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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73)화 (73/90)

#73화.

로살린의 부름에 대신관, 재판관, 나엘 모두 응했다. 비밀스러운 회담이 열렸다.

로살린의 비밀 응접실에 네 사람이 모였다.

나엘은 황후가 미끼를 물었음을 직감했다. 데이먼 백작 가를 살리려는 거겠지.

나엘의 외가는 로살린과 데이먼의 수작으로 멸문했다. 로살린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데이먼 백작이 없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항상 인자한 미소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로살린이 이번에도 단 미소를 지었다.

“오늘 이렇게 이 자리에 여러분을 모신 것은 자비를 호소하기 위함입니다.”

단어 선택도 항상 부드럽다.

하지만, 황후가 독을 품은 장미라는 사실은 나엘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나엘은 히샤가 아니었으면 이미 죽었을 것이 뻔했다. 나엘의 어린 시절은 암살 시도로 얼룩져 있었다.

독초를 먹고 사경을 헤맨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나엘의 눈이 서늘했다.

“큼, 큼.”

불편한 티를 낸 건 대신관이었다.

“신수를 팔아치운 일에 자비라니요? 이건 황후 폐하시라도 안 되는 일입니다.”

“데이먼 백작 가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겠다는 건 아닙니다.”

황후의 미소가 처연해졌다.

“대신관. 내 명령을 철회하겠어요.”

대신관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 말씀은…….”

“성녀가 신전에 귀속되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대신관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미 루시아가 신전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은 압니다.”

애초에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대신관이 헛기침을 했다.

“큼! 그건 성녀를 보호하기 위한…….”

“예, 그렇겠지요. 이해합니다.”

“재판이 끝나는 대로 정식 절차를 밟으시지요. 그리고 데이먼 백작 가는 멜리슨 데이먼을 파문하기로 했습니다.”

“그 정도라면…….”

대신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먼에서 신전을 존중하는 결정을 했다 할 만했다.

“그리고 황태자.”

나엘이 무감한 표정으로 황후를 응시했다.

“이번 일에 황태자가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을 압니다. 덕분에 잘못된 역사를 지금이라도 바로잡고 신께 용서를 빌 기회를 얻게 되었지요.”

“…….”

“황태자, 데이먼 백작 가는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벌금을 지불하려고 합니다.”

이 정도면 황제도 만족하고 어느 정도 체면치레도 하지 않겠느냐는 의미다.

이 거래는 받아들여야 한다.

처음부터 목적은 루시아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지금, 아가사의 얼굴이 떠오르는지. 신수들이 험한 꼴을 당할 때마다 속상한 표정을 했던 아가사 말이다.

나엘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번 일은 제가 결정할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가장 큰 공적을 세운 건 슈타디온입니다, 폐하.”

“슈타디온에는 내가 직접 성의를 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작이 섭섭하지 않도록. 황태자가 공작을 잘 달래 주세요.”

이번 일로 데이먼의 위상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황후의 빈민굴 복지 사업이 문제였다. 민심을 고려해야 하는 건 나엘도 마찬가지다.

데이먼 백작 가가 이번 일로 무너지지 않을 것은 나엘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벌금으론 안 되지.

“그리고 데이먼 백작의 퇴진을 청합니다.”

황후의 눈이 순간적으로 독기를 품었다.

데이먼 백작은 현재 재정부 장관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항상 황제의 재물과 가까이.

황제의 금고에 든 금괴가 몇 개인지도 알고 있을 정도였기에 종종 그것에 손에 대기도 했었다. 반면에 모자란 것을 데이먼 가에서 채워 넣는 척 황제의 환심도 사기 편했고.

그런데 그것을 놓으라고?

로살린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렇게 하지요.”

그 자리에 로살린이 바라는 자를 다시 앉히려면 한동안 바빠질 것 같았다.

“아가사에게는 제가 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고마워요, 황태자. 늘 그대가 있어 든든합니다.”

로살린이 마지막으로 타깃을 재판관에게로 돌렸다.

“이렇게 마무리했으면 합니다, 재판관. 내가 제국을 위해서 헌신하고 있는 것도 고려해 주시오.”

대화를 지켜보던 재판관이 침묵을 깼다.

“……여기 계신 분들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로살린이 눈을 깜빡였다.

하나를 얻으면 더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것 같은 건 착각이겠지. 황후가 남몰래 이를 악물었다.

* * *

나는 내내 우울할 수만은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재판이 당겨졌다는 긴급 소환장이 도착한 것이다.

데이먼 가문 또한 소환되는 재판이었다. 이건 놓칠 수 없지.

“엠마, 다녀올 테니까 만약 루시아한테 무슨 연락 있으면 바로 알려 줘.”

“네.”

“꼭이야.”

“네, 공작님. 얼른 다녀오세요.”

엠마가 흐릿한 미소로 나를 배웅했다.

재판소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었고 갑작스러운 통보였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데이먼 백작 가의 핏줄을 이은 자들은 모두 자리해 있었다. 심지어 황후까지도.

로살린 황후가 눈이 마주치자 나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내비쳤다.

뭐, 뭐야.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황후가 재판소 안으로 들어가자 데이먼의 가솔들도 그 뒤를 쫓았다.

데이먼 백작이 기가 죽어 보이는 것을 보아서는 별짓을 다 해도 이 재판이 열리는 걸 뒤집을 수 없었던 거다.

정의는 살아 있다.

이게 바로 K-정의다!

하지만, 개중에는 여전히 미쳐 있는 자도 있었다. 체이스가 나를 향해서 미소 지어 보였다. 그것에서 그쳤으면 그나마 괜찮았을 텐데 체이스가 갑자기 나를 향해 다가왔다.

“아가사.”

“공작님.”

이게 또 어디서 이름을 불러.

“큼, 공작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제가 요새 바빠서 소원했군요. 아시겠지만 데이먼 백작 가가 이상한 누명을 써서 말입니까.”

억울하긴 개뿔.

아, 얘는 왜 자꾸 이러는 거지?

“이 오빠가…….”

“으악!”

‘오빠’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몸서리를 치면서 체이스를 피해서 도망쳤다. 아니, 주인공이 끼다 못해서 왜 이런 것까지 꼬이는 걸까.

“공작님, 재판이 끝나고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남아 있어 주시죠. 알겠습니까?”

체이스가 끝까지 콘셉트를 버리지 않고 말했다.

“밥이라도 사 주려고 그러는데… 조금 있으면 우리는 가까운 사이가 될 거잖아요?”

“가까운 사이요?”

아… 병먹금인데.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루시아와 멜리슨이 결혼을 하지 않습니까. 지금은 신전에서 이상한 고집을 부려서 늦어지고는 있지만……. 루시아는 잘 있죠?”

저 입에서 루시아 이야기가 나오는 게 너무 소름 끼쳤다.

“아가사!”

내게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나엘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내게 오고 있었다.

“큼, 황태자 전하.”

체이스가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조아렸다.

“황태자 전하!”

오늘처럼 나엘이 반가운 것도 처음이었다.

“저는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체이스가 도망치듯이 안으로 들어가고 나와 나엘만 남았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대체 왜 공작 옆에는 이상한 날파리들이 꼬이는 거지?”

“글쎄요.”

언제부터 이렇게 친밀한 사이가 됐는지. 나엘이 줄행랑을 친 체이스의 뒷모습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나엘이 내 옆에 섰다.

체이스보단 계약 약혼자가 낫지.

“약혼식 날짜를 당기는 게 좋을 것 같군.”

“……그러게요.”

이번만큼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저런 미친놈들이 판을 치는데 어쩌겠어.

“오늘 모든 상황이 마무리될 거야. 다행히 황실 의상실에서는 다음 주면 드레스 제작이 끝난다더군. 이번 주 안에 슈타디온으로 사람을 보내지.”

“그럼… 약혼식은 언제?”

“다음 주 토요일.”

하아, 정말로 이렇게 약혼을 하는구나.

종잡을 수 없는 인생이 제멋대로 굴러가고 있었다.

“……망설여지나?”

루시아가 자꾸 머릿속을 떠돌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미래도.

여전히 내 데드 플래그는 멀쩡히 꽂혀 있는 걸까. 아니, 이미 여기는 내가 아는 소설이 아니었다.

진짜… 내가 그 원작 파괴자라니.

근데 또 내가 이제 와서 어쩌겠어. 진퇴양난인데!

“그냥 심란해서요.”

나엘이 내 머리를 툭툭 다독였다.

아니, 씨. 이것들이 내 머리에 아무 지분도 없으면서 자꾸 만지작거려.

“너무 걱정하지 마, 달라지는 건 없어.”

나엘의 표정이 오묘했다.

하지만, 더 이상 이 주제에 대해서 말하기 싫은 듯 나엘이 말을 돌렸다.

“이번 재판은 데이먼 가에서 벌금을 내고 백작이 책임지고 직위 해제 되는 걸로 마무리될 거야. 그리고 황후는 결혼 명령을 철회했어. 멜리슨은 파문될 거야.”

“……이미 결론이 내려졌군요.”

나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후가 슈타디온에는 따로 성의를 표시한다고 하더군.”

“필요 없는데.”

그 노선은 잘못 탔다가는 정말 큰일 난다. 황후하고는 상종도 안 하는 게 상책이다. 체이스도 체이스지만 그쪽은 몰락 엔딩 아니냐고. 남주한테 덤볐는데.

“그래도 받아야 할 건 받아.”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이 재판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결말을 스포당한 느낌?

재판소에 들어설 때 가득했던 기대감이나 설렘이 짜게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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