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3화
“이건 뭐……!”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한 찰나, 히죽 웃은 다니멜이 마법진을 강하게 밟았다. 콰직! 무언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더니 한창 주문을 외우고 있던 라온휘젠이 크게 숨을 삼켰다. 아무래도 마법진의 마나 흐름을 방해한 모양이었다.
“크흑!”
“태자 전하!”
강제로 마법이 깨진 충격에 라온휘젠이 순식간에 의식을 잃었다. 그가 무너지면서, 거의 발동 직전이던 이동 마법진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동안 다니멜은 그들 사이로 손을 뻗어가고 있었다. 그 손이 향하는 방향에 있는 건 아셀이었다.
“유니콘의 피!”
“……!”
그가 달려드는 모습과 놀란 아셀이 눈을 크게 뜨는 광경이 빠르게 이어졌다. 다행히 다니멜의 손이 아셀에게 닿기 직전, 누군가가 그사이에 끼어들었다. 달빛을 머금은 듯한 새하얀 은발, 하늘을 그대로 옮겨 담은 듯이 청명한 푸른색의 눈동자― 시벨리우스였다.
“이게 감히 누굴 노려?”
살벌한 표정으로 이를 간 그가 아셀을 제 쪽으로 끌어당기고 반대로 다니멜은 밀쳐냈다. 바람이 요동치는 소리가 울렸고, 그들 앞에 잠시간 강한 파동이 일었다. 달려든 기세만큼 대단하진 않았는지 다니멜은 그 파동에 꽤 멀찍이 밀려나 그대로 고꾸라졌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모두 괜찮아?”
“엘 님!”
그때쯤 나도 날 짓누르고 있던 압력을 밀쳐냈다. 서둘러 그들 쪽으로 달려가니 라온휘젠을 살피던 알리사가 냉큼 내게 달려와 안겼다. 쓰러진 다니멜을 노려보고 있던 시벨리우스 역시 반가운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엘.”
“늦지 않게 대응해서 다행이야. 정말 큰일 날 뻔했어.”
“그러게 말이야. 저쪽만 신경 쓰고 있었는데 설마 생각지 못한 놈이 공격해 올 줄은……. 저것도 마왕 놈이 조종하는 거야?”
“그 비슷한 것 같아.”
다니멜은 바닥에 쓰러진 그 모습 그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더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아마 그대로 절명한 것 같았다. 황제의 육신을 뒤집어쓴 카류안도 물속에서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 어디로 아예 달아난 건지, 아직 그 속에 있는 건지도 판단이 잘 되지 않았다. 일단 나는 라온휘젠의 상태부터 살폈다. 내상을 입었는지 안색이 몹시 창백한 상태였다. 바로 치유력을 불어넣자 그를 부축하고 있던 근위대장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아셀이 급히 옆으로 다가왔다.
“태자 전하는…….”
“좀 다친 것 같긴 한데 치료했으니까 염려 말아요. 무사히 깨어날 거예요.”
“그렇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엘 님이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저희끼리 있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지…….”
“그런 인사는 나중에 받을게요. 아직 안심하긴 이르니까요. 일단 여길 벗어나야 할 텐데 곤란하네요. 태자가 의식을 차리려면 좀 걸릴 것 같은데.”
이럴 때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는 마법사가 한 명만 더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애초에 라피스가 있었다면 벌써 모두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도 남았을 거다. 얄미운 녀석이지만 이럴 때마다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다고 당장 데려올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더 심란한 기분이었다. 그러자 아셀이 옆에서 기웃거리던 세리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시죠.”
“뭘?”
“공간 이동이요.”
“……뭐?”
“태자 전하가 쓰러지셨으니 이제 달리 가능한 마법사가 없잖습니까.”
“아니, 근데 왜 그걸 나한테 그래?”
“왜인 것 같습니까?”
아셀의 시선은 냉정했다. 좋은 말로 할 때 순순히 응하는 게 좋을 거라는 압박이 확연히 느껴지는 태도였다. 여분용 마법 스크롤이나 관련된 마법 도구라도 있는 건가 했는데 왠지 그런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았다. 한동안 우물거리던 세리엄이 이내 체념한 얼굴로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어떻게 알았냐?”
“아카데미를 빠져나갈 때 눈치챘습니다. 그때 태자 전하가 공간 마법을 할 줄 아신다는 걸 처음 알게 됐거든요.”
“그게 왜?”
“제가 바보인 줄 아십니까? 아무리 천재라도 공간 이동 마법을 독학으로 터득했다는 걸 어떻게 믿습니까? 현 아카데미 교수진 중에서는 그런 걸 가르칠 수 있는 마법사가 없죠. 그렇다는 건 가까운 곳에 달리 수준 높은 스승이 있다는 뜻이고요.”
“……다니멜이 있었잖아.”
“아, 대외적으로 스승이라 알려진 저기 저 다니멜 님 말이죠. 저자가 겉으로는 웃으면서 뒤에선 칼을 겨누고 있다는 걸 우리 중에 모르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저자가 제대로 전하에게 마법을 가르쳤을 거라고요? 그걸 누가 믿겠습니까?”
“…….”
“인정하셨으면 서두르세요.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안 보이십니까?”
“끄응, 알았어. 하면 되잖아, 하면.”
대체 이게 다 무슨 말이야? 어리둥절해져서 바라보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근위대들과 라온휘젠의 호위기사도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에 세리엄이 흠흠 헛기침을 했다. “보고 너무 놀라지 마십쇼.” 민망하다는 듯이 중얼거린 그가 뭔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광경을 보려니 그가 왜 놀라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외모가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황제의 모습이 변하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때는 외모를 아예 새로이 반죽하는 것 같았다면, 지금 세리엄은 그냥 세포가 노화한다는 느낌이었다. 청년 후반에서 중장년으로, 이어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일생을 한자리에서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이 모습이 되는 것도 오랜만이군요.”
이윽고 완전히 노인이 된 그가 씩 웃었다. 짙은 잿빛 머리칼은 하얗게 세어 은발로, 건장하기만 하던 체구는 한층 가늘어져 조금 마른 듯한 느낌으로 변한 채였다. 그러나 오히려 기세는 이전보다 더 날카로워진 것 같았다. 단지 분위기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다. 그에게서 지금까진 없었던 강한 마나가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그동안 외모를 젊게 유지하는 것에 마력을 전부 다 소모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맙소사. 필립…… 님?”
변한 세리엄의 모습을 보며 가장 크게 반응한 건 근위대장 알마스너였다. 그가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린 이름에 다른 근위대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놀란 그들이 저들끼리 작은 소리로 수군거리는 말이 들려왔다.
“필립이라면…….”
“전 황실 수석 마법사이셨던 현자 필립 님?”
“갑자기 황실 수석 마법사를 그만두고 사라지셨다는 그 전설의 대마법사님 말이야?”
헐, 전 황실 수석 마법사라고? 심지어 전설이라고까지 불리는 대마법사였어? 황당해져서 바라보았더니 그가 쑥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었다.
“다시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필립 세미리언 폰 알바레즈라고 합니다.”
“……언제는 마법사가 아니라더니?”
“그…… 정말 죄송합니다. 그 상황에서 냉큼 맞다고 맞장구칠 수도 없다 보니 본의 아니게…….”
“뭐, 그건 그렇다 쳐요. 그래서, 황실 수석 마법사였다는 사람이 대체 왜 그러고 있었던 건데요?”
“아하하, 누구에게나 피치 못할 과거사가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아하하하.”
그는 말을 아꼈지만 왠지 라온휘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굳이 그 옆에서 마법을 가르쳐온 것만 봐도 아주 틀린 추측은 아닐 터였다. 누가 같은 제왕의 별 아니랄까 봐 라온휘젠도 이사나만큼이나 인복은 타고났구나. 상황과는 관계없는 감탄이 조금 흘러나왔다.
대화를 더 이어가지 못한 건 손끝에 전해진 섬뜩한 감각 때문이었다. 나는 카류안이 갇혀 있는 물풍선 쪽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미약한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깨어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의식을 잃은 게 아닌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쪽을 주시하자 다른 이들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세리엄의 정체로 잠시 느슨해졌던 주변의 공기가 한순간에 다시 팽팽해졌다.
“……일단 여유 부릴 상황은 아니니까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죠. 바로 모두를 데리고 대피해 줘요. 여기서 멀리 떨어질수록 좋아요.”
“예,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세리엄의 얼굴에 비장한 표정이 차올랐다. 준비를 위해 돌아선 그에게 곧장 근위대장이 다가섰다. 그는 얼굴에 수많은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필립 님.”
“뭐, 이제 와 하기엔 낯간지러운 인사 아닌가? 쭉 같이 있었는데 말이네.”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당신이 갑자기 황실을 떠난 후에 제가 얼마나 찾았는지 아십니까? 그런데…… 이렇게 가까이 계셨다니.”
“킬킬, 위장이 좀 감쪽같았지? 내 젊을 때의 모습은 아무도 몰랐으니까.”
“……정말이지 당신이라는 분은.”
근위대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는 동안 세리엄은 본격적으로 바닥에 공간 이동 마법진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대마법사답게 라온휘젠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였다. 그와 함께 카류안의 저항도 점점 강해졌다. 이제 누구나 그가 요동하는 걸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카류안이 몸부림칠 때마다 물이 출렁거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알리사가 불안했는지 내 팔을 꼭 붙잡았다.
“에, 엘 님.”
“괜찮아, 알리사. 마법진이 완성될 때까진 잡고 있을 수 있으니까 안심해. 설령 풀려나더라도 너희가 피할 시간은 벌어 줄게.”
“우리만 가도 괜찮아? 엘 님은…….”
“너희가 안전해지는 게 먼저야. 저 녀석이 노리는 건 내가 아니라 너희야.”
대답하다가 문득 아셀에게 시선이 미쳤다. 담담한 표정과는 달리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자세히 보니 모아 쥐고 있는 손도 조금 떨고 있었다. 카류안이 다니멜을 통해 노골적으로 그를 습격한 직후였다. 아마도 놈의 목표는 여전히 그일 가능성이 컸다. 공포심이 차오르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아셀, 괜찮아요?”
“아, 네. 괜찮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는 여전히 굳은 얼굴이었다. 어떤 말로 안정시켜야 하나 고심하고 있는데 시벨리우스가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놀라서 바라보는 아셀을 그가 담담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겁먹지 마.”
“시벨 님.”
“저 녀석이 한 말 들었잖아? 네겐 유니콘의 피가 흐르고 있어. 정의의 신 루세프가 신계를 지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창조한 전투 일족의 피야. 넌 절대 쉽게 죽지 않아.”
“하지만…….”
“그리고 네 옆엔 내가 있잖아.”
“……!”
“이래 봬도 일족 최강의 전사에게 부여되는 세라핀의 자리를 몇 차례나 연임한 몸이야. 내가 살아 있는 한 네가 다치거나 죽임을 당할 일은 없어. 날 믿고 안심해.”
단호하게 말하는 시벨리우스의 음성은 신뢰할 수밖에 없을 만큼 자신만만했다. 흔들리던 아셀의 눈동자가 점차 편안해지면서 창백하던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가 겨우 웃어 보였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든든하네요. 감사합니다. 이 신세를 다 어떻게 갚아야 할지…….”
“신세라고 생각하지 마. 이건 당연한 거기도 해.”
“네?”
“일족을 지키는 건 룬의 사명이니까.”
아셀이 의아한 표정을 했다. 깜빡이는 녹색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던 시벨리우스가 조금 어색하다는 듯이 웃었다.
“뭐,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하니 기분이 좀 이상하긴 하네. 한땐 그 사명을 버겁게만 느낄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썩 괜찮은 것 같으니. ……그래. 이렇게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는 거구나.”
홀로 고개를 끄덕인 그는 뭔가 후련한 표정이었다. 내내 지니고 있던 마음속 번민을 드디어 완전히 털어버린 듯했다. 그런데 그다음으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별안간 그에게서 하얀빛이 터져 나오더니 무언가 거대한 장막 같은 것이 펼쳐진 것이다.
“……!”
아니, 그건 장막이 아니라 한 쌍의 화려한 날개였다. 눈부시게 빛나는 순백의 날개가 시벨리우스의 등 뒤에서 돋아나 크게 뻗어 있었다. 그가 본신으로 돌아갈 때나 볼 수 있었던 날개였다. 사방에 새하얀 깃털이 흩뿌려지는데, 바닥에 닿기도 전에 녹는 듯이 사라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날개 자체가 실체는 아닌 것 같았다.
“시벨 님……?”
“어? ……어어?”
놀랍게도 그는 이마에도 금색의 긴 뿔이 돋아난 모습이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아셀은 물론이고, 주변의 모두가 놀라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시벨리우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장 당황한 건 시벨리우스 본인인 것 같았다. 한동안 자신의 이마와 등 쪽을 더듬어보던 그가 설명하기 힘들 만큼 복잡한 얼굴을 했다.
“시벨,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날개랑 뿔이…….”
“으음, 괜찮아, 엘. 이건 아마 일시적인 현상이야.”
“일시적인 현상?”
“……뭔가 봉인이 풀린 것 같아.”
봉인?
생각지 못한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정작 그렇게 답한 시벨리우스도 얼떨떨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본인도 이 현상이 굉장히 황당한 것 같았다.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요즘 내 안에서 뭔가가 묶여 있다는 기분이 들었거든. 그게 지금 풀린 느낌이야. 아니, 닫힌 게 열렸다고 해야 하나? 너무 갑자기 열린 거라 그 반작용으로 힘이 겉으로 강하게 표출된 듯해.”
“그거 혹시…….”
내가 하려는 말을 눈치챈 듯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룬의 힘을 각성한 것 같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
헐, 정말 룬의 힘을 각성했다고?
설마가 정말 맞아 떨어질 줄이야. 잘된 일이긴 한데 지금은 상황이 너무 나빴다. 무슨 말이든 해야겠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놀란 것과는 다른 이유였다. 반사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뭔가 속에서 타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엘?”
내 얼굴에서 뭔가를 감지한 듯 시벨리우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엘? 왜 그래, 엘!”
“엘 님!”
아주 잠시 의식을 잃었나 보다. 기억이 끊겼다는 느낌도 받지 못했는데 주위를 다시 인지했을 땐 어느새 내 자세가 무너져 있었다. 거의 주저앉다시피 한 나를 시벨리우스가 붙잡은 채였다. 나는 가슴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천천히 펴보았다. 손바닥 가득 새카만 먹물 같은 것이 흥건하게 묻어났다. 나와 같은 것을 본 일행이 눈을 크게 떴다.
“이게…….”
시벨리우스의 숨이 거칠어졌다.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대충 어떻게 된 건지 알 것 같았다. 검은 물이 나오는 부분은 일리야인지 뭔지, 그들에게서 수거했던 마법 스크롤을 넣어둔 곳이었다. 안쪽을 더듬어 봤더니 역시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게 카류안과 연결되어 내게 뭔가 영향을 미친 듯했다.
‘독…… 같은 건가.’
왜 그걸 생각지 못했을까. 사람도 조종할 수 있는 놈이니 제 마력으로 만든 건 더 움직이기 쉬웠을 거다. 스크롤을 챙길 게 아니라 그냥 버렸어야 했다. 내 스스로 화를 자초한 꼴이라 기가 막혔다. 서둘러 정화를 시도해 봤지만 중독되는 것에 비해 속도가 현저히 느렸다. 몸이 천근처럼 무거웠다. 숨을 헐떡이는 느낌을 얼마 만에 느껴보는 건지 모르겠다. 머리가 뜨거울 정도로 지독한 고통 속에서 나는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정확히는 카류안을 가둬 둔 쪽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맑았던 물이 새카맣게 물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