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코델리아 백작 부인?
그 이름을 모를 리 없었다. 한동안 루시아가 찾아 헤매던 사람 아니던가. 요새는 조금 잊은 듯이 애가 해맑게 지내고 있기는 했지만…….
그리고 코델리아 백작 부인은 내가 찾던 사람이기도 했다. 소설 속 황태자의 최측근 중 한 명이자 루시아를 돌봐 주던 후원자!
그런 사람이 이렇게, 예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나타나다니.
“코델리아 백작 부인을 직접 만나 볼 수 있을까?”
루시아가 이 소식을 알면 정말 좋아할 것 같았다. 루시아는 다음 주부터 신전에 출퇴근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코델리아 백작 부인을 만나면 루시아가 좀 더 힘내서 그곳에서 견뎌 낼 수 있을지도.
“물론입니다, 공작님.”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어.”
원작대로라면 코델리아 백작 부인은 콘트윌 영지에 내려가서 사과주 사업을 해야 했다.
그런데 다비드에게 사업 구상안을 보여 주다니. 전에 조용히 코델리아를 찾을 때 콘트윌에서 찾지 못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거다.
코델리아는 제도에 있었다.
나라는 변수로 바뀐 것들 중에는 코델리아도 있었던 거다. 코델리아는 사과주 사업 대신에 새로운 사업을 선택했다.
“언제 시간이 괜찮으실까요?”
“오늘은 안 되고, 내일?”
“연락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 다비드 경.”
다비드가 평소와 다름없이 웃었다. 나를 보는 눈빛은 여전해서 미안하고 속상했다.
제발, 내 무심함이 더 이상 다비드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 * *
다비드가 저택을 나와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사가 그를 보는 미안한 표정이 그는 더 마음 아팠다.
‘설마… 공작님이 알게 되신 건가?’
다비드가 하얗게 질려서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가사에게만큼은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스스로가 아가사에 비해서 너무 부족하기도 했고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다비드는 평생 아가사의 곁에서 변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아 있고 싶었다.
다비드가 입술을 뭉근하게 깨물었다.
“……공작님.”
그런데 아가사한테 들킨 거라면? 가장 들키고 싶지 않았던 사람에게 들킨 거라면……?
다비드의 뺨이 붉어졌다.
다비드가 도망치듯이 빠르게 정원을 걸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지금만큼은 아가사에게서 가장 멀어지고 싶었다.
창피했다. 그리고 죄스러웠다. 아가사의 호의에 대한 보답이 고작…….
그를 구원한 아가사를 곤란하게 만드는 거라니. 다비드가 눈을 질끈 감았다.
“까앙아! 캉!”
애타는 짖음에 다비드가 멈췄다. 고개를 돌리니 전력 질주해서 다비드를 향해 뛰어오는 또리가 보였다.
“컁!!”
다비드를 붙드는 소리였다.
“또리…….”
마치 또리는 아가사가 다비드를 위로하기 위해서 보내 준 천사 같았다. 이 저택의 신수들은 아가사를 신처럼 따르니 일리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
다비드가 몸을 굽혀 또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또 올게.”
“캬앙!”
또리가 다비드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졌다.
“크르르르.”
또리가 다비드의 바짓가랑이를 문 채로 방방 뛰었다. 안으로 잡아당기는 것 같은 몸짓이었다.
“카르르릉.”
다비드가 피식 웃었다.
“고마워, 또리. 이렇게 와 줘서.”
그리고.
“고맙습니다, 공작님…….”
모르는 척해 주셔서요. 항상 똑같이 반겨 주셔서요.
다비드가 입술을 꼭 깨물었다.
* * *
다비드가 돌아간 자리에는 코델리아가 보낸 사업 계획서만 남았다.
“다리 그만 떠세요, 공작님. 언제는 복 달아난다면서요.”
엠마가 뭐라고 하는 것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로 코델리아를 찾았다.
코델리아가 루시아를 데리고 가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아, 모르겠다.
코델리아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서술된 적이 없어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공작님?”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곧 다른 손님이 오실 거예요.”
아, 그랬었지.
“그런데 누가 온다고?”
이번에도 나를 놀라게 하는 손님이면 심장이 남아나지 않을지도.
“이름은 모르겠는데……. 그, 다비드 경께 요청하셨었던 수의사요.”
“아, 그. 해외 유학파라던 세계적인 수의사? 배에서 실종된 건지 몇 달째 못 오고 있던 그 수의사 말하는 거지?”
“네, 그분이요! 그분이 오늘 오신다고 하셨어요!”
엠마가 환하게 웃었다.
드디어 오시는구만.
다비드가 강력 추천한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신수에 대해서도 박학다식하다던데. 아니, 초빙하는 것도 어려웠는데 오는 건 더 어려웠다.
그래도 오니까 다행인 건가.
코델리아 백작 부인은 내일, 오늘은 그 수의사부터다. 텅 비어 있던 내 일정이 하나씩 들어차고 있었다.
나, 왜 바빠……?
* * *
아가사가 기다리고 있는 수의사는 슈타디온 공작 가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멀고 먼 길이었다.
게다가 예상치 못했던 사건을 맞부딪치는 바람에 더 오래 걸리기도 했다.
“조금만 더 참아. 곧 도착이야.”
조지나가 무언가를 토닥였다.
“도착하셨소!!”
짐마차를 끌던 마부가 새된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까지 오는 한 달의 일정 동안 까다로운 손님 덕에 개고생을 한 덕이다.
‘마차가 너무 흔들리잖아욧!’
‘좀 더 조심히 다녀 주세요.’
‘늦은 밤에는 쉬어야 해서 이동하면 안 됩니다. 가뜩이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