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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왕 엘퀴네스-177화 (177/608)

제177화

나로선 전혀 달갑지 않은 치하에 얼굴을 찌푸리는 사이, 부조수는 늘어진 알리사를 가볍게 안아 들었다. 그가 향한 곳은 벽면을 채우고 있는 거대한 책장 앞이었다. 책장 안엔 수많은 책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의 손이 망설임 없이 붉은색 가죽으로 덮인 책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우르릉 소리와 함께 책장이 뒤쪽으로 밀리더니,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화에서나 봤던 비밀 통로였다.

설마 저런 장치가 있었을 줄이야. 황망한 기분으로 지켜보는 동안 부조수가 여직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뒤처리를 부탁하지.”

“맡겨두세요.”

여직원은 나른하게 웃었다. 이미 한두 번 이런 일을 해 온 게 아닌 것 같았다. 이윽고 지하의 문이 닫히고 책장이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단지 그것만으로 방 안은 다시 흔해빠진 서재로 변했다. 비밀 통로를 감추고 있는 장소라곤 생각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혼자 남은 여직원은 재빠르게 탁자 위에 있던 찻잔을 치웠다. 이제 알리사가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정돈을 마친 그녀가 그 방 안을 떠날 때까지,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정말로 그가 학생들을 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엘? 왜 그래? 알리사 찾았어?”

굳어진 얼굴을 봤는지 옆에서 이사나가 초조하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입 안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울렸다.

“알리사는 어때? 무사해?”

“으음, 일단 조금만 더. 끝까지 따라가 봐야겠어.”

“따라가 보다니?”

“이따가 전부 다 얘기해 줄게.”

달래듯 대답한 뒤 나는 천천히 지하 쪽으로 시야를 확장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튀어가서 알리사를 구하고 싶었지만, 그 전에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부조수가 한 말 중에서 수레가 오기로 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까지 정황을 보건대 수레의 용도는 아무래도 납치한 학생을 옮기는 것일 가능성이 컸다. 날짜가 정해져 있는 것을 보면 납치한 학생들을 모아두었다가 한꺼번에 넘기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즉, 이곳 어딘가에 아이들이 갇혀 있는 장소가 있단 뜻이었다. 그가 가는 길을 쫓아가면 그 장소까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지하 통로는 생각보다 넓고,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로 이뤄져 있었다. 하지만 부조수는 단 한 번도 망설이는 기색 없이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어갔다. 이따금씩 시선을 느낀 듯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긴 했지만, 몇 차례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엔 아예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이윽고 그는 빼곡한 벽돌로 채워진 벽 앞에 멈춰 섰다. 그중 한 벽돌을 빼내자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벽이 양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선 그를 새카만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맞이했다. 대공이 부리던 병사들이 입던 것과 똑같은 차림이었다. 그것을 보고 나니 정말로 이 사건에 대공이 관여했다는 실감이 들었다.

“우슬라 님. 어서 오십시오.”

병사들의 정중한 인사에 부조수는 흐뭇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 앞으로 펼쳐진 광경에 나는 얼굴을 일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동굴처럼 파여진 공간 안에 있는 건 쇠창살이 빼곡하게 드리워져 있는 거대한 감옥이었다. 바로 그 속에서 아이들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실례합니다.”

“……!”

때마침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흠칫 놀라 곧장 접촉을 풀어냈다. 멀어졌던 감각이 돌아올 때면 항상 느끼는 현기증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눈앞을 뒤덮었다. 애써 태연하게 참아내고 나니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상대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알리사에게 약을 탄 차를 준 여직원이었기 때문이다.

“누구십니까?”

아직 그녀의 정체를 모르는 이사나가 경계하며 물었다. 여직원은 고요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편입 응시자인 알리사 양의 1차 면접 결과가 나왔기에 알려드리러 왔습니다. 죄송하지만 알리사 양은 1차 면접을 통과하지 못하셨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이대로 돌아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게 바로 그들이 말한 예의 ‘뒤처리’인 모양이다. 모든 상황을 지켜본 나로선 가증스러울 정도로 뻔뻔한 대사였지만 섣불리 행동할 순 없었다. 나는 이사나와 잠시간 시선을 주고받았다. 침묵하는 내 모습에서 대강의 상황을 짐작한 듯, 이사나가 서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런데 알리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예?”

“왜 당신 혼자 왔냐는 겁니다.”

이사나의 말에 여직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알리사 양이라면 면접을 본 후 먼저 나갔습니다만. 혹시 이곳으로 오지 않은 건가요?”

“안 왔습니다.”

단호한 대답이 떨어지자 여직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조금 전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정말 당황한 거라고 믿었을 만큼 천진한 모습이었다. 이사나의 시선은 더 차가워졌다.

“믿을 수가 없군요. 낯선 장소에 처음 온 아이를 안내자 하나 붙이지 않고 그냥 보냈단 말입니까?”

“그, 그게…… 면접 과정에서 기분이 많이 상했는지 혼자 가겠다고 해서…… 지, 지금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여직원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랴부랴 문밖으로 달려 나갔다. 어차피 찾는 시늉만 하고 돌아올 것이 뻔했기에 나는 곧장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도 내가 말을 꺼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엘? 알리사는?”

“알리사는 잠든 상태로 비밀 통로로 옮겨졌어. 지하에 감옥 같은 곳이 만들어져 있더라고. 그곳에 아이들이 갇혀 있는 걸 봤어. 아마 이틀 후에 다른 장소로 옮길 계획인 것 같아.”

“맙소사. 그럼 정말로 우리 생각이 맞았던 거야? 라무스에서 아이들을 납치하고 있다고?”

“아직 라무스 전체가 가담했다고 보긴 어려워. 굳이 비밀 통로를 이용한 걸 보면 일부의 짓일지도 몰라.”

알리사가 있던 방 안의 구조 역시 면접 장소로 보기엔 매우 비좁고 어두웠다. 처음부터 원장이 있는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곳으로 그녀를 유인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이 사실이 밝혀지면 라무스 역시 책임을 면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까진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당장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이들 전부 구할 거지?”

“당연하지. 숙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 뜻대로 흘러가도록 놔두진 않을 거야.”

이사나의 눈이 차갑게 일렁거렸다.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인 다음 계획을 말했다.

“좋아. 아마 직원이 돌아오면 우리를 이곳에서 내보내려고 할 거야. 일단 지금은 모른 척하고 상황을 지켜보자.”

“응? 당장 구하러 가지 않고?”

“그러고 싶지만 지금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우리가 너무 눈에 띄어. 라무스 안에 마신교 측 사람이 몇이나 될지 아무도 모르잖아? 앞으로 남은 일정도 있으니 이번 일은 가급적 은밀히 처리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응, 그건 나도 엘이랑 같은 생각이야.”

옆에서 듣고 있던 시벨리우스가 조용히 동의를 표했다.

“이미 저들은 엘을 마신관으로 알고 있어. 여기서 공공연하게 일을 터트리면 나중에 수습이 힘들어질지도 몰라. 마신교는 예전부터 배교자에 대한 처벌이 철저한 집단이라 아마 집요하게 추격해 올 거야. 엘이 신관이 아니란 게 밝혀지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겠지. 아무튼 가급적 의심을 살 만한 여지는 주지 않는 게 좋겠어.”

“으음, 하긴 그런 문제가 있겠네요.”

처음엔 불만스러워 보였던 이사나도 그 문제만큼은 통감한 듯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초조해 보이는 모습에 나는 그가 뭘 걱정하는지 깨닫고 피식 웃었다.

“알리사는 염려 마. 한동안은 세상모르게 잘 거라 무서워할 틈도 없을 거야. 그리고 그 녀석 성격이면 별로 걱정하지도 않을걸? 우리가 구하러 올 거란 걸 알고 있을 테니까.”

“그, 그럴까?”

“그렇다니까. 면접 보러 갈 때 알리사의 표정 기억해?”

그때 알리사는 평소답지 않게 유난히 불안해했었다. 하지만 우리 쪽을 보고 난 뒤엔 다시금 급격히 얼굴에 자신감이 붙었다. 당시엔 그 행동에 별다른 의미를 담지 않았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아마도 알리사는 그때 뭔가 감을 잡았던 것 같다. 이사나 역시 그 모습을 떠올렸는지 겨우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장소는 이미 다 파악해 놨고, 굳이 지금이 아니라도 구할 시간은 충분해. 여기선 한 발 물러나는 척하고 적당한 때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남몰래 빼돌리자. 누가 했는지 모르면 추격도 하지 못할 테니까.”

“적당한 때?”

때마침 열린 문틈으로 여직원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사람들이 가장 방심하는 시기는 아무래도 새벽이지.”

* * *

여직원이 우리를 내보내기 위해 만든 변명은 ‘알리사가 혼자 라무스 밖으로 나갔다’는 것이었다. 창구에 있던 직원이 그녀가 혼자 걸어 나가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이로서 그 역시 마신교 측의 가담자 중 하나라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미 뻔히 보이는 장단에 그럴듯하게 맞추는 건 생각보다 곤혹스러웠다. 사람이 실종된 상황에서 순순히 물러나는 것도 의심을 살 우려가 있었기에 적당히 저항까지 해야 해서 더욱 그랬다.

“마, 말도 안 돼! 알리사는 아직 어린아입니다! 그 어린애가 혼자 말도 없이 나갔을 리가 없잖습니까? 나, 나는 믿을 수 없습니다!”

“마, 맞아! 이놈들, 알리사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심지어 놀란 척하는 이사나와 시벨리우스의 연기력은 못 봐줄 만큼 상당히 어색했다. 그나마 다행히도 라무스의 직원들은 두 사람의 연기를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일단 지은 죄가 있다 보니 우리 쪽을 무사히 쫓아내는 일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신관이란 역할답게, 나는 흥분한 일행들을 열심히 다독였다.

“다들 진정해. 그러지 말고 일단 여관으로 가보자. 알리사가 먼저 가 있을 수도 있잖아.”

“만약 갔는데 그곳에도 없으면?”

“그땐 다른 곳을 찾아봐야지.”

“그건 말도 안 돼! 학술원 안에서 아이가 사라졌으니까 여기부터 찾아야지! 이럴 게 아니라 원장을 만나게 해 줘! 그자가 알리사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니 정황을 제일 잘 알고 있을 거 아냐! 그 사람부터 만나야겠어!”

이사나의 정당한 요구에 직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재빨리 나를 바라보는 눈길에서 도움의 요청이 느껴져 나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원장의 가담 여부가 가장 궁금했었는데, 저들의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그는 이 사태를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러지 마. 이렇게 큰 학술원의 원장이면 굉장히 바쁜 사람일 거야. 만나 달란다고 쉽게 만날 수 있겠어?”

“그렇다고 그냥 물러서잔 말이야? 찾을 생각이 있긴 한 거야?”

“물론 나도 알리사를 걱정하고 있어. 하지만 억지를 부릴 게 아니잖아. 이미 알리사가 학술원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봤다는 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해? 봐, 다들 곤란해하시잖아.”

“윽…….”

어쩔 줄 몰라 하는 직원들을 가리키자 이사나는 기세를 누그러트렸다.

“여기서 아무리 이래봤자 소용없어. 우선 알리사가 갔을 만한 곳부터 찾아보는 게 먼저야. 단순히 혼자 있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잖아. 자존심이 강한 아이라 면접에서 떨어진 게 창피했던 걸지도 몰라. 그래도 정 못 찾게 되면 그때 다시 오면 돼. 응?”

침묵하던 이사나가 곧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를 계속 다독이는 척하면서 직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안심한 얼굴들을 보니, 제법 그럴듯하게 속여 넘긴 것 같았다. 그들이 남몰래 고마운 시선을 보내오는 것을 보니 속에서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저 사람들은 납치된 애들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는 있는 걸까? 알고 있으면서 그런 끔찍한 행위에 가담하고 있는 걸까?

그 아이들이 너희들의 자식이라면, 그때도 이런 짓을 할 수 있냐고 묻고 싶었다. 그래 봤자 이미 인륜을 저버린 자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당히 주위를 배회하는 동안 날은 빠르게 저물었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두세 번 더 라무스에 들려 여전히 알리사를 찾는 시늉을 했다. 그 과정은 전부 이사나와 시벨리우스, 두 사람으로만 진행됐다. 나는 중간에서 이들과 헤어져 길을 떠난 것처럼 위장했다. 마신관인 내가 계속 그들과 같이 붙어 다니면 수상하게 여길지도 모른단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진짜로 떨어져 있지는 않고 자연체로 돌아가 모습만 보이지 않게 한 것뿐이다. 정령이라서 좋은 점은 언제든 원할 때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는 거니까.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직원들은 전부 썰물처럼 라무스를 빠져나갔다. 기숙사를 제외한 모든 건물의 불이 꺼지고, 적막한 공기가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맘때쯤엔 라무스 입구 앞을 배회하던 부모들도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모두 여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항의를 하려고 해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경비대는 계속 활동하고 있긴 했지만, 그들은 외부인의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날이 완전히 저물고, 새카만 밤이 되자 라무스는 인기척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해졌다. 물론 불침번을 서는 경비대가 있으니 완전히 깨어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할 순 없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본격적으로 계획을 진행했다. 일단 나와 이사나는 가죽으로 된 갑옷과 무기를 착용해서 용병인 것처럼 꾸몄다. 신발도 높은 굽으로 바꿔 신어 한층 키가 더 커 보이도록 했다. 혹시 목격자가 생기더라도 인상착의에 혼선을 주기 위해서였다. 평소 후드로 가리고 다니던 얼굴은 오히려 드러낸 대신 복면을 쓰기로 했다. 어디에서도 튀는 머리색은 두건을 써서 감췄다.

하지만 치장만으로 가려지지 않는 시벨리우스는 어쩔 수 없이 외형의 일부분을 인간처럼 변형해야 했다. 그는 피부색을 하얗게 바꾸고 불쑥 솟은 귀를 둥글게 다듬었다. 화려한 은발도 짙은 흑발로 바꿨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인상은 완전히 달라져 보였다.

“괜찮은데, 시벨? 다른 변장은 안 해도 되겠어.”

“그래?”

“응, 이목구비가 똑같은데도 전혀 다른 사람 같아.”

그는 거울 앞에서 바꾼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왠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거참. 내가 또 이런 모습을 하게 될 줄은…….”

“전에도 변장한 적 있어?”

“예전에 한 번. 그러고 보니 그때도 납치된 녀석들을 구하러 갔었어.”

“헐. 이런 일을 또 겪은 적이 있단 말이야?”

“응. 뭐, 그땐 이런 식의 계획적 납치는 아니었지만. 일족 아이들이 조심성 없이 인간의 땅을 유람하다가 노예 사냥꾼한테 붙잡혔었거든. 경매장으로 바로 찾아갔는데 이종족의 모습으로 접근하면 경계를 당하니까, 상대방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인간인 것처럼 위장해서 들어갔었지.”

“그랬구나. 어쨌든 경력자인 셈이네.”

웃으며 건넨 말에 시벨리우스가 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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