윈 떠오르지 않았다.

미네르바가, 희생을 자청했다고?

얼굴이 일그러지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모르겠다. 이다음으로 뭘 해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 대신 나는 옆에 있던 트로웰을 돌아보았다. 그는 천천히 하강하는 미네르바를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곧 완전히 하강한 미네르바가 지상으로 내려섰다. “여어―” 루세프가 어색한 얼굴로 손을 들어 보였다. 그와 시선을 마주한 미네르바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아슬아슬했군요, 루세프. 신호가 오지 않아서 실패한 건 아닌지 염려했습니다.”

“아니, 뭐. 생각보다 찾기가 어렵더라고.”

“그래도 늦지 않았으니 됐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뒤는 제게 맡기세요.”

차분한 답변에 루세프는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그를 뒤로한 채 앞으로 한 걸음 내딛는 미네르바를 향해 나는 서둘러 다가갔다. 이번에도 미네르바는 옅은 미소로 맞았다.

“엘.”

“미네르바…….”

“아니, 이젠 페르데스야.”

아아, 그래. 그러고 보니 새 이름을 받은 것 같았지. 조금 전 어렴풋이 들었던 소개말이 스쳐 지나갔다. 죽음과 망자의 신이라고 했던가? 흑발이 되면서 더 고혹적인 분위기로 변한 그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직함이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좀 더 마음껏 감탄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생각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어떻게 된 거야. 대체 왜 네가…….”

다급히 채근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 나를 달래듯이 미네르바, 아니, 페르데스가 고요히 미소 지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어. 그렇다면 내가 하는 게 가장 낫다고 판단했을 뿐이야.”

“왜, 왜? 왜 그런 판단을 해? 넌 이제 막 신이 됐잖아.”

“바로 그렇기 때문이야. 신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미련도 별로 없거든. 책임지는 것도 없고, 부담하고 있던 일도 별로 없으니 뒤탈도 제일 적어.”

“하지만 이건 말이 안 되잖아…….”

“그건 어차피 누구든 마찬가지야.”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고개를 젓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페르데스의 말이 맞았다. 어차피 누군가는 반드시 희생해야 하고, 그게 당연하지 않은 건 누구든 마찬가지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내가 그를 만류할 자격이 있나 싶었다.

문득 근처에 서 있는 엘뤼엔에게 시선이 미쳤다. 조금 전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을 때, 얼핏 스쳤던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 ―엘뤼엔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었다.

“그런 표정 하지 마.”

페르데스가 씁쓸하게 웃었다. 다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마치 내 생각을 다 헤아린 것처럼 보여서 차마 눈을 맞출 수가 없었다. 온몸의 치부를 들킨 기분에 나는 고개를 숙이는 쪽을 택했다. 내가 이렇게 추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속이 울렁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미네르…… 아니, 페르데스, 나는…….”

“괜찮아, 엘. 어차피 완전히 소멸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신적에서 제명되고 평범한 혼 중에 하나가 될 뿐이지. 어차피 난 신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어. 아니, 어쩌면 이거야말로 내가 바랐던 길일지도 몰라.”

“그게 무슨…….”

“난 늘 인간이 되고 싶었으니까.”

“……!”

미네르바가, 인간이 되고 싶어 했다고?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페르데스는 여상히 웃는 얼굴이었다.

“뜻밖이라는 표정이구나. 엘, 너도 인간의 삶보다는 신이 낫다고 생각해?”

“아, 그게…….”

“그래, 네가 맞을지도 몰라. 어쩌면 가 보지 못한 길을 동경하는 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오래전부터 관조자의 삶은 내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 마음껏 울고 웃으며,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에 열중하는 치열한 세상에서 살고 싶었지. 비록 그게 큰 그림에서 보면 한없이 보잘것없더라도.”

“페르데스…….”

“선택할 수 있었다면 이번에도 처음부터 인세를 택했을 거야. 물론 이후로도 신이 되는 길은 최대한 피했을 거고. 그러니 신적은 내겐 큰 의미가 없어. 엘, 네가 이 결정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러면 우리와 만나지 못하게 되는데도? 그래도 넌 괜찮은 거야, 페르데스?

혀끝까지 차오른 말을 간신히 삼켰다. 차마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도 없는 내가 그를 원망하는 듯한 말을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싸운 것도 아닌데 무참히 진 것 같았다. 입술을 깨무는 동안 페르데스는 가볍게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 후에야 그의 시선이 내 옆에 있던 트로웰을 향했다.

“안녕.”

“응, 안녕.”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서로 마주 선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인사가 오갔다. 트로웰은 신기한 듯 흥미로운 듯, 페르데스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이 검어졌네.”

“이상해?”

“아니, 잘 어울려. 이 모습을 보는 게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게 아쉬울 만큼.”

담담한 답변만큼이나 트로웰의 표정은 여전히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게 오히려 난처했는지 페르데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화난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해?”

“이런 결정으로 놀라게 했으니까.”

“전혀. 하나도 놀라지 않았는데. 사실은 정화진이 실패했을 때부터 다 알고 있었어. 이미 봤거든.”

“……!”

그 대답엔 내가 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불현듯 그가 얼마 전 괴로운 얼굴로 나타났을 때가 떠올랐다. 내게 눈물을 다시 빌려달라고 했었지. 알고 싶지 않은 걸 알아버렸다고. 그러면서도 끝내 뭔지는 말하지 않아서 그를 끌어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트로웰은 이런 날이 올 줄을 알고 있었던 거다.

“미래는 유동적이니까, 빗겨나길 기대했지. 하지만 결과는 역시 이렇게 되고 말았네.”

“……내게 질렸겠구나.”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이번엔 트로웰이 가볍게 실소했다.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당황한 페르데스가 눈을 깜빡이자 트로웰이 나른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안 질렸어. 네가 그럴 줄 몰랐던 것도 아닌걸. 4천 년 전 그 인간에게 마음을 주기 전부터, 넌 유난히 그 나약하고 이기적인 종족에게 마음을 쏟았지.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어. 새삼스럽게 질릴 리가 없지.”

“…….”

“넌 내가 널 보호하느라 인간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지. 맞아, 비슷해. 인간이 정말 싫었어. 네가 언제고 훌쩍 그들 사이로 날아가 다시는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거든. 바로 지금처럼.”

“……트로웰.”

“그리고 난 그걸 말릴 수 없겠지. 네가 그 비천한 인간 남자를 사랑하게 됐을 때도 그저 지켜만 봐야 했듯이.”

잠시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한 페르데스의 얼굴은 흐려져 있었다. 그 모습을 눈에 담듯이 천천히 살피던 트로웰이 가벼운 한숨과 함께 먼저 입을 열었다.

“널 비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야. 그냥 그렇다는 것뿐이야. 그래도 지금은 상황이 조금 바뀌긴 했지. 엘 덕분에 정령왕이 신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거든. 그게 내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지.”

“……?”

“난 신이 될 거야.”

이어진 말은 거의 선언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잠시 멈칫한 페르데스가 간신히 미소 지었다.

“그래. 그렇겠지.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건 아쉽네. 분명 잘 어울릴 텐데.”

“아니, 볼 수 있어. 우린 다시 만날 거니까.”

“무슨…….”

“네가 어디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지, 내가 반드시 찾아낼 생각이거든. 찾아낸 네가 죽으면 다음 환생도, 그다음 환생도 계속해서 다시 찾을 거야.”

“……!”

“말했잖아, 내가 널 기억할 거라고. 그때 내가 했던 말들은 여전히 유효해. 단지 기억하는 건 내 몫이니까, 너는 전부 다 잊어도 괜찮아.”

“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러게. 왜일까.”

중얼거리듯 대답한 트로웰이 문득 아프게 웃었다.

“내가 널 많이 좋아하나 봐.”

페르데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나 역시 깜짝 놀라서 트로웰을 바라보았다. 당혹감을 드러낸 페르데스가 입을 벙긋거릴 때였다. 돌연 트로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조금은 후회가 됐어?”

“너…….”

숨 막히던 공기가 한순간에 편안해졌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능청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트로웰의 모습에 황당해하던 페르데스가 곧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질이 나빠.”

“하지만 내 감정이 사실이었어도 넌 포기하지 않았을 거잖아.”

“그건…… 맞아.”

“정말 질이 나쁜 게 어느 쪽이야?”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차는 모습에 페르데스가 피식 웃었다. 완전히 그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인 게 분명했다. 실제로 트로웰의 표정 역시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태연히 웃는 얼굴은 아무리 봐도 깊은 감정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정말 농담이었을까? 트로웰이 이런 농담을 하는 성격이었던가? 머리를 가득 채운 어떠한 예감에 목이 점점 메어오는 것 같았다. 물론 착각일 거다. 나보다 미네르바가 훨씬 더 그를 오래 알았으니까. 고작 몇 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세월이었다. 그런 그가 내가 알아보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때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진실에서 가장 멀리 있기도 한 법이다. 문득 트로웰과 시선이 마주쳤다고 느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깨닫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모든 게 전부 선명하게 보였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건 그가 살짝 고개를 저었기 때문이었다. ‘난 괜찮아.’ 스쳐 지나가는 시선에서 그가 전하는 말이 들렸다.

“넌 항상 진지하게 말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담이고 농담인지를 모르겠어.”

“그런 건 몰라도 되는데. 나도 잘 모르겠거든.”

“넌 정말이지…….”

“하지만 신이 되어 널 찾을 거라는 건 정말이야. 어디서든 네가 평안할 수 있도록 내가 뒤에서 늘 지원할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인 것 같네.”

“트로웰, 그러지 않아도 돼.”

“아니, 내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서 그래. 그러니 넌 아무것도 돌아보지 마. 무엇에도 흔들리지 말고 망설이지도 말고, 네가 가고 싶은 길을 가.”

“……네겐 늘 위로만 받는구나. 그에 비해 내가 너무 나쁜 친구라 미안해.”

“사과하지 마. 질 나쁘다는 건 농담이었어. 넌 하나도 나쁘지 않아.”

가볍게 웃은 트로웰이 고개를 저었다. 이윽고 그가 손을 내밀어 페르데스의 검은 머리칼을 살짝 손에 쥐었다. 그리곤 천천히 그 위에 입을 맞췄다.

“그냥 내 감정이 너보다 더 큰 것뿐이야.”

페르데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번에도 농담으로 여겼는지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진위를 살피려는 얼굴이었다. 아무리 그라도 이상한 점을 느낀 건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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