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8화
“……대체…….”
흐르는 시간이, 주위의 세상이 전부 멈춘 것만 같았다. 이 남자한테는 무엇 하나 좋은 감정이 없었건만 눈 녹듯이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었다. 이곳까지 무심결에 이끌려왔던 것처럼. 본능이 의지를 벗어나 제멋대로 날뛰는 기분이었다. 라젠은 이번에도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알아차렸다. 그의 입가에 웃음이 더 짙어졌다.
“이제 알겠다. 그대는 나를 찾아 이곳으로 왔던 거였군. 그런 거였어.”
응시하는 눈빛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탐욕과 집착, 소유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시선이었다. 아직 어린 알리사에겐 전부 생소한 감정들뿐이라 정면으로 받아내는 것이 어려웠다. 그녀로서는 다행스럽게도, 알리사가 긴장한 것을 본 라젠이 곧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의 시선이 차분해지고 나니 알리사도 겨우 숨이 편해졌다.
“그대도 많이 혼란스러울 테지. 알아봐 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하마터면 내 손으로 그대를 다치게 할 뻔했군. 변명 같겠지만, 설마 그대가 이런 곳에 혼자 나타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틀림없이 감시를 받고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감시?”
“어떻게 그 안에서 홀로 빠져나온 거지? 어디 다친 곳은 없나?”
“무슨 소리를…….”
“괜찮다. 이제 안심해도 된다. 내가 그대를 보호해 주겠다. 더는 그 어떤 것도 그대를 위협할 수 없을 것이다.”
듬직한 어조였지만 알리사는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왠지 아까부터 이상한 말만 하고 있는 것이,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다가오려는 것이 느껴져서 알리사는 멀든을 시켜 방어벽을 치게 했다. 가시가 돋아난 울타리가 앞을 막아서자 라젠은 난감한 얼굴을 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나? 경계하지 마라. 난 그대의 편이다. 그러니…….”
“잠깐 기다려.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내 편이라느니, 보호를 한다느니. 그게 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야? 내가 왜 당신한테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그대, 붙잡혀 있는 것 아닌가?”
“붙잡혀 있긴 하지. 지금 당신들한테.”
“아니, 그런 말이 아니다. 황제군이 그대를 겁박하고 있는 것을 묻는 거다.”
“황제군이 날 겁박해? 무슨 소리야?”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다. 난 그대를 돕기 위해 이곳에 온 거다. 황제가 그대의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 강제로 이 내전에 참전시켰다고 들었다. 내가 거기서 그대를 구해 주겠…….”
“내가 자원한 건데?”
“뭐?”
막힘없이 이어지던 목소리가 처음으로 멈췄다. 당황한 듯한 라젠을 향해 알리사는 또박또박 대답했다.
“이 내전에 참전한 건 내 의지였다고. 오히려 이사나 씨랑 일행들은 다들 반대했는데 내가 억지를 쓴 거였어.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게 대공군 쪽 계획이야? 그런 식으로 헛소문 퍼트려서 황제군 평판을 깎아내려고?”
얼굴을 찌푸린 라젠이 옆쪽에 있던 어둠의 기사들을 돌아보았다. 해명을 요구하는 시선에 그들은 잠시 당황한 시선을 교환하다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세뇌당한 것 같습니다.”
“세뇌?”
“여자들은 피만 보면 비명을 지르고 기절하는 게 천성이지 않습니까. 저런 여자아이가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 스스로 뛰어들 리가 없습니다. 본인이 저렇게 인지하도록 뭔가 수를 쓴 거겠죠. 아마 그래서 감금도 하지 않았나 봅니다.”
설명하는 말투는 차분했지만 기사들의 어깨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라젠이 두 눈을 가늘게 떴을 때였다.
“천성은 누가 천성이야?”
알리사도 그들이 하는 말을 선명하게 들었다. 그녀가 기가 막힌 얼굴로 소리쳤다.
“이 제국에서는 남자만 요리하고 여자는 그저 먹기만 해? 피만 보면 기절하면 닭은 어떻게 잡고 고기는 무슨 수로 썰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아니, 내 말은……. 귀족 여성들은 대체로…….”
“그럼 일부 귀족 여성이라고 표현하든가! 왜 모든 여자들의 타고난 특질이라는 듯이 얘기해? 말해 두겠는데,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 귀족 여성들도 다른 환경에서 자랐으면 그런 식으로 안 컸을걸? 나도 귀족 여성이지만 피 같은 거 봐도 전혀 아무렇지 않거든?”
피뿐인가. 주기적으로 몬스터가 쳐들어오는 마을에서 자란 탓에 처참한 사체도 많이 봤다. 멀든을 소환하기 시작한 후로는 전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 싶었으니까. 힘이 있으니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 때문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더한 괴물 취급을 받았고, 마지막 토벌전에서 선두로 떠밀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때의 행동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난 내가 가진 신념대로! 내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참전을 선택했어! 세뇌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그건 대공이 카웰 공작님한테 한 짓이겠지!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자기들이 하니까 남도 당연히 하는 줄 알지? 그걸 보고 그릇이 작다고 하는 거야, 이 멍청이들아!”
말문이 막힌 기사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들 중 몇 명은 알리사를 향해 분노의 시선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라젠의 얼굴이 차츰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대들, 혹시 날 속인 건가?”
“…….”
“제대로 해명하라. 대공의 지시였나? 그가 뭐라고 명했지?”
그 순간,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빠르게 시선을 교환한 어둠의 기사들이 곧장 태세를 전환한 것이다. 그것을 가장 먼저 깨달은 건 알리사였다. 날카로운 기세가 자신을 향해 쏘아져 들어오는 것이 선명히 느껴졌다.
“멀든! 방어해!”
알리사의 외침과 동시에 거대한 나뭇가지들이 몸을 일으켰다. 울퉁불퉁 솟아난 줄기와 뿌리들이 다가오는 기사들의 앞을 막아냈다. 하지만 어둠의 기사들 역시 녹록한 상대는 아니었다. 숙련된 기사들답게, 그들은 빠른 속도로 장애물을 피하며 알리사와의 거리를 좁혀 왔다. 그들이 내뻗은 검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죽어라!”
정신을 차렸을 땐 다섯의 기사가 동시에 눈앞에서 달려들고 있었다. 다른 행동을 취하기엔 이미 늦었다는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알리사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전개! 보호의 벽!”
콰아앙!
“……!”
뜻밖의 일이 벌어진 건 바로 그다음이었다. 알리사의 주변에 투명한 유리벽이 생기더니 달려들던 기사들이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누가 한 일인지는 직전에 들려온 목소리 덕분에 바로 알았다. 라젠, 그였다.
뭐야, 같은 편 아니었어? 알리사는 당황한 얼굴로 라젠을 돌아보았다. 그가 얼음처럼 싸늘해진 얼굴로 손을 내뻗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지금, 내 앞에서 내 반려를 공격했나?”
분노에 찬 라젠의 시선이 어둠의 기사들을 노려보았다. 그 입에서 떨어진 말에 알리사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내 반려.」
푸른 달을 언급했을 때부터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반려성과 맺어진다는 제왕. 아마도 그 운명을 지닌 사람인 걸지도 모르겠다고. 그럼에도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데 그 단어를 대놓고 들으니 뭐라고 형용하기 힘들 만큼 마음이 복잡해졌다. 꿈에서 깨어나 강제로 현실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감히!”
라젠이 소리치자 어둠의 기사들이 검을 움켜쥐었다. 알리사는 그들이 공격 목표를 바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나 다를까. 바닥을 박차고 튀어나간 기사들이 이번엔 라젠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 라젠은 이미 마법을 시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주문과 함께 빠른 속도로 수인을 맺은 그가 두 손을 모아 마름모꼴로 세웠다. 그러자 그 사이에서 강한 공기의 압력이 일기 시작했다.
“분노의 알티마이자 파괴의 네크라. 내 육신에 깃들어 그 힘을 대신할 그릇으로 삼을지니. 이 순간 내가 곧 분노이며, 파괴가 되리라.”
문장이 한마디씩 더해질 때마다 그의 주변을 맴도는 압력도 강해졌다. 라젠의 머리카락이 흩날리면서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마치 그를 중심으로 폭풍이 이는 듯했다. 마법이 완성이 되기 전에 라젠을 치려고 했던 기사들은 정작 지척에 이르러서는 그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큭! 이게 무슨!”
“포티아는 밀데시, 영원의 불이 눈을 뜬다. 시작은 있으되 끝은 없으리라. 타락한 영혼이 떨어지고, 저주가 증오의 꽃을 맺는다. 100에스나의 데카, 2터스의 엘로그, 5엑사의 리헥토.”
그의 두 손 안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력으로 넘실거리는 안쪽은 녹인 철을 부어둔 것처럼 온통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기사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러자 파르르 이는 경련과 함께, 붉은 구덩이 안에서 거대한 눈이 떠졌다.
“히이익!”
파충류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동공에 기사들의 몸이 경직됐다. 그 순간 라젠의 입에서 마지막 문구가 울려퍼졌다.
“파수꾼이 눈을 뜬다. 그가 지옥의 문을 열리라! 응징하라, 염화의 창!”
시동어가 떨어지자 휘몰아치던 바람이 폭발할 것처럼 팽창하기 시작했다. 마법이 전부 완성된 것이다.
“도, 도망쳐!”
경악한 기사들이 황급히 몸을 돌려 도주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라젠의 손에선 거대한 화염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기사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불길 속에 삼켜졌다.
콰직! 콰아아앙!
귀가 얼얼할 정도의 소음이 울리고, 뜨거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한가득 일어난 열기는 멀리 떨어져 있는 알리사에게까지 전해졌다. 알리사는 멍하니 눈을 깜빡거렸다. 아주 잠깐 불덩어리가 터져 나온 것뿐인데 주위가 온통 새카만 그을음으로 가득해져 있었다. 허공 속에도 잿가루가 흩날리는 바람에 시야가 온통 탁했다. 다섯이던 기사들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사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태워진 것이 분명했다. 실로 경이로운 위력이었다.
‘세상에…….’
라피스는 보조 마법(그나마도 엘이 부탁해야만 들어준다)만 써주는 편이었기 때문에 이런 대대적인 공격 마법을 보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감탄을 내뱉고 있는데 조금 지친 듯한 라젠과 눈이 마주쳤다. 알리사는 반사적으로 긴장했다.
“그대, 다친 곳은?”
“어, 없어.”
“그렇군. 다행이다.”
진심으로 안도한 듯한 얼굴이 의외로 순수해 보였다. 어쩌면 보이는 것보다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닌 걸지도 몰랐다. 알리사는 라젠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대공의 기사들을 죽였으니 적군은 아닌 게 분명하고, 자신을 구하려고도 했다. 반려라고 언급한건 찜찜했지만 덕분에 경계심은 한층 옅어진 상태였다. 별로 흥미롭게 보지 않았던 얼굴도 그제야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머리색만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속눈썹도 머리칼처럼 짙은 분홍색이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작은 꽃잎이 내려앉아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게 왠지 마음에 들었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
호기심이 생긴 알리사가 라젠을 향해 질문을 건네려고 했을 때였다. 갑자기 온몸에 오싹한 한기가 들었다. 알리사는 두 팔로 자신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대?”
라젠이 경직된 알리사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도 곧 굳어졌다. 불쑥 그의 눈앞으로 검이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
콰앙! 라젠은 서둘러 방어벽을 만들어 아슬아슬하게 검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또 다른 쪽에서 공격이 이어졌다. 그것도 한두 개 정도가 아니었다. 쉴 틈 없이 쏟아지는 검날을 막아내면서 라젠은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제 나타난 건지 검은 망토를 입은 자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언뜻 세어 봐도 열 명이 넘는 숫자였다.
“……잠행까지 있었군.”
상황을 판단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라젠은 속으로 혀를 찼다. 저들이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가 마법을 쓸 틈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마법은 수인을 맺고 주문을 외워야만 사용할 수 있는 힘이었다. 위력이 강한 마법일수록 마나의 소모가 클 뿐만 아니라 외워야 할 주문도 길었다. 정확한 자세와 발음은 기본적으로 따라붙는 규칙이었다. 거리가 떨어져 있다면 모를까, 근접전에서는 그럴 시간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대가 노련하고 훌륭한 전사일수록 틈을 만들기란 더 어려워진다. 조금 전 마법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라젠이 공격당하기 전에 먼저 주문을 시전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검을 받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큰 마법을 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라젠은 쉴 틈 없이 쏟아지는 검날을 피하는 것에만 급급해야 했다. 그나마 기본적인 체력이 있어 반사 신경이 받쳐주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러게 혼자서 나다니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이 자리에 있지도 않은 친우가 그에게 화를 내는 환청이 들렸다. 그가 권했던 대로 세리엄을 데리고 다녔어야 했다. 라젠은 이번만큼은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그러나 되돌릴 수 없는 일을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꼴을 알면 잔소리로 끝나지 않겠군. 급박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심을 하며 라젠이 미간을 좁혔다.
“위험해!”
바로 그때,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내 틈을 보고 있던 알리사가 전투에 가담한 것이다. 우르릉! 멀든이 바닥을 뒤흔들자 달려들던 적들의 자세가 크게 무너졌다. 덕분에 잠시간 공격이 멈추는 사이 알리사가 라젠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주위에 가시 울타리가 둘러쳐지고, 두 사람은 멀든의 뒤에서 보호를 받는 형태가 됐다.
“그대…….”
“당신! 왜 얌전히 방어만 하고 있는 거야? 공격을 해야지! 처음에 쓴 마법 엄청 화려하더만! 그건 왜 아껴 두고 있어?”
“아껴 둔 게 아니다. 다시 주문을 외울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다.”
“주문? 그건 그냥 이름만 외치면 되는 거 아냐? 내가 아는 마법사는 그렇게 하던데?”
“그대의 지인이라는 마법사 말인가? 그가 무슨 마법을 쓴 건지 모르겠지만 위력이 강한 마법은 시간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그럼 방어벽을 두껍게 친 후에 주문을 외우면 되잖아?”
“그대, 마법에 대해 잘 모르는군. 움직이는 상태로 방어 마법과 공격 마법을 이중진으로 펼치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건 내게도 무척 까다로운…….”
“아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아무튼 뭐라도 빨리 해 봐! 나도 오래 버티는 건 힘들단 말이야!”
“……성격이 급한 건 내가 아니라 그대인 것 같군. 하지만 알겠다. 덕분에 시간을 벌었으니.”
담담히 대답한 후 라젠이 바로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그가 주문을 외우는 동안 알리사도 멀든의 소환을 유지하기 위해 집중했다. 땅의 정령들은 지형을 활용한 범위 공격에 능한 편이었고, 그럴 때 더 큰 효과를 일으키는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장소가 민가에 가깝다 보니 마음 놓고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행동을 제한하면서 싸우려니 힘도 더 크게 소비됐다. 그래도 달려드는 자들을 막아서는 역할 정도는 충분했다. 적당히 시간을 벌어주면 나머지는 마법사인 라젠이 알아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잠시 후, 상황이 전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