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나는 그의 몸에 모포를 단단히 덮어 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모닥불 쪽을 향해 걸어갔다. 오늘 불침번을 서는 건 칵테일 용병단이었다. 마침 당번이었는지 대여섯으로 이루어진 인원 속에 낯익은 얼굴도 발견할 수 있었다. 단장인 빌트와 코웰이었다. 그들 역시 다가오는 나를 알아보고 반겼다.
“여어, 후드 형제 중 한 명.”
‘후드 형제?’
가장 먼저 말을 걸어온 건 삐딱한 자세로 앉아 있던 코웰이었다. 그가 내뱉은 이상한 호칭에 머뭇거리는 내게 빌트가 싱긋 웃으며 말을 건넸다.
“샴페인 용병단에서 심부름꾼으로 있는 아이구나. 잠이 안 오는 거냐?”
“네. 수고가 많으시네요. 저도 옆에 앉아도 될까요?”
“물론이지. 편한 곳에 앉아.”
선뜻 나온 허가의 말에 나는 감사 인사를 한 뒤 적당히 빈자리에 끼어들었다. 그사이 빌트는 모닥불에 장작을 더 집어넣었다. 타닥타닥, 마른 잔가지가 순식간에 붉은 불씨를 뿜으며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때 다시금 코웰이 나를 향해 물었다.
“형이냐, 동생이냐?”
“네?”
“너희 형제 중에서 어느 쪽이냐고. 둘 다 그 거추장스러운 천 조각을 푹 눌러쓰고 다니니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가 있어야지.”
“아, 죄송해요. 형 쪽이에요. 엘이라고 합니다.”
“흐응― 누군지 알겠다. 그 매튜라는 녀석과 친한 게 너였던가?”
대수롭지 않게 물어보는 말에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대답을 하는 것보다 다른 용병들이 반응을 보인 것이 더 빨랐다.
“야, 인마, 코웰! 매튜 님이라고 불러!”
“감히 누구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거야?”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험악한 구박들이 그를 향해 퍼부어졌다. 그러자 코웰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꺼져. 누가 그런 꼬맹이한테.”
“이 자식이? 너 지금 말 다 했냐?”
“매튜 님이 비록 너보다 나이는 어리셔도 너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강한 분이거든?”
‘아니, 사실은 나이도 더 많은데.’
나는 차마 밝힐 수 없는 사실을 속으로 삼키며 슬그머니 눈치를 살폈다. 그보다 이 지나치게 과잉된 반응은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다른 용병들과는 평소 교류가 많지 않았던 탓에 좀처럼 돌아가는 분위기를 읽기가 힘들었다. 그것을 눈치챘는지 빌트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녀석들은 신경 쓰지 마라. 실은 이번 의뢰 기간 동안 이놈들이 전부 샴페인 용병단의 열렬한 추종자가 됐거든. 정작 본인들에겐 무서워서 말도 못 거는 주제에 말이야.”
“그, 그렇군요.”
“뭐, 그 심정은 이해해. 전투 때 그들의 움직임을 보면 감히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지. 하나의 예술 작품에 가깝다고 할까. 사람들이 그들을 용병의 귀감으로 삼는 것도 당연해. 실은 나도 용병이 되려고 마음먹은 계기가 휴센 씨 때문이었지.”
“헤에, 빌트 단장님이요?”
“그래, 그땐 휴센 씨가 샴페인 용병단을 창설하기도 전이었어. 나보다 어린 사람이 고고하게 혼자서 의뢰를 완수하는 모습이 얼마나 멋지게 보이던지. 완전히 반해서는 그 자리에서 잘나가던 사냥꾼 일을 때려치우고 이 바닥에 들어왔다는 거 아니냐. 하하, 이거 참 쑥스럽군.”
빌트는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다 큰 어른이 수줍은 소년처럼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래서 그동안 너희 형제에 대해서도 굉장히 궁금했어.”
“에? 저희요?”
“몰랐어? 너희 여기서 꽤 주목받고 있는데.”
“네? 왜, 왜요?”
뜻밖의 말에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샴페인 용병단이야 워낙 활약이 큰 사람들이니 당연하지만, 나와 이사나의 경우엔 딱히 관심을 살 만한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의문은 곧 이어진 빌트의 대답을 통해 간단히 해결됐다.
“왜긴, 샴페인 용병단은 심부름꾼을 쓰지 않기로 유명하거든. 그런데 이번 의뢰에 너희들을 데리고 왔으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아…….”
그러고 보니 처음 합류 때 그 비스무리한 말을 듣긴 했던 것 같다. 그 당시엔 반 강제로 끌고 가는 휴센의 행동에 당황해서 별로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오히려 귀찮았는데), 그게 정말로 단순한 사건은 아니긴 했던 모양이다.
“갑자기 심부름꾼이라고 들어왔질 않나, 더구나 둘 다 후드를 푹 눌러쓰고 다니면서 사람들이랑 교류도 잘 안 하잖아. 그래서 처음에 너희들 수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다고. 샴페인 용병단원들이 무서워서 접근하는 놈들은 없었지만 말이야.”
“그, 그랬군요.”
“그걸 몰랐다니, 너도 참 어지간히 둔하구나. 덕분에 너희들 여기서 불리는 별명도 있어. 일명 후드 형제라고.”
“……쿨럭!”
아까 전에 코웰이 말했던 그게 별명이었구나.
설마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그런 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워낙 이동하는 무리가 많고, 단끼리의 교류가 잦지 않은 탓에 우리가 눈에 띌 거란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게 얼마나 안이한 판단이었는지 자각하니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런 김에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너희도 샴페인 용병단의 정식 소속인 거냐?”
“아, 아뇨. 클모어까지 가는 길에만 한시적인 동행이에요. 길이 워낙 위험해서 잠시 신세를 지고 있어요.”
“뭐야, 역시 그렇군.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보통, 심부름꾼들은 용병 지망생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너흰 도무지 그렇겐 안 보였거든. 노숙에도 익숙지 않은 것 같았고, 행동 하나하나가 딱 곱게 자란 샌님들 티가 나더라고.”
“아하하, 그, 그런가요.”
“아,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대체로 용병들은 험하게 구르다 온 녀석들이 많은데,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는 것뿐이니까. 아무튼 한시적 동행이라도 샴페인 용병단과 함께하다니, 너희들 꽤 운이 좋네. 그 사람들이랑 같이 다니면 적어도 목숨 잃을 걱정은 없지. 그래도 맞추기 까다로운 사람들일 텐데, 같이 지내기 힘들진 않아?”
“아니에요. 다들 친절하셔서 수월하게 지내고 있어요.”
그 순간 내가 내뱉은 한마디가 차분하던 그들 사이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들은 저마다 당황한 표정으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헤에, 친절하다고? 상상이 잘 안 가는군. 싸울 때만 보면 완전 괴물들이던데 말이지.”
“맞아요, 단장. 특히 이릴 누님이 채찍을 휘두르는 모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죠. 그 얇은 가죽으로 몬스터들을 가볍게 채 써는 거 보셨어요?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라니까요.”
“헤롤 형님의 도술은 어떻고? 난 그렇게 무거운 도끼를 한 손으로 휘두르는 사람은 처음 봤어.”
“마이티 형님의 암기 다루는 솜씨야말로 귀신같지. 몬스터가 갑자기 쓰러져서 가 보면 언제 박혔는지도 모르게 표창이 날아와 있더라고. 장담하건대 어지간한 암살자들도 마이티 형님처럼 날쌔진 못할 거다.”
“휴센 님은 마스터 기사와 싸워서 이긴 전적도 있잖아. 그분에게 직접 사사한 쉐리 양도 어지간한 기사들은 다 발라 버릴 실력이라던데.”
누가 팬클럽 아니랄까 봐, 한마디씩 이어지는 말들이 전부 절절한 찬사뿐이다. 낯간지러웠지만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듣는 그들의 평가도 신선해서 나는 잠자코 대화를 경청했다. 한참동안 이어진 찬양 속엔 트로웰에 대한 화제도 빠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건 매튜 님이지. 그 가느다란 체구로 거대한 몬스터를 한 방에 날려 버리다니. 볼 때마다 항상 감탄하게 된다니까.”
“아무렴. 심지어 외모마저 범상치 않으시지. 사내라는 걸 알면서도 가슴이 다 설렐 정도이니 말이야. 듣자 하니 귀족 영애들한테서 연서가 끊이질 않는다던데.”
“당연하지. 귀족들 중에서도 그렇게 아름답게 생긴 사람은 흔치 않을걸? 더구나 아직 나이도 어리시니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하고 말이야.”
“흠, 그러고 보니 매튜 님이 내년에 금패를 받는다는 소문이 있던데.”
“뭐? 그게 정말이냐?”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용병들은 모두 경악했다. 심지어 내내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던 코웰조차 두 눈을 부릅뜬 것이 보였다.
“그 꼬마가 그렇게 엄청나다고?”
“야, 인마, 매튜 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지?”
“그건 됐고. 아무튼 진짜 금패를 받는 거래? 그냥 추측으로 떠도는 말이 아니고?”
“흐흐, 날 뭐로 보는 거냐? 아마 거의 확실할 거다. 다른 곳도 아니고 길드 본부에서 도는 소문이니까 말이지. 이미 마지막 심사 과정만 남았고, 거의 확정 단계라고 하더라고.”
“허어,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굉장하군. 매튜 님은 아직 십 대 중반이잖아. 이전에도 십 대에 금패를 받은 용병이 있었나?”
“아니, 없지. 휴센 님이 스물다섯에 받은 게 최연소라고 들었어.”
“히야― 그럼 이번에 매튜 님이 받으시면 역대 최연소 금패 용병을 갱신하는 건가?”
“결심했다. 난 평생 그분을 따를란다. 아무도 날 말리지 마.”
“미친놈. 그분이 받아 주시기나 한대?”
그들은 한껏 달아오른 얼굴로 서로 야유를 퍼부었다. 그렇지 않아도 후끈하던 공기가 트로웰의 금패 이야기로 더 뜨거워진 것 같았다.
‘그게 정말 대단한 거였구나.’
샴페인 용병단에게 들었을 때는 그저 대견하다는 느낌이 더 강했기 때문에 이렇게 파급력이 큰 일이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 했다. 새삼 이렇게 보니 그들의 경지가 일반인보다 높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트로웰의 입장에선 그다지 큰 차이가 없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지금도 그가 힘을 억제하고 있는 거라는 걸 알게 되면 다들 무슨 표정을 지을까? 사람들의 경악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때 돌연 누군가 내게 질문을 건네 왔다.
“그런데 꼬마, 아니, 엘이라고 했던가? 넌 매튜 님과 어떻게 아는 사이냐? 보아하니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 같던데.”
“네? 어떻게 아셨어요?”
“그야 매튜 님이 너한테만 유독 표정이 부드러우시니까 그렇지. 심지어 동료들에게조차 그렇게 웃어 주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말야.”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다른 사람들도 한마디씩 그의 말을 거들기 시작했다.
“맞아, 나도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어. 웃을 줄도 아는 분이라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니까.”
“나도 마찬가지야. 사실 이번 의뢰 전에도 용병 길드에서 그분의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거든. 그때마다 타인에게 지독하게 무관심하다는 느낌이었어. 도저히 훔쳐볼 엄두도 안 나더라고.”
“자, 그러니까 순순히 불어라, 꼬마! 대체 매튜 님과 어떤 사이기에 그분의 미소를 받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는 거냐?”
쏟아지는 눈길들은 하나같이 매우 집요했다. 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산 채로 모닥불에 굽기라도 할 기세였다.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끼며 어색하게 대답했다.
“아하하, 그냥 고향 친구예요. 실은 이번 행렬에 들어온 것도 매튜가 도와준 덕분이었어요.”
“뭐? 그렇담 죽마고우란 말이냐?!”
“음, 아무래도 그렇겠죠……?”
소심한 대답에 이어진 반응은 격렬했다. 그들은 두 팔로 머리를 감싸며 탄식을 내뱉기 시작했다.
“으아, 진짜 부럽다! 그 매튜 님과 고향 동기라니!”
“넌 세상에서 가장 엄청난 행운아구나!”
“치사해! 나도 매튜 님과 고향 동기이고 싶어!”
“젠장, 창피하니까 다들 그만 좀 해.”
그때 더 이상 들어줄 수 없다는 듯 코웰이 붉어진 얼굴로 쏘아붙였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정신없는 분위기가 쉽게 가라앉을 리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단장 빌트를 포함하여) 뭐가 문제냐는 듯이 눈을 부라렸다.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담합이 잘되는 사람들이었다. 코웰은 질렸다는 듯이 혀를 차곤 나를 향해 말했다.
“저 멍청이들은 무시해 버려. 죄다 나이를 헛먹은 사람들이니까.”
“아하하…….”
“그런데 너희 형제는 왜 항상 후드를 쓰고 다니는 거냐?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거야?”
“네? 아, 아뇨. 그냥요.”
“그냥 후드를 쓰고 다닌다고? 불편하지 않아?”
“적응돼서 딱히 잘 모르겠어요. 게다가 일행들도 쓰는 편이 좋겠다고 하고요.”
“일행이라면 샴페인 용병단원들 말이지? 그 사람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으음, 제 외모가 정신 건강에 별로 좋지 않다는 것 같더라고요.”
나는 당시의 일을 생각하며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상대의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다. 코웰은 물론, 칵테일 용병단원들이 모두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신 건강에 나쁘다고? 대체 어떻게 생겼기에 그런 말을 다 들어? 후드 좀 벗어 봐. 얼굴 한번 보자.”
“네? 아, 그치만…….”
“괜찮아. 절대 놀리지 않을게.”
“그래, 우리 사람 외모 갖고 뭐라 하는 나쁜 사람들 아니다.”
단장 빌트가 엄숙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거들었다. 물론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았다. 사람들의 반짝거리는 눈동자에서 장난기가 번뜩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곧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사나의 편의를 위해 같이 쓰고 다니던 것뿐, 내 경우에는 굳이 얼굴을 숨길 필요는 없었으니까. 괜히 감추려고 하다가 이사나한테까지 불똥이 튀면 곤란하다. 샴페인 용병단원들 때처럼 이번에도 어느 정도 호기심만 충족시켜 주면 될 터였다.
‘게다가 설마 또 여자로 오해받지는 않을 테고 말이지.’
후드를 벗자 한층 트인 시야가 나를 반겼다. 그래 봤자 어둠으로 뒤덮인 주변은 여전히 캄캄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왠지 기분만은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후드 안에서 흘러나오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이상하리만치 주변이 고요해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금 전까지 두런거리던 수다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당황해서 돌아보니 칵테일 용병단원들이 모두 무섭게 굳어진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의아해져서 마주 보자 코웰이 찌푸린 얼굴로 옅게 신음을 내뱉었다. 힐끔힐끔 응시하는 눈빛에 서린 것은 명백한 낭패감이었다. 왠지 불길한 기분이 드는데 내 착각만은 아니겠지?
“너…… 여자애였냐?”
‘젠장, 또 이거냐!’
오해를 하지 않기는 개뿔! 나는 참담하게 일그러지려는 얼굴을 간신히 참았다. 억지로 웃으려니 입가에 경련이 일 것 같았다.
“아닌데요.”
“말도 안 돼. 남자 주제에 그렇게 생겼다고? 거짓말이지?”
“……남자 주제에 이렇게 생겨서 죄송하네요.”
“허어, 진짜 남자라고? 너 지금 장난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장난이 아니라…….”
“야, 코웰. 그만해. 곤란해하잖아.”
그때 빌트가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만류했다. 그러나 고마운 기분은 아주 잠시에 지나지 않았다.
“이 눈치 없는 놈아, 딱 봐도 여자애인 거 안 보여? 보아하니 사정이 있어서 피치 못하게 숨기고 있는 모양인데,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으면 어떡하냐?”
“…….”
제기랄! 난 정말 이 얼굴이 싫어!
대체 날 이렇게 만든 신은 신계의 어느 구석에 박혀 있단 말인가. 만나기만 하면 멱살을 붙잡고 짤짤 흔들어 주고 싶었다.
‘이봐, 신님! 내가 많은 걸 바랐어? 난 그저 강지훈이었던 시절보단 조금, 아주 조―금 잘생겨지고 싶었을 뿐이라고! 아, 그래. 솔직히 말할게. 실은 무지무지 잘생겨져서 여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싶었어.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보는 사람마다 여자로 오해하게 만들면 어쩌자는 거야! 앙? 내 얼굴 다시 내놔! 돌려내란 말이다!’
정말 이렇게 소리쳐 주지 못하는 것이 천추의 한이다.
강지훈일 시절에는 그렇게나 부러워하던 곱상한 얼굴을 싫어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정말이지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