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4화
타미아 마을은 험난한 첩첩산중을 거쳐야 겨우 나타나는 외진 마을이었다. 관할하는 영주조차 순방 지역에서 제외할 정도이다 보니 외부인이란 희귀 동물 수준으로 만나기 힘들었다. 그런 이 마을이 오랜만에 외지에서 온 방문자를 맞이했다. 여러 명의 남녀로 구성된 일행은 자신들을 용병이라 소개했다. 그들 중 단장이라는 남자의 입에서 황당함이 역력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예? 여기가 어디라고요?”
얼빠진 얼굴로 같은 질문을 묻고 또 묻던 남자는 주민들이 짜증을 낼 지경이 되어서야 간신히 물러섰다. 기운 없이 어깨를 늘어트린 그―휴센을 향해 나머지 샴페인 동료들이 몰려들었다.
“뭐래, 단장? 여기가 어디래?”
“타미아라는 마을이래.”
“뭐야.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어. 지도에도 없는 마을이잖아. 관할 영이 어딘데?”
“스텔스라고는 하던데.”
“스텔스에 이런 곳이 있었다고?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들어선 거야?”
지도를 뚫어질 듯이 들여다보며 아는 길과 대조해 보던 마이티가 얼굴을 처참히 구겼다. 그들은 요 며칠간 계속 일진이 사나웠다. 시작은 산을 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본래 이용하는 노선으로는 시간이 너무 더뎌지는 것 같아 그들은 평소와는 다른 방식의 지름길을 택했다. 처음에는 분명 아는 장소, 아는 길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낯선 광경들이 더 많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정신을 차렸을 땐 여기가 어딘지도 모를 만큼 처음 보는 곳에 떨어져 있었다. 온종일 근방을 들쑤신 끝에 겨우 인가를 발견하긴 했으나 지도에도 없는 마을이었다. 대충 거리를 가늠해 봤더니 본래 가려던 길과 완전히 정반대 방향으로 왔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마치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정말 미안하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 말도 안 되는 사태에 휴센은 단장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꼈다. 침통한 얼굴로 사과하는 그를 향해 매튜가 부드러운 어조로 다독였다.
“이게 어떻게 단장만의 탓이겠어요. 다들 길을 잃은 건 마찬가지인데.”
“맞아, 단장. 일단 해가 저물기 전에 마을을 찾은 게 어디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그래.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내일부터 다시 길을 찾아보자.”
다른 단원들도 서둘러 그를 위로했다. 이미 틀어진 상태에선 서로를 타박해 봤자 상황만 더 악화될 뿐이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며칠 이색적인 경험을 한다 치고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들 앞엔 조금 더 현실적인 과제가 떨어졌다. 타미아 마을은 주민 수가 채 백 명도 되지 않을 만큼 작은 촌락이었다. 용병 생활을 하면서 별별 외지에는 다 가 봤다고 자부하던 그들조차 처음 들어보는 이름일 정도로 외부와 단절된 환경이기도 했다. 당연히 객을 위한 숙박 시설이나 식당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죄송합니다, 사제님. 일단 하룻밤 신세 질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상황을 판단한 즉시 휴센은 뒤편에 서 있는 남자를 향해 양해를 구했다. 온종일 산중을 헤매기만 하는 사나운 일정을 내내 묵묵히 따라주고 있던 금발의 사제가 이번에도 별다른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잔뜩 긴장했던 용병들이 그 고갯짓에 크게 안도했다.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분이라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휴센은 이게 변명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사제는 그리 까다로운 동행자는 아니었다. 조금 과묵한 편이긴 하지만 달리 요구 사항 같은 것도 없었고, 불만을 표시하지도 않았다. 기가 죽을 만큼 아름다운 외모도 이젠 꽤 익숙해져서 괜찮았다. 일행이 다치면 치료를 해 주기도 하고 필요하면 금전적인 보탬을 해 주기도 했다. 조건으로 치면 오히려 이보다도 완벽한 동행자가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그를 대할 땐 늘 지나치게 몸이 긴장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보잘것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은 초라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차라리 그래서 꺼림칙한 거면 그나마 괜찮았을 텐데, 정반대라서 문제였다. 기꺼이 무릎을 굽히고 그를 숭배해야 한다는 이상한 감정이 차오르는 것이다.
그건 정말로 낯간지러운 감각이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들은 불편한 자리를 피하는 것처럼 곧 후다닥 마을 안으로 흩어졌다. 떠나지 않고 사제와 함께 자리에 남은 단원은 매튜가 유일했다. 그는 동료들이 황급히 사라지는 이유를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신의 은총을 바로 옆에서 상시 누리는 게 흔한 경험은 아니지. 조만간 죄다 개종하겠는걸.” 빙글빙글 웃으며 중얼거리는 다갈색 피부의 소년을 향해, 사제―엘뤼엔의 서늘한 시선이 향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뭐가?”
“네가 있는데 길을 잃는다니. 썩은 고목에 달라붙은 벌레가 들어도 웃을 일이지.”
“뭐, 가끔은 그럴 때도 있는 거 아니겠어? 천하의 형벌의 신도 방향 감각을 상실하는 세상인데.”
추궁하는 쪽만큼이나 받아치는 대답도 물러섬이 없었다. 엘뤼엔은 쓸데없는 신경전을 벌이는 대신 바로 결론을 내렸다.
“날 방해하고 있군.”
“음, 역시 들켰네.”
돌아온 대답엔 긴장감이라곤 전혀 없었다. 속셈이 발각되었으면서도 태연하기만 한 소년을 향해 다시금 차가운 시선이 쏟아져 내렸다. 트로웰은 상큼하게 웃어 보였다.
“미안.”
“……이제 평균 수명을 반 정도 채웠지, 트로웰. 벌써 정령왕의 임기를 끝내고 싶어졌나? 그래도 이런 방법은 쓰지 않는 게 네게는 더 이로웠을 텐데.”
“으음, 잠깐만 기다려. 화내도 되는데, 그전에 변명부터 먼저 들어 줘.”
음산하게 다가서던 엘뤼엔이 그 말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가볍게 까닥였다. 유언을 남길 아량 정도는 베풀어 줄 테니 일단 해보라는 뜻이었다. 역시 관대해졌다고 하면 이 관계에 평화가 찾아올 일은 두 번 다시는 없겠지. 스스로 기회를 걷어찰 생각이 없는 트로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이러고 싶었던 건 아냐. 정말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었다?”
“왠지 너랑 엘을 만나게 하면 안 될 것 같았어.”
“……혜안인가?”
어떤 말에도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살벌한 기세가 옅어졌다. 그저 분탕질치는 게 목적이었다면 용납해 줄 일이 아니었지만 혜안이 관여한 거라면 상황이 조금 달랐다. 미래를 내다보는 트로웰의 능력은 운명의 여신과도 엇비슷할 만큼 강력하다. 아크아돈 내부에 한해서는 그녀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도 많았다.
“비슷해. 정확히 보이는 건 없는데 그냥 느낌이 좋지 않아. 꽤 나쁜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나와 엘, 어느 쪽이지?”
“네 쪽이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날 협박해서 제대로 안내하라고 할 기세네?”
“내 쪽이군.”
진실에 가까울수록 다른 쪽으로 말을 돌리는 트로웰의 화법은 질릴 만큼 잘 알았다. 이 문제에 관해서 짐작 가는 부분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고민 없이 단언하자 난처해진 건 트로웰 쪽이었다.
“글쎄, 꼭 그렇게만 볼 순 없을 것 같은데.”
“뭐?”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엘이라고 괜찮을 리가 있어?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 결국 어느 쪽의 문제든 둘 다 관련되어 있는 셈이라는 거야.”
“…….”
의아하게 바라보던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동요가 일지 않는 건 이미 거기까지 짐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트로웰은 내내 담아두고 있던 말을 건네야 할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고 판단했다.
“이쯤에서 그만 신계로 돌아가, 엘뤼엔. 엘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약한 어린애가 아냐. 이 세계를 관장하는 왕이고, 동료이자 가족인 다른 정령왕들도 곁에 있어. 네가 이렇게까지 무모하게 나설 필요는 없어.”
그러나 진지한 충고에 돌아온 것은 가벼운 비웃음뿐이었다.
“넌 뭘 걱정하는 거지? 설마 날 염려하는 건 아닌 것 같고. 나로 인해 엘이 상처받을 걸 우려하는 건가?”
“그거야…….”
“너야말로 엘을 어린애 취급하고 있는 것 같군. 세상에 관여하는 자라면 누구든, 살아가는 이상 상처를 받지 않을 수는 없다. 숨기고 감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때의 뼈아픈 체험이 교훈으로 남지는 못했나?”
“……일부러 최악의 상황을 자초할 건 없잖아.”
“최악이 아니라 그게 최선인 건지도 모르지. 네가 보는 미래도 결국 단편적인 정보일 뿐, 전체를 전부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만나면 나쁜 일이 벌어질 것 같다니, 나로선 오히려 엘을 만나야 할 이유가 더 확고해지는데.”
“대체…….”
“적어도 제 자식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태평하게 구경만 하고 있는 건 아버지라 할 수 없지.”
“…….”
“다들 나와 엘의 관계를 소꿉놀이쯤으로 치부하는 것 같은데. 멍청하게 봐주는 것도 지겨우니 이제 그만 착각에서 깨어났으면 좋겠군. 난 이름뿐인 장식용 따위가 되려고 그 아이를 아들로 삼은 게 아니다.”
그러니 허튼수작은 이제 그만 부리고 제대로 안내해. 고압적으로 이어지는 다음 말에 트로웰은 잠시간 할 말을 잃었다가 이내 헛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너답기는 한데. 부탁하는 태도가 너무 당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왜. 공손히 빌어주길 바라나?”
“아니. 고맙지만 그건 사양할게. 뒷감당이 좋지 않을 것 같거든.”
“현명하군.”
무미건조하기만 하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감돌았다. 분명 웃고 있는데도 한기가 느껴지는 건 왜일까. 트로웰은 그러라고 했으면 벌어졌을 일련의 상황들을 상상해 보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과거 엘퀴네스였을 때, 그는 작심하고 심술을 부리려고 하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폭탄의 파편 같은 존재였다. 저처럼 남의 생각을 읽는 것도 아닌데 상대가 가장 싫어하고 기피하는 방법을 소름이 돋을 만큼 잘 알았다. 심기가 틀어진 그와 타협하려면 말 그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생전 해본적도 없는 애교를 피워야 했던 적도 있었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허리에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관대해졌어도 기본적인 그 기질이 달라질 리가 없었다.
“아무튼 의외네, 엘뤼엔. 생각보다도 더 멋진 아버지였잖아. 네가 그렇게까지 엘에게 진심일 줄은 몰랐어.”
“난 네가 더 의외인데.”
“무슨 말이야?”
“동료이자 가족인 정령왕들이라……. 언제부터 네가 정령왕들을 가족이라고 여겼지? 내가 엘퀴네스였을 때 그런 애틋한 대접을 받아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음.”
“하긴, 그것 외에도 많이 변하긴 했군. 한때는 인간들 사이를 스치는 것도 싫어하던 녀석이 이젠 버젓이 그들 안에서 멀쩡한 신분을 갖고 유희를 할 정도이니. 심지어 특별하게 대하는 동료까지 만들고.”
그건 지금까지 일부러 서로 거론하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괜한 화제를 꺼내는 바람에 오히려 추궁을 당하게 생겼다. 되로 주고 말로 받았군. 트로웰은 깊이 후회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평온한 태를 유지했다.
“인간을 다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이제 사라졌나?”
“…….”
물론 그 상태를 그리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다. 그린 듯이 미소를 짓고 있던 트로웰의 얼굴에서 빠르게 표정이 사라졌다. 눈빛이 식고 서늘한 기운이 차올랐지만 엘뤼엔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이쪽이 그에게 더 익숙한 모습이었다. 트로웰 또한 거침없이 정곡을 찌르고 들어온 무례한 발언에 항의하지 않았다. 그게 틀림없는 사실이었기에.
쏴아아―
과거를 읽어내는 그의 능력은 기억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짙은 잔상을 흩뿌렸다. 창공을 가르는 거대한 와이번의 무리. 새빨갛게 타들어 가는 대지 위에 시커멓게 피어오른 연기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인간들과 그들의 육체를 집어삼키는 수많은 정령들의 향연. 그 가운데 서서 즐겁게 웃고 있는 한 소년이 있었다. 흐트러진 흑발 사이 섬뜩한 한기를 흩뿌리는 황금색의 눈동자. 지금과 동일한 모습이면서도 결코 동일하지 않은. 과거 자신의 모습이었다.
<인간은 추악하고 더러워. 저런 건 이 아름다운 세상에 필요 없어. 내 눈 앞에서 전부 사라졌으면 좋겠어.>
비틀린 입술 안에서 새어나오는 낮은 음성 또한 자신의 것. 그동안 돌아보지 않던 것이 무색할 만큼 선연하게 떠오르는 기억에 트로웰은 잠시 숨을 멈추었다.
‘아아, 그래. 그랬던 적이 있었지.’
인간에게 오직 적대감만 품고 있던 시절. 다른 종족들을 충동질하면서까지 이 땅을 피로 물들이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일로 죄책감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도 얼마든지 다시 반복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단지 이제는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부푼 공에서 바람이 빠진 듯, 그냥 모든 것들이 시시하고 무의미해졌다. 트로웰은 그렇게 느끼는 자신이 조금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결코 쉽게 퇴색할 감정이 아니었기에.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이젠 미워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게 된 건가. 아니, 그보다…… 난 어째서 그때 그만둔 거지? 왜 인간들을 그대로 내버려 둔 걸까.’
그때 그는 분명히 인간 종족을 세상에서 완전히 지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버려 둬도 그들 스스로 멸망 길에 오를 예정이었지만 그 잠시간을 견디는 것도 역겨웠다. 게다가 그렇게 멸망해 봤자 어차피 인간은 다시 재번성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가 바란 건 그런 잠깐의 멸망이 아닌, 그들 존재의 완전한 소멸이었다. 인간 종족이 존재하지 않는 아크아돈. 그런 세상을 원했다.
대부분의 종족들이 그가 추진하는 일에 협력해 왔다. 신들은 그를 막아설 권한이 없었고, 다른 정령왕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었기에 이미 시행하는 순간부터 결과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 계획은 끝까지 성사되지 못했다. 정작 자신이 중간에 마음을 바꿨기 때문이다. 결정을 돌린 이유는 뚜렷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그 덕분에 지금도 여전히 이 땅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다수 종족은 인간이었다.
그때 나는 왜 멈췄을까?
때늦은 위화감이 머릿속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왜 이제야 이런 의문을 가지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불분명한 상태로 흐지부지 끝났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 점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일이라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