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왕 엘퀴네스-271화 (271/608)

제271화

아발론 점거 이후 황제군의 진군 속도는 오히려 느려졌다. 계절이 겨울로 접어들면서 날씨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크아돈은 지구의 중세와 완전히 똑같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동일한 부분이 많았다. 중세에선 계절 때문에 전쟁이 중단되기도 했다던데,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진행 속도가 더뎌지긴 했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엔 몇 날 며칠 한 장소에 발이 묶이는 경우도 허다했다.

너무 심하다 싶을 땐 날씨를 조절해 주기도 하지만 매번 신경 쓰는 것도 귀찮고 해서 대부분은 방치하는 편이었다. 어쨌거나 느린 속도라도 진군은 꾸준히 이어졌고, 양측 간의 교전 또한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처음 예측대로 출정 후 한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전투는 기습적으로 이뤄지는 것보다 성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일이 더 잦았다. 군의 수많은 짐과 장비를 지고 이동할 수 있는 경로는 한정적이었고, 그렇다 보니 대치하는 장소도 이미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런 장소는 대개 구조 자체가 안쪽에서 방어하기 좋게 만들어져 있는 편이라 진격하는 쪽에서는 가장 고심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고, 딱히 우리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이쪽엔 방어진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있었으니까.

바로 ‘스피어의 딸’ 알리사가.

“으아악! 무너진다!”

“다들 달아나! 후퇴! 후퇴하라!”

요란한 폭음과 함께 혼란에 빠진 적군의 비명 소리. 굳건한 성벽이 두부처럼 무너지는 모습은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광경 중 하나였다. 이걸로 세 번째. 아군의 진로를 방해하던 성벽들이 알리사―를 앞세운 나―의 활약에 힘입어 차례차례 그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사방 가득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아군의 함성을 들으며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게 온라인 게임이었으면 성벽 브레이커 타이틀을 얻었을 것 같아.”

“온라……뭐?”

“성벽 붕괴 마스터 타이틀이라거나.”

“……?”

“설마 ‘국가 재정을 파탄 낸’ 타이틀일까?”

“……아까부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옆에 있던 라피스가 황당하다는 눈길을 쏘았다. 새치름하게 가늘어지는 눈꼬리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괴롭혀 주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전해졌다.

“아니, 왠지 가는 곳마다 다 때려 부수니까 내가 악당이 된 기분이라서.”

“하?”

“저거 다 복구하려면 돈 엄청 들겠지?”

내전이라는 건 이래서 문제다. 자국 땅에서 싸우니 이겨도 져도 결국은 손해를 입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눈앞에서 무너져 가는 성벽만 해도 그렇다. 당장이야 우리가 뚫고 들어갈 통로에 불과하다지만, 사실은 제국을 지키는 주요 방어전선 중 하나라서 없어지면 매우 곤란했다.

아마 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이사나는 망가진 관문들부터 보수하느라 정신없이 바빠질 것이다. 그런데 그 관문을 망가트리는 주범이 하필이면 바로 나라니. 하나 부술 때마다 그의 어깨에 짐도 하나씩 얹어주는 기분이랄까. 내 딴엔 나름의 책임감이 들어 한 말이었는데, 라피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많이 찌푸려졌다.

“이번엔 무슨 궁상인가 했더니. 걱정할 게 없어서 이젠 복구비용 따위를 신경 쓰고 있냐? 저거 좀 부순다고 안 망하거든?”

“그래도 손해는 손해잖아.”

“전쟁은 원래 돈지랄 싸움이야. 그 정도 손해도 감수 안 하고 무슨 전쟁을 해? 성벽 하나로 끝낼 수 있으면 오히려 남는 장사지. 너도 그래서 이 방식을 택한 거 아냐?”

“…….”

백번 맞는 말이었기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실 효율 면에서 보자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기가 어렵긴 했다. 공략이 수월해진다는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쓸데없는 사상자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컸다. 일단 성벽이 무너지고 나면 적들이 사기를 잃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힘은 누구에게나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이능력이 존재하는 세계라도 인간의 한계는 정해져 있는 법. 알리사의 힘은 이곳의 상식을 가볍게 뒤엎는 수준이었다(실제로는 내 힘이니 당연한 일이다). 적들은 땅이 흔들리고 성벽이 무너지는 공포를 좀처럼 이겨내지 못했다.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들은 저항하기보다는 달아나거나 투항하는 쪽을 택하기 마련이다.

지금도 성벽이 무너지자 적병들이 썰물처럼 빠르게 물러나고 있었다. 아군이 하는 건 적당한 지점까지 그들을 뒤쫓는 것뿐이었다.

“오늘도 쉽게 끝나겠네.”

무료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던 시벨리우스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동의를 표하며 나는 차분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한창 달궈졌던 현장이 한산해지면서 차츰 정리되어 가는 분위기였다. 적이 그냥 달아난 만큼 사상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지난 시간 동안 수차례 이어진 교전에서 생긴 우리 측 사상자는 약 100여 명 정도. 선발대의 주력부대 안에서만 추린 집계라는 점을 감안해도 역사상 유례없는 수치라고 했다. 그것도 대부분 기습에 의한 교전에서 생긴 결과로, 공성전에선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확실히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고작 성벽에 들어가는 복구비용 같은 걸 염려할 건 아니었다.

“그래도 아깝긴 하단 말이지.”

“쯧, 이제 와서 새삼 전전긍긍하지 마. 생각나지 않는 모양인데, 넌 이미 이보다 더한 짓도 했거든?”

“더한 짓이라니?”

“지난 10년 가뭄 말이야. 손해라고 치면 이런 전쟁보다야 그때 입은 피해가 몇백 배는 더 크지 않겠어? 그거에 비하면 보수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쯤이야 그냥 육포 값이지.”

“……그것참 가슴 벅찬 위로의 말, 참으로 고오맙다.”

“천만에.”

이를 갈며 노려보는 눈길에 라피스는 상큼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뿌듯해하는 얼굴을 보니 정말로 나를 깨우쳤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알프레드 경! 적들이 모두 달아났습니다! 이번 전투도 대승입니다!”

때마침 전투가 마무리되었는지 선봉장인 마커스 백작이 벅찬 얼굴로 소리쳤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알리사에게 경어를 쓰고 있었다. 군대 안의 위계질서에 반하는 일이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문제 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당연시 여기는 분위기였다.

연이은 승전은 알리사의 서열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안 그래도 스피어의 딸이라 추앙받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그녀를 스피어 그 자체로 여기는 중이었다. 처음엔 민망해하고 번민에 차 있던 알리사도 이젠 될 대로 돼라 싶었는지 상황을 즐기는 중이었다.

“수고하셨어요, 백작님. 주변을 정리하고 병사들을 쉬게 하죠.”

“예, 알겠습니다!”

우아한 말투로 지시를 내리는 모습이 마치 타고난 것처럼 자연스럽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가끔씩 심란한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는 점에서 체념에 더 가까워 보이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더니 이젠 눈을 마주칠 때마다 심통이 난 얼굴로 볼을 부풀린다. 그걸 지켜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알면 날 정말 원망하겠지. 솔직히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알리사가 나날이 눈에 띄는 것과는 반대로 나와 일행들은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서 있었으니까. 호위로 참전했다는 것을 핑계 삼아, 교전이 벌어져도 최소한의 방어밖에 하지 않는 중이다. 그마저도 대다수 시벨리우스가 도맡고 있어서 나와 라피스는 눈에 띌 일이 전무했다. 데르온과 아스는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더 많으니 처음부터 논외다. 지금도 두 마족은 며칠째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어쨌거나 어린애한테 총대를 맡기고 뒤에서 놀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무슨 생각이야?”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입성하는 알리사를(그 옆에서 시벨리우스는 주위를 경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흐뭇하게 지켜보며 뒤따르고 있는데 라피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묘하게 응시하는 시선의 의미를 알면서도 나는 일부러 모르는 척 되물었다.

“뭐가?”

“알아들었으면서 딴청 피우지 마. 너무 노골적으로 저 꼬마를 밀어주고 있잖아. 대체 무슨 생각으로 네 공을 다 넘겨주고 있는 거냐고.”

예상했던 화두에 나는 슬쩍 주위를 돌아보았다. 혹시 누군가가 듣지는 않았을까 우려심이 들어서였는데, 그보다 얇은 마나의 막이 먼저 느껴졌다. 우리의 대화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어느새 주변에 마법을 걸어둔 거다. 이럴 때만 발군인 눈치에 저절로 감탄이 일었다.

“저 꼬마가 인간치고는 제법 재능이 있는 건 맞아. 하지만 지금 얻는 것들은 지나치게 과분한 명예야. 저렇게 유명세를 타게 만들어 두면 훗날 뒷감당이 어려워질 텐데?”

“뒷감당이랄 것까지야. 전장에서 영웅이 만들어지는 건 흔한 일이잖아. 대다수는 그냥 과장된 소문이라고 여기지 않겠어?”

“그렇다 해도 공적은 인정받겠지. 그것만으로도 제국에선 저 꼬마를 대우할 수밖에 없어. 이미 작위 하나 던져주고 끝낼 수준은 지난 거 알지? 저 공로에 맞게 포상하려면 이사나도 고심이 커질 것 같은데, 왜 굳이 일을 이렇게 크게…… 아하, 그렇구만.”

미간을 찌푸리며 추궁하던 라피스가 퍼뜩 깨달은 얼굴을 하더니 피식 웃었다. 이어지는 말엔 가슴이 뜨끔해질 수밖에 없었다.

“네 계약자랑 붙여주려는 거냐?”

“……음.”

역시 너무 티가 많이 났나. 어색하게 볼을 긁자 라피스의 얼굴이 시큰둥해졌다. 대놓고 비웃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금방 납득하는 모습이었다.

“서로 호감이 있는 눈치긴 했지. 승리의 주역이나 다름없는 전장의 여신과 미혼인 젊은 황제라……. 확실히 그림은 좋네. 그쯤 되면 내버려 둬도 주위에서 혼담을 미는 분위기가 형성되겠지. 최소한 명분은 될 거고.”

“헤헤, 그렇지?”

“근데 뭘 이렇게까지 해? 트로웰이 한 말로 봐선 이미 두 사람 사이에 인연의 별이 닿아 있는 것 같더만. 그 정도면 누가 나서지 않아도 어떻게든 될걸? 보아하니 이 제국은 황후를 정할 때 신분이나 출신을 문제 삼지도 않는 것 같던데.”

“응, 그렇다고 하더라.”

“그걸 알면서 이런 거창한 판은 왜 깔아 두는 거냐고. 저 꼬마를 걱정하는 마음이라는 건 알겠지만, 너무 과하게 챙기는 거 아냐?”

“모르는 소리. 정확히 말하면 이건 알리사가 아니라 이사나를 위한 거야.”

“흐음?”

“일찌감치 이쪽에 발목이 잡혀야 알리사가 다른 곳에 시선을 안 줄 거 아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라피스에게 나는 두 사람이 지니고 있는 정확한 운명을 알려주었다. 제왕의 별을 타고난 두 남자와 하나의 반려성. 이미 내정되어 있는, 언젠가는 반드시 겪게 될 삼각관계에 대해서.

“푸핫!”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라피스는 경박한 웃음을 터트렸다. 나름대로 심각한 사안이건만, 아무튼 진지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기 힘든 녀석이었다.

“뭐야, 그게. 제왕씩이나 돼서 여자 하나 차지하겠다고 싸운다고? 제왕의 스케일치고는 너무 유치한 거 아니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뭘?”

“드래곤씩이나 돼서 물의 정령왕과 계약하겠답시고 수백 차례 소환해 댄 어느 누군가를 상기해 보시지.”

심지어 그 누군가는 강제로 계약하기 위해 이상한 새장까지 만들어냈더랬다. 내 입으로 말하기도 민망한 그 유치찬란한 짓을 직접 실행한 당사자가 다른 사람을 비웃고 있는 걸 보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작 본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여자 같은 것보다야 정령왕이 더 가치가 높지.”

“그냥 여자가 아니라 평생을 함께할 운명의 반려거든?”

“그래 봤자 인간이잖아.”

……그래, 다른 건 몰라도 네가 평생 연애를 안 해 봤다는 건 알겠다. 앞으로도 평생 못 할 거라는 것도.

뭐가 문제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라피스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공부 머리만 천재적인 저 도마뱀이 감성 연령은 다섯 살에도 미치지 못하는 둔재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괜히 실랑이를 해 봤자 나만 피곤해질 게 분명했다.

“아무튼 난 두 사람을 팍팍 밀어줄 생각이야. 도와달라는 말은 안 할 테니까 방해는 하지 마.”

“흠, 명예와 부를 잔뜩 안겨 줘서 자리 굳히기를 하시겠다? 너치곤 꽤 영악한 생각을 다 했네.”

“뭐어, 전부 그런 목적인 건 아니고, 그냥 겸사겸사하는 거야. 어차피 알리사는 이미 이곳 일에 깊숙이 개입한 상태고, 그렇다면 차라리 성과를 올려서 인정받는 쪽이 더 낫잖아.”

“그거야 그렇긴 하지. 근데 그건 알고 있는 거냐? 꽃이 피면 향기가 난다는 거.”

“엉?”

“덧붙여 향기가 퍼지면 벌이 날아들기 시작하지. 더구나 저 꼬마는 이 제국 태생도 아니잖아. 아마 나라마다 꾀어가려고 잔뜩 몰려들 거다. 그들 중에 또 다른 제왕이란 녀석이 들어가지 않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쯤 되면 모르고 있다가도 관심을 보일 것 같은데.”

“…….”

“저 꼬마의 유명세가 오히려 서로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지. 기껏 맛있는 스튜를 끓여 놓고 개밥으로 주는 꼴이랄까. 뭐, 그냥 그렇다고.”

아주 악담을 해라, 악담을!

얄밉게 웃는 얼굴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대놓고 반박하지 못한 건 그 말을 차마 부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명해질수록 알리사는 눈에 띌 테고, 그만큼 다른 제왕의 별이 그녀를 알아볼 가능성도 높아진다. 나라고 그 점을 모르진 않았다. 당연히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엘 님! 라피스 님! 안 오고 뭐 해? 계속 거기 있을 거야?”

멀찍이서 맑은 소녀의 음성이 들렸다. 우리가 따라오지 않는 걸 눈치챈 알리사가 돌아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해맑게 웃고 있는 얼굴은 승리의 여신이란 별칭답게 세상의 근심 걱정 같은 건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지금 우리가 나누고 있는 화제가 무슨 내용인지 알게 되면 난리가 나겠지. 설마하니 본인도 자신이 두 남자한테 시달리는 운명이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도 알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러긴 힘들겠지.’

억지로 웃는 입 안이 썼다. 라피스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내가 알리사를 유명하게 만들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꽁꽁 감춰두고 숨긴다 해도 그녀는 언젠가 꽃을 피울 거고, 스스로 향기를 내기 시작할 것이다. 그 향기가 다른 쪽 별을 이끌어 올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이르든 늦든 결국 어떤 식으로든 만나도록 정해져 있다. 그런 운명이라고 했었다. 연고도 닿지 않은 먼 이국의 땅, 우연히 지나던 그 작은 마을에서 이사나와 알리사가 만났듯이.

그러니 조금쯤은 준비를 해 둬도 괜찮을 것이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조금 치사하게 여겨질 일이더라도, 알면서 당하게 둘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알리사와 먼저 만난 제왕의 별이 이사나라는 게 정말 다행이다 싶다.

카웰 공작이 저주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 먼 땅까지 갈 일도 없었겠지. 대공에게 쫓겨 다니다 운 좋게 나를 소환해 낸 것도 그렇고, 사촌을 구하기 위해 떠난 여정에서 운명의 여인을 만난 것도 그렇고. 의외로 악운에 강한 녀석이었다.

‘부디 아무도 다치거나 괴로워지지 않기를.’

앞날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내가 아끼는 두 사람이 서로를 원망하는 관계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채근하는 알리사를 향해 걸어가면서, 나는 그들의 평온한 미래를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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