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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왕 엘퀴네스-208화 (208/608)

제208화

“준비는 다 마친 거지? 그럼 이제 문을 열어도 될까?”

“무슨 문이요?”

카노스의 말에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꽤 넓은 공간이긴 했어도 문이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보란 듯이 카노스가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자 눈앞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무것도 없는 벽면 위에 마치 그림이 그려지듯 긴 선이 드러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거대한 철문이 나타난 것이다.

카노스가 가볍게 손가락을 울리자, 마치 그의 명에 따르는 것처럼 철문이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끼이익, 녹슨 쇠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안쪽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빛이 빠르게 주위로 뻗어 나갔다.

그 순간 들어오는 광경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활짝 열려진 문 안쪽, 시선이 다다르는 끝에 돌탑처럼 세워진 작은 제단이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제단 위에 세로로 박혀 있는 거대한 흑색의 검이었다. 별다른 장식 없이 단조로운 형태였지만, 나는 한눈에 그것이 우리가 찾고 있던 검임을 알아보았다. 새카만 검신에서 눈을 떼기 힘들 만큼 묘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가 보아도 범상치 않은 기색의, 마검다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아래, 마치 검의 보호를 받듯이 황금색의 알 하나가 붉은 비단에 감싸여 놓여 있었다. 카노스가 말한 마족의 알이 분명했다.

<던전의 최하층까지 무사히 오신 걸 환영합니다, 용사여.>

“……!”

상황을 파악하기 무섭게 들려오는 음성에 나는 흠칫 놀랐다. 다른 일행들 역시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뭐야, 지금 어디서 들려온 목소리지? 차분하게 울려 퍼진 음성은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소년의 것이었다. 카노스를 바라보자 키득 웃은 그가 손가락으로 제단 쪽을 가리켰다. 음성이 다시 울려 퍼진 것과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 이름은 파이어 버스터. 위대하신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님의 산물인, 봉인된 이그니스가 담긴 정령검입니다. 나를 취하는 자, 이 세상의 모든 힘을 얻을 것입니다.>

‘파이어 버스터.’

그 이름으로 자신을 칭한 존재는 제단에 박혀 있는 마검이 분명했다. 검이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주는 놀라움 때문인지, 아니면 엄숙한 울림을 담은 말투 때문인지 몰라도, 금방이라도 깨어질 환상을 보는 것처럼 청아하고 신비로운 느낌이 물씬 들었다. 주위를 감도는 공기마저 경건한 것 같았다. 뭔가 대단한 존재 앞에 섰다는, 묵직한 감동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직후 요란한 웃음소리가 터지기 전까지는.

“푸하하하하!”

기차 화통처럼 쩌렁쩌렁한 굉소(轟笑)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홀릴 것처럼 나른하던 공기를 단숨에 박살 낸 주인공은 바로 카노스였다.

“세상의 모든 힘이래! 제까짓 게 세상의 모든 힘을 얻게 해준대! 아이고, 배야! 아이고오!”

그는 벽을 마구 두드려 가며 미친 듯이 웃었다. 너무 심한 것 같다는 생각에 당황했을 때였다.

<뭐야! 그 목소리는 설마……이익! 또 카노스 님이에요?>

검의 말투가 한순간에 바뀌더니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생각지 못한 변화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제야 간신히 웃는 걸 멈춘 카노스가 피식거리며 대꾸했다.

“오냐, 나다.”

<아, 정말! 대체 왜 자꾸 오시는 거예요? 찾아오라는 용사님은 안 오시고!>

“푸훗! 이제 그만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어? 글쎄, 이 던전의 함정들은 한낱 모험가들이 뚫을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게 다 카노스 님 때문이잖아요! 이프리트 님이 저를 이곳에 두셨을 때까지만 해도 여긴 이렇게 침범하기 어려운 성역 따위가 아니었다고요! 에잇! 이런 알 따위! 알 따위이~ 전부 구워버릴 거야!>

“헤에, 한번 해봐. 그거 태어날 때가 다 되어서 절대 안 구워질걸?”

<으앙! 마신님 미워! 나빠! 진짜 사악해! 다시는 안 놀아!>

“…….”

울먹이는 외침에 이미 신비로웠던 첫인상 따위는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다. 조금 전의 점잖은 말투는 전부 내숭이고, 이 모습이 본 성격인 것이 틀림없었다. 이중인격이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이중검격(?)이 존재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정작 내 신경을 거스르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아까부터 반복되고 있는 ‘이프리트’란 이름 말이다.

<나중에 이프리트 님이 오시면 다 이를 거예요! 카노스님이 날 얼마나 괴롭혔는지 전부 꼬치꼬치 말씀드릴 거라고요! 그때 가서 후회하지나 말아욧!>

“안 해. 그래 봤자 내가 더 세거든.”

<그, 그럴 리가 없어요! 이프리트 님은 전 차원에서 가장 강하신 분이라고요! 카노스 님은 바보야! 바보! 바보! 바보!>

“와아, 지금 네 번이나 날 욕했겠다? 좋아. 한 번당 백 년씩 쳐서 앞으로 사백 년간 용사는 못 만나는 걸로 하자.”

<치, 치사해! 그런 게 어딨어요? 우에엥! 이프리트 니임! 저 좀 이곳에서 꺼내줘요오!>

이 순간에도 어김없이 터져 나오는 이름에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프리트라니. 내가 아는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를 말하는 게 맞겠지? 마검이 왜 정령왕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지 모르겠다. 마신이 저 지경이라서(?) 차마 따를 수 없다 치더라도, 하다못해 마족에게 매달려야 하는 거 아닌가?

게다가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검을 이곳에 가져다 둔 존재도 바로 이프리트였다는 것 같다. 내게는 전부 금시초문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지도를 건네주던 당시에 녀석이 뭔가 묘한 여운을 풍기긴 했었다. 검에 대해서도 왠지 잘 알고 있는 눈치였었고.

대체 어떤 사연으로 엮인 사이인 걸까. 자신을 소개했을 때부터 이프리트를 언급한 걸로 봐선 검은 그를 매우 특별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워낙 인상적인 대사라서 뭐라고 했는지는 금방 떠올랐다. 이프리트의 산물, 이그니스가 봉인된 정령검이라고 했었지. 그래,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정령검.

“……정령검?”

자, 잠깐! 정령검이라니! 왜 정령검? 마검이 아니고?

벅찬 마음에 바로 깨닫지 못했던 위화감이 뒤늦게 전신을 덮쳤다. 황급히 검을 살펴보니 정말로 뜨거운 불의 기운이 느껴졌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설마, 이건 절대 있을 리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이프리트한테 속은 건 아니겠지?

<뭐야, 방금! 누가 말하지 않았어요?>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해 보고 있는데 훌쩍이던 검이 돌연 음성을 높였다. 검 주제에 귀도 밝은지 용케 내 목소리를 감지한 것 같았다. “내가 말했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단도직입적으로 진실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역시! 다른 사람이 있었군요!>

검이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생각이 맞았단 사실에 몹시 흥분한 기색이었다. 물론 덩달아 들뜰 기분은 아니라서 나는 힘없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일단 네게 물어볼 게 있는데…….”

<혹시 용사님이세요? 용사님인 거죠? 이번에야말로 용사님이 나타나신 거예요? 드디어 저를 이 지옥에서 구출해 주려고 오셨군요!>

“뭐? 아니, 나는…….”

<아아! 용사님!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가슴 아프게도 저는 당신이 절 가질 자격이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해요! 자아!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 임무를 드리죠! 지금 제 앞에 있는 이 사악한 마신을 무찔러 주세요!>

“…….”

아마도 이 검은 목소리만 인식할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쪽의 말은 들어볼 생각도 없이 무작정 자기 말만 밀어붙이는 걸 보니 성격도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기다렸다는 용사라면서 다짜고짜 자격을 시험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마신을 없애라니, 첫 번째부터 너무 레벨이 높잖아!

“와아, 엘이 날 무찔러 주는 거야? 영광인데?”

히죽 웃는 능청스러운 얼굴에 애초에 있지도 않은 전투력이 더 급감했다. 아마도 썩어 있을 것이 분명할 내 표정을 본 카노스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왜 그래?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네.”

“그게…….”

“기다렸던 순간이잖아? 바라마지 않던 검을 찾았는데 왜 그렇게 울상을 짓고 있어?”

그 말에 일행들 역시 우울해진 내 분위기를 알아본 듯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카노스가 정말 이유를 몰라서 물은 건 아닐 것이다.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는 얼굴만 봐도 뻔했다. 그럼에도 모른 척하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내 짐작이 맞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몹시 심란해졌다. 역시 마검이 아니었던 거다. 속았다는 사실에 대한 배신감보다는, 사전에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떠나온 내 잘못 때문인 것 같아서 속이 쓰렸다.

“지금까지 전부 헛고생한 거네요.”

“음? 어째서?”

“어째서라뇨. 우린 저주를 풀 마검을 찾으러 온 거라구요. 정령검이 아니라.”

울고 싶은 심정으로 내뱉은 말에 뒤편에 있던 이사나가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역시 눈앞에 닥친 사태를 알아차린 것이다. 하지만 카노스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저게 정령검인 것 같아?”

그게 아니면?

되물을 요량으로 응시하자 카노스가 능숙한 동작으로 내 어깨를 붙잡더니 정면을 보게 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어리둥절해하는데 그가 뒤편에서 진지하게 물었다.

“자세히 봐. 뭐가 보여?”

“뭐냐니, 그야…….”

찌푸린 얼굴로 대답하려던 순간, 눈에 들어온 광경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검에 서린 느낌이 뭔가 미묘했다. 타오를 듯 거센 기운은 불의 정령 특유의 것과 비슷한데, 그 안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존재는 조금 달랐다. 친숙하고 정순한 힘 속에 탁하고 이질적인 기운이 섞여들어 있었다. 그건 마치…….

“인간…….”

떠오르는 것을 무심코 중얼거리자 카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인간의 혼이지. 한없이 정령에 가깝지만, 결코 정령이 될 수는 없는.”

“……정말 인간이라고요?”

왜 인간의 혼이 검 속에? 아니, 그보다 인간이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정령과 흡사한 느낌이 드는 거지? 마검이 아니란 것보다 정령검이 아니란 사실을 오히려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정령과 비슷한 느낌이었으니까.

“너랑 비슷한데 잘 풀리지 못한 경우야.”

“저랑요?”

“원래 정령으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인간으로 잘못 태어났지.”

“……!”

“정령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결국 망가졌어. 일반 정령은 한번 자격을 잃으면 그걸로 끝이야. 명계로 가면 평범한 윤회 속으로 끌려들어 가겠지. 그걸 안타깝게 여긴 이프리트가 그의 힘을 나눠주고 이곳에 묶어둔 거야. 이를테면 정령검에 한없이 가까운 에고 소드라고 할 수 있겠네.”

“에고 소드……?”

“혼이 들어가 있는, 자아를 가진 검을 말해. 하지만 본인은 자신을 불의 정령검이라고 알고 있어.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은 전부 지워졌거든.”

귓가에 떨어지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것 같았다. 나는 멍하니 제단의 검을 응시했다. 새카만 검신 속에서 무릎을 안은 채 웅크리고 있는 작은 소년이 보였다. 소년의 가냘픈 어깨를 붉은 새가 따뜻하게 감싸 안고 있었다. 이프리트의 힘이었다.

나와 똑같았던 처지, 그러나 끝내 돌아오지 못하게 된 작은 아이의 영혼. 과거를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기를 바란 이프리트의 배려였을 것이다. 이 검을 만들었을 때 그가 느꼈을 슬픔이 절절히 느껴져서 나까지 가슴이 아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날 속인 것이 용서가 되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마검은 아니라는 거네요.”

감춰진 사정이야 어쨌든 이로써 모든 사실이 분명해졌다. 던전 최하층에 봉인된 검은 마검이 아니라 에고 소드였다. 데르온이 감지했던 마력은 마족의 알에게서 나온 것이었고, 우리의 여정은 실패했다.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결론을 내리려니 입 안이 지독하게 썼다. 그런 내 옆에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 카노스가 뜻밖의 말을 이었다.

“일단 저것도 마검으로 볼 수 있긴 해. 정확히는 마검화 된 거지만.”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화들짝 놀라서 쳐다보자 카노스는 순순히 설명했다.

“에고 소드는 일종의 거울과 같아서 소유하는 사람의 심성을 그대로 반영해. 심기가 곧은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성검이 되지만, 반대로 악한 마음을 품은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마검보다 더 많은 피를 부르지. 하지만 인간의 역사가 늘 그렇듯, 강한 힘은 곧은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의 손에 더 많이 들어가.”

“……!”

“저 녀석만 해도 몇 대에 걸쳐서 수천은 죽였을 거야. 진짜 정령검이더라도 그 정도로 많은 피를 묻히면 성질이 변하게 되어 있어. 마검처럼 사기(死氣)를 품기 시작하지.”

“그, 그래도 진짜 마검은 아니지 않아요?”

“네가 사용할 용도로는 별 차이 없어. 사실 저주를 풀기 위해 마검이 필요한 이유는 그 안에 스며든 수많은 사람들의 사기가 필요하기 때문이거든.”

“그럼…….”

“저 검으로도 저주를 풀 수는 있다는 소리야.”

뭐야, 그럼 속은 게 아니었던 건가? 되찾은 희망에 가슴 안을 묵직하게 짓누르던 기분이 사라졌다. 스스로 의식하기에도 내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카노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근데 너한테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닐걸? 저 검을 쓸 수 있겠어?”

“……네?”

“잊었나 본데, 저주를 풀려면 마검 하나를 완전히 파괴해야 해. 사람으로 치면 죽이는 거나 다름없어.”

“……!”

<자, 잠깐만요! 마신을 무찌르라고 했더니 아까부터 둘이서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 거죠? 날 죽인다고요? 이럴 수가! 그래, 이제 알았어! 당신은 용사가 아니라 마왕이었던 거군요? 그래서 정적인 날 제거하기 위해 온 거였어요! 에잇, 좋아요! 덤벼요! 상대해 드리죠!>

놀라서 숨을 멈춘 동안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검이 헛소리를 떠들었다. 장알거리는 목소리는 시끄러웠지만, 검이 살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인지시키기엔 충분했다. 굳은 표정으로 돌아보는 내 옆에서 카노스가 무심히 중얼거렸다.

“뭐, 이프리트의 입장에선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기도 하겠지. 나름 아끼던 아이였을 텐데 인간들에게 이용당하는 꼴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을 테니까. 오죽하면 이런 곳에다 직접 봉인시켜 뒀겠어.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마음이 쓰였을 거야. 그래서 저 검의 마지막을 네게 맡긴 걸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가…….”

“자, 그래서 넌 어떻게 할래?”

묻는 말에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일행들을 돌아보자, 그들 역시 망설이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중요한 순간마다 나를 괴롭혀 왔던 문제가 또다시 발목을 붙든다. 육신을 지니지 못한 물건에 불과하다고 해도 영혼과 자아를 가진, 엄연히 살아 있는 존재였다. 이프리트가 어떤 심정으로 만들었는지 느껴지기에 가슴 아플 정도로 애달픈.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런 일에 검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저 검을 포기하면 마음이야 편할지 몰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제 와서 대체할 다른 마검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설령 찾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얻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요할지도 알 수 없었다. 마치 피할 수 없는 덫에 빠져든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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