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3화
“끝났네.”
“응…….”
예상했던 대로 이번 대의 미네르바는 어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인간으로 치면 십 대 초반쯤. 한눈에도 여성형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체구가 가늘고 선이 고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트로웰을 곁눈질로 살폈다. 제 모습을 갖춘 미네르바는 연령만 어려졌을 뿐, 이젠 전대가 된 예전의 미네르바와 매우 흡사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무심해 보이면서도 정결해 보이는 분위기도,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의 길이와 형태마저도 똑같았다. 마치 그의 소녀 시절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전대가 떠난 후 굉장히 힘들어했던 트로웰이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염려스러웠다. 나와 이프리트 역시 전대를 많이 좋아했지만, 트로웰과 그 사이엔 좀 더 특별한 유대감이 있었다. 그 감정을 내 멋대로 정의 내릴 수는 없더라도, 하루 이틀 사이에 비워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직 작별의 여운조차 사라지지 않았을 텐데 유독 빼닮은 얼굴을 보는 것이 불편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새 미네르바를 바라보고 있는 트로웰은 덤덤한 모습이었다. 씁쓸한 미소가 스치긴 했으나, 새로운 동료를 반기는 표정을 가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 나름대로 잘 견뎌 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후 높게 떠 있던 미네르바의 몸이 천천히 하강하면서, 안개처럼 흩어져 있던 구름들이 다시 뭉쳐져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바닥과 지붕이 생겼고, 크고 작은 기둥들이 연달아 세워져 나갔다. 미네르바가 바닥에 착지했을 때쯤, 바람의 영역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기존의 구름 속 세상 같던 모습으로 완벽하게 돌아와 있었다. 폭풍이 이는 동안 보이지 않던 하위 정령들도 어느새 나타나 주위를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아마도 바람에 섞여 있다가 다시 본래의 형태를 되찾은 듯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순서가 도래했다. 굳게 감겨있던 미네르바의 눈이 떠지기 시작한 것이다. 약간의 미동과 함께 새하얀 속눈썹이 들리자, 달빛을 새겨 넣은 듯한 맑은 은색의 눈동자가 서서히 그 존재를 드러냈다. 그 순간 사방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의 주군, 새로운 왕을 뵙습니다!
―새 바람, 세상의 새 숨결에 영광 있으라! 왕의 탄생을 경하드립니다!
쏴아아! 그들의 외침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풍성한 바람의 파도가 일었다. 미네르바가 자신의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개방한 것이다. 그 힘은 퍼즐이 하나 빠진 듯 허전했던 감각을 빈틈없이 채우고도 남았다. 처음 한동안은 마치 산소 호흡기를 뒤집어쓴 듯이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공기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새 바람은 지니고 있는 질감과 온도마저 다른 것 같았다. 덕분에 나는 이전의 미네르바가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가 정령검에 절반의 힘을 봉인했다고 들었을 땐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힘을 나눴다고는 하나 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서 균형에는 큰 영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온전한 힘을 경험하고 나니 생각했던 것보다 차이가 컸다.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장소에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이랄까. 마치 갑갑한 도심에서 벗어나 서풍이 부는 언덕 위로 올라선 기분이었다.
“……이 느낌도 오랜만이네.”
이때만큼은 트로웰도 서글픈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기억에는 전대의 미네르바가 온전한 힘을 지니고 있을 때의 모습도 남아 있을 테니까. 당시의 그와 똑같은 소녀를 보면서 과거를 추억하지 않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말없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자 놀란 듯 눈을 살짝 뜬 트로웰이 나를 돌아보고는 곧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때까지도 미네르바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눈빛이 또렷해진 것을 보면 의식도 생긴 것 같은데, 그냥 인형처럼 얌전히 서 있기만 했다. 심지어 이쪽을 보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왜 가만히 있지?”
의아해져서 중얼거리는데 뒤에서 쿡쿡 찌르는 손길이 느껴졌다. 나만큼이나 초조한 얼굴을 한 이프리트였다.
“네가 가서 말 걸어 봐.”
“어? 내가?”
“뭐해? 얼른 가 보지 않고.”
“어어, 자, 잠깐만!”
강제로 떠미는 손길을 느꼈을 땐 이미 고꾸라지듯 앞으로 튀어나간 뒤였다. 넘어질 뻔한 것을 간신히 면한 상태로 고개를 들자 바로 앞에서 은색의 눈동자가 보였다. 미네르바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말을 고르다 결국 무난한 인사부터 건네기로 했다.
“아하하. 아, 안녕, 미네르바? 만나서 반가워.”
“……네. 안녕하십니까, 엘퀴네스. 저도 반갑습니다.”
의외로 대답은 바로 돌아왔다. 솔직히 말하면 무시당할 걸 각오하고 있었던 차라 내심 놀라웠다. 그것도 굉장히 정중한 어투라서 다른 의미에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트로웰도, 이프리트도. 모두 처음 뵙겠습니다. 반갑습니다.”
미네르바는 다른 두 정령왕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딱딱한 말투만큼이나 얼굴엔 여전히 아무 표정도 없는 상태였다. 그래선지 둘 다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분명히 반갑다고 했는데 오히려 거리감이 더 커진 기분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전대의 미네르바도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 녀석은 왠지 그보다 더한 성격이라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다들 이곳엔 무슨 일들이십니까?”
“…….”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불쑥 이어진 질문에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물론이고 이프리트와 트로웰까지 마땅히 답할 말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질문하는 얼굴이 진심으로 의아해하는 기색이라 더욱 그랬다.
아무도 말을 잇지 않자 미네르바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대답을 재촉하는 시선이었다. 눈을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으음, 그게…… 뭐랄까. 새 동료가 태어났으니까 환영할 겸, 서로 인사도 나눌 겸 온 건데. 혹시 우리가 불편하게 한 거야?”
“네? 아아, 그런 거였군요. 아닙니다. 불편하진 않습니다. 생각지 못한 이유라 조금 당황스럽긴 합니다만.”
“응? 우리가 인사하러 올 걸 생각하지 못했다고? 왜?”
“딱히 그래야 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으으응?”
동료를 환영하러 올 이유가 없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나는 입만 벙긋거렸다. 굉장히 매몰찬 발언을 들은 것 같은데, 그게 내 기분을 상하게 만들 의도가 아니라는 것만은 알겠다. 그냥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서 하는 말인 거다. 그래서 더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진 기분이었다.
“하하하! 맞아, 이런 게 평범한 반응이긴 하지.”
잠시 멍하게 있던 트로웰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프리트도 조금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그들을 돌아보았다.
“평범한 반응이라니? 이게 평범하다고?”
“아아, 너무 이상하게 생각할 거 없어, 엘. 사실 네 경우엔 너무 오랜만에 태어난 거라서 다들 한마음으로 달려오긴 했는데, 원래 소멸이나 탄생 때 일부러 인사하러 오는 일은 드문 편이야. 그냥 오가다 우연히 만나면 그때서야 아는 척하는 정도랄까.”
“어? 그, 그래? 하지만 다들 아무렇지 않게 배웅하고 기다렸잖아.”
“응, 그러게. 왜일까. 왠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
의아하다는 듯이 중얼거린 후, 트로웰은 재밌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엘에게 감화된 영향인가?”
“으응? 나?”
“응, 엘을 만나면서부터 교류한다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알게 됐거든.”
이런 말을 산뜻하게 할 수 있다는 게 트로웰의 최대 강점이 아닐까. 과분한 평가라고 생각하면서도 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어서 나는 자꾸만 헤실거렸다. 그런 나를 보며 이프리트가 시큰둥하게 쏘아붙였다.
“뭐, 나는 그냥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뿐이야. 꼭 너 때문만은 아니니까 착각하지 마.”
“흠, 나 때문만은 아니라는 건 내 영향이 있긴 하다는 말이네?”
“……이럴 때만 듣기 좋은 쪽으로만 해석하지 말아 줄래? 누가 엘퀴네스 아니랄까 봐 갈수록 점점 뻔뻔해진다니까.”
가볍게 혀를 찬 후 이프리트는 찬바람이 나도록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솔직하지 못한 말과는 다르게 그의 두 뺨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나와 트로웰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는 동안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미네르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다들 사이가 좋은 거군요. 저도 이런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교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하하, 그래. 저기, 근데 미네르바. 그냥 편하게 말해도 되는데……?”
“저는 충분히 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 그래? 그렇구나. 뭐, 네가 그게 편하다면야…….”
저 말투가 편하다니, 이번 미네르바는 굉장히 격식 있는 성향을 타고난 모양이다.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뺨을 긁고 있는데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미네르바가 또 말없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긴장해서 물었다.
“……왜?”
“아, 신경 쓰이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별거 아닌 일이긴 합니다만.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아까부터 계속 고민해 봤는데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군요.”
“나한테 질문? 뭔데?”
“엘퀴네스는 여성체입니까, 남성체입니까?”
“……응?”
“제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트로웰은 남성체, 이프리트는 확연히 여성체로 보입니다. 그런데 엘퀴네스는 구분하기가 조금 힘들군요. 남성으로 판단하면 그렇게 보이고, 여성으로 보려고 하면 또 그렇게 볼 수도 있는 외모라서요.”
“아하하…….”
또 그건가.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게 느껴지는 걸 보니 이런 상황에 너무 적응된 모양이다. 오히려 단숨에 여성체라고 판단하지 않고 성별을 물어봐 준 것만으로도 고마울 지경이었다.
“나는 남성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렇습니까? 어쨌든 엘퀴네스는 양쪽 성별을 다 쓸 수 있을 테니 편하겠군요. 조금 부럽습니다.”
“으음, 그런가. 장점으로 보자면 그렇긴 한데…….”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까?”
“그에겐 단점이 더 클 거야, 미네르바. 엘은 남성으로서의 의식이 확고한 편이니까.”
난처해하는 나를 대신해서 트로웰이 설명했다. 미네르바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성인 정령이 성 정체성을 확립하는 게 가능합니까? 오랜 시간 꾸준히 한쪽 성별로만 대우를 받다 보면 굳어질 수도 있긴 하겠지만. 엘퀴네스의 경우엔 매우 모호해서 인간들 사이에서도 판단이 갈렸을 것 같은데요.”
“응, 그렇긴 한데……엘에겐 조금 특별한 경험이 있거든. 정령왕으로 태어나기 전에 인간 남성으로 지낸 적이 있어. 아직 그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 그래.”
“……정령왕에게 전생이 있다고요?”
탄생 이후 내내 변함이 없던 미네르바의 얼굴에 처음으로 표정이라 할 만한 것이 떠올랐다. 그래 봤자 눈을 조금 크게 뜬 것에 불과하지만. 워낙 무표정하다 보니 그 작은 변화도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명계의 착오로 엘의 영혼이 중간계로 보내졌던 것 같아. 그래서 한동안 물의 자리가 공석이었어.”
“아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오랜만에 태어났다는 말이 바로 그 뜻이었군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미네르바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표정은 원래대로 돌아온 반면 눈빛은 조금 전보다 더 강렬해졌다. 마치 유명인이라도 만난 듯한 시선이었다.
“그럼 엘퀴네스는 전생을 지닌 최초의 정령왕인 건가요?”
“어, 음. 그런 셈인가.”
“굉장하군요. 저 그런 거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자신만의 경험이나 특질을 갖고 있는 것 말입니다.”
“그, 그래?”
“네, 정말 부럽습니다. 그에 비하면 전 너무 평범한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럴 리가.
이 순간 트로웰과 이프리트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고 느낀 건 내 착각만이 아닐 것이다. 물론 내 표정 또한 두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엔 미네르바도 특별한 것 같은데?”
조심스럽게 운을 떼자 미네르바는 멀뚱히 눈을 깜빡거렸다. 그 모습이 마치 귀를 쫑긋거리는 토끼처럼 보였다. 귀엽긴 한데, 건드리면 굉장히 아프게 물릴 것 같다. 나는 무심코 쓰다듬을 뻔한 손을 간신히 내리눌렀다.
“제게 독특한 부분이 있습니까?”
“그…… 표정이나 말투라든가.”
“표정과 말투요? 그게 이상합니까?”
“아니, 이상한 건 아니지만. ……흔치 않은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그렇습니까?”
미네르바가 확인을 구하는 듯이 돌아보았고, 트로웰과 이프리트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이렇게 한마음 한뜻으로 행동하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그렇군요. 전 잘 모르겠지만, 모두 다 그렇게 느낀다고 한다면 그런 거겠죠. 제 분위기가 흔치 않다니, 나쁘지 않군요.”
그러나 말과는 달리 미네르바는 얼굴을 기묘하게 일그러뜨렸다. 혹시 마음을 상하게 한 건가 싶어 나는 유심히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화난 것치고는 느낌이 조금 이상했다. 눈썹은 잔뜩 찌푸려진 반면, 입술 끝은 희미하게 올라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꽤 힘을 줘서 지탱하는 건지 턱 근육까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한눈에도 억지로 입술을 들어 올리고 있다는 걸 알 것 같았다.
‘잠깐. 입술을 올려……?’
예외의 경우도 있긴 하지만 보편적으로 입술을 올리는 경우는 한 가지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설마 싶은 심정으로 물었다.
“……저기, 내가 착각하는 거라면 미안한데. 혹시 지금 웃은…… 거야?”
“그렇습니다만?”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얼굴로 미네르바가 대답했다. 서로 눈동자가 마주쳤고, 한동안 우리들 사이엔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푸하하하! 이번 미네르바는 꽤 재밌는 성격이네. 엘이랑은 완전히 정반대잖아?”
분위기가 전환된 건 이프리트가 폭소를 터트리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돌아보니 트로웰은 아예 배를 움켜쥐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한번 터지면 한참 동안 멈추지 않는 웃음보가 다시 터진 모양이었다.
“거기서 내가 왜 나와?”
“몰라서 묻니? 넌 감정 표현이 풍부하잖아.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그, 그 정도는 아니거든?”
“아니긴. 지금도 발끈한 게 훤히 다 보이는구만. 아무튼 성향이 다른 둘을 붙여 놓으니까 지켜보는 맛이 있네. 너희들, 재밌으니까 좀 더 얘기해 봐.”
“아예 장난감 취급이냐!”
나는 버럭 외친 후에 바로 미네르바를 돌아보았다. 어차피 내가 화내는 건 통할 리가 없으니 그에게 희망을 걸어볼 작정이었다.
“미네르바, 너도 뭐라고 좀 해 봐. 정말 너무 심하지 않아?”
“네? 아아, 그렇군요. 그보다 엘퀴네스한테 궁금한 것이 또 있습니다만.”
“…….”
그래, 내 인생이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지.
눈앞에서 타오르던 희망의 불씨가 훅 하고 꺼지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미네르바가 제일 강적인 걸지도 모르겠다. 이젠 이프리트도 주저앉아 웃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못 차리는 두 정령왕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정작 이 상태의 주범이나 다름없는 미네르바만은 폭풍의 눈처럼 홀로 평온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