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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71)화 (71/90)

#71화.

루시아가 눈을 깜빡였다.

신전은 생각보다 거대하고… 차가웠다. 분명 슈타디온도 이만한 규모를 자랑했었던 것 같은데 루시아는 그곳에서 추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곳은 지독하게 춥다.

루시아가 어깨를 움츠렸다.

신전에 온 지 고작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곳의 분위기를 알 것 같았다.

루시아를 반겨 준 건 처음뿐이었다.

‘날 반긴 건지, 아니면 짐수레를 반긴 건지.’

루시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이 그들이 후자를 반겼다는 건 알겠다.

“뭐 해! 따라오라니까.”

갑자기 들려오는 톡 쏘는 목소리에 루시아가 고개를 들었다.

“네, 프레니 님.”

특히나 루시아를 싫어하는 티를 내는 건 이 ‘프레니’라는 일반 신관이었다.

사실 아무리 선배라고는 하나 프레니와 루시아는 똑같은 일반 신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니는 루시아로부터 대접을 받고 싶어 했다. 교묘한 괴롭힘도 있었다.

예를 들어.

‘안녕하세요, 프레니 님.’

이렇게 인사를 하면.

‘어머, 쟤는 내 이름이 지가 부르라고 있는 줄 아나 봐.’

라고 한다거나.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면.

‘어머머? 내 이름도 모르나 봐. 이래서 수습 신관 과정을 거쳐야 한다니까.’

진심으로 이름이랑 수습 신관 과정이 무슨 상관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게 정당한 괴롭힘이면 이해라도 하지……. 이건, 뭐…….

유치해서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루시아는 그간 황성에서 몇 년 동안 일해 온 베테랑 하녀다.

텃세를 부리는 것도 많이 보았고, 목이 날아다니는 것도 많이 보았다.

심지어 코델리아 백작 부인은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지 않나.

루시아는 이제 슬슬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눈앞에 있는 저 여자가 우습기만 했다. 그냥…….

‘더럽게 피곤하게 하네.’

이 정도?

루시아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아가사는 루시아가 떠나는 게 마지막까지 아쉬웠는지 떠나는 순간까지 그녀를 걱정했다.

‘그거 알아, 루시아? 사람은 욕을 할 줄 알아야 해. 이게 참기만 하면 보자긴 줄 알거든? 우습게 본단 말이야.’

그래서.

‘개XX아, 대가리에 바람구멍 내 주기 전에 X둥X 닫아라? 아XX에서 X내 나. 따라 해 봐.’

그런 신박한 욕설을 몇 개 알려 주었다.

‘기선 제압이 중요해.’

아니, 대체 고귀한 공작님이 그런 걸 어디서 배워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루시아가 그때 생각에 저도 모르게 키득거리다가 헛기침을 했다. 프레니가 루시아를 노려본 탓이다.

사실, 프레니도 속이 바짝 탔다. 대신관은 ‘네가 기부금을 갚아 줄 게 아니라면 루시아를 괴롭히지 말거라.’라고 경고했다.

‘기부금?’

슈타디온 공작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프레니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리고 이 정도는 괴롭히는 것도 아니다.

“야, 저기서 밥 먹으면 돼.”

프레니가 구석을 가리켰다.

이렇게 친절하게 식당도 데리고 와 주질 않나. 루시아가 먼지가 쌓인 구석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이렇게 친절하게 식당도 데리고 와 주질 않나.

프레니가 구석을 가리켰다. 루시아가 먼지가 쌓인 구석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하여튼간.

“네, 프레니 님.”

루시아가 활짝 웃었다. 신전이 춥고 외로운 건 맞는데 이겨 내지 못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걸 빼면. 루시아는 퍽 잘 지내고 있었다.

* * *

나엘이 턱을 괸 채로 생각에 잠겼다.

‘아무 여자한테 이러시면 안 돼요.’

그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아가사가 보통 영애였다면 질투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그 말을 할 때 아가사는 어딘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반적인 질투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무슨 의미야, 아가사.’

나엘이 이마를 꾹 눌렀다.

예전에는 아가사만큼 알기 쉬운 사람이 없었다.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숨기는 게 없었으니.

물론 가끔 나엘을 지긋지긋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지금, 아가사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후.”

게다가 아가사의 주변에는 거슬리는 자들이 참 많아졌다. 다비드 경부터 시작해서 이브라임까지. 대체 이브라임 같은 마법사가 슈타디온 공작 가에 왜?

아가사 뒤에서 눈을 번뜩이는 걸 보고 있으면 배알이 꼴렸다.

거기가 제집이라도 되는 양.

나엘의 한숨이 깊어졌다. 자신이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디에고.”

“네, 황태자 전하.”

나엘의 고뇌를 지켜보고 있던 디에고가 대답했다.

“……약혼식 준비를 서두르게.”

“네?”

“모든 게 마무리되고 나면…….”

이 생각들도 사라지겠지.

아무래도 요새 아가사에게 할애한 시간이 너무 많았나 보다.

그래서 이런 것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모든 일정을 당겨야겠어.”

“일정을 당긴다는 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황제 폐하를 뵈어야겠다. 지금 어디에 계시지?”

질문에 대답을 해 주지 않고 황제를 봐야겠다는 나엘을 디에고가 이상하다는 듯이 응시했다. 사실 나엘이 속내를 잘 드러내는 편은 아니었지만, 요즘 들어 더 이상해졌다.

디에고가 나엘의 뒤를 쫓았다.

“폐하는 계시는가?”

시종이 고개를 조아렸다.

“예, 전하. 안에 손님이…….”

살짝 열린 문틈으로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 슈타디온에서 각성했다는…….”

황제는 제 수족들을 모아 놓고 각성한 신수에 대해서 논하고 있었다.

나엘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신수의 소유권을 놓고 귀족들이 말이 많은 걸로 아네.”

황제가 수염을 쓸어내렸다.

“가장 큰 값을 제시하는 자에게 보내는 건 어떨까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중요한 건 각인이 아닙니까.”

“각인보다 더 중요한 건 돈이지.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제국에 돈이 모자라지 않나.”

나엘이 헛웃음을 지었다.

황제는 그간 신수에 대해서 외면해 왔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신수를 놓고 거래를 할 생각을 하다니.

“각성한 신수를 다른 제국에 팔아넘기면 얼마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나?”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폐하. 지금 신전에서 눈을 부릅뜨고 중앙 신전과 슈타디온을 지켜보고 있는 데다가……. 민심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신수는 대단한 전력이 되기도 합니다.”

“후, 아무리 해도 군자금이 모자라. 어디서 충당할 수 있을지 고민일세.”

“그래도 신수로 무언가를 하기에는 이른 시기로 보입니다. 지금 슈타디온을 향한 백성들의 지지도가 높은 편이어서요.”

“그래? 나엘이 잘 생각했구먼. 아가사 공작하고 약혼을 결정한 것 말이야.”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나엘의 표정이 삐딱해졌다.

어쩜 저렇게 황제는 변하는 게 없을까. 항상 저 자리에 그대로,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으로 있는 건지.

나엘에게 황제는 딱 그 정도의 거리감이었다.

황제는 위, 나엘은 아래.

“황태자 전하…….”

시종이 불안한 얼굴로 나엘을 불렀다. 나엘의 표정이 영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고하게.”

나엘의 말에 시종이 고개를 조아렸다.

“폐하! 황태자 전하 드셨습니다!!”

혹여나 못 들을까 시종의 목소리가 높았다. 안에서 들려오던 대화 소리가 끊겼다. 나엘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손님들이 계셨군요.”

“오, 나엘!”

황제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오늘은 무슨 일로 이 아비를 찾아온 게냐?”

“허락을 받을 일이 있습니다, 아버님.”

“허락?”

“데이먼 백작 가의 재판 기일을 당겨 주십시오. 그리고 데이먼 백작 가가 합당한 벌을 빠른 시일 내에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나엘…….”

황제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황제에게 있어서 데이먼 백작 가는 ‘좋은’ 가문이었다.

황제의 마르지 않는 금줄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로살린 황후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데이먼 백작 가는 황제에게 많은 재물을 바쳐 왔다.

그런데 데이먼 백작 가를 벌해야 한다니. 그리 기분이 좋지 않은 건 당연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느냐?”

“아가사 공작은 신심이 깊은 자입니다.”

“거기서 그 이야기가 왜 나오는 것이냐.”

“이번에 데이먼 백작 가가 정당한 벌을 받게 된다면 그 이후에 아가사 공작과의 결혼을 앞당겨 볼 생각입니다.”

나엘은 부러 ‘결혼’이라는 단어를 골랐다. 황제의 귀에 듣기 좋은 양념으로 들릴 만한 자극적인 단어였다.

“결혼? 공작과 거기까지 이야기가 된 게야?”

“그게 아니고서는 약혼을 할 리가 없지요, 아버님.”

“하긴. 너희도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지…….”

황제가 수염을 쓸었다.

데이먼과 슈타디온을 저울에 올려놓았을 때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의 문제였다.

황제가 눈을 깜빡였다.

‘뭘 고민해.’

가진 게 더 많고 내놓을 게 더 많은 가문은 슈타디온이다.

그리고 황후가 있고 사일러스 황자가 있는 한 데이먼은 황제를 버리지 못한다.

황제는 데이먼을 버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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