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61)화 (61/90)

#61화.

[좋아.]

“그리고 하나 더.”

[음?]

“젬이라는 신수가 각성했다더군. 신수화를 해냈다고 해.”

히샤가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나엘을 향해 등을 보이고 앉아 있던 히샤가 돌아앉았다.

[신수화? 힘을 되찾았다는 건가?]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가서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만날 수 있게 해 줘!]

오랜만에 히샤와 나엘의 뜻이 통했다. 나엘이 히샤의 콧잔등을 간지럽혀 주었다. 기분이 완전히 나아진 히샤가 배를 보여 주었다.

나엘이 솜털 같은 히샤를 긁어 주었다.

히샤의 밑에는 예의 그 서류가 놓여 있었다. 데이먼 백작 가의 신수에 대한 보고서 말이다.

나엘의 적안이 깊어졌다.

저것 또한 귀족 사회를 고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곰 신수와 사슴 신수 사건이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킨다면, 저 사건은 쐐기를 박을 수 있으리라.

* * *

젬이 허공을 파닥파닥 날았다.

젬의 앞에는 슈타디온에 거주 중인 신수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젬이 허리에 손을 얹었다.

“어떻게 신수화했는지 궁금하다고?”

“캉!”

“까우웅!”

“컹컹.”

“좋아. 대단한 신수 젬이가 다 말해 줄게.”

젬이 도도하게 고개를 치켜들곤 앙증맞은 두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이렇게!”

신수들이 고개를 동시에 갸웃했다. 그리고 젬이를 따라서 팔을 뻗었다.

다람쥐 신수가 기우뚱거리다가 뒤로 넘어졌다가 발딱 일어나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본 사람 없지?]

“자, 그다음은 이렇게!”

젬이가 두 손을 이번엔 위로 뻗었다.

“……이게 아닌가?”

젬이가 빙글 돌자 모여 있던 신수들도 다 같이 빙글 돌았다.

“우웅…….”

젬이가 반대로 돌자 다 함께 반대로 돌았다.

“상황을 설명하는 건 어때? 어떤 상황에서 신수화한 건지 말이야.”

루시아가 키득거리면서 보다가 조언했다. 사육사들도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젬이는 말이야……. 루시아가 아야 했어!”

아야?

신수들이 제각기 눈을 부릅떴다.

“혼내 주고 싶었어! 나빴어!”

젬이 두 손을 움켜쥐고는 앞으로 모았다.

“루시아, 젬이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엠마가 넋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치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공작님도 그렇게 생각하실 거야. 젬이한테서 눈을 못 떼시더라고.”

그건 다른 사육사들의 입장도 같았다. 젬이 덕분에 힐링에 힐링이 더해졌달까.

그 사이로 로드고도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로드고의 옆을 항상 쫓아다니는 루나도 함께.

루나는 사육사보다 로드고와 함께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로드고가 헛기침을 하면서 슬그머니 사육사들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루나. 너도 가서 들어.”

로드고가 루나의 등을 슬쩍 밀었다.

“끼유웅.”

루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로드고가 파이팅을 외쳐 주자 그제야 신수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어머. 정원사님도 오셨네요?”

루시아가 활짝 웃으면서 로드고를 맞이했다.

“큼, 큼. 거… 젬이가 신수화를 성공했다고 해서.”

“맞아요! 그게 어떤 기분이냐면…….”

“그동안 혼자 떠들었는데 이제는 대화가 되는 기분?”

로드고가 맞받아쳤다.

“맞아요, 그거예요!”

루시아가 손뼉을 쳤다.

로드고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사실 그것을 바라고 여기에 끼어든 게 맞았다.

사람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든 젬이는 신수들에게 그날의 일을 열심히 재연 중이었다.

“그래서 젬이가 화가 나서 화아아아아악 했어! 나빴어!”

[화아아아아아악!]

신수들이 다 같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화아아아아악! 화가 난다아아악!]

“그랬는데! 젬이가 변했어. 그래서 젬이가 나쁜 사람 혼내 줬어! 나빴어!”

“뀨우우우우!”

“키융!”

“컁컁!”

“그치, 나빴지?”

신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평화롭고 깜찍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젬 선생님의 수업 시간은 아가사의 귀환과 함께 끝났다. 아무런 소득은 없었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신수들이 말은 못 하지만 알아듣고 있다는 것.

정말 중요한 사실이었다.

* * *

다음 날.

키브르 대신관이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중앙에서 가까이에 있는 수석 신관들을 전부 불러들인 것이다.

단 하루 만에 도착할 수 있는 자들은 모두 모였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 난리요?”

마차에서 구르듯이 내린 수석 신관 하나가 목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나도 모르지. 이번에야말로 예산안을 축소하실 계획이신 건가.”

“그럴 리가. 지금보다 더 예산을 줄이시면 우리는 신전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네!”

“그게 아니면 프레니 신관의 혼처를 구하고 계실지도 모르지.”

“아, 그……. 양녀로 들이셨다는 신관 말이야?”

“그래. 차기 후계자로 점찍어 두고 있으니 힘이 되어 줄 남편감을 구하는 중일지도.”

여러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대신관도 자리에 착석했다.

“내 부름에 여기까지 와 준 귀한 이들에게 감사하오.”

대신관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의 얼굴은 전에 없이 상기 되어 있었으며 긴급 회의를 소집한 이치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대신관님의 부름인데 당연히 와야지요.”

“그렇습니다. 신께 종속된 몸으로 어찌 대신관님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앞다투어 아부가 쏟아졌다. 대신관이 기분 좋게 허허 웃었다.

“다급한 사안이라 이렇게 급하게 모셨소.”

장내가 조용해졌다.

“성녀가 나타났소. 완전한 각성을 끝냈다고 하오. 지금은 신전이 아닌 곳에서 지내고 있는데…….”

“지금 성녀라고 하셨습니까?”

그 말은 신전에도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다. 침묵도 잠시,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대신관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어허!”

“그러면 지금 성녀께서는 어디 계시는 겁니까? 그분의 존재는 긴 시간 핍박당하던 신전의 위상을 끌어올려 줄 겁니다!”

“맞습니다. 저는 성녀께서 브륄스 제국의 신전을 모두 방문하여 격려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더 이상 문 닫는 신전이 없도록…….”

“성녀께서는 지금은 슈타디온에서 지내고 계시네.”

“그게 말이나 됩니까! 성녀는 사유 재산이 아닙니다!”

대신관이 눈을 번뜩였다.

“지금 성녀를 물건 취급하는가!”

“그건 아니지만…….”

신관들이 수군거렸다. 개중에는 중앙 신전이 성녀를 독점하려고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키브르 대신관은 소란이 사그라들기를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지금 성녀께서는 휴식을 취하는 중이시네. 사실 문제가 있었어.”

“문제라 하심은…….”

“데이먼 백작 가에서 문제가 있었던 모양인데……. 멜리슨 영식하고 갈등이 있었던 것 같네.”

데이먼 백작 가라는 말에 대부분의 신관이 몸을 사렸다. 데이먼은 황후의 가문이다.

황후가 후계도 없었던 시절이면 모를까 지금 그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었다.

황제가 집안일에는 관심이 없어 황성의 대소사가 황후의 손을 거치고 있었으니까.

“데이먼 백작 가는 성녀와 결혼을 하겠다고 나섰네.”

“하지만, 지금 성녀는 공식 공표 전입니다! 아직 신적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어요!”

“그게 오늘의 중요 쟁점이네. 황후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결혼은 강행되어야 하네. 하지만, 시간을 끌어 줄 수는 있지.”

“어떤 시간 말씀이십니까?”

“데이먼 백작 가에서 먼저 그 결혼을 포기할 시간 말일세.”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황태자 전하와 슈타디온도 관여했으니 지켜볼 일이네. 내가 자네들에게 부탁할 것은 마음을 모아 달라는 것이네.”

대신관이 잠시 숨을 골랐다.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았다. 신수의 신수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 했다.

대신관은 아까보다는 느린 속도로 신수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루시아와 젬이의 사건은 신전을 줄기째 쥐고 뒤흔들었다.

“그러면 우리가 논의한 대로 하겠네. 서명을 모아서 데이먼으로 보내겠어. 이걸로 한동안 결혼을 미룰 수는 있을 걸세.”

신관들이 저마다의 속셈을 숨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이해관계가 다르고 친하게 지내는 귀족도 다르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루시아와 신수는 반드시 되찾아 와야 한다는 것!

대신관은 이번 일을 다뤄 줄 가장 큰 신문사의 기자 또한 불러들였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했다.

* * *

다음 날.

내 앞으로 무언가가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슈타디온의 평화는 굳건하리라 생각했다.

“악!”

이게 뭐야!

눈을 테러당한 느낌이다. 손에 들고 있었던 쪽지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왜 그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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