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왕 엘퀴네스-48화 (48/608)

제48화

“트, 트로……?”

“쉿, 매튜라고 불러야지.”

내가 무심코 이름을 부르려 하자 그는 곧장 내 말을 가로막으며 속삭였다.

“……매튜?”

“내 유희 중의 이름이야. 익숙하진 않겠지만 그렇게 불러 줘. 네가 누군가에게 소환되었다는 건 알았는데 설마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그동안 잘 지냈어?”

나는 여전히 얼떨떨한 상태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 몰랐던 건 나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용병이라니. 평소 그의 이미지와는 전혀 안 어울리는 직업이라 더 의외였다.

그동안 이사나는 내 옆에서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마 나와 트로웰 사이에 흐르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고 어느 정도 그의 정체를 짐작한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와는 조금 다른 의미였지만, 이 뜻밖의 재회엔 휴센의 일행들도 경악한 기색이었다.

“뭐야? 정말로 둘이 아는 사이였어?”

“맙소사. 나 매튜가 저렇게 웃는 거 처음 봐.”

“나, 나도.”

“대체 어떻게 아는 사이야?”

불쑥 건네진 질문에 머뭇거리는 나와 달리 트로웰은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했다.

“고향 친구예요. 오래전에 소식이 끊겼는데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되네요.”

“헤에, 고향 친구?”

“호오, 드디어 베일에 가려진 매튜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나타난 건가.”

탐색하듯 훑어보는 시선에 나는 움찔 어깨를 움츠렸다. 그저 눈길을 받는 것만으로 포위된 채 추궁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러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은 트로웰이 성큼 내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엘은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너무 귀찮게 하지 마세요.”

나긋한 음성이었지만 그 안에 실린 경고는 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면서도 순순히 물러섰다.

“이봐, 엘이라고 했지? 옆의 녀석이랑은 무슨 관계야?”

질문한 사람은 일행 중 가장 덩치가 큰 헤롤이라는 남자였다. 트로웰의 지인임이 밝혀진 후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전보다 한층 호의적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트로웰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제 동생인데요…….”

“호오, 동생? 형제 둘이서 여행 다니는 건가? 단장이 심부름꾼으로 데리고 온 걸 보면 우리랑 가는 방향이 같은 것 같은데…… 혹시 목적지가 클모어야? 아니면 그 근방이라든가.”

“네, 맞아요.”

“아하, 역시. 그럼 잘됐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우리랑 같이 가지 않겠어?”

“네? 아, 저희는…….”

“그래, 엘. 그렇게 해.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헤어지는 것도 아쉽잖아.”

대답하려는 순간 이어진 트로웰의 목소리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의 권유는 선뜻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의견을 묻기 위해 옆으로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알아서 하라는 듯 이사나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알았어. 그렇게 할게.”

“정말이지? 잘 생각했어, 엘.”

트로웰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내 손을 꼭 붙잡았다.

“그럼 여기서 잠시만 기다릴래? 우리를 고용한 의뢰주에게 일행이 늘어났다고 알려야 하거든. 단장, 제가 가서 말하고 올게요.”

“아, 그래.”

휴센이 고개를 끄덕이자 트로웰은 날듯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일행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얼떨떨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허어, 내 눈이 이상해졌나? 매튜가 왠지 제 나이로 보이는데.”

“너만 그런 게 아니니 안심해라. 내일은 아무래도 해가 서쪽에서 뜨려는 모양이다.”

“저렇게 좋아하다니 신기하네. 정말 엄청 친했던 사이였나 봐?”

“아하하…….”

다시금 쏟아지는 시선들에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마치 포식자 앞에 선 토끼가 된 심정이었다.

그때 휴센이 짧게 헛기침을 내뱉으며 모두를 돌아보았다.

“흠흠, 아무튼 같이 가는 걸로 결정됐으니 나머지 이야기는 들어가서 하지. 음? 그런데 이릴, 네 파트너는 왜 보이지 않는 거냐. 분명 빠짐없이 나오라고 했을 텐데?”

아마 지금 보이지 않는 나머지 여성 멤버를 말하는 듯했다. 질문을 받은 이릴은 자신의 보라색 머리칼을 손가락에 말아 쥐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쉐리 말이야? 지금 자리에 없어. 아침 일찍 나갔거든.”

“뭐? 어디를?”

“글쎄. 근처에 이글 용병단이 와 있다니 아마 거기에 갔겠지.”

“이글 용병단?”

“몰랐어? 거기 단원이랑 사귀는 사이인 것 같던데.”

그녀의 말에 가장 크게 반응한 건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이름이 마이티였던 것 같다)였다. 그는 혼비백산한 얼굴로 소리쳤다.

“뭐? 쉐리가 이글 용병단원이랑 사귄다고? 어, 언제부터? 누구랑?”

“그거야 나도 모르지. 요 며칠 뻔질나게 같이 외출하는 것 같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짐작해 본 것뿐이야.”

“아놔, 미치겠네! 그걸 왜 이제 말해? 젠장, 이번엔 또 어떤 한심한 자식이야? 지난번 놈팡이하고 떼어 놓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하지만 분개한 것은 그 혼자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이미 이런 상황에 이골이 난 것 같기도 했다. 좌절에 빠진 마이티를 향해 헤롤은 한심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쯧쯧, 그만큼 했으면 이제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냐, 마이티? 아무리 그래 봤자 소용없어. 쉐리가 얼마나 눈이 높은데. 너 같은 녀석에게 시선이나 줄 것 같냐?”

“뭐야, 인마? 내가 어디가 어때서? 이래 봬도 전도유망한 용병이거든?”

“그래 봤자 쉐리랑 같은 등급이잖아. 남자라면 제 여자보단 좀 더 강해야 하지 않겠냐? 그래야 위험한 순간이 와도 자신 있게 지켜 준단 말을 할 수 있지. 특히나 넌 키도 작으니까.”

“누, 누가 작다는 거냐, 이 자식! 나 정도면 제국인 중에선 평균이라고!”

“내 어깨밖에 안 닿는 주제에.”

“그건 네가 너무 큰 거지! 솔직히 네가 ‘오거’지 인간이냐? 너처럼 우락부락하게 클 바엔 차라리 내가 훨씬 낫겠다. 이 뇌 속까지 온통 근육으로 들어찬 자식아!”

“뭐야? 이 자식이!”

“둘 다 그만해.”

분위기가 험악해지려는 찰나, 낮은 목소리가 끼어들어 싸움을 중지시켰다. 단장인 휴센이었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은 두 사람은 주춤거리며 서로 내뻗으려던 주먹을 거뒀다.

“네놈들은 몇 년째 변하는 게 하나도 없군. 이제 그만 유치한 싸움질은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냐?”

“단장! 그보다 쉐리 좀 어떻게 해 봐! 대체 언제까지 저렇게 사내놈들이랑 무분별하게 어울리는 걸 그냥 두고 볼 거야?”

“쉐리도 이젠 마냥 어린애가 아니야. 자기 행동은 알아서 결정하고 책임질 나이다. 특히나 연애 문제에 대해서 참견하는 건 더 말이 되지 않지.”

“그래도 여자애잖아.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애초에 지금 쉐리가 저러는 것도 전부……!”

찌푸린 얼굴로 소리치던 마이티는 휴센이 말없이 응시하자 입술을 악물었다. 분이 차오른 얼굴이었지만 우리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억누르는 것 같았다.

“아, 아무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으니 뭐라고 좀 해. 단장이 자기 단원을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겨?”

“……그래, 알았다. 이릴, 쉐리가 돌아오면 내가 잠깐 보자고 한다고 전해 줘.”

“알았어.”

결국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는 그의 말에 이릴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별것 아닌 평범한 대화에 이상할 정도로 분위기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무언가 감춰진 속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 * *

샴페인 용병단이 클모어로 출발하는 건 모레 이른 아침이었다. 그때까지 머물 곳이 필요했기 때문에 나와 이사나는 그들이 머물던 여관에 새로 방을 얻었다.

“자, 이거 받아.”

짐을 풀자마자 트로웰이 대뜸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가죽끈이 달린 손바닥만 한 크기의 동그란 나무패였다. 패의 겉면엔 검과 도끼가 교차한 투박한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이게 뭐야, 트로웰?”

방 안엔 이사나와 나, 그리고 트로웰 셋만 존재했다. 서로 마음껏 해후를 즐기란 의미에서 자리를 비켜 준 것이다. 딱히 주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상태였기에 나는 거리낌 없이 그의 본명을 불렀다.

그러자 이사나가 초조한 기색으로 나와 그의 모습을 번갈아 살피는 것이 느껴졌다. 오랜 가뭄 끝에 정령들의 존재도 전부 전설처럼 묻혔다고 들었다. 이름을 들었어도 아직 그의 정체를 정확히 깨달은 것 같진 않았다. 트로웰은 그의 시선을 전혀 개의치 않고 설명했다.

“임시 용병단원을 상징하는 나무패야. 너희의 신원을 샴페인 용병단에서 책임진다는 뜻으로 일종의 신분증 같은 거지. 검문소에서 필요할 거야.”

“에? 검문소?”

“역시 몰랐구나. 클모어까지 가는 길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주요 검문소만 세 개가 넘어. 신분증이 없는 사람들은 일반 길목으론 절대 통과할 수 없지.”

“헉, 그렇구나.”

그런 게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이사나 역시 몰랐던 일인 듯 신기한 얼굴로 나무패를 살피고 있었다. 하긴 황제인 그가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다 알 리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신분을 감추고 여행을 할 일도, 검문을 받을 일도 없었을 테니까.

하마터면 크게 곤욕을 치를 뻔했다. 혹시 이것 때문에 같이 가자고 했던 걸까? 내가 슬쩍 바라보자 트로웰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도 있지만, 엘 너는 유희가 처음이니까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더불어 인간 최초로 엘퀴네스를 소환한 네 계약자를 만나 보고 싶기도 했고.”

대답과 함께 트로웰은 흥미로운 시선으로 내 옆에 있는 이사나를 응시했다. 눈에 띄게 경직한 이사나는 이어진 그의 말에 흠칫 어깨를 움츠렸다.

“만나서 반가워. 짐작했겠지만 난 엘과 더불어 이 땅의 대지를 다스리는 정령왕 트로웰이야.”

“아……! 뵈,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이사나 란느 스왈트. 이 제국의 황제 폐하라는 거 말인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어, 어떻게 그걸……?”

당황한 이사나를 향해 나는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트로웰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거든. 너무 놀라지 마, 이사나.”

“아? ……아아, 그,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굳어진 얼굴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가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사실에 더 놀란 것 같았다. 트로웰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쿡쿡, 땅의 정령왕의 모습이 이렇게 꼬맹이라 놀랐어? 뭐, 겉모습에 현혹되는 건 인간들의 가장 큰 취약점이기도 하지. 덕분에 유희할 땐 편하긴 하지만.”

삽시간에 이사나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아마 그를 보고 속으로 꼬마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긴 겉모습만 보면 트로웰은 영락없이 어린 소년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미리 말해 줄 걸 그랬나.’

조금 미안해지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별수 없었을 것이다. 마음속의 생각이라는 게 그리 쉽게 컨트롤되는 것은 아니니까.

더구나 인간의 정신력으론 트로웰의 힘을 절대 이기지 못한다. 마음을 읽히지 않으려 무의미하게 발버둥 치느니 차라리 빨리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는 편이 심장 건강에도 더 좋을 터였다. ……경험상 그렇게 쉽게 적응되진 않겠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트로웰, 네 계약자는?”

“응? 내 계약자는 이곳에 없어. 드래곤이라서 거의 나를 찾을 일이 없거든.”

“헤에, 그렇구나. 저 사람들이랑은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음, 좀 재미있는 상황이었어. 대륙 상태를 점검해 보려고 주위를 살피고 있었는데 갑자기 휴센이 날 식당으로 끌고 가더라고. 아마 고아라고 생각한 거겠지.”

“고, 고아?”

“가뭄 중에 버려진 아이들이 많았으니까. 솔직히 나도 그땐 좀 당황했어. 일부러 눈에 안 띄려고 허름한 차림으로 있었거든.”

흠, 그러니까 눈에 안 띄려고 입은 차림에 오히려 휴센이 관심을 더 보였다는 건가? 내 생각을 읽은 듯 트로웰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드리우고 말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거지 아이를 눈여겨보는 자들은 거의 없지. 용병 중에선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흔치 않게 좋은 심성을 가진 인간이야.”

“그런데 어떻게 용병까지 된 거야?”

“괜찮다는데도 계속 날 걱정해서 말이야. 그래서 내 몸 하나 지킬 능력은 충분하다는 걸 보여 줬지. 그랬더니 이번엔 동료가 되지 않겠냐고 귀찮게 굴더군.”

“뭘 했는데?”

“별거 아니었어. 그냥 옆에 있는 바위 하나를 들어 보인 것뿐.”

……그건 확실히 쫓아다닐 만했다. 어리고 약하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눈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바위를 들어 올렸으니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겠는가.

어머, 이 아이는 꼭 스카우트해야 해! 그런 의지로 불타올랐을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사실 쭉 네가 마음에 걸려서 내 나름대로 라피스라즐리를 찾아봤었어. 하지만 별로 소득이 없었네. 미안해, 엘.”

“뭐? 아니야. 그게 트로웰 탓도 아닌걸. 게다가 이미 이렇게 훌륭한 계약자도 생겼고.”

“그러게 말이야. 설마 네가 인간에게 소환된 줄은 몰랐어. 다분히 요행이 섞이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흔치 않은 일이지. 게다가 황제라니, 앞으로 이 땅의 미래가 기대되는데?”

“과, 과찬이십니다.”

이사나는 이번에도 붉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일순 트로웰의 입가에 서린 미소가 더 짙어졌다.

“쉽게 들뜨지 않는군. 쓸데없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도 않고. 좋은 성격이야.”

“…….”

“똑똑한 녀석은 싫지 않아. 지금껏 왕의 계약자 대부분이 그 자신의 미련함 탓에 목숨을 잃었지. 앞으로도 지금처럼 네게 주어진 힘을 의지하되, 이용하진 않는 게 좋을 거야. 모처럼 맞이한 행운을 저주로 바꾸고 싶지 않다면.”

“……명심하겠습니다.”

굳이 표정을 보지 않아도 이사나가 굳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긴장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엄격할 때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친절하고 다정한 편이었다. 그런 그가 누군가를 압박하고 겁에 질리게 한다는 건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그는 거리낌 없이 정령왕의 위엄을 드러내고 절대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이고 있었다. 처음 매튜로서 그를 보았을 때 느꼈던 것처럼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얼음처럼 차가웠던 시선은 내게 이르자 다시 부드러운 눈길로 변했다.

“그럼 난 이만 나가 볼게, 엘. ‘매튜’로서 해야 할 일이 쌓였거든. 저녁 식사 때 부르러 올 테니까 그때까지 쉬고 있어.”

“아, 으응! 알았어, 트로웰. 아 참, 그렇지! 여기 여관비는…….”

“아, 그건 신경 쓰지 마. 이미 다 처리되었으니까. 보통 호위 계약에서 용병들이 사용하는 경비는 전부 의뢰주가 부담하거든.”

“그, 그래도 돼? 우린 정식 용병도 아닌데?”

“하하, 괜찮아. 임시라곤 해도 패가 발급된 이상 너희도 우리 용병단의 일원이 된 셈이야.”

“그렇구나.”

나는 감탄하며 들고 있던 나무패를 다시 바라봤다. 그때 불쑥 내 앞으로 까만 손이 펼쳐졌다. 트로웰이 악수를 청한 것이다. 의아해져서 바라보자 그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정식으로 인사할까? 난 샴페인 용병단의 매튜라고 해. 앞으로 잘 부탁해, 엘.”

“어어? 아, 응! 나도 잘 부탁해…… 매튜.”

나는 서둘러 그의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나와 그는 동시에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앞으로 내가 보게 될 트로웰의 모습이 수백 개가 넘더라도, 내가 아는 그는 단 한 명뿐일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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