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69)화 (69/90)

#69화.

“네 이름은 조조. 조조라고 하자.”

거친 숨을 내쉬던 쿼카와 내 눈이 마주쳤다. 그 눈이 수많은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이내 진정제가 돌았는지 세 신수가 천천히 잠들었다.

“……저 애들 신경 많이 써 줘. 얼른 회복할 수 있도록.”

“네, 공작님.”

무거운 목소리로 사육사들과 수의사가 대답했다.

행복한 쿼카가 웃음을 되찾고, 원숭이가 장난기를 되찾고, 앵무새가 아름다운 깃털을 되찾는 그 날이 얼른 오길 바란다. 진심으로.

* * *

지하 감옥.

“이게 말이 돼!! 그깟 짐승들 때문에 인간을 가둔다는 게!”

“내 말이 그 말이야! 내가 굶기기를 했어, 아니면 죽이기를 했어!”

새로이 끌려 들어온 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다. 그들은 자신의 정의가 옳다고 믿는 듯했다.

한편, 끌려 들어온 지 꽤 되는 죄인들은, 특히 신수의 피를 내다 판 자들은, 입을 꾹 다물고 벽을 보고 앉아 있었다.

“거기, 형씨!”

“멍청한 소리 하지 말고 닥치고 있어. 똑같은 인간 되긴 싫으니까!”

벽을 보고 있던 제이크가 자신을 부르는 말에 소리쳤다.

“뭐? 똑같은 인간? 다른 건 뭔데!”

“정말 사지 분간 못 하는구만. 지금 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 아니, 알면 이 난리를 못 치지.”

“그게 무슨…….”

“신수들이 각성해서 신수화를 하고 있대!! 마엘리스 신이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고!”

제이크가 가슴을 내리쳤다. 그간 재판에 몇 번 얼굴을 비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신전에서도 난리야!”

“뭐, 뭣? 여태 조용하다가……. 그게 정말이야? 신수가 각성했다는 게?”

“그렇다니까!”

“그러면 신수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해야지! 그게 돈이 얼…….”

제이크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저런 멍청한 자식이 다 있나.

“정신 차려!! 신전에서 당신을 가만둘 것 같아?”

“신전이 왜…….”

“마엘리스 신을 모욕했다고 대신관이 노발대발하는 꼴을 못 봐서 그딴 멍청한 소리나 하지! 계속 그렇게 지랄 떨 거면 나는 빼고 해!”

그 말에 서커스 단주 마르코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게 심각하다고? 제기랄. 짐승 하나 잘못 들였다가 이게 무슨 꼴이람.”

“목숨 보전하고 싶으면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제이크가 마지막 동정심으로 조언을 건네고는 다시 벽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의 병약한 동생은 감옥에서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오늘, 내일 하고 있었다.

제이크가 무릎을 세우고 거기에 고개를 파묻었다.

“이게 다……. 이게 다 그 새끼 때문이야.”

제이크가 음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들이 처음 신수를 마주했던 날.

신수의 피를 마시고 동생이 목숨을 건졌던 그 날.

‘내가 좋은 사업을 하나 소개할까 하는데.’

이상하게 갈라지던 목소리가 여전히 선명했다.

‘신수들의 피는 인간의 생명을 구할 수 있소. 이게 얼마나 좋은 명약이 될까. 당연히 떼돈을 벌 수 있지 않겠소?’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목소리에 홀려 손대선 안 될 일에 손을 대고야 말았다.

제이크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날로 돌아간다면 그 숲으로는 발길도 들이지 않으리라.

* * *

재판소는 또 처음이네.

아침부터 귀족 재판에 소환되었다. 나는 신수들의 대변인으로서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재판소의 자리가 빽빽하게 들어찼다. 재판 위원들은 가장 상석에 앉아 있었다.

재판 위원들의 수는 7명. 그리고 판사 한 명. 총 8명의 재판관이 오늘의 재판을 주도한다. 그리고 그 아래에 나엘이 앉아 있었다.

나엘과 눈이 마주쳤다.

나엘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 행동은 아무 일도 없을 거라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지금부터 4차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장내에 계신 분들은 착석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시종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만큼 조용했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아가사 루시 슈타디온. 앞으로 나오게.”

판사의 지시에 따라 정해진 자리에 섰다.

제국의 법 앞에서는 모두가 동등한 제국민이라는 약속에 따라 나는 이곳에서는 더 이상 공작이 아니었다.

“아가사 루시 슈타디온. 그대가 신수들을 돌보는 중이라던데 맞나?”

“네, 그렇습니다.”

“지금 신수들의 상태는 어떤지 말해 보게.”

“곰 신수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사슴 신수는 점차 건강을 회복하고 있지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요즘 내 하루 일과 중 하나는 다친 신수에게 들러 그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밤비는 확실히 겉보기에는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의 손길을 두려워하고 식사량도 적었다.

푸우의 알 옆에서 떠나지 않으려 하기도 하고. 그나마 밤비가 내게는 경계를 풀고 다가오는 편이었다.

내가 편안해서 그런가.

“그리고 최근 서커스단에서 구조된 세 신수는 상태가 많이 안 좋습니다. 이제 막 구조되기도 했고 영양실조가 극심합니다.”

“서커스단?”

재판장이 눈썹을 으쓱하고는 서류를 뒤적였다.

“……허, 참. 첫 번째 사건과 두 번째 사건이 전부 관련이 있나?”

“연관성은 다분합니다. 첫 번째 사건을 통해서 귀족들은 이익을 편취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귀족이 직접 신수를 팔았다는 점입니다.”

또박또박 말했다.

“결국, 두 사건 모두 귀족들이 마엘리스 신을 모욕하고 그분의 종이라 불리는 신수들을 핍박하였으니 같은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의하네. 어차피 제소될 사건이라면 한 번에 처리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

재판장은 우리에게 꽤 우호적인 듯싶었다. 귀족들이 앉아 있던 자리가 술렁거렸다.

저들 중에도 신수를 팔아넘기고, 유기한 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걸리지 않았을 뿐이지.

“하지만, 귀족 가문에서 신수를 잃어버려 이런 일이 발생했을 확률은 없나?”

그 말에 답변한 것은 나엘이었다.

“추가 증거 자료를 제출합니다, 재판장님.”

나엘이 자리에서 일어나 재판장의 자리에 데이먼 가문의 서류를 올렸다.

“이건…….”

재판장이 놀란 얼굴로 나엘을 응시했다. 나엘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서류철 사이에는 선대 데이먼 백작이 신수를 팔아넘기고 받은 영수증도 남아 있었다.

“허어……. 증거를 인정하오. 두 번째 사건은 귀족이 돈을 노리고 신수를 팔아넘긴 사건이 맞소.”

“하여, 저는 이번에 귀족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처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 재판장도 같은 생각이오. 일단, 오늘은 첫 번째 사건을 마무리 지읍시다. 아가사 루시 슈타디온은 이만 자리로 돌아가도 좋소.”

긴장했는지 그 말을 듣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자리에 돌아와 앉자 나엘이 은은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나 말고도 몇몇 사람들이 불려 나가 재판장의 질문을 받았다.

“첫 번째 사건에서 다음 세 가문의 작위와 자산을 몰수한다. 페드로 자작 가, 하비에르 백작 가, 호르게 남작 가!”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재판에 소환되어 있었던 세 가문의 가주들이 반발한 것이다.

“우리는 그저 주는 돈을 받은 것뿐이야! 어떻게 번 돈인지 알 게 뭐야!”

재판장이 무표정하게 그들을 응시했다.

“진술에 따르면 자네들은 죄인들의 본거지까지 방문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혐의를 부인하는가?”

“하,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돈에 눈이 멀어서 미쳤었나 봅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용서해 주세요!”

각기 반응은 달랐지만, 어쨌든 저들은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재판장이 단호하게 손짓했다.

끌어내라는 거지.

반발하던 귀족들이 끌려 나가자 재판장은 다시 조용해졌다. 아주 잠시였지만.

“그리고 그 외의 283가문은 부당하게 재산을 늘린 바가 확인되었으니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린다. 가진 자산의 반절을 국고에 환수하라.”

그러자 역시나 판결에 반발하는 몇몇 사람들이 비슷한 방식의 소란을 피우다가 끌려 나갔다.

“그리고 이번 일을 주도한 죄인들에게는 신성한 제단에서 100일간 참회 기도를 올릴 것을 명하며, 그 이후에 사형에 처한다. 엘리튼 백작 또한 같은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엘리튼 백작은 범죄자 형제를 후원하고 그들로부터 가장 큰돈을 받아먹었다.

“엘리튼 백작의 자손들은 앞으로 300년 동안 귀족 작위에 오르지 못할 것이며, 관직에도 나오지 못할 것이다.”

엘리튼 백작의 비명이 들렸다.

그 순간, 재판장의 목에서 목걸이가 반짝였다. 내 눈이 틀린 게 아니라면 묵주 목걸이였다.

이것 참, 신실하신 분이셨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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