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4화
“지훈! 알리사! 시벨 님! 다들 어디에 있어?”
쭉 뻗어 있는 복도 한복판에서 이사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정신없이 뒤틀리는 공간에 휘말려 한동안 이리저리 쓸려 다녔던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혼자 덩그러니 낯선 공간에 서 있었고,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도대체 다들 어디에 있는 걸까? 마지막 순간을 뚜렷하게 기억하진 못하지만 각자 허둥거리는 사이에 하나둘씩 사라졌던 것만은 생각났다. 아무래도 전부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 같았다. 이사나는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서도 침착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특히 엘퀴네스가 그의 곁에 없다는 사실이 가장 무서웠다.
계약을 한 이후로 엘퀴네스는 단 한 번도 자신의 곁을 말없이 떠난 적이 없었다. 그만 같이 있어 주면 아무리 아슬아슬한 상황이 닥쳐도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마치 천하를 손 안에 쥔 것처럼 어떻게든 잘될 거라는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그제야 이사나는 자신이 엘퀴네스를 얼마나 많이 의지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지금까지 괜찮았던 건 그가 늘 함께 해주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지훈! 지…… 엘퀴네스!”
엘퀴네스가 새로 정한 가명은 아무리 노력해도 입에 잘 붙지 않았다. 어색한 이름이 익숙지 않다 보니 부르는 일이 줄어들었고, 그러다 보니 그와의 교류마저 서먹해졌다. 엘퀴네스와 떨어지게 된 것도 다 그 탓인 것만 같았다. 결국 이사나는 그 이름으로 부르길 그만두고 본명을 외쳤다.
“엘퀴네스! 어딨어, 엘퀴네스? 엘! 대답해 줘! 엘?”
본명이 원래의 호칭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미 남의 것이 되었지만 역시 엘퀴네스를 부르기엔 이쪽이 더 친숙하고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이사나는 그 이름이 엘퀴네스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쭉 그렇게 생각해 왔으면서도 일행들 앞에서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엘퀴네스 또한 그 호칭에 애정을 갖고 있었던 걸로 보였다.
자신만이라도 끝까지 그렇게 불렀어야 했던 게 아닐까. 시벨리우스가 저의 친구를 위해 나섰던 것처럼, 자신 역시 엘퀴네스를 위해 그랬어야 했는지 몰랐다. 엘퀴네스는 다정해서 일행들 간에 분쟁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은 이름을 바꾸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만약 그랬다면 얼마나 서운했을까. 뒤늦은 후회에 입 안이 썼다. 다시 만나면 꼭 사과부터 하고 내 생각을 솔직히 말해야지. 그래서 그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다시 돌려줄 것이다. 이사나는 속으로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다.
“시큐엘! 시큐엘? 나와 봐!”
아무리 불러도 엘퀴네스의 대답이 없자, 이사나는 차선책으로 시큐엘의 소환을 시도했다. 혼자 있는 것보다는 누구라도 함께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시큐엘에게서도 반응이 없었다. 운디네와 나이아스들 또한 대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설마 이곳에서는 정령술을 쓸 수 없는 걸까? 예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이사나는 긴장한 얼굴로 검집을 움켜쥐었다. 이 던전의 위험성은 지금까지 겪은 일들만으로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정령의 힘을 쓸 수 없다면 검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그의 시야에 반가운 광경이 들어왔다. 복도 한구석에 알리사가 주저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알리사!”
이사나는 기쁜 마음에 얼른 달려가 알리사를 끌어안았다. 아니, 끌어안으려고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건 그의 손이 알리사의 몸에 닿지 않고 그대로 그녀의 몸을 통과했기 때문이었다. 이사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숨을 삼켰다. 그 순간 울먹이는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흑……. 다들 어디로 가버린 거야. 놈! 멀든! 나와 봐! 왜 아무도 안 나타나는 거야!>
“아, 알리사?”
<여기 싫어. 무서워. 너무 무서워. 이사나 씨! 지훈 님! 엘 씨! 시벨리우스 씨! 다들 어디 있어? 아무나 좋으니까 제발 나타나! 흐흑!>
“알리사! 내가 안 보이니? 알리사!”
반복된 부름에도 알리사는 전혀 이사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의 형체가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황한 이사나가 무심코 손을 내미는 순간, 그녀의 모습이 증발하듯이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
숨도 쉬지 못한 채 굳어 있는데 바로 옆에서 다른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난 사람은 바로 데르온이었다.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여긴 대체 어떻게 된 공간이지? 기운을 전혀 운용할 수 없다니. 이것도 주술의 영향인가?>
“데르온?”
<주술이라면 역시 서쪽이겠지. 세르피스는 아닌 게 확실하고. 과거 서(西)공작들 중 한 명의 작품일지도 모르겠군. 금지된 암흑 주술이 빈번하던 시대에는 대공작 중에서 서의 주인이 가장 강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니까. 지금이야 명맥만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이지만. 주술이라곤 전혀 모르던 이바크 같은 녀석도 있었고…….>
“데르온! 당신도 내가 안 보여요?”
이사나는 필사적으로 달려가 데르온을 붙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알리사 때처럼 그의 몸을 그대로 통과했을 뿐이었다. 그가 사라지자 이번엔 시벨리우스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녀석도 데리고 나올 걸 그랬나? 내가 먼저 나오면 뒤따라 나올 줄 알았는데 왜 움직이질 않지?>
“시벨 님…….”
<이럴 때 혼자 행동하는 건 위험한데. 쯧, 어쩔 수 없군. 다시 가서 데리고 와야…… 어? 뭐야. 문이 어디로 갔지?>
“시벨 님도……내가 안 보여요?”
<또 주술에 갇힌 건가. 미치겠네. 설마 던전 전체가 주술로 만들어진 건 아니겠지? 대체 이건 누가 만든 거야? 이런 주술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중얼거리는 시벨리우스의 얼굴엔 낭패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이 시간 어딘가에서 짓고 있을 표정일 것이다. 이윽고 그의 모습마저 사라져버리자 이사나는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만져지지도 않고 말이 들리지도 않다니, 마치 자신이 유령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아니, 정말 살아 있기는 한 걸까?
엄습하는 두려움에 입술을 깨문 순간, 갑자기 공간이 크게 흔들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복도가 구겨진 종이처럼 다시 엉망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지탱할 곳을 잃은 그의 몸은 순식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깊은 암흑 속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궁!
“으아아악!”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이사나는 문득 자신이 온전하게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곧 방금 전까지 있었던 복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밝고 화려한 색채가 느껴졌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닥에 깔린 붉은 융단과 화려한 금실이 수놓아진 커튼이었다. 가운데에는 접대를 위해 마련된 테이블과 의자가, 저편으로는 침실로 이어지는 입구가 드리워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화려한 공간은 이 방의 주인이 어떤 신분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응접실을 겸한 거실은 여느 대저택의 홀보다 넓었고, 가구는 물론 자잘한 장신구마저 장인이 정성 들여 제작한 것이 분명한 고급품이었다. 그런데 그 꾸며진 모습들이 하나같이 매우 눈에 익었다. 이사나는 굳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설마…… 태자궁 시절에 쓰던 내 방?”
틀림없었다. 태자궁은 그가 어린 시절을 전부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가 황궁에서 가장 오래 지낸 장소였다. 머무르는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배치를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그 순간 무심코 자신의 옷차림을 내려다본 이사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이때까지 걸치고 있던 평범한 로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붉은색의 예복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는 단 한 번도 걸친 적이 없는, 황태자의 정복이었다.
똑똑!
상황을 판단하기도 전에 울리는 노크 소리에 이사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모습을 확인한 즉시 이사나는 숨을 멈췄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은 결코 이런 식으로 마주할 리 없는 존재였으니까.
“태자 전하, 기분은 좀 어떠십니까?”
남자는 하얀색의 법복을 입고 있었다. 아무런 장식도 없이 통짜로 짜인 옷은 밑단에 마신관을 상징하는 붉은색 문양을 핏물처럼 드리우고 있었다. 살짝 묶어 어깨 아래까지 내린 머리칼은 본래의 자신과 꼭 닮은 짙은 금색. 마찬가지로 자신과 빼닮은 푸른색 눈동자가 보였다. 단정하고 선해 보이는 얼굴 역시,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만 빼면 이사나 그 자신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었다. 그가 자라면 딱 저렇게 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사나는 이토록 자신과 닮은 사람이 누군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수, 숙부?”
더듬거리며 물으면서도 이미 그의 머리는 상대의 정체를 확신했다. 틀림없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그의 숙부이자, 섭정왕인 유카르테 대공이었다.
대체 어떻게 숙부가 이곳에 있단 말인가.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런 게 사실일 리가 없었다. 이사나는 애써 정신을 다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를 마주한 것만으로도 온몸이 덜덜 떨렸다. 다리는 물론 두 손에조차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뱀과 마주친 쥐가 된 기분이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대공은 고개를 기울이며 희미하게 웃었다. 어딘지 안타까우면서도 처연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이사나는 지금 이 상황이 어디에선가 많이 보던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기억을 되짚어볼 필요는 없었다. 바로 눈앞에서 똑같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으니까.
“형틀이 마련되었습니다. 폐하의 마지막을 지켜보셔야지요.”
잔인한 예감은 어김없이 맞아떨어졌다. 이사나는 천천히 두 눈을 깜빡였다. 아마 그때도 이랬었던 것 같다.
“……형틀? 마……지막?”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폐하께서는 이 땅의 모든 재앙을 대신 짊어지시고 가시는 겁니다. 그러니 태자 전하는 그분의 희생을 위업으로 받들고 강건한 황제가 되셔야 합니다.”
“……! 마, 말도 안 돼. 이게 어떻게 된……?”
이사나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모든 것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왜 이제야 깨달은 걸까. 이건 아버지가 처형되던 바로 그 날의 기억이다. 그가 가장 상기하고 싶지 않은, 온 세상을 저주하게 만들었던 끔찍한 하루가 다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일순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 것 같았다. 숨을 쉬고 있긴 했던가? 정신이 들었을 땐 갑자기 시야가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앞에 있는 대공의 무릎을 보고서야 이사나는 자신이 주저앉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가시지요, 전하. 서두르셔야 합니다.”
대공이 뻣뻣하게 굳어 있는 그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강하게 붙잡은 팔이 그를 강제로 이끌었다. 반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그럴수록 대공의 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있을 뿐이었다. 기사들이 서 있는 기나긴 복도를 지나 본궁의 성문 앞에 이르기까지, 이사나는 그에게 잡힌 상태로 쉬지 않고 끌려갔다. 잠시 후 커다란 함성과 수많은 군중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환호하고 있는 백성들 속에서, 커다란 형틀 앞에 서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를 확인한 이사나의 두 눈이 다시금 흔들렸다. 단출한 의상을 걸친 채 초연하게 서 있는 금발의 남자는 한때 가장 영화롭고 고귀한 자리에 존재했던 그의 아버지였다. 이곳 스왈트의 군주이자, 누구보다도 백성을 사랑하고 배려했던 청렴한 황제였다. 그런데 왜 그가 저런 끔찍한 장소에 있는가! 그리고 백성들은 어째서 그 모습을 보면서 환호하는가!
그의 머리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 단단한 밧줄이 보였다. 그 모습을 발견한 이사나가 힘없이 비틀거렸다. 이번에는 대공도 그를 붙잡지 않았다. 그 대신 근처에 있던 기사들 중 하나가 그를 부축했다. 아마도 친위대의 대장인 케이였던 것 같다. ‘태자 전하, 정신 차리십시오! 부디 견디셔야 합니다!’ 울먹임을 담은 목소리가 귓가에서 빠르게 속삭였다. 그의 새빨개진 눈을 보고서야 간신히 정신이 들었다.
아니, 차라리 정신을 잃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그는 케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몰아쉰 다음 다시 천천히 처형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앞의 광경을 보지 않고 외면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럼에도 그는 밧줄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이제 곧 저 밧줄이 아버지의 목을 졸라 단번에 숨을 앗아갈 것이다.
‘아버님!’
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그의 옆에서, 엷게 입꼬리를 올린 대공이 말했다.
“황족의 유체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교수형을 선택했습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드냐고?’
“보십시오. 백성들이 환호하고 있군요. 폐하께서 돌아가시고 나면 이 모든 재앙이 끝날 거라고 믿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태자 전하도 조금쯤은 그들의 기쁨에 동조해 주십시오.”
‘동조해 주라고? 내가? 날더러 저들의 기쁨에 동조하라고?’
후두둑,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다. 꿈에서조차 잊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술로 지새웠었다. 신을 저주하고, 백성을 저주하고, 스스로를 저주한 게 몇 번이었던가! 왜 하필 이 악몽이 다시 재현되는 거지? 왜!
“자, 보십시오, 전하. 폐하께서 교수대에 오르십니다. 절 따라 나오길 잘하셨지요? 아버님의 가시는 길을 축복해 주십시오. 지금 배웅하시지 않으면 앞으로 영원히 배웅하실 기회가 없으실 겁니다.”
“……그만.”
“왜 그렇게 굳은 표정이십니까? 이제 폐하께서도 저주에서 벗어나 영원한 안식에 드실 수 있습니다. 모두가 염원하던 날이 아닙니까. 전하께선 이런 기회를 주신 마신께 마음 깊이 감사드리셔야 할 겁니다.”
“……그마안!”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르는 동안에도 처형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뿌옇게 변해버린 시야에 교수대에 오르는 그의 아버지가 보였다. 밧줄을 목에 걸기 직전 그를 발견한 아버지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눈짓했다. 마치 ‘울지 말라’고 하는 듯이. 이사나는 차라리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떨어지는 발판, 숨이 막혀 버둥거리는 몸. 그것을 보고 더 크게 환호하는 백성들.
……왜 나는 이곳에 있는 거지?
귓가에서 웃음소리가 울렸다. 제 형을 사지에 밀어두고 조카의 비명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악마의 웃음소리였다. 그가 딛고 있는 바닥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빨갛게 물들어 갔다. 역한 냄새를 풍기는 붉은 액체가 넘실거리며 그의 몸까지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방금 전 스러진 아버지의 피다.
“싫어! 안 돼! 그만! 제발 그마아안!”
두 귀를 틀어막고 몸부림을 친다. 피를 토하듯 외치는 소리에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사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두 눈에서도 붉은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아, 이대로 영원히 미쳐버렸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