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9화
민망해하는 두 남자와 절규하는 한 남자, 그리고 두 여자의 유치한 애정 과시를 지켜보던 트로웰은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저러고 밤을 새울 생각은 아니겠지?
‘하긴, 추위를 잊는 데는 대화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없지.’
비록 체력 소모라는 심각한 부작용이 따른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트로웰은 굳이 그 사실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누군가를 살뜰히 챙길 만큼 친절한 성격인 것도 아니었다. 최근 들어 단 한 존재에게만큼은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긴 하지만.
‘그러고 보니 엘은 잘 지내고 있을까?’
이런 생각이 엘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무리 불안정해도 결국은 물의 정령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본능이 알아서 그를 움직일 것이다.
그럼에도 역시나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자신조차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다지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아마 엘 본인에게서 전해지는 환하고 경쾌한 느낌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제까지의 정령왕들과는 전혀 다른 타입이긴 하지.’
같은 정령왕을 보면서 동질감을 느낄지언정 애틋한 기분을 느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엘을 보면 늘 가슴이 애틋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바라본다. 그가 주거나 바라는 애정에 대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자신이 어떤 일을 해도 그만은 떠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피가 이어진 형제, 가족이 있다는 게 바로 이런 기분일까? 함께 있는 것만으로 가슴이 든든해진다니,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감정이었다. 자신이 늘 혼자라고 생각했다는 걸 그를 보고서야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렇기에 의무감으로만 돌보았던 이 세상이, 숨 막히기만 했던 정령계의 무게가, 이제는 조금 소중해졌다.
아마 이프리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엘이 찾아올 때마다 심통을 부리면서도 사실은 싫어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표정을 최근에 자연스럽게 짓게 됐다. 보이지 않는 변화가 그들 사이에 조금씩,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미네르바, 너도 이런 기분을 알게 된다면 좋을 텐데.’
휘이잉!
때마침 강한 바람이 트로웰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멍하니 올려다본 하늘 위엔 겁도 없이 정령왕의 머리 위를 지나간 용감무쌍한 진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트로웰은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처연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것과 똑같은 감정을 그는 과거에도 몇 번이나 경험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왠지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미네르바…….”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트로웰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 * *
마계의 가장 어둡고 깊은 곳. 마왕의 성은 그 심층부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또 가장 습하고 어두운 장소에 존재하는 것이 마왕의 집무실이었다. 그야말로 한 치 앞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이었다.
‘아무튼 취향하고는.’
캄캄한 복도를 오로지 감각에만 의지해서 걸으며 데르온은 낮게 읊조렸다. 실제 마계라고 해서 모두 다 이렇게 어두운 것은 아니다. 마계, 특히 마왕성의 분위기는 당시 집권하는 마왕의 취향을 따랐다. 그래서 마계는 어떤 때는 핏빛의 짙은 붉은색으로, 어느 날은 어울리지도 않은 휘황찬란한 핑크빛으로 밝혀질 때도 있었다. 지금의 마왕성이 이처럼 어두운 이유는 이번에 등극한 마왕, 카류드리안이 검은색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길게 이어진 복도의 끝엔 우뚝 선 아치형 대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그 앞에 멈춰 선 채 데르온은 가볍게 숨을 삼켰다. 무엇보다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 이 문 너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숨 막히게 했다.
“전하, 데르온입니다.”
끼이익―
대답 대신 들려온 건 육중한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들어와도 좋다는 허가의 의미다. 데르온은 다시금 한숨을 삼키며 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무실 내부 역시 복도만큼이나 캄캄했다. 그러나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남자의 모습만큼은 분명히 보였다. 그는 거대한 왕좌에 비스듬히 걸터앉은 채, 한 손에 둥그런 술잔을 들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새카만 머리칼에 붉은색의 눈동자, 마족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특성이지만 그것이 더 돋보이게 느껴지는 건 이마에 박힌 검은색 마신의 문장 때문일 것이다.
그가 바로 이번 대의 마왕, 마계의 주인 카류드리안이었다.
그의 품에 기대어 있다시피 앉은 여인을 보고 데르온은 이번에야말로 정말 대놓고 한숨을 내쉴 뻔했다. 그녀는 정령왕의 앞에서 자신을 내버려두고 홀로 도망친 세르피스였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는 눈가가 휘어지도록 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것을 본 데르온의 표정은 더 구겨졌다.
“어서 와라, 데르온.”
마왕의 목소리에 데르온은 굳어진 얼굴을 감추며 부복했다.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마왕이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세르피스에게서 한 가지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지. 내가 지시했던 일이 뜻밖의 거물로부터 방해를 받았다고 말이야.”
“…….”
“네가 얘기해봐라, 데르온. 물의 정령왕 엘퀴네스가 스왈트의 황제를 돕고 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냐?”
“……사실입니다.”
무겁게 내뱉어진 대답이 자책 때문인지, 거부감 때문인지 데르온은 스스로 판단할 수가 없었다. 마왕을 달갑게 여기진 않지만 주어진 임무를 소홀히 했던 적은 없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다.
“세르피스는 간신히 도망을 쳤다고 하던데, 너는 어떻게 온 거지?”
“그가 절 보내주었습니다.”
“흐음, 죽이려 하지 않고 그냥 보냈단 말이냐?”
“예.”
단답형의 대답에 마왕의 눈이 가늘어졌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데르온은 침묵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그의 머릿속은 온통 정령왕 엘퀴네스가 그에게 했었던 질문들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그를 괴롭히고 있는 건 마지막까지 신경이 쓰였던 한 질문이었다.
“아이들을 죽여서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어요?”
“없습니다.”
대공이 마신에게 번제를 드리고 있다는 걸 마왕은 알고 있을까? 마왕은 분명 대공과 모종의 계약을 맺었다. 그러한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인간을 제물로 제사를 지내는 건 고대에서도 흔히 있었던 일이다. 특히 마신이라는 특성상 그런 일은 특이할 것도 없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그런데 왠지 이번만큼은 그 사실이 찜찜하게 느껴졌다.
데르온은 슬쩍 고개를 들어 마왕을 바라보았다. 군더더기 없이 균형이 잘 잡힌 몸, 어린 시절 마신이 사랑할 만큼 찬란했다는 미모는 지금도 여전해서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바로 옆에 있는 여마족 세르피스의 미모마저 무색게 할 만한 미모다.
길고 하얀 손가락은 흑단처럼 새카만 머리칼과 대비되어 더 시리게 보였다. 그 손에 들린 술잔이 조용히 출렁이고 있는 광경조차 한 폭의 그림 같은 존재.
아마도 그를 보는 인간들은 마력에 사로잡히기도 전에 외모에 먼저 넋이 나가버릴 것이다. 그러곤 홀린 것처럼 스스로 그의 앞으로 나아가, 넘겨주는 술잔을 달콤하다 받아 마시게 되리라.
그러나 그 잔에 담긴 것은 술이 아니다. 아무리 주변이 어둡고 캄캄해도 잔에서 풍겨 나오는 짙고 향기로운 냄새만큼은 숨기지 못했다. 그건, 분명히 갓 짜낸 인간의 피였다.
마족들 대부분은 피를 즐기지만 전투 시에 흥분제처럼 쓰는 것일 뿐, 그처럼 직접 섭취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그의 성정이 광포하고 잔인하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마왕이 언제부터 저것을 마시기 시작했지?
그렇게 생각했을 때, 데르온은 마왕의 새빨간 눈과 마주쳤다.
“무슨 생각을 하지, 데르온?”
“……아무것도.”
“그래?”
마왕은 빙긋이 웃으며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묽고 붉은 액체가 그의 입술을 타고 한순간에 목으로 삼켜지는 것을 데르온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
쨍그랑!
산산이 조각난 술잔이 그의 바로 얼굴 옆에서 터져 나갔다. 조각난 유리 파편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표정 없이 가만히 부복한 그에게 마왕의 명령이 이어졌다.
“루카르엠을 불러와라.”
* * *
암흑기사 루카르엠. 마계 4대 공작의 일원이자 제1공작이기도 한 그는 현존하는 모든 마족을 통틀어 가장 나이가 많은 존재였다. 마계의 태초부터 존재하여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을 정도로, 그의 정확한 나이를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오래 사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마족들은 그에 관해 떠도는 소문들을 헛소리로 일축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가 유난히 오래 살았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 이유가 피와 살이 튀는 전투를 즐기는 여타 다른 마족들과는 다르게, 비교적 얌전하고 우아한 전원생활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루카르엠은 기본적으로 행동이나 말씨에 기품이 있으며, 항상 상냥하게 웃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예의가 바른 마족이었다. 그의 입에서 험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들어본 존재가 없을 정도였다. 때문에 일각에선 그가 공작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그 사실 자체에 의문을 품는 자들이 많았다. 아예 마계 공작이 세 명뿐이라고 알고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겉모습만 화려한, 껍데기뿐인 공작. 그것이 마계에 알려진 그의 전반적인 평가였다.
모두 루카르엠의 실체를 모르는 자들의 얘기다.
데르온은 막막한 심정으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마계와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화사하고 오밀조밀한 정원이 한껏 아름답게 꾸려져 있었다.
한 발 간격으로 둥그렇게 배치된 정원수는 모두 모양 좋고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화단을 장식한 식물들마다 흠집 하나 없이 충만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돌보는 이의 세심한 손길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응시하는 데르온의 얼굴은 마왕성 앞에 섰을 때보다 더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하늘 한 번 보고 땅 한 번 보고, 좌우로 주위를 살핀 그는 이내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이면 루카르엠이라니…….”
임무 실패에 따른 처벌은 충분히 예상했다. 세르피스는 분명히 이간질을 했을 것이고,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떠넘겼을 터였다. 정령왕의 정체를 이미 짐작했으면서도 일부러 보고를 미뤘다는 사실 역시 알렸을 가능성이 컸다.
마왕은 광포한 성정만큼이나 관대하지 않은 자였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최소한 몇 년간의 근신, 또는 염옥행까지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왕이 그에게 명한 것은 루카르엠을 불러오라는 것. 그 하나뿐이었다.
데르온은 한 차례 심호흡했다. 목적지가 코앞이었지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염옥에 갇혀 얼마간 고문을 받는 게 더 나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마왕의 명령은 그의 심리를 완벽히 파악한 처벌인 셈이었다.
누구나 찬사해 마지않는 화려한 정원의 모습도 그의 눈엔 참혹한 도살장처럼 보였다. 데르온은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미치겠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루카르엠을 찾으라는 건지…….”
“제가 어쨌다고요, 데르온?”
“……!”
그 순간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형체에 데르온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어느새 그의 앞에 준수한 외모의 청년이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가 가장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던 바로 그 마족이었다.
조금은 부스스한 검은색의 머리칼, 보통의 마족들보다 조금 탁한 눈동자는 붉은색보다는 적동색에 더 가까웠다. 호의로 가득한 눈망울을 빛내며 생글생글 미소 짓는 얼굴이 오늘만큼 무서운 적은 없었다. 데르온은 저도 모르게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루, 루카.”
“후후,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계시는 겁니까? 제가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시다니, 아무래도 수련이 부족하신 것 같군요.”
‘당신이 마음먹고 기척을 감추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합니다!’
항의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기엔 그의 용기가 아주 조금 부족했다.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데르온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조금 피곤했었나 봅니다. 그것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루카.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잘 못 지냈습니다.”
“예?”
“그동안 데르온이 도통 절 보러 와주지 않으셨잖습니까. 정말 너무하시네요. 이 늙은이가 이런 변방에서 홀로 정원을 돌보고 있는데 가련하지도 않던가요?”
“…….”
되지도 않는 억지에 데르온은 경련이 이는 입가를 간신히 비틀었다. 갓 성인이 된 마족만큼이나 혈기왕성한 외모로 늙은이 운운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일단 루카르엠의 저택이 있는 이곳은 결코 변방이라 불릴 수가 없는 장소였다. 마계의 가장 중심부였으니까.
게다가 ‘가련’은 마족이란 종족에게 붙일 만한 단어가 아니다. 심지어 그 대상이 루카르엠이라면 더욱 거리가 먼 얘기였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정원은 외견상으론 여느 인간들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을 것같이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하다. 하지만 그 안에 감춰져 있는 진실을 알게 된 자들은 감히 이 정원에 쉽게 발을 들이밀지 못했다.
정원에 심어진 식물들의 정체는 하나같이 전부 마계에서 악독하기로 유명한 독화들이었다. 심지어 그가 가장 아낀다고 알려진 화단에는 ‘그것’도 있었다. 그 사실을 상기하자마자 데르온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어, 루카. 혹시 아직도 정원에 그 나무가 있습니까?”
“네에? 무슨 나무를 말하는 거죠?”
“그…… 천상목 말입니다.”
“아아, 있어요, 있지요. 우리 마릴다 말이군요?”
“마, 마릴다?”
“제가 붙여준 애칭이에요. 프린세스 마릴다. 툭하면 앙탈을 부리는 게 수줍음 타는 아가씨 같아서 말이죠. 이곳에서는 키우기 까다로운 식물이지만, 그런 만큼 더 키우는 보람이 있어서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에요.”
“그렇군요…….”
천상목은 마족이 마계로 쫓겨나기 전, 그러니까 신계에 거주했을 당시에 천신이 그의 영역에 마족들이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항마로 만든 식물이었다. 천상목의 꽃과 가지는 마족이 가진 마력에 반응하여 지독한 독성을 띤다. 평범한 마족들은 닿기만 해도 피부가 으스러지기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엄청난 식물을 루카르엠은 아무렇지 않게(심지어 괴상한 애칭까지 붙여가며) 그의 정원에 심어 가꾸고 있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들렀을 때, 데르온은 그가 천상목에 올라타 가지치기를 하는 모습을 똑똑히 목격했다. 그의 마력에 반응한 천상목이 꽃과 줄기마다 독을 수액처럼 내뿜어댔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묻어난 것을 마치 꿀이라 되는 양 핥기까지 했다.
설령 마왕이라고 할지라도 천상목의 독을 정제하지 않고 그냥 먹지는 못한다. 데르온 그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혀가 닿는 순간 마비되어 그대로 타들어갈 것이 분명한데, 그런 미친 짓을 누가 시도하려고 하겠는가. 그러나 루카르엠은 전혀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삼켰다. 그때의 상큼하게 웃는 얼굴을 본 자라면 누구도 그를 가련하다고 생각할 수 없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