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왕 엘퀴네스-173화 (173/608)

제173화

데르온과 자크는 여전히 문 앞에서 루카르엠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법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대화는 한 마디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데르온은 한 가지 위화감을 깨닫고 가늘게 뜬 눈으로 자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자크, 이곳엔 어떻게 오신 겁니까?”

“걸어왔다.”

“아뇨, 그게 아니라…… 이번 번식기 문제 말입니다. 카르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으로 근신처분을 받으셨다 들었는데요.”

“잘 알고 있군. 그러니 여기서 날 본 건 마왕에겐 비밀이다.”

“……여긴 알현실 앞입니다만.”

“괜찮아. 문이 열리면 뒤쪽으로 숨을 거다.”

그런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데르온은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걸 참으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이 대책 없는 마족이 설마하니 루카르엠을 보기 위해 마왕의 명령까지 거역할 줄은 몰랐다. 자칫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날벼락 정도로 그치진 않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기분에 데르온은 얼른 자크를 달랬다.

“일단 지금은 그냥 영토로 돌아가시죠. 루카르엠이라면 제가 만나 뵙고 소식을 전해 드릴 테니…….”

“자네 혼자만 루카르엠 님을 뵙겠다고?”

젠장, 모처럼 걱정해 주고 있는데 이렇게 나오기냐. 순식간에 서늘해진 자크의 눈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데르온은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마왕의 명에 불복하면 처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대체 무슨 배짱이십니까?”

“죽음 따위가 두렵다면 마족으로 살아갈 수가 없겠지.”

“물론 그 말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만. 고작 얼굴 하나 보겠다고 죽음을 불사하는 건 너무 거창하지 않습니까?”

“고작이라니. 지금 내 앞에서 루카르엠 님의 얼굴을 고작 따위라고 칭한 건가?”

“……하아, 그래요. 마음대로 하십시오.”

결국 데르온은 자포자기 하며 두 손을 들었다. 애초에 이 마족을 왜 설득하려고 했을까. 무엇이든 광적으로 미쳐 있는 존재와는 말을 섞지 않는 게 진리라는 것을 다시금 온몸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전 어떻게 되셔도 모릅니다. 도와드리지 않을 거라고요.”

“그럼 도와줄 생각이었나?”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어차피 도와드린다고 해서 그게 통하기나 하겠습니까?”

“흥, 애초에 자넨 마족 주제에 너무 쓸데없는 잔정이 많아. 이참에 카르텐으로 건너와서 유체들의 육아를 맡아볼 생각은 없나? 공작보다는 집사나 보모 쪽이 더 적성에 맞을 것 같은데.”

“누가 보모……!”

“쉿.”

발끈해서 외치려는 순간 이어진 소리에 데르온은 입을 다물었다. 굳이 말을 가로막는 이유를 물을 필요는 없었다. 굳게 닫혀 있던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걸어 나오는 낯익은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데르온의 얼굴이 밝아졌다. 틀림없는 루카르엠이었다. 그 역시 문 앞에 있는 이들을 알아보고 미소 지었다.

“어라? 이게 누굽니까? 데르온 아닙니까? 게다가 자크도 있었군요.”

“루…….”

반가운 마음에 다가서려던 데르온은 걸음을 멈춰 선 채 얼굴을 굳혔다. 루카르엠의 소매 부분이 잘린 채 사라져 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루카…….”

“네? 아아.”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눈치챈 루카르엠이 곤란한 듯이 웃었다.

“이런, 들켰군요. 치료하기 전에 알현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서 그냥 왔더니 여러분께도 흉한 꼴을 보이고 말았네요.”

“어떤 새끼입니까?”

살벌한 음성은 자크의 것이었다. 그가 욕설을 하다니! 혼란스러운 마음을 채 수습하기도 전에 데르온은 재차 충격을 받아야 했다.

데자크 룬은 유체였던 시절부터 그 어느 것에도 평정을 잃지 않고 고상한 말만 쓰기로 유명한 존재였다. 속언 따위로 상대를 깎아내리는 건 하류나 하는 짓이라고 여겨 왔기 때문이다. 비록 빈정거리는 말투로 사람의 속을 뒤집어 놓을지언정, 노골적으로 경박한 단어를 입에 담는 일은 없었다.

믿어지지 않는 마음이 크다 못해 데르온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크는 그의 현실도피를 도와주지 않았다.

“물의 정령왕? 그 새끼가 그렇게 만든 겁니까? 어떻게 생긴 상판대기랍니까? 그 빌어먹을 새끼가……!”

이번엔 도저히 외면할 수도 없을 만큼, 내뱉는 말마다 욕설이 연거푸 이어졌다. 충격에 휩싸인 데르온과는 다르게 루카르엠은 익숙하게 받아 넘겼다.

“뭐, 별거 아닙니다. 조금 장난을 쳤을 뿐이에요.”

“그게 무슨…….”

“슬슬 마계가 그리우니 돌아오긴 해야겠고, 빈손으로 오자니 면목이 없고 해서 말입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임무 실패에 대한 변명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결국 마왕 때문이군요.”

자크의 입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울렸다. 마치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같은 소리였다.

“그렇게 성낼 일은 아닙니다. 임무를 실패한 대가치곤 싸게 먹힌 셈이죠. 별로 아프지도 않고요.”

“그렇지만…….”

“그보다 데르온에겐 미안하게 됐군요.”

“예? 저 말입니까?”

갑자기 자신이 언급되는 것에 데르온은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그의 눈앞으로 긴 두루마리가 불쑥 펼쳐졌다.

“마왕 전하께서 전하라 하신 겁니다.”

“이게 무…… 명령서군요.”

당황하던 데르온은 곧 두루마리에 적힌 내용을 알아보고 얼굴을 굳혔다. 그 안엔 데르온에게 엘퀴네스의 감시를 맡긴다는 명령문이 마왕의 서체로 쓰여 있었다.

“감시만 하는 겁니까?”

“저까지 실패했는데 무모한 명을 내리실 순 없었겠죠. 이대로 곧장 명령을 수행하러 가도 무방하다 하셨습니다. 제가 전해 받은 건 그것뿐입니다.”

“으음, 알겠습니다. 마왕의 명 받들겠습니다.”

수락의 말과 동시에 두루마기는 그 자리에서 빛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데르온은 눈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빛 덩이를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별로 내키지 않나 보군요.”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계약자의 소원을 들어줄 순 있지만 어차피 유희거리일 뿐 아닙니까. 정령왕의 기분을 거스르면서까지 이런 일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해합니다. 전하께선 아무것도 설명해 주시지 않으니까요. 무작정 명을 따르자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겠죠.”

“루카…….”

“하지만 그래도 별수 없습니다. 저흰 마왕 전하의 가신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습니까? 고민 해 봤자 머리만 아픕니다. 그냥 적당히 하세요, 적당히.”

“…….”

그래, 이 사람도 이런 마족이었지. 긴장감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는 대꾸에 데르온의 마음은 더 심란해졌다. 그때 자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어, 루카르엠 님.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실은 이번 번식기의 알들이 전부 파괴되었습니다.”

“아아, 들었습니다. 하필이면 제가 없을 때 그런 일이 생겼더군요. 아니지. 제가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해야 하나요?”

“면목 없습니다. 이번 번식기엔 특히 관심을 두셨던 알도 있었는데…….”

“뭐, 신경 쓰지 마십시오. 태어날 팔자라면 어떻게든 태어나겠지요.”

다음 번식기를 기다리자는 뜻일까. 그러나 매번 번식기 때마다 강한 알이 태어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한 번 강한 알이 태어나고 나면, 다음 번식기 땐 현저하게 부실한 알들만 태어나곤 했다. 결국 자포자기에 가까운 말이라는 걸 아는 공작들은 모두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자크의 얼굴은 노여움으로 일그러졌다.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제가 반드시 이번 일의 진상을……!”

“아뇨.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알은 파괴되었고,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건 변하지 않아요.”

“하지만…….”

“목숨을 아끼세요, 자크. 내가 아끼는 존재를 허무하게 잃고 싶진 않군요.”

“루, 루카르엠 님.”

감동으로 울먹거리는(그 괴리감에 데르온은 경악했다) 자크에게 부드럽게 웃어 보인 뒤, 루카르엠은 데르온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데르온은 늘 그렇듯이 습관적으로 긴장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말에 그대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데르온, 당신도 매우 아끼고 있습니다.”

“예, 예에? 시, 실례지만 이건 무슨 벌칙 같은 겁니까?”

“바로 그런 점이 귀엽다니까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그에게 자크의 살벌한 시선이 와 닿았다. ‘니가 감히…….’라고 외치는 듯한 그 얼굴에 데르온은 울지도 웃지도 못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단 한마디로 풍파를 일으킨 주범이자 이 모든 일의 원인인 루카르엠은 그저 평화롭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난 이만 가 봐야겠군요. 치료도 해야 하니까요.”

“제, 제가 치료를 돕겠습니다!”

“그래주겠어요, 자크?”

“맡겨주십시오!”

“어머나, 친절하기도 하지.”

두 마족은 단란하게 잡담을 나누며 몸을 돌렸다. 이미 그곳에 멀뚱히 서 있는 데르온은 완전히 잊어버린 모습이었다. 걸어가는 두마족의 뒷모습을 얼떨떨하게 바라보던 데르온이 푹 깊은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아참, 그렇지. 데르온.”

“예, 예?”

“뒷일을 잘 부탁합니다.”

이미 상당히 멀어진 거리에서 루카르엠이 불쑥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장난스러운 윙크에 데르온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간신히 끄덕였다. 정신을 차렸을 땐 그는 텅 빈 복도에 혼자 남겨져 있었다. 한바탕 폭풍에 휩싸였다 풀려난 직후 같았다.

‘어쨌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피식 웃음을 흘린 데르온은 살짝 주먹을 움켜쥐었다. 기분이 편하진 않지만 불안감은 사라져 있었다. 루카르엠을 만난 덕분이다.

그의 모습이 평소와 다름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루카르엠이 괜찮다면 마계도 괜찮다. 그건 아주 오래전부터 그의 가슴에 새겨진 신념과도 같은 것이었다.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이 세계는 무사히 이어질 것이다. 데르온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시름 덜었으니 이제 주어진 명에 따라야 할 때였다.

“뒷일을 잘 부탁합니다.”

“…….”

그 순간 떠오른 목소리에 내딛던 발이 저절로 멈췄다. 데르온은 굳은 표정으로 루카르엠이 사라진 쪽의 복도를 바라보았다. 그의 후임으로 발령받은 상황이니 의례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평이한 말이 루카르엠의 입에서 나왔단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야.’

데르온은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을 중얼거리며 긴 한숨을 토했다. 아무래도 이번 중간계 행은 매우 골치 아파질 것 같았다.

* * *

본격적으로 사막으로 진입하면서 경로는 급격하게 험악해졌다. 길 자체도 가팔라 위험했지만, 몬스터의 서식지를 완전히 무시하고 정한 노선이다 보니 아무래도 몬스터와 자주 조우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조금이라도 나무가 우거져 있거나 쉴 만한 환경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몬스터 무리가 주둔해 있었다. 덕분에 최근 들어선 거의 하루걸러 한차례 전투가 벌어지는 수준이었다. 정면으로 몬스터를 마주치는 경우보다 불시의 습격을 받는 일이 더 잦았다.

다행히 근방의 몬스터들은 전부 하급 수준이라 크게 위험할 일은 없었다. 게다가 알리사의 예지력이 습격을 한발 먼저 감지하는 일도 종종 있었기 때문에 대응하기도 비교적 편했다.

일단 전투가 벌어지면 시벨리우스와 이사나가 전면으로 나서서 몬스터를 처리했다. 나도 간간히 돕긴 했지만 말 그대로 거드는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신관이라고 소개한 참이다 보니 알리사 앞에서 본 능력을 보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촤아악!

“키에에엑!”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몬스터가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이번에 나타난 몬스터는 촉수를 길게 뻗은 이상한 형태의 식물이었다. 한동안 경련을 일으키던 줄기가 누런 진액을 토해내곤 늘어지자 들끓었던 공기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전투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방금 것이 마지막이었지? 다치진 않았어?”

“응, 괜찮아.”

다가가서 몸을 살피는 내게 시벨리우스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격렬한 전투를 끝마친 사람답지 않게, 호흡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미안해. 나도 같이 싸워야 하는데 맡기기만 해서.”

“신경 쓰지 마. 이 정도는 별로 힘들지도 않으니까.”

가볍게 토닥이는 손길이 잠시간 내 머리 위에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나는 스쳐 지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이후로도 시벨리우스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이전처럼 평범하게 대화를 나눴고, 즐거운 이야기를 건네며 함께 웃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과 완전히 같지도 않았다.

일단 그는 더 이상 과거의 일을 언급하지 않게 되었다. 똑같이 웃고 있어도 예전에 비해 표정이 밝지도 않았고, 이전만큼 좋은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지도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달라진 건 그의 눈빛이었다. 우리와 같이 있을 땐 조금 덜하지만, 혼자 있을 때 그의 눈엔 언제나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나마 처음엔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더니 최근 들어서는 감추지도 못하게 되었는지 아무렇지 않게 웃다가도 이따금씩 공허한 얼굴을 하곤 했다. 마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그때마다 나는 견딜 수 없이 자책감에 빠졌다. 차라리 제대로 대화를 나눠서 속내를 전부 털어버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시벨리우스가 그날의 일은 언급하는 것조차 꺼려했기 때문에 자리를 마련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가 스스로 마음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나저나 무슨 길이 이렇게 험한 거야?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여행을 처음 하는 사람답지 않게 의연히 잘 버티던 알리사도 몇 달간 이어지는 험한 여정엔 지친 기색을 여실히 드러냈다. 내가 매일 치유를 해 주고 있기 때문에 육체의 피로는 거의 못 느끼는 것 같지만, 정신적인 피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미안해, 알리사. 일정을 당기는 중이라 지름길로 가고 있어서 그래. 방향은 제대로 확인하면서 가고 있으니까 걱정 마. 이 부분만 지나면 다시 마을이 나오기 시작할 거야.”

“최종 목적지가 어딘데?”

“어? 내가 말 안 했나?”

“안 했어. 그냥 여행 중이라고만 했었잖아.”

타박하듯이 투덜거리는 말에 나는 머쓱해져서 웃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알리사에게 제대로 설명해 준 것이 거의 없었다. 나였다면 수상해서라도 한마디 했을 법한데 지금까지 용케 아무 말 없이 따라와 주고 있었구나 싶었다.

“우리 목적지는 바론 사막이야.”

“바론 사막?”

대답과 동시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평온하기 그지없던 알리사의 눈동자가 휘둥그렇게 벌어졌다.

“설마 그 악명 높은 바론 사막? 지금까지 들어가서 무사히 돌아온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그곳 말이야?”

“알고 있구나.”

“당연하지! 이 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걸? 그런 위험한 곳엔 왜 가는 건데?”

“찾아야 할 게 있거든.”

“그런 곳에서 찾을 게 뭐가 있다고…… 설마 던전이라도 탐사하려는 거야?”

누가 예지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할까 봐 비상한 눈치였다. 내가 어색하게 웃자 알리사의 얼굴이 대번에 굳었다.

“혹시나 싶어서 묻는 건데, 미친 건 아니지?”

“그럴 리가.”

“……데려다 주겠다는 세상이 저승이었어?”

이제 알리사의 얼굴은 파리하다 못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사내대장부처럼 씩씩하던 그녀도 바론 사막의 위명은 무서운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의 상상이 더 깊어지기 전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 걱정하지 마. 거기까지 널 데려갈 생각은 없어.”

“어, 그, 그래?”

“네 말대로 굉장히 위험한 곳이잖아. 그 전에 네가 정착할 만한 곳을 알아볼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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