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6화
“그래도 믿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지. 각성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각성 징후요?”
되묻는 내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그는 바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주술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악신으로서 각성을 앞둔 육체는 점차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몸의 냄새가 바뀌고 수면시간이 점점 길어지며, 피부색을 비롯한 온몸의 색소가 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 시기에 가장 두드러지는 증상은 심한 공복감을 호소한다는 점이었다. 육체의 변화를 기력이 따라가지 못하게 되면서, 극도의 허기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의 허기는 음식으로는 해소되지 않아. 그 때문에 닥치는 대로 주위를 공격하기 시작하지. 남의 살이든, 피든, 부족한 기운만큼 타인으로부터 채우기 위해서.”
“……!”
“다른 건 다 감출 수 있어도 이 징후만은 숨기지 못해. 이성으로 제어하는 게 불가능하거든. 그래서 사실 그 주술은 끝까지 완성할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아. 대부분은 이 단계에서 저절로 제거되니까. 갑자기 미쳐서 날뛰는 살인귀를 주위에서 얌전히 내버려둘 리가 없잖아?”
“그, 그렇겠네요. 그런데 마왕은 그런 증상이 없었단 말이죠?”
“그래.”
처음 번제가 시작된 기점으로 주술이 진행된 시간을 따져 보면 이미 공복을 느끼는 징후가 나타났어야 한다는 게 카노스의 설명이었다. 마족이라 어느 정도 충동을 제어하는 이성이 뛰어나다고 가정해도, 필요한 마력이 워낙 많기 때문에 조용히 처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적어도 수백 명분의 힘은 흡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계 어디에도 실종자는 없었고, 수상한 사체도 발견되지 않았어. 수면 시간이 조금 길어지긴 했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냐. 겉으로 드러난 문제는 전혀 없다고 봐야 해.”
뭐야, 그럼 정말 그 주술이 아닌 건가? 알아갈수록 헷갈리는 기분이라 머리가 복잡해졌다. 갑갑한 마음에 얼굴을 찌푸렸을 때였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문제뿐이지만 말이지.”
“네?”
“혹시 마족이 어떻게 태어나는지 알아, 엘?”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무섭게 갑자기 화제를 바꾼 카노스가 싱글거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 변화가 적응되지 않기도 했지만 질문이 생뚱맞기도 해서 생각이 잠시 멈췄다. 나도 모르게 데르온을 응시했나 보다. 그가 당황한 얼굴로 설명을 시작했다.
“아, 그러니까 백 년마다 한 번씩 번식기가 찾아옵니다. 그때 태어난 알들을 전부 수거하여 카르텐에 가져가, 그곳에서 부화시키죠.”
“알이요? 그럼 마족이 난생[卵生]이었어요?”
경악해서 바라보자 데르온은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저렇게 큰 덩치의 남자가 알에서 태어났다니, 굉장히 어울리지 않아서 내심 당황스러웠다. 하기야 드래곤같이 거대한 종족도 난생인 걸 생각해 보면 별로 특이할 건 없긴 했다. 게다가 과일에서 태어나는 것보다야 훨씬 현실적이기도 하고.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걸 묻는 거지?’
내 의문을 읽은 듯 카노스가 빙긋 웃었다.
“매 번식기마다 카르텐으로 수거되는 알은 적게는 몇백 개에서 많게는 수천 개 수준이야. 이번 번식기에는 정확히 천오백 개의 알이 수거되었고, 곧 부화를 앞두고 있었지. 참고로 부화 직전의 알은 의식만 없을 뿐 이미 태어난 유체와 거의 다르지 않아.”
“……그런데요?”
“그런데 얼마 전 상당히 곤란한 일이 생겼지 뭐야. 숲에 침입자가 들어와서 알을 전부 다 파괴해 버렸거든.”
“……!”
나도 모르게 고개가 번쩍 들렸다. 내 생각에 확신을 더하는 것처럼 카노스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자, 그럼 여기서 질문. 파괴된 알들이 품고 있던 마력이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
벌려진 입이 차마 다물어지지 않았다. 여기까지 들으면 누구라도 상황을 파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있었다. 실종된 수백분의 마력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털썩, 하고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데르온이 주저앉으면서 낸 소리였다.
“……설마 그게 도전자를 견제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신음조차 제대로 흘리지 못하는 그를 보며 카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걸 노렸겠지. 마왕이 왕좌를 지키기 위해 알을 파괴하는 게 드문 일은 아니니까. 덕분에 주술이 진짜일 가능성은 더 커졌지만.”
“자, 잠시만요. 그럼 일단 잡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쨌든 징후로 의심되는 상황이 벌어진 거잖아요.”
다급히 꺼낸 말에 카노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말했잖아,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고. 알을 파괴한 침입자가 그라는 사실을 증명할 길이 없어.”
“그렇다고 그냥 두고 본다구요? 그쯤이면 없는 증거를 만들어내서라도 잡아야죠!”
“그런가?”
“당연하죠! 악신이 태어나면 중간계 전체가 저주받는다면서요! 인류의 목숨이 달렸는데 가장 유력한 용의자를 내버려 둘 여유가 어디 있어요?”
“흐음, 역시 그렇지?”
되묻는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지독하게 쓴 약을 마신 표정에 가까웠다. 내게 연거푸 확인함으로써 그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뭐, 그렇지 않아도 어차피 그럴 생각이었어. 염려하지 않아도 증거는 곧 만들어 질 거야. 내가 본성에 쳐들어갈 생각이니까.”
“카노스가 간다구요?”
“엄밀히 말하면 루카르엠이지. 마계에서 공작은 왕좌에 도전할 수 있는 위치야. 다른 공작들의 승인을 얻기만 하면 언제든 결투를 청할 수 있지. 그에게 도전해서 정식으로 카류안과 결투를 진행할 예정이야.”
“……!”
“이게 왜 증거가 되는지 알겠어?”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말없이 고개를 젓자 카노스는 피식 웃었다.
“카류안은 날 절대 이길 수 없거든. 설령 날 죽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더라도 말이야.”
“그게……무슨 뜻이에요?”
“말 그대로야. 카류안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마족이라면 전부 똑같이 적용되는 사항이지. 각인된 순종이라고 표현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정령과 정령왕과의 관계도도 이거랑 좀 비슷한데, 하나의 근본에서 파생된 존재는 본신을 거역하고 싶어도 거역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 마족들도 마찬가지야.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본능이 먼저 거부해.”
“……! 혹시 당신이 마신이라 그런 건가요?”
“맞아. 내가 그들을 창조했기 때문이지.”
조심스럽게 건넨 질문에 카노스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악신으로 각성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라면 이미 온전한 마족이라고 보기 어려워. 그만큼 본능도 흐려졌겠지. 그는 날 죽이려 들 거고, 궁지에 몰리면 주술로 얻은 힘도 결국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될 거야. 그리고 그게 피하지 못할 증거가 되겠지.”
“그, 그렇군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한마디로 함정 수사를 펼쳐 현행범으로 잡겠다는 소리였다. 가장 확실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방법이기도 해서 조금 걱정스러웠다. 내가 염려하며 살피는 것을 본 카노스가 즐거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걱정돼?”
“그거야…….”
“난 마신인데? 신들 중에서도 제일 강할걸? 마왕은 상대도 안 될 텐데?”
“그래도 위험한 건 위험한 거잖아요.”
“하하, 넌 정말 착하구나. 아깝다. 내가 먼저 발견했으면 내 아들로 삼았을 건데.”
아니, 뜻은 고맙지만 그건 사양하고 싶은데요…….
생각이 얼굴에 다 드러났는지 카노스가 배를 움켜쥐고 낄낄거렸다. 아쉬워하는 눈빛은 진짜였던 것 같은데, 내가 보이는 거부감에 섭섭해 하는 기색도 없다. 역시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데르온, 동쪽 영주인 네 승인이 필요한데. 협조 좀 해줄래?”
“예? 아, 그, 그거야 물론! 당연히 드리겠습니다!”
대화가 오가는 내내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던 데르온이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그는 곧장 손바닥을 편 다음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손 위에서 새카만 마력이 일어나더니 딱딱한 형태로 굳어져 사뿐히 내려앉았다. 둥근 고리를 띠고 있는 모습이 마치 검은색 금속으로 만든 팔찌 같았다. 그 생각이 틀린 건 아니었는지 데르온이 엄숙한 얼굴로 그것을 내밀며 말했다.
“동 영주의 증명서, 마(魔)의 팔찌, 여기 있습니다!”
그 광경을 보자 오랜만에 머릿속에서 저절로 정보가 떠올랐다. 마계 공작들의 증명서는 그들의 마력에 반응해서 물건으로 만들어진다. 이때 각 영토에 해당하는 고유의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동쪽은 팔찌, 서쪽은 귀걸이, 북쪽은 반지, 마지막으로 남쪽은 목걸이의 형식이었다.
카노스는 데르온의 두 손에 놓인 팔찌를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바라보았다. 달라고 한 쪽에서 받지를 않자 데르온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저어?”
“……흐음, 데르온. 이 디자인은 좀 촌스럽지 않아? 이전 동 공작의 것은 한눈에 봐도 예뻤는데 말이야. 넌 상당히 센스가 없구나?”
“컥!”
“뭐, 좋아. 어차피 장신구로 쓸 건 아니니까. 자크는 당연히 내어줄 테니 세르피스 것만 얻으면 되겠군.”
데르온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든 말든, 카노스는 상큼하게 웃으며 팔찌를 받아들었다. 나는 그가 팔찌를 끼는 것을 지켜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물었다.
“이곳엔 데르온의 증명서를 얻으려고 오신 거였어요?”
“음~ 그런 것도 있고, 엘 네게 용건이 있기도 했고.”
“저한테요?”
“실은 내가 알 하나를 꿍쳐둔 게 있거든.”
지나가듯이 내뱉은 말은 너무도 태연해서 나는 한순간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무심결에 흘려듣다가 뒤늦게 의미를 파악하자 얼굴이 바로 경직됐다.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알을 꿍쳐뒀다니? 무슨 알?
“……그거 혹시 마족의 알을 말하는 건 아니죠?”
“물론 마족의 알이지. 달리 뭐겠어?”
“…….”
너무도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시선에 말문이 턱 막혔다. 이번에도 나와 같은 감정을 공유한 일행들이 어이없어하며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 데르온은 얼마나 놀랐는지 체한 사람처럼 가슴을 마구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말 한마디로 모두를 충격에 빠트린 장본인은 그런 우리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응? 왜 그렇게 봐? 다 파괴되었다는데 멀쩡한 게 있다니까 놀라워?”
“그야…….”
“그래, 확실히 놀라운 일이긴 하지. 내가 어지간하면 그런 짓은 잘 안 하는데, 색이 참 예쁘더라고. 그래서 마계의 저택에 장식해 두고 실컷 구경하고 있었지. 부화할 때쯤엔 다시 돌려둘 참이었는데 깜빡했다가 얼마 전에야 생각났지 뭐야?”
“깜빡할 게 따로 있죠! 대체 뭘 하고 다니시는 거예요?”
“뭐, 어때. 덕분에 하나는 건졌잖아. 하하하! 이런 게 바로 타고난 선견지명이란 게 아닐까? 역시 난 대단해!”
“그냥 단지 운이 좋았던 것뿐이잖아요!”
“이거나 그거나 결과만 좋으면 된 거지. 어쨌든 내 덕분에 건진 건 맞잖아?”
“그렇긴 하지만…….”
이걸 정말 덕분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수긍하기에도 꺼림칙한 기분에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제 와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카노스는 검지를 좌우로 까닥이며 혀를 차는 둥, 적반하장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알다시피 그 알이 곧 부화할 시기가 다가오거든. 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그 숲에 돌려둘 수는 없고. 일단은 안전한 곳에 숨겨두고 있었단 말이지.”
“안전한 장소요?”
“마검이 봉인된 던전이라나 뭐라나. 마침 친구 아들이 거길 방문한다기에 알아봤는데 꽤 주변 환경이 좋더라고.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천연의 요새 같은 곳이지 않겠어?”
“아, 그래요. 마검이 봉인된……뭐라고요?! 그럼 여기잖아!”
“오오! 그러고 보니 그렇군!”
“뭐가 ‘그러고 보니 그렇군’이에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으면서!”
버럭 소리를 지르자 카노스는 다시금 냐하하하 하고 특이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제야 이 망할 마신의 목적을 알 것 같았다. 나는 이를 갈면서도 억측이길 바라며 그의 생각을 확인했다.
“혹시나 싶어서 묻는 건데……설마 우리들에게 그 알을 떠넘길 생각은 아니겠죠?”
“그럴 생각이었는데.”
억측은 개뿔!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왜 불길한 예감은 항상 들어맞는 걸까. 예상을 조금도 빗나가지 않는 대답에 탄식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물론 이런 걸로 미안해할 위인이라면 애초에 이렇게 피곤한 상황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위풍당당한 카노스의 모습은 애초에 염치란 단어가 인간 사회에서만 적용되는 것이었는지 진지한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화를 터트리지 못한 건 바로 이어진 진지한 말 때문이었다.
“마계를 이끌 미래의 왕이야. 부탁 좀 할게.”
“……!”
“오랜 세월 동안 마계를 옭아매고 있던 규제를 끊어낼 운명을 타고났어. 그 아이가 마왕이 되면 마계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거야. 하지만 그러자면 일단 무사히 성체가 되어야 해.”
응시하는 눈빛이 차분하다. 이번엔 장난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목 끝까지 차오른 불만의 말을 간신히 눌러 삼켰다. 오래된 규제라고 하니 짐작되는 것이 있었다. 아마 천마대전이 남겼다는 후유증을 말하는 거겠지. 새 시대라는 건 더 이상 마신의 엄격한 감시를 받지 않는, 자유로웠던 본래의 마계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전 차원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태어날 아이가 굉장히 중요한 존재라는 것만은 알 것 같았다. 어쩌면 색이 예뻤다는 건 그저 변명일 뿐이고, 사실은 보호하기 위해 숨긴 걸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솔직하지 못한 건지, 그냥 단순히 내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를 이해하길 포기했다. 앞으로도 쭉 그를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진 않았다.
“……성체가 될 때까지만인 거죠?”
“응응! 마족은 성장 속도가 빨라서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아. 태어나자마자 금방 말도 하고 걷기도 할 테니까 신경 써 줘야 할 것도 많지 않을 거야.”
맡아줄 거야? 맡아줄 거야? 설명하는 내내 카노스의 눈동자에 떠오르고 있는 문장을 보며 나는 질린 기분을 느꼈다. 왠지 거절했다간 내내 악몽에 시달릴 느낌이었다. 결국 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제가 보호할게요.”
“정말? 고맙기도 해라!”
마음에 없는 말은 아니었는지, 내 두 손을 꼭 붙잡는 카노스의 얼굴이 밝았다. 정말 안심하는 표정이었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아, 그치만 정령과 마족은 태생적으로 상극이라서 아무래도 돌보려면 힘든 부분이 많을 거야. 도와줄 사람을 붙여줄게.”
“도와줄 사람이요?”
습관적으로 되묻자마자 나는 그가 누구를 말하는 건지 깨달았다. 카노스를 제외하면, 이곳에서 마족에 대해 잘 알 만한 존재는 단 한 명뿐이었으니까. 예상대로, 그의 시선이 긴장한 얼굴로 서 있는 데르온을 향했다.
“데르온, 네게 아이의 보조를 맡기고 싶은데.”
“……주군으로 모시고 목숨을 다해 보좌하겠습니다.”
갑자기 건네진 제안에도 불구하고 데르온은 당황하지 않고 부복하며 답했다. 임무를 부여받은 기사처럼 사명감에 불타오르는 얼굴이었다. 카노스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알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예요?”
“검이랑 같이 있지.”
“검이요? 무슨 검이요?”
“이 던전의 최하층에 있는 검 말이야. 그걸 가지러 왔던 거 아니었어?”
“헉!”
맞아, 그랬었지! 나는 물론 일행들 모두 크게 헛숨을 삼켰다. 줄기차게 정신없는 일들만 일어나는 바람에, 정작 던전에 들어온 이유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민망함에 신음을 삼키는 우리들을 돌아보며 카노스가 방긋 웃었다.
“자, 그럼 이제 슬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