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죄송한데, 상대를 착각하신 것 같네요.”
나는 나름의 친절을 베풀 겸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계속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야? 아무튼 너, 외모가 너무 많이 변했잖아. 내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엘퀴네스는 분명 남성체였는데, 어째서 지난 몇 십 년 사이에 여성체가 된 거지? 뭐, 딱히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지만.”
“저 여성체 아니거든요? 아니, 이게 아니라…… 으음, 그러니까 다시 말씀드릴게요. 지금 그쪽이 상대를 착각하고 있다는 말이거든요.”
“뭐?”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그나마 부드러웠던 붉은 눈동자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 모습에 저절로 긴장이 되면서도 나는 침착하게 다음 말을 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번에 새로 탄생한 엘퀴네스예요. 최근에 물의 정령왕의 세대교체가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그쪽이 알고 있는 존재는 이미 소멸한 전대의 엘퀴네스라는 거죠.”
“……지금 뭐라고 했지?”
스산한 목소리에 어깨가 움찔 떨렸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인다고 하던가. 타오를 듯 강렬하게 발하는 붉은 눈동자에서 그대로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그러자 내가 당황한 것을 느꼈는지 라피스라즐리의 눈빛이 더욱 위험하게 번뜩거렸다.
“웃기지 마. 누가 그런 유치한 방법에 속을 줄 알고? 이런 식으로 거부해도 소용이 없다고 이미 말했던 것 같은데?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해? 좋아, 그렇다면 또다시 소환해 주지. 내 심장의 마나가 바닥이 날 때까지, 몇 번이든!”
“하아, 믿기 힘들어도 할 수는 없는데요, 그렇게 고집을 피우시면…….”
“너야말로 고집 피우지 마!”
아무래도 그는 내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순순히 인정해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하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죽었다는데 어느 누가 정신이 멀쩡할 수 있을까. 이런 반응은 오히려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 역시 이 지루한 싸움을 계속 이어 가고픈 마음은 없었다. 나는 다시금 단호하게 말했다.
“정말이에요. 이번 재앙이 일어난 것은 명계의 착오로 제가 늦게 태어났기 때문이거든요. 못 믿겠으면 다른 드래곤들에게 물어보세요. 아마 전대의 엘퀴네스와 계약했던 드래곤들이 있겠죠? 그들의 계약은 이미 다 해지되었을 거예요.”
“…….”
“그래도 거짓말 같으면 다른 정령왕들이라도 불러올까요? 그러면 믿으시겠어요?”
조금은 현실을 인지한 것일까. 그제야 그는 무언가에 크게 얻어맞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느릿하게 깜빡이는 눈꺼풀 사이에서 당혹감을 담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짚으며 낮게 신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뭐야. 정말…… 엘퀴네스가 소멸했다고?”
“그렇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그래서 네가 이번에 새로 태어난 물의 정령왕이다?”
“네, 맞아요.”
그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굳어진 얼굴에 담긴 생각을 도통 짐작할 수 없었지만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이제 오해도 풀렸겠다, 더 이상 상대할 필요는 없겠지.
“그럼 전 이만 돌아갈게요. 실은 이미 계약자가 있는 상태인데 소환이 된 거라 당황했거든요. 드래곤은 인간과 규칙이 다르다는 것을 잊고 있었네요. 이만 안녕히 계세요.”
간단한 인사를 마지막으로 나는 발밑에 자리한 소환진을 걷어 내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라피스라즐리가 사나운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디를 간다는 거지?”
“예? 그거야 당연히 일행들에게…….”
그러나 나는 대답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가 듣기 싫다는 듯 중간에서 말을 가로챘기 때문이다.
“아니, 넌 못 가.”
“네?”
“아직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가 본데, 엘퀴네스는 내가 태어나 생전 처음으로 원한 존재였어. 무슨 짓을 해도 손에 들어오지 않아 계속 날 안달하게 만들더니 이제 와서 소멸되었다고? 그래서? 그게 뭐가 어쨌는데?”
“어쨌다니…….”
“바로 조금 전에 네가 네 입으로 말했잖아. 네가 엘퀴네스라고. 전대가 소멸했다면 이번 대의 엘퀴네스와 계약하면 되는 거 아냐? 난 널 소환했어. 계약을 요구할 자격이 충분히 있을 텐데?”
그거야 그랬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일단 정령을 소환한 존재에겐 그와 계약할 자격이 주어졌다. 엘뤼엔의 경우가 워낙 특이했던 거지 본래는 소환되면 대부분 계약을 거절하는 일이 없었다. 나만 해도 이사나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않고 덥석 계약부터 저질렀으니까.
너무도 당연한 요구에 나는 할 말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당연한 건 당연한 거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라 머릿속이 온통 혼란스러웠다.
“저기, 잠깐만요. 당신은 전대의 엘퀴네스를 사랑해서 집착한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나와 계약을?”
“푸핫, 사랑? 내가 그 녀석을? 너 상당히 재밌는 소리를 하네.”
“네?”
“나는 그저 물의 정령왕이 지닌 특유의 기운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야. 그래서 내 것으로 소유하려는 거고. 너희들은 그런 것도 사랑이라고 여기나 보지? 잔말 말고 계약을 이행해.”
뻔뻔하다 못해 오만 정이 다 떨어지는 말투였다. 단지 마음에 들어 소유하려는 것뿐이라니,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게다가 최대한 예의를 갖추려는 내게 처음부터 끝까지 무례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녀석을 한순간이마나 동정하려고 했다니 아무래도 내가 정신이 나갔던 모양이다. 나는 울컥 화가 나 그를 노려보았다.
“정령왕이 무슨 물건인 줄 알아요? 소유는 뭘 소유해! 게다가 전 이미 계약자가 있다고 했잖아요.”
“별로 상관없어.”
“저는 상관있거든요? 지금 계약자 외에 다른 계약자를 만들 생각은 없어요. 특히 그쪽 같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너 역시 예전 엘퀴네스만큼이나 말을 잘 안 듣는군. 경고하는데 날 화나게 만들지 마. 참고 견뎌 주는 것도 지금뿐이니까.”
너라면 그런 말 듣고도 계약해 주고 싶겠냐!
나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말을 삼키며 입술을 악물었다. 이제야 엘뤼엔이 그와의 계약을 거부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렇게 싸가지 없는 놈이니까 당연히 안 하지. 엘뤼엔 성격에 지금까지 살려 둔 것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물론 나 역시 순순히 그의 요구에 응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싫다면요?”
“그러지 않는 게 좋을걸? 앞으로도 평온한 생활을 유지하고 싶다면 말이야. 난 널 어떤 식으로든 방해할 생각이거든.”
“바, 방해를 해요?”
“그래, 방해. 예를 들면…… 지금 너와 계약했다는 그 인간 녀석을 죽이는 방법도 있지. 그럼 아무런 문제가 없잖아?”
“……진짜 재수 없는 성격이네. 드래곤들은 원래 다 너 같아?”
이젠 존댓말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짜증이 나서 쏘아붙이자 그는 피식 코웃음을 쳤다. 내가 어떤 식으로 도발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지상 최고의 종족인데 이 정도는 당연하지.”
“하…… 지상 최고의 종족? 드래곤이? 자화자찬도 수준급이시네. 그럼, 그렇게 대단하신 드래곤 님이 왜 저같이 한낱 미천한 정령왕 따위한테 이런 지대한 관심을 보이시는지?”
“말했잖아. 엘퀴네스 특유의 기운이 마음에 들었다고.”
비꼬는 말에도 전혀 반응이 없다. 정말 만만치 않은 놈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를 갈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난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얼마나 대단한 드래곤인지는 모르겠는데, 너처럼 남의 목숨과 인생을 가볍게 아는 녀석이랑은 절대로 계약할 생각 없어. 내 계약자를 건드리기만 해 봐. 나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꽤나 말이 안 통하는 녀석이군.”
“이하동문이야.”
끝까지 지지 않고 맞받아쳐 주자,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그림 같은 미소를 띠웠다. 그것을 보자 나는 상황도 잊은 채 잠시간 멍해졌다.
이 세계에 온 이후부터 지나치게 눈을 호강시킨다고 생각했는데, 이 라피스라즐리라는 드래곤은 그동안 보아 온 존재들과 차원이 달랐다. 너무 아름답게 생겨서 더러운 성격 정도는 아무런 흠이 되지 않을 정도라고 할까. 그러니 저렇게 제멋대로에 자신만만한 성격으로 자란 거겠지만 말이다.
‘아차, 이게 아니지. 난 왜 이런 상황에서 적의 얼굴 따위를 품평하고 있는 거야? 이게 다 한국의 쓸데없는 외모지상주의 때문이야!’
더 이상 이런 곳에서 시간을 허비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슬쩍 발밑의 소환진을 바라보았다. 이것만 없애면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는 건 간단하다. 후환이 걱정되긴 했지만, 일단은 이 자리에서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내가 어째서 한동안 엘퀴네스를 소환하지 않았는지 알려 줄까?”
“……뭐?”
“반복되는 소환에도 전혀 요지부동이던 그 오만한 물의 정령왕을 나는 힘으로라도 가지고 싶었지. 타협이 안 되면 강제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어? 그래서 미친 듯이 마법 연구에 몰두했어. 엘퀴네스란 이름의 아름다운 새를 철장 안에 가두는 방법을 말이야.”
“무…… 슨?”
“이를 테면 이런 거야.”
그는 여유롭게 웃으며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바로 펼쳐 든 손바닥 위에서 강력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대는 내가 원하는 구역 안에서, 철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새가 되리라. 포박!”
“뭐? 자, 잠깐!”
불길한 기분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 순간 터져 나오는 눈부신 빛에 나는 무심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떴을 땐 황당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불과 1미터도 채 되지 않는 반경으로, 내 주위에 투명한 빛의 장막이 둘러져 있었던 것이다.
“뭐야, 이건…….”
무심코 손을 내밀어 보자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 부분만이 아니라 사방이 전부 그랬다. 공기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위아래도 막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마치 유리컵 안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너머 아래 소환진이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주위를 감싼 이상한 막 때문일까. 없애려는 의지에도 불구하고 소환진은 아무런 변동이 없었다. 문제는 소환진이 사라지지 않는 한 라피스라즐리의 마나가 계속 나를 이 장소에 잡아 두고 있을 거란 점이다. 이대로는 육체를 지닌 채 다시 돌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당황한 내게 라피스라즐리가 느긋하게 말했다.
“내가 널 위해 만든 새장이지. 감상이 어때?”
“지금 이게 뭐하는 거야? 당장 이거 치워!”
“불가능한 요구를 하네. 그래 봬도 마법 틀을 설계하는 데만 15년이 넘게 걸린 거야. 그렇게 간단히 풀어 줄 것 같아? 계약을 하겠다고 말하면 치워 주지.”
“너 사이코지! 계약 안 한다고! 안 한다는데 왜 이렇게 귀찮게 구는 거야?”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어. 계약하기 전까진 절대 풀어 줄 생각이 없으니까 말이야.”
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에 엘뤼엔이 이 녀석을 없애 준다고 했을 때 말리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을걸.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아닌 밤중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이상한 놈에게 걸려도 단단히 잘못 걸린 것 같다. 때늦은 후회로 탄식했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건 없었다. 속이 부글거리는 나와는 다르게 라피스라즐리는 몹시 즐거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젠 아무리 화사하게 웃어도 그 모습에 넋이 나가진 않았다. 보기 좋은 떡도 맛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는 법. 지금의 내 눈엔 녀석은 그저 한 마리의 재수 없는 도마뱀일 뿐이었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너,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아?”
“흐음, 이번 엘퀴네스는 여성체라 그런가…… 성격이 꽤나 순한 편이군. 화내는 얼굴도 제법 귀여워.”
“누, 누가 여성체라는 거야!”
“뭐? 아아, 그러고 보니 아까 전에도 그렇게 말했었지. 이상한 녀석이네. 너 설마 그 얼굴로 남성체라고 주장하는 거냐?”
미운 놈은 무슨 짓을 해도 밉다더니, 이 자식은 어째 하는 짓마다 나를 열 받게 하는 말만 골라서 하는 거지? 나는 대답 대신 그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내 딴에는 정말 심각한 욕이랍시고 해 준 거였는데, 그것을 보고서도 의아한 표정만 짓는 것이…… 제길! 여기선 아직 이 욕이 발명(?)되지 않은 거냐아!
“그건 그렇다는 뜻? 아니면 아니라는 뜻?”
“젠장! 닥치고 꺼지라는 뜻이다, 멍청아!”
“흐음, 내 생각이 맞나 보네. 정령이 이렇게까지 남성체로서 인식이 확고할 수도 있나? 어차피 무성이면서 뭐가 그렇게 기분이 나쁜 거지?”
“그래! 나 무성이다! 무성이면 내가 남자라고 말도 못 해? 그런 말도 하면 안 되냐고!”
“그렇게 말하진 않았어. 어째 너는 내가 말하는 건 전부 못마땅한 모양이군.”
알았으면 말시키지 마!
나는 눈으로 그렇게 쏘아붙이곤 기운을 끌어 올려 주변을 가로막고 있는 빛의 막을 강하게 타격했다. 혹시나 강한 충격을 받으면 깨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어차피 지금 나를 감싸고 있는 것도 이사나의 마나가 아니다. 이렇게 된 이상 마구잡이로 힘을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무리 내리쳐도 빛의 막은 조금도 꿈쩍하지 않았다. 대신 들려오는 건 예의 재수 없는 녀석의 웃음소리뿐이었다.
“그러게 소용없다니까.”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말했잖아. 마법의 틀을 설계하는 데만 15년이 넘게 걸렸다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드래곤 일족 중에서도 마법 분야에선 나를 따라올 자가 없어. 그런 내가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완성했단 말이지. 아무리 정령왕이라도 그렇게 쉽게 깨부술 순 없을걸? 심지어 넌 이곳에선 본신의 힘을 다 끌어내지도 못하잖아.”
“…….”
사실이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중간계에서 내가 쓸 수 있는 힘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물며 지금처럼 어설프게 소환된 상태라면 더더욱.
별수 없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썩 내키진 않지만 지금으로선 자연체로 돌아가 트로웰을 찾아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라면 이 괘씸한 드래곤을 물리칠 방안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문득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내가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된 거지?’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만은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트로웰은 내게 일어난 변고를 충분히 눈치채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라면 지금쯤 모든 땅의 정령들을 동원하여 날 찾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고?
나는 황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달빛만이 고요히 스며드는 숲, 사람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수림은 그 끝을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바람 한 점 일지 않는 공간은 숨소리마저 선명히 들려올 만큼 고요했다. 이 거대한 숲 안에 존재하는 것은 단 두 사람, 나와 라피스라즐리밖에 없었다. 오직 단 두 사람만 말이다. 그제야 나는 나를 감싸고 있는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하급 정령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