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황망하고 기막힌 기분에 나는 가만히 숨을 들이켰다.
모든 것이 내가 죽었을 때의 상황과 너무나 달랐다. 영혼이 되었을 때 내 주위엔 분명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저 소년처럼 멍하니 주변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도 아니었다. 무언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다.
그로부터 나는 한동안 병원에서 잠복하면서 사람들이 숨을 거두는 순간을 주시했다. 혹시 잘못 본 것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누군가 한 명쯤은 나와 같은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같은 것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나 혼자만의 바람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죽음이 찾아온 직후엔 어김없이 저승사자가 나타나 그들의 영혼을 거두어 갔다. 심지어 등장하는 간격까지 한 치의 오차 없이 전부 일치했다.
지켜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초조해지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계속 이대로 숨어 있어도 되나 싶었던 것이다.
처음엔 저승사자들이 일부러 나를 따돌린 게 아닌가 생각했다. 아버지가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말처럼 내가 재수 없고 부정 탄 녀석이라서, 그래서 사후세계에서조차 받아 주지 않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는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죄가 있다면 난 그저 눈에 띄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갔다는 것밖에 없다. 설령 내게 문제가 있다고 해도 일단 저승세계에 데려간 뒤에 벌을 내리든, 지옥에 던지든 하지 않았을까?
결국 오랜 고심 끝에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이유를 알 수 없다면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면 된다고 말이다.
여기서 이렇게 있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바로 정면에서 담판을 짓는 수밖에. 내가 먼저 나서야 한다는 사실이 자존심 상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군번이 아니었다. 자칫하다간 이대로 영원히 혼자 방치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실수였다면 지금이라도 저승세계로 가면 되고, 의도된 거라면 무릎을 꿇고 빌어서라도 데려가 달라 매달릴 생각이었다.
‘그럼 혹시 알아? 불쌍해서라도 데려가 줄지.’
때마침 응급실에 실려 온 부상자에게서 혼이 일어날 조짐이 보였다. 의료진이 살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지만 상태로 보아 곧 숨을 거둘 것 같았다.
예상대로 그는 오래지 않아 절명했다. 나는 육체와 분리된 채 멍하니 앉아 있는 영혼의 근처에 서서 차분히 저승사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파아앗.
“……왔다!”
이번에도 역시 너무나도 착실히 번쩍이며 나타나는 빛 무리를 보며, 나는 반가움과 동시에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이윽고 희뿌옇게 빛나는 공간 안에서 두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하도 자주 봤더니 이젠 그들에게 친근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들은 늘 했던 방식 그대로 영혼을 사이에 두고 서서 들고 있는 서류에 내용을 기입하기 시작했다. 아직 둘 다 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기색이었다. 그때 시선을 느꼈는지 보고를 하던 쪽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가 나를 발견하고 얼굴을 굳혔다. 그러자 맞은편의 상사로 보이는 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 그렇다면 이 영혼의 이동은…… 응? 표정이 왜 그러지, 하레스?”
“프, 프레우니스 님. 저 소년은…….”
“소년? 무슨 소리를…… 헉!”
이어서 프레우니스라 불린 남자 역시 나를 발견하자마자 크게 숨을 들이 삼켰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됐다. 저렇게까지 놀라는 걸 보면 일부러 누락시킨 건 아닌 것 같았으니까. 그들은 한참이나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깜빡이다가, 민망해진 내가 헤벌쭉 웃어 주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어찌 된 건가, 하레스? 어째서 영혼이 인도자도 없이 저리 혼자 돌아다니는 거지?”
“그, 그것이……. 그, 그럴 리가 없는데? 오늘 운명이 다한 영혼 중에 저런 아이는 없었습니다, 프레우니스 님.”
“뭐? 없다고?”
“당연하죠. 전 오늘이 아니라 벌써 일주일도 더 전에 죽었으니까요.”
나는 그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즐겁게 구경하다가 솔직하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내가 죽은 건 이미 열흘이 넘었으며, 계속 날 데려가 줄 존재를 기다렸지만 아무 소식도 없어서 직접 당신들을 찾아왔노라고. 그러나 그들은 내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더 짙은 불신의 눈빛을 보냈다.
“열흘 전에 죽었는데 인도자가 오지 않았다고?”
“네, 맞아요.”
“헛 참. 그걸 우리더러 믿으라는 건가?”
“예?”
“네가 하는 말은 가능하지 않다, 소년이여. 운명이 다한 영혼이 나타나면 그 파장이 자동으로 우리 인도자들에게 전해지게 되어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열흘씩이나 인도자들이 네 파장을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다.”
“네? 하지만 전 지금 분명 이렇게 존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나도 지금 그게 이상하다고 말하는…… 응? 그러고 보니 너는 어떻게 된 거지? 어째서 죽은 자 특유의 파장이 느껴지지 않는 거냐?”
“예에?”
생각지 못한 질문에 나는 얼떨떨하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프레우니스는 탐색하는 시선으로 내 모습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보니 정말 그렇군. 사기(死氣)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혼이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프레우니스 님!”
그때 하레스란 이름의 남자가 황급히 끼어들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투명한 케이스에 끼워진 얇은 가죽 묶음이었는데, 보고서의 일부인 듯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지금 과거의 기록을 확인해 보았는데 저 소년이 죽었다는 4월 26일의 기록 어디에도 ‘강지훈’이란 소년이 없습니다.”
“뭐야? 영혼이 이렇듯 멀쩡히 눈앞에 있는데 기록이 없다니? 한때의 유체 이탈일지라도 기록이 남아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네, 맞습니다. 그런데도 보다시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것을 봐 주십시오.”
상황이 이상한 쪽으로 흐르고 있다고 느낀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하레스는 지니고 있던 또 다른 종이 묶음을 펼쳐 보였다. 그것을 본 프레우니스가 눈썹을 가볍게 찌푸렸다.
“이건 생명부가 아닌가? 이 상황에서 왜 이걸…….”
“혹시나 해서 살펴봤는데 사망기록만이 아니라 이 소년이 태어난 기록 역시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이 세계에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뭐, 뭐라고?”
그 순간 이어진 그의 말에 나는 그대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레스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마디로, 운명이 없는 아이입니다.”
* * *
눈앞에 나타난 건 곳곳에 상아색 기둥이 드리워진 화려한 홀이었다. 전체가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었는데, 바닥은 물론 기둥을 장식한 꽃이며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 그 위에 달린 커튼까지 온통 하얀색 일색이라 가뜩이나 밝은 공간이 더 눈부신 느낌이었다. 심지어 테라스 앞에 심어진 나무조차 하얬다.
마치 하얀색 외에는 어떠한 것도 담지 않으려는 철저한 의지마저 느껴지는 공간 속에서 나는 홀로 서성이고 있었다. 하다못해 앉아 있고 싶었지만 이곳엔 의자라든지 테이블 같은 가구의 종류가 전무했다. 애초에 누군가 사용하는 공간이라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이곳에 오기 직전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 상기했다.
운명이 없는 아이입니다.
인도자 하레스의 말에 의하면 나는 아직 삶을 부여받지 않았다고 한다. 모든 인간은 생명부에 기록이 되면서부터 모친의 뱃속에 잉태가 되는데, 내겐 이 과정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존재인 셈이었다.
그럼 내가 지금까지 겪은 것들은 다 뭐란 거지?
비록 평탄하게 보냈다고 할 순 없지만 엄연히 나에게도 기억하는 과거가 있고, 죽지만 않았다면 앞으로 이어질 창창한 미래도 있었다. 아직도 살아 있을 때의 시절이 생생한데 이런 내가 태어난 상태조차 아니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프레우니스 역시 납득하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믿기지가 않군. 애초에 생명부에 기입되지 않은 존재가 태어났다는 것이 말이 되나?”
“저도 그 점이 의문스럽습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증거가 이렇게 뚜렷하니 믿을 수밖에요.”
“허참…….”
그는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연거푸 탄식을 흘렸다. 그리곤 한참 만에 머리를 쓸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이건 우리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럼……?”
“할 수 없지. 조금 번거로워지더라도 윗선의 판단에 맡기는 수밖에.”
프레우니스는 복잡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영혼은 결정자 ‘아레히스’께 데리고 간다.”
그렇게 해서 온 곳이 바로 여기였다.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직후 그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그 아레히스인지 뭔지 하는 사람을 부르러 간 것 같다. 이전까지의 심각한 분위기를 봐선 그냥 이렇게 마냥 기다리고 있어도 되는 건가 싶지만, 사실 내게는 그 외의 선택지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무엇보다 이 공간은 어떻게 되어 먹은 곳인지 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방이 전부 단단한 벽으로 가로막혀 있는 것이다.
영의 세계답게(?) 벽을 통과해서 다니는 건가 하고 다가가 봤지만, 통과는커녕 무시무시한 방전만 일으켜서 하마터면 감전사(?)할 뻔했다. 아마 허락되지 않은 자가 벽에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면 전기를 내뿜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아까의 그 사자들은 저 벽을 아무렇지 않게 통과했기 때문이다. 쳇.
“아아, 심심해애.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놔둘 거냐고오!”
그다지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지는 않지만,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곳에 나 혼자 덩그러니 서 있자니 심심해서 죽을 것 같았다. 그 순간 바로 옆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지훈 군.”
“……!”
움찔 놀라 돌아본 그곳엔 언제 나타난 건지 세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날 이곳에 데려온 두 명의 인도자와, 처음 보는 낯선 남자 하나였다. 그들은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태연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으악, 이게 아닌데! 무심코 인사를 건네자마자 나는 즉시 후회했다. 바보같이 이 순간에 인사를 할 건 뭐람? 하다못해 누구냐고 묻는다든지, 당신이 이번 일의 책임자냐고 따진다든지 조금이라도 세게 나갔어야 날 만만히 여기지 않을 텐데 말이다. 타고난 소심한 성격 탓에 초장부터 일을 그르친 것 같아 기분이 영 찝찝했다.
“후후,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제 소개부터 할까요? 제 이름은 아레히스입니다. 망자들의 영혼과 그 기록을 관리하고 있지요. 간단히 줄여 ‘결정자’라는 직함으로 더 많이 불립니다. 지훈 군이 살던 세계의 방식으로 설명하면 아마 부장 급쯤 될 겁니다.”
아레히스란 남자는 전형적인 미남으로, 어깨까지 기른 검은색 머리카락에 푸른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차분한 눈매와 이지적인 외모 탓인지 전체적으로 무척이나 고아한 분위기가 풍겼다.
한동안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나는 뒤늦게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강지훈 군. 2월 19일, 물병자리 생(生). 출생지는 지구계, 한국의 경기도 수원. 현재 고등학교 1학년, 만 16세. 사망 일자 4월 26일. 맞습니까?”
한 치도 틀림이 없는 이야기에 나는 그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레히스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실례지만 이곳에 오기 전, 당신에 대해 약간 조사를 해 봤습니다. 운명부에 아무런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찾아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죠. 프레우니스와 하레스가 놀라서 저를 찾은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더군요. 제가 이 자리에 온 것은 당신이 원래 있어야 할 곳을 찾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원래 있어야 할 곳?”
“앉아서 얘기하도록 하죠. 이야기가 무척 길어질 것 같군요.”
그의 말에 나는 바로 얼굴을 찌푸렸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적막한 공간엔 가구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앉아서 대화를 하자니. 설마 맨바닥에 주저앉자는 소리인가?
그런 내 의문을 읽었는지 아레히스는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눈앞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주변의 공간이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한 색상들이 빠르게 그 자리를 가득 채웠다. 형형색색의 물감이 한데 뒤섞인 느낌이었다.
“헉!”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은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새하얀 신전 같은 배경은 어느새 사라지고, 붉은색 양탄자와 벽난로가 놓인 아늑한 방이 나타난 것이다. 가운데엔 4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는 소파와 테이블도 함께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