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77)화 (77/90)

#77화.

어느새 도착한 신전 앞엔 대신관이 마중나와 있었다.

“슈타디온 공작님.”

“대신관, 이렇게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맞아 줘서 고마워요.”

“하하하. 당연하지요. 신심이 깊으신 분을 제가 어떻게 마다합니까.”

돈을 쏟아부어 주는 기부자를 마다할 힘이 없다는 거지? 마다하고 싶어도.

챙, 챙.

나와 대신관 사이에 칼이 맞부딪히는 환상이 보이는 듯했다.

“안으로 드십시오.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차를 준비해 준 하인이 나가자마자 말을 꺼냈다.

“대신관. 나는 루시아를 공작 가에서 지내게 하고 싶습니다. 젬도 마음에 걸리고…….”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대신관이 눈을 반짝이며 반박했다.

“공작님. 그건 불가한 일입니다. 루시아는 이제 신전에 소속된 신관입니다. 신관이 자신이 속한 신전을 떠나 지낸 전례는 없습니다.”

“선례야 만들면 되는 거고.”

다리를 꼬고 앉았다.

내가 여기서 갑이라는 걸 기억하자, 아가사.

“큼!”

대신관이 불편한 얼굴로 말을 시작하려 하는 걸 가로챘다.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마세요, 대신관. 내가 언제 섭섭하게 한 적 있습니까?”

“그게 무슨…….”

“루시아가 신전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압니다. 마엘리스 신을 신봉하는 대신관이 그 앨 얼마나 아끼는지도 알고요.”

듣기 좋게 포장했다.

“그래서 나는 루시아가 신전에 출퇴근하며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전폭 지원할 겁니다.”

“전폭 지원이라는 말씀은?”

“루시아의 치유력은 이 제국에 큰 도움이 되겠지요. 그런데 루시아로 인해서 사람들이 몰린다면 신전이 시장터가 되겠지요. 한꺼번에 몰린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고.”

“그 말씀은…….”

가지고 온 금화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대신관의 눈이 동그래졌다.

“신전을 증축해야 하지 않겠어요?”

“커, 커흐으으음!”

“분명 신관이 되고 싶은 자들도 늘고 신심이 깊어진 자들도 늘어나겠지요. 그들을 위해서라도 신전 증축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 그렇긴 하죠.”

“그리고 나는 신심이 참 깊은 사람이잖아요?”

“……예, 신관들 모두가 칭송하고 있습니다.”

대신관의 기색이 누그러졌다. 까맣게 죽어 있었던 얼굴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쉽냐. 어? 소설에서는 루시아를 괴롭히는 빌런 중 하나였는데.

지금은 그저 내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는 피에로였다.

“내 제안이 어때요, 대신관?”

“커흐으음. 이건…….”

대신관이 눈을 깜빡였다. 물론, 이 또한 신전 내에서 회의를 통해 결정해야 할 일이겠지.

하지만, 회의를 거치든 안 거치든 결론은 당연히 하나였다.

“좋습니다, 공작님. 합리적인 일이 아닐 수 없군요. 신전에서는 공작님의 신심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것으로 미션 하나 클리어.

루시아, 집으로 돌아와. 언니가 해결했다.

* * *

그 시각.

다비드는 새로운 손님을 만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다비드 씨. 이렇게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하군요. 저는 코델리아라고 합니다. 편히 코델리아라고 불러 주세요.”

다비드가 경계의 눈빛으로 코델리아를 응시했다. 코델리아가 혼자 온 게 아니었으니까.

정식으로 훈련받은 것으로 보이는 기사만 셋을 대동했다.

둘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지만, 한 명은 안으로 들어와 코델리아 뒤를 지키고 서 있었다.

게다가 코델리아에 대해서는 다비드도 알고 있었다.

슈타디온의 눈과 귀는 온갖 곳에 퍼져 있었다. 바라는 정보는 언제든지 건져 올릴 수 있을 정도랄까.

코델리아에 대해서 조사를 했던 것은 그녀가 루시아, 나엘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모두 아가사 옆을 맴도는 자들이었다.

다비드의 경계 1호.

나엘과 루시아에 대한 보고서에서 자주 등장했었던 코델리아의 등장이었다.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서면으로만 보던 코델리아는 생각보다 더 점잖은 사람이다.

“반갑습니다. 다비드라고 합니다.”

“다비드 씨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들어 알고 있습니다. 슈타디온의 숨은 실세시라고.”

코델리아가 담백한 웃음을 흘렸다. 다비드는 코델리아가 아부를 하는 간신배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만약 그런 사람이었다면 황궁에 남아 있었겠지.

“그럴 리가요. 저는 그저 공작님을 보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하하. 슈타디온 공작님이 부러울 따름이군요. 다비드 씨 같은 좋은 사람을 두었으니.”

적당하게 서로에게 기분 좋은 덕담을 주고받은 후에야 코델리아 백작 부인이 용건을 꺼냈다.

“오늘 이렇게 찾아온 것은 사업을 제의하기 위함입니다.”

“사업이라 하시면…….”

“아실는지 모르시겠지만 저는 황태자 전하의 사람입니다. 저는 그분의 대계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

코델리아는 솔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금이 중요합니다. 무례하다고 생각하실진 모르겠지만, 그동안 공작님을 지켜봐 왔습니다. 지금 ‘슈타디온’만큼 좋은 아이템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작님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코델리아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코델리아는 그간 정체를 숨긴 채로 돌아다니면서 시장 조사를 했다.

슈타디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공작의 이미지에 대해서 말이다.

“저는 슈타디온 공작님이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은 제가 아니라 슈타디온 공작님께 확인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지요.”

코델리아 백작 부인이 테이블 위에 서류 더미를 내려놓았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사업 구상안입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다비드 씨가 슈타디온 공작님께 닿는 창구라고.”

다비드가 자기도 모르게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아가사에게 닿는 창구라니. 그만큼 다비드가 아가사에게 가깝고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 아니겠는가. 마음에 들었다.

“검토해 보고 공작님께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요즈음 나엘은 검술 수련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몸을 굴려야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늘도 새벽부터 땀을 빼고 돌아오는 나엘을 디에고가 붙들었다.

“황태자 전하! 오늘 같은 날도…….”

디에고가 발을 동동 굴렀다.

“오늘 같은 날이 어떤 날인데?”

나엘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디에고가 속이 터진다는 얼굴로 말했다.

“오늘 공작님께 드레스 보내시는 날이잖아요!”

“……그런데?”

안 그래도 그래서 더 격렬하게 구르다 왔다.

“정말 이대로 드레스만 보내실 거예요?”

“그게 뭐.”

“브륄스 제국에서 황태자 전하만큼 낭만 없는 남자도 없을 겁니다! 공작님께서 퍽 좋아하시겠네요!”

평소에는 소심한 디에고가 오늘만큼은 강력하게 자기주장을 했다. 상관 부부의 아름다운 금슬은 수행인들의 행복한 하루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이왕이면 첫 단추부터… 아니, 모든 단추를 잘 끼우는 게 좋았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지 황태자 궁 사용인들이 전부 디에고를 찾아와서 새벽부터 들들 볶았다.

‘꽃다발이라도 만들어 올까요?’

‘케이크라도 구워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정말 이대로 가신대요?’

‘디에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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