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봐주지 않을 거라는 경고 그대로, 다음 날부터 시작된 이프리트의 수업은 시작부터 상당히 험난했다. 말이 좋아 수업이지 실상은 온갖 험담과 구박의 현장이었으며, 약간의 실수에도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져 내렸다.
“그게 아니야!”
“그, 그럼 이렇게?”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이프리트가 화를 낼 때마다 그의 붉은 머리칼은 용암처럼 뜨거운 불씨를 내뿜었다. 이러다 이 안에 있는 물이 전부 부글부글 끓게 되는 건 아닐까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네 머리는 돌이야? 어째서 두 번이나 시범을 보여 줬는데도 그대로 따라 하지 못하는 거야? 전대 엘퀴네스만큼은 못 하더라도 그 발밑은 흉내를 내야 할 것 아냐! 너 정말 그의 능력을 제대로 물려받은 거 맞아? 어째서 4대 정령왕 중 최고의 가드와 공격력을 자랑하는 물의 정령왕 실력이 고작 이따위인 거냐고! 설명 좀 해 봐, 설명을!”
“……쳇, 내가 그걸 알았으면 진즉 바닥에 돗자리를 깔았지.”
“뭐?”
“아니, 아무것도 아냐. 하하…….”
선생님으로서 이프리트는 그다지 걸맞은 타입은 아니었다.
배우는 학생의 수준을 전혀 가늠하지도 못할뿐더러 자신의 입장에서만 판단하여 가르칠 뿐만 아니라, 툭하면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여 배움의 의욕을 떨어트린다.
세상에 정령을 만드는 수업에서 그 혼자 덜컥 불의 상급 정령을 만들어 보이기만 하면 나더러 뭘 어쩌란 말인가.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하자 다시 한 번 더 보여 주긴 했지만, 그래 봤자 내 눈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불쑥 정령이 나타난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하급 정령의 종류라든가 기운을 다루는 방법 정도는 알려 줘야 할 것 아니냐고! 비유하자면 아직 한글도 못 뗀 어린아이에게 논술부터 가르치는 셈이다. 초보한테 너무 무리한 걸 요구하는 게 아니냐고 따졌더니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난 태어나자마자 할 줄 알았는데?”
‘……아, 그러십니까.’
도대체 난 무엇을 기대했던 건가. 허탈하게 어깨를 늘어뜨리는 내게 이프리트는 찌푸린 얼굴로 쏘아붙였다.
“못 하는 네가 오히려 이상한 거야. 네가 인간이었다니까 어디 인간의 방식으로 말해 볼까? 갓 태어난 인간 아이가 먹는 법을 꼭 말로 설명을 들어야 이해해?”
“……아니.”
“그렇다니까. 먹을 게 입에 들어가면 본능적으로 알아서 먹게 되어 있잖아. 그거랑 마찬가지야. 그런데 왜 못 해? 이렇게 눈앞에서 직접 시범까지 보여 줬는데. 으휴, 속 터져!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나는 이프리트가 푸념하는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아무리 답답하다곤 해도 설마 당사자인 나보다 더하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날 절대 명계에서 도망치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써서 입이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용액을 끝까지 다 마셔 보는 건데.
지금 다시 떠올려도 몸서리가 쳐지는 끔찍한 음료수를 설마 내가 스스로 마시지 못한 걸 후회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이래서 사람의 운명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이 있는 건가.
“뭘 그렇게 멍청하게 있어? 얼른 다시 제대로 해 봐. 전대 엘퀴네스는 역대 엘퀴네스 중에서 가장 강하고 뛰어난 정령왕이었어. 그런데 바로 그다음으로 그의 힘을 전승한 네가 저능아일 리가 없다고.”
……꼭 말을 해도 저렇게 한다니까.
벌써 몇 번째 전대에 대한 언급을 듣는 건지 모르겠다. 좋은 말도 자주 들리면 질린다는데, 심지어 이건 좋은 쪽 이야기도 아니다. 덕분에 난 만나 보지도 않은 전대의 엘퀴네스란 녀석에게 괜한 반감만 무럭무럭 쌓아 가는 중이었다.
‘근데 정말 이상하네. 이프리트는 전대의 엘퀴네스랑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나? 근데 왜 툭하면 그 녀석이랑 비교하는 거지?’
혹시 좋아하면서 싫어하는 척한 게 아닐까. 이프리트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나보다 오랜 시간 그를 알아 온 트로웰이나 미네르바가 그들의 사이를 단순히 험악했다는 식으로만 묘사하진 않았을 테니까.
특히 트로웰은 어딘지 조금 묘한 구석이 있는 게…… 아직은 지레짐작일 뿐이지만 꼭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 같달까? 일전 망각의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의미심장하게 나를 응시하던 그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그건 분명 내 사연을 짐작한 눈빛이었다. 설령 내 생각이 틀렸다 해도 그만큼 비상한 눈치를 지녔다면 이프리트가 그의 눈을 속이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음, 그럼 뭐야.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자꾸 그 녀석 얘기를 꺼내? 싫어하지만 능력만은 인정하는 희대의 라이벌! ……뭐, 그런 거였나? 그런데 그런 녀석의 후임으로 온 게 나같이 얼빵한 놈이라서 짜증이 난 건가?’
호오, 이건 좀 그럴듯한데. 나 생각보다 추리에 일가견이 있는 걸지도?
나는 속으로 자화자찬하며 실실 웃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벼락같은 이프리트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남은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데 뭘 멍청하게 웃고 있어? 너 진짜 그따위로 할래?”
“윽, 미안.”
“할 마음 없으면 그냥 관둬.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아크아돈인데 인제 와서 회복이 몇백 년쯤 뒤로 미뤄진다고 누가 뭐라 하겠어? 인간이나 몇십만 명 더 죽고 말겠지.”
“헉! 아냐, 아냐! 열심히 할게! 진짜야!”
성격이 나쁜 것만이 아니라 남을 협박하는 데에도 도가 튼 정령왕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모르던 것을 갑자기 알게 될 수는 없는 법.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한 번 이프리트를 향해 부탁을 건넸다.
“저기, 이프리트. 정령 만드는 거 다시 보여 주면 안 될까?”
“뭐야, 또?”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어서 그래. 이번엔 좀 더 집중해서 볼게.”
“……흥, 좋아. 할 수 없지. 하지만 이건 알아 둬. 여기서 자꾸 불의 정령이 늘어나게 되면 아크아돈엔 별로 좋지 않다는 거 말이야. 너 때문에 벌써 불의 상급 정령인 이그니스가 3마리 더 늘어났어. 그러니 너도 그 숫자만큼 시큐엘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할 거야.”
“시큐엘?”
“물의 상급 정령 말이야. 넌 네 휘하의 정령 호칭도 모르니?”
알려 줬어야 알지. 나는 또다시 한심하게 바라보는 이프리트의 시선을 피해 속으로 조용히 투덜거렸다. 여기서 따져 봤자 이런 것도 본능이니 어쩌니 하는 타박만 들을 것이 뻔했다.
“잘 봐.”
이프리트는 살짝 주먹을 쥔 다음, 손등이 위로 향하도록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어깨에서부터 새파란 불꽃이 일더니 그의 팔을 마치 뱀처럼 휘감은 채 내려와 손등 위에 고이기 시작했다. 모인 불덩어리는 곧 엄청난 크기로 불어나고는 그 즉시 두 날개 가득 붉은 화염을 일으키는 새빨간 독수리의 형태로 화했다.
피이이―!
―나의 왕, 나의 주군, 아름답고 위대하신 나의 이프리트 님을 뵙습니다.
벌써 3번째지만, 불의 상급 정령 이그니스가 탄생하는 광경은 다시 봐도 신기했다.
이프리트는 자신의 손목에 이그니스를 태운 채 도도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좀 알겠어?”
……아니, 전혀 모르겠는데.
이번에야말로 나는 이프리트가 분노를 퍼부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 나름의 친절을 베풀어서 3번이나 같은 동작을 보여 줬는데 아직도 내가 이해하지 못했으니 화를 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잔뜩 긴장해서 살펴본 그는 오히려 생긋 미소 짓고 있었다. 보는 사람의 정신이 다 아찔해질 만큼 고혹적인 미소였다.
“후후, 그래. 아직도 모르겠다고…….”
“미, 미안.”
“아냐,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이, 이프리트?”
‘이 녀석이 웬일로 수긍을 하지? 여기선 화를 내야 정상인데?’
의아한 기분에 고개를 든 나는 이프리트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바로 시선을 피했다. 새삼스럽게 그의 외모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던 거지만 이프리트는 정말 예쁘다. 그저 단순히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눈빛이나 태도, 몸짓 하나하나에 전부 시선을 끄는 신비로운 오라가 있었다. 오래전 친구들과 경쟁하듯 여자 연예인에 열광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본 내로라하는 미녀들을 다 합쳐도 지금 눈앞의 그만큼 화려하고 아름답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예쁜 여자에게 단독으로 수업을 받고 있다니. 생각해 보니 나 엄청난 행운아였잖아?
나는 좀 더 지금의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어쨌거나 나도 한때는 건장한 대한민국의 남아였다. 예쁜 여자와 함께 있는데 싫을 리가 없는 것이다. 이제부턴 이프리트가 그 어떤 타박을 해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말이다.
“……저기, 이프리트?”
“응? 왜?”
“손에…… 그거 뭐야?”
“아아, 이거?”
이프리트는 생긋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그의 손은 새파란 불덩이에 휘감긴 채 활활 불타오르는 중이었다. 본래라면 불덩이에 감싸져 있으면서도 전혀 해를 입지 않는 피부를 신기하게 여기기 바빴을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나는 움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쪽을 택했다. 왠지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길한 내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불이지 뭐긴 뭐야, 이 멍청아! 네 그 머리는 그냥 장식이지? 이참에 네 녀석을 지져서 전부 증발시켜 버리겠어! 넌 그냥 이 자리에서 죽어! 차라리 죽어서 새로운 엘퀴네스를 태어나게 하는 데 공헌이나 하라고! 널 가르치느니 그편이 백배는 더 빠르겠다!”
“으아악! 자, 잠깐 기다려, 이프리트! 릴렉스, 릴렉스!”
“잠깐은 뭐가 잠깐이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 그냥 해! 마지막 배려 차원에서 유언 정도는 들어줄 테니까!”
그게 무슨 배려야아!
이후로 나는 한참 동안 이프리트의 공격을 피해 미친 듯이 도망 다녀야 했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뜨거운 불길이 화산처럼 치솟아 올랐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첫 수업이 막을 내렸다.
* * *
“그러니까 결국, 하루 종일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는 거지?”
트로웰의 질문에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움츠렸다. 온종일 인간 세상에 나가 있던 그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대강의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그의 눈길이 스치고 지날 때마다 온몸이 절로 졸아붙는 것 같았다. 마치 까다로운 선생님께 숙제를 검사 맡는 심정이었다. 이프리트 또한 긴장했는지 나를 대할 때보다 한층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난 최선을 다했어. 내 잘못이 아니야. 이 녀석이 멍청해서 따라오질 못한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그렇다니까. 내가 알아듣게 설명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흐음, 그렇단 말이지.”
트로웰은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리며 가구들이 놓인 쪽을 바라보았다. 가구의 표면은 온통 파이고 시커멓게 그을린 자국으로 가득했다. 그것만으로도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겠다는 듯, 그는 가볍게 나무라는 눈으로 이프리트를 응시했다. 그에 움칠한 이프리트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그, 그냥 잠깐 다툰 것뿐이야.”
“다투다니. 그건 상대방도 같이 시비에 응했다는 전제하에 성립되는 단어지. 이건 어딜 봐도 일방적으로 공격한 흔적이잖아.”
“…….”
마땅히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한 듯 이프리트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트로웰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거친 행동은 삼가랬지, 이프리트. 지훈은 아직 방어하는 법도 알지 못해. 전대의 엘퀴네스에게 하던 식으로 대하면 위험하다고, 사전에 미리 경고했던 것 같은데?”
“나도 알아. 그래서 평소보다 힘도 많이 줄였다고.”
“내가 듣고 싶은 건 그런 대답이 아니야.”
“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잖아. 저 녀석이나 나나 똑같은 정령왕인데, 왜 내가 사정 봐주면서 대해야 해? 아무리 전생의 후유증이라고 해도 그렇지. 고작 이 정도 공격에 방어하지도 못할 정도로 약해 빠진 놈이라니! 그런 한심한…….”
“이프리트.”
투덜거리던 이프리트가 말을 멈춘 것은 낮게 가라앉은 트로웰의 목소리가 들려온 직후였다. 그의 엄격한 표정을 본 이프리트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이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칫! 알았어. 이제 안 그러면 되잖아. 앞으론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때릴게. 됐어?”
“좋아.”
이 순간 생긋 웃는 트로웰의 모습은 마치 찬란한 후광을 비춘 것처럼 보였다. 저 야생마같이 포악한 이프리트를 어린아이처럼 능숙하게 다루다니!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는 거지? 갑자기 그를 향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일었다. 물론 감격하는 나와 달리 이프리트의 표정은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이럴 때 보면 트로웰 넌 꼭 늙은이 같다니까. 꼭 그렇게 연장자 티를 내야겠어?”
“후후, 그만큼 어른스럽다는 거지? 칭찬으로 들을게.”
“흥! 하여간 말이나 못 하면.”
헐, 트로웰이 이프리트보다 나이가 많다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어쨌거나 겉으로 보기엔 트로웰은 나보다 더 어려 보였으니까.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난 더 이상 못 하겠어. 바쁘든 말든 너랑 미네르바가 알아서 해.”
“뭐야, 고작 하루 만에 포기?”
“가르쳐도 뭔가 효과가 있어야 계속할 맛이 나지. 이 녀석은 답이 없어. 정령을 만드는 장면을 아무리 보여 줘도 소용없다고. 이러다 이그니스 숫자만 무한대로 늘어날 지경이란 말이야.”
“흠, 그건 곤란한데. 알았어. 효과가 없다니 유감이네. 직접 만드는 과정을 보면 어느 정도는 자극을 받을 줄 알았는데.”
나는 두 정령왕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았다. 혹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러다 트로웰마저 날 죽이고 다른 엘퀴네스를 태어나게 하자는 극단 처방을 내릴까 봐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지훈, 미안한데…….”
“우왁! 잘못했어! 나 진짜 열심히 노력할게! 그러니까 죽이지 마!”
“…….”
안 그래도 새가슴인 나는 급기야 트로웰이 사과부터 건네자 혼비백산해서 소리쳤다. 그에 잠시 입을 다문 트로웰이 이번엔 명백한 힐난의 빛을 담고 이프리트를 노려보았다. 그는 뜨끔한 표정으로 딴청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