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3화
“아하하, 근데 엘뤼엔은 총을 어떻게 알아? 아, 신이니까 당연한 건가.”
그러고 보니 언젠가 환상 마법에 빠진 날 구하러 왔을 때도 그는 한국의 환경에 섞이는 것에 자연스러워 보였다. 루세프도 바로 무기의 정체를 알아보는 걸 보면 신들은 모든 차원의 지식을 갖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이 굉장히 뜻밖이었다.
“총은 바이톤에서도 쓰는 무기다.”
“엇? 정말? 거기서도 총을 쓴다고? 바이톤은 마법을 쓰지 않아?”
“그랬었지. 하지만 마법사가 마계와 차원의 길을 연결한 이후로는 전통 마법 사용에 제한이 가해졌다. 이후로 다른 방식의 힘과 무기가 발달하기 시작했지. 총기도 그중 하나고. 그래도 지구와는 조금 다른 형식이긴 하다.”
“허어, 그렇구나.”
엘뤼엔이 담당하는 바이톤에 대해선 제2의 마계라고만 들었지 따로 알아보려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들으니 꽤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 세계인 것 같았다. 내가 드래곤이기만 했어도 구경 가 볼 수 있었을 텐데, 다른 차원에는 갈 수 없는 정령왕인 게 아주 조금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나머지도 처리하지.”
엘뤼엔이 다시금 신기를 들어 올릴 때였다.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
밑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싶더니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내려다본 곳엔 익히 아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푸르스름한 피부에 반짝이는 은발이 눈에 띄었다.
“어? 시벨?”
다시 보고 또 봐도 그는 시벨리우스가 맞았다. 그의 이름을 부르자 루세프가 옆에서 흠칫 어깨를 떠는 것이 느껴졌다. 왠지 굳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동안 시벨리우스가 날개를 꺼내 활짝 피고는 우리가 있는 곳으로 날아올랐다.
“엘, 오랜만이야! 너무 보고 싶었어!”
“시벨! 어떻게 된 거야? 여길 어떻게 왔어?”
“그게, 설명하려면 좀 길어. 일단은 저 마족들을 쫓아온 거야. 중간부터 행방을 놓쳐서 계속 헤매고 있었던 참이었지. 그러다 신들이 나서는 것 같아서 상황을 보는 중이었어.”
“헉, 그랬구나.”
“그래서 말인데, 저 마족들 최대한 살리는 방법으로 갈 수 없을까? 쟤들은 그냥 이용당하는 건데 저대로 다 죽이면 좀 그렇잖아. 아니, 사실 난 상관없는데 상심이 큰 녀석들이 있어서 못 본 척하기가 좀 그렇네. 아스가 그러는데 주술을 풀 방법이 있대.”
“아스가?”
그러고 보니 시벨리우스는 아스와 계약을 하러 보내졌다. 그가 지금 여기 있다는 건 아스와 데르온도 함께 있다는 소리였다.
“대부.”
내 귀여운 대자가 어디에 있나 싶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뒤쪽에서 나를 부르는 음성이 들렸다. 누군지는 굳이 짐작할 필요가 없었다. 이 세상에서 나를 대부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단 한 사람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목소리가 내가 알던 것보다 낮았다. 나는 조금 당황해서 뒤를 돌아보았다가 눈을 천천히 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먹물처럼 새카만 긴 흑발이었다. 눈처럼 시리도록 새하얀 피부, 눈동자는 장미를 머금은 듯이 붉었다. 분명 익히 잘 아는 외모, 익숙한 이목구비였다. 그러나 시선이 닿는 위치가 내가 알던 것보다 너무 높았다. 체형도 키도 훨씬 크고 건장했다. 그런데도 분명 내가 아는 얼굴이라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설마 설마 하면서 나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벌렸다.
“……아스야?”
내 질문에 낯선 듯 낯익은 남자가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이며 빙긋 웃었다. 그러자 봄처럼 화사해지는 얼굴에서 꽃 같은 사랑스러움이 피어올랐다. 내가 누구보다 잘 아는 바로 그 사랑스러움이었다.
“응, 대부. 아스야.”
* * *
꼬마였던 아이가 훤칠한 청년이 되어 나타났다. 눈으로 보면서도 인정하기 힘든 사실을 내가 완전히 받아들이기까진 다소 시간이 걸렸다. 마지막으로 봤던 아스는 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외모였다. 우리가 헤어져 있던 기간은 어림잡아 한 달 남짓. 늦봄이었던 날씨가 그사이 완연한 여름에 접어들었지만 일반적으로 아이가 성인으로 자랄 수 있는 기간은 아니었다.
“어떻게…….”
소설에서 나왔어도 말도 안 된다고 여겼을 일인데, 그게 현실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아스가 마족이고 성장 속도가 빠른 편이라 도 이렇게 갑자기 크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싶었다. 그의 뒤쪽에서 뿌듯한 얼굴로 서 있는 데르온이 보이지 않았다면 혹시 비슷하게 생긴 누군가가 사칭하는 건 아닌가 싶었을 거다. 사실 그런 의심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세한 정황을 물어볼 틈도 없이 곧바로 다음 일이 진행됐다.
“설명은 천천히 할게. 대부, 일단 나 좀 도와주지 않을래?”
“어? 뭐, 뭘?”
“나를 마신과 연결해 줬으면 해.”
“어엉?”
“저 주술을 풀려면 내가 먼저 왕의 권능을 가지고 있어야 하거든.”
아, 그러고 보니 아스가 주술을 풀 방법을 안다고 했지. 갑자기 어른이 된 대자의 모습이 너무 놀라워서 잠시 잊고 있었다. 아스는 이미 마왕의 자격을 받았음에도 권능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그게 있어야 방법이 생기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걸 깨달았다고 해서 앞선 요구가 이해되는 건 아니었다. 카노스와 연결해 달라는 게 대체 무슨 뜻이지?
“조건은 다 갖췄는데 마신의 힘이 더 멀어졌어. 아무래도 악신 때문에 기존의 순리가 이지러지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마신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해. 하지만 이쪽 신전은 이미 다 오염되어서 참배실을 쓸 수가 없어.”
“으음, 그렇구나. 상황은 알겠어. 알겠는데, 그걸 내가 해결할 수 있을까…….”
“물론 대부밖에 할 수 없는 일이야. 대부도 마신의 신전을 갖고 있잖아?”
“그게 무슨…… 아!”
그 순간 섬광이 이는 것처럼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나는 급히 시선을 내려 내 손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 손에 끼워진 푸른빛이 감도는 장갑을. 인어의 비늘로 만든 장갑은 받은 날로부터 내 몸의 일부처럼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서클렛을 착용하게 된 것과 같은 이유였다. 서둘러 장갑을 벗자 오랫동안 가려져 있던 손등이 드러났다. 그 위에 선명히 찍힌 마신의 문장과 함께.
“이거 말이야?”
신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전. 언젠가 엘뤼엔이 해줬던 말이었다. 문장을 보이려 손을 내미는 걸 아스가 그대로 잡아 왔다. 자세히 확인하려는 것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시작이었다.
“나의 유일신, 나의 위대한 주, 나의 거룩한 하늘이시여.”
“당신의 자녀 아스모델이 영광을 돌리길 원합니다.”
뭐라고 말을 걸어보기도 전에 차분한 아스의 음성이 연달아 이어졌다. 그러자 곧 접촉한 부분에서부터 흐름이 일기 시작했다. 마치 나와 아스 사이에 통로가 생기고 그 안에서 바람이 부는 듯한 기분이었다. 무언가가 나를 통해 아스에게 전해진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당황스러운 건 그 이후에 일어났다. 다음 순간 빙긋 미소 지은 아스가 고개를 숙이고 내 손등에 이마를 댔기 때문이었다.
“정해진 규율에 따라 정당한 절차를 밟은 이에게, 합당한 자격의 증명을.”
주문 같은 언어가 마침표를 찍으면서, 확실한 현상으로 이어졌다. 손등이 유난히 뜨거워지는가 싶더니 닿은 부분에서부터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문장이 마치 달궈진 쇠처럼 열기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와 비슷한 역할인 듯했다. 잠시 후 다시 고개를 드는 아스의 이마엔 언젠가도 보았던 짙은 붉은색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양쪽으로 날카롭게 뻗은 가죽 날개의 형태. 의심할 여지 없는 마신의 문장이었다.
“완전해지심을 경하드립니다, 주군!”
바로 옆에서 감격에 벅차오른 데르온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제야 나 역시 비로소 돌아가는 상황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언젠가 기껏 부여받은 문장이 다시 사라졌을 때, 아스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인 거다. 아스가 정식으로 즉위한 것이다.
“준비됐으면 바로 시작해라.”
그러나 여운을 느낄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축하할 겨를도 없이 이어진 엘뤼엔의 목소리가 곧바로 냉정한 현실을 일깨웠기 때문이다. 아스는 군말 없이 마족 군대를 향해 똑바로 서서 두 손을 모았다. 그러자 그 안쪽에 검은 기운이 뭉쳐지면서 무언가가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곧 모습을 드러낸 것에 나는 잠시 두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그건 긴 뿔을 깎아내어 만든 나팔이었다.
‘갑자기 나팔은 왜?’
난 당혹스러운데 다른 사람들은 그저 담담해 보였다. 이어서 아스가 아무렇지 않게 그걸 들고 불었다. 그런데 당연히 울려야 할 나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바람이 통과하기나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애초에 구멍이 뚫려 있지도 않은 것 같았다. 설마 이런 상황에서 장난을 칠 리는 없고(애초에 아스는 그런 성격도 아니었다), 혹시 뭔가 잘 안 되는 건가 싶어서 가까이 가 보려 할 때였다.
콰지직, 번개가 꽂히는 듯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신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이제껏 미동 없이 묶여 있던 마족들이 몸을 마구 꿈틀거렸다. 그들을 빈틈없이 묶고 있던 가시가 어느새 느슨해져서 출렁거리고 있었다. 구속했던 결박이 풀어지는 것이 분명했다. 그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었다.
“됐어! 주술이 깨졌어!”
한껏 높아진 루세프의 목소리가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숨을 멈췄다. 설마설마했더니 정말로 주술이 깨진 거다.
곧 마족들에게서 떨어지던 피가 천천히 멎었다. 그때쯤 결박에서 풀린 이들이 하나둘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의식을 차리긴 했어도 정신이 든 건 아니라서 다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족히 60미터는 되는 상공 위였다. 아무리 마족이라도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는 건 위험하다. 다들 몸이 성치도 않은 상태이니 죽을지도 몰랐다.
아스와 데르온은 이미 그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뒤였다. 나는 급한 대로 물을 일으켜 떨어지는 이들을 받아냈다. 한쪽에선 나뭇가지들이 마구 자라나 쿠션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트로웰도 나서준 것이다. 덕분에 처음부터 죽은 채로 떨어진 이들 말고는 전원 무사히 구출할 수 있었다.
그렇게 대강 마족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났을 땐 우리 역시 지상에 완전히 내려온 뒤였다. 가까이에서 보니 주술이 실행되던 장소의 상황이 보다 분명히 보였다. 조금 전까지 마족들이 피가 떨어지던 장소엔 붉은 피 안개가 자욱한 상태였다.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검은 덩어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몇 배나 덩치를 불린 상태였다. 코를 찌를 듯이 진동하는 악취 속에서 가슴이 서늘해질 만큼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놈은 여전히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주술이 실패했으니 분개를 터트리거나 누구에게든 덤벼들 줄 알았는데 지나치게 고요했다. 그게 이상할 정도로 불길한 기분이었다. 그때 기척이 느껴진다 싶더니 옆쪽에 누군가가 섰다. 엘뤼엔이 미간을 찌푸린 채 덩어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미 금제가 풀렸군. 각성에 들어갔나.”
“헉, 카노스의 금제가 풀렸다고?”
“괜찮아. 아직 각성을 마친 건 아냐. 막을 수 있어.”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당황하는 내게 다음으로 뒤따라온 루세프가 위안이 될 만한 말을 했다. 물론 그런 그 역시 검은 덩어리를 노려보는 표정이 굳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내 무기는 안 통하겠지. 엘뤼엔, 심판관 좀 써 줘. 주술을 걸어 묶어야 하니까 총 말고 활로 변형해서.”
“협조는 해주겠지만, 친근하게 부르지 마라.”
“거참, 까칠하시네. 원래 이런 위급한 순간에 서로 이름 트고 그러면서 정도 함께 싹트고 그러는 거거든?”
“너와 그딴 거 틔울 일 없다.”
“진짜 단칼이구만?”
투덜거리던 루세프가 잠시 멈칫하더니 다음 순간 나를 돌아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내 옆쪽을 향하려다가 주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곳엔 시벨리우스가 있었다.
“어, 음,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일단 정말 바, 반갑다.”
조금 전까지 씩씩하던 얼굴과는 달리, 그 말을 할 때 그의 표정은 뻣뻣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왠지 목소리도 떨리는 것 같았다. 누가 봐도 완벽하게 의식하고 있는 모습인데, 정작 시벨리우스는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처음엔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인지하지 못하다가(이건 시선을 맞추지 않았으니 당연하다) 잠시 후에야 고개를 갸웃했다.
“절 압니까?”
“……그야 누구보다 잘 알지.”
그제야 루세프가 천천히 시벨리우스를 바라보았다. 약간 서글픈 듯한 미소를 지은 채였다.
“아마 너 자신보다 내가 더 너를 잘 알 거야.”
“……네?”
반사적으로 얼굴을 찌푸리는 시벨리우스를, 루세프가 조금 느린 시선으로 살폈다. 조금 전엔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더니 이번엔 조목조목 하나하나 뜯어볼 것 같이 자세히 탐색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자 움찔한 시벨리우스의 눈에 곧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직감적으로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이었다.
“다 크니까 형이랑 많이 닮았구나.”
“…….”
이제 시벨리우스의 눈은 여실히 동요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한마디로 루세프의 정체를 알아본 게 분명했다.
“그동안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킬게. 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긴 위험하니까 멀리 떨어져 있으렴.”
시벨리우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루세프는 머쓱한 듯이 머리를 긁다가 쓰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곤 엘뤼엔과 다시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며 뭔가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했더니 정의의 신 루세프였군요? 그 유명한 신계의 수호지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니, 믿기지 않네요.”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데르온이 조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연예인이라도 본 듯이 얼굴이 상기된 그 옆에서 아스가 물었다.
“저 신이 신계의 수호지기야? 유니콘의 창조신?”
“네, 저렇게 보여도 진짜 무서운 신입니다. 천마 대전 때 마공작들을 다 죽인 것도 바로 저 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노스 님이 그의 창조물인 룬의 핏줄에 저주를 내리신 거죠.”
“아, 그렇군.”
그때까지도 시벨리우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어딘지 넋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그에게 다가가 살짝 상태를 살폈다.
“시벨, 괜찮아?”
“어? 아, 으응.”
“많이 놀랐구나. 나도 설마 정의의 신을 여기서 볼 줄 몰랐는데 너는 더하겠지.”
“……구나.”
“응?”
“……정말, 루세프 님이구나.”
중얼거리는 시벨리우스는 조금 먹먹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살짝 일그러진 얼굴에 그리움과 원망, 그러면서도 애틋한 감정이 서렸다. 갑자기 마주한 창조신 덕분에 과거로 묻은 기억들을 다시 상기하게 된 것 같았다. 방해하고 싶지 않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더니 그가 곧 퍼뜩 정신을 차린 얼굴로 어색하게 웃었다.
“아, 미안. 엘 말대로 좀 놀랐어. 형벌의 신도 보고 마신도 만났는데 정작 루세프 님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었나 봐. 뭔가…… 굉장히 비현실적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