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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60)화 (60/90)

#60화.

“이, 이 부분은 신전의 실책이 있으니……. 만약 각성한 신수가 어딘가로 가게 된다면 신전과 논의를 거쳐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대신관이 한 걸음 물러섰다.

“뭐, 그 정도야. 다만, 공식 발표를 할 때에 태도를 명확하게 해야 할 겁니다, 대신관. 만약에 우리가 이야기한 범위를 벗어난다면…….”

생긋 웃었다.

“알아서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공명정대하시니까.”

부정부패의 요람인 신전이다. 드러운 술수를 쓰고 싶겠지만 어쩌겠어. 내가 돈줄을 쥐고 있는데. 이러려고 기부한 건 아니었지만 잘됐네.

“다른 신수들은 혹시 각성할 기미가 보입니까?”

“모르지요. 그걸 강요할 것도 아니고. 그 애들 마음 아니겠어요? 그러고 보니 젬이가 루시아를 참 잘 따르던데…….”

또 다른 희망을 심어 주는 말에 대신관의 눈이 반짝였다. 루시아가 신전으로 가게 되면 그 신수도 신전의 품에서 살게 되리라는 희망!

이렇게 당근을 쥐여 주고 다시 공공의 적을 언급하면…….

“안 그래도 데이먼 백작 가도 욕심을 내는 듯하더군요.”

“파렴치한 작자들! 그러면 저는 이만 해야 할 일이 생겨서 돌아가 보겠습니다.”

대신관이 바삐 나가려다 말고 내게로 돌아왔다. 대신관이 내게 말했다.

“신전은 항상 아가사 공작님이 행보를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마엘리스의 종으로서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처음보다 더 정중해진 태도로 인사한 대신관은 빠르게 사라졌다.

지난밤, 루시아의 일에 대해서 열심히 고민을 해 보았다. 데이먼과 신전,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성의 입장에 대해서도.

내 결론은 하나였다.

뭐 하러 내 손 더럽혀? 이렇게 대신 나서 줄 사람들투성인데.

이번처럼 머리가 팽팽 돌아간 적도 없을 것이다.

“아가사, 내게 할 말이 뭐지?”

나엘이 아까보다는 누그러진 분위기로 물었다.

팔을 의자 등받이에 걸치고 그 위에 고개를 기댄 편안한 자세였다.

빛이 그에게 고인 것 같은 기분이다. 찬란한 은발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정말, 너… 남자 주인공 맞구나.

“아가사?”

“아! 큼. 일단 첫 번째는… 곰 신수가 죽었어요. 새로운 삶을 위한 잠시간의 휴식에 들었습니다.”

나엘이 눈을 감았다.

“마엘리스 신의 가호가 함께하시기를.”

“이 일은 필연적으로 바깥에 알려져야 할 거예요.”

“그 말에 동의해.”

“어떤 방식으로 알려지느냐가 중요할 것 같은데…….”

나엘의 눈이 조금 커졌다.

“아가사. 네가 그런 것도 고민하나?”

“나를 뭘로 보고…….”

“단 한 번도 그런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어서.”

큼, 아가사?

대체 얼마나 생각 없는 티를 내고 다녔길래……. 휴, 보석을 사 모을 시간에 책을 읽었어야지! 서재에 먼지 쌓여 있을 때부터 알아봤어.

시간 남을 때마다 서재에서 시간을 보낸 덕에 대부분의 책을 다 읽었다. 어찌나 새 책 냄새가 진동을 하던지.

“질풍노도의 시기…….”

“뭐?”

“중2병… 하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방황을 하던 시기가 아니었을까요.”

적당히 얼버무리고는 화제를 빠르게 바꿨다.

“신수가 피해자라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것보다는 동정표를 사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동정표라.”

“사실관계를 밝히되 스토리텔링에 주안점을 두는 거죠.”

사실 지금 신수들의 이미지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길거리 치안을 위협하는 존재들이란 이미지로 말이다. 인간들과 살아왔으나 버림받았고 그렇다고 야생의 품으로도 가지 못하는 가련한 이들이었음에도.

‘저 좋을 때는 품었다가, 능력을 잃으니 버리는 꼴들이라니.’

“……글을 잘 쓰는 인물을 찾아보도록 하지.”

“좋아요. 최대한 서둘러 주세요. 죄인들은 법정에 서게 되나요?”

“안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는데. 아가사, 아무래도 이게 작게 끝날 일이 아닌 것 같아.”

또 뭐, 뭐가 있는데?

“돈을 받아 처먹은 것들이 있는 것 같더군. 귀족들 중에 꽤 말이야.”

오… 세상에.

내가 좋아하는 장르잖아. 근데 이게 볼 때나 재밌지…….

“그러면 재판을 열기 직전이 가장 좋겠네요. 뜨거운 감자로 달아오를 수 있도록.”

“그래. 이 부분은 신경 써서 진행해 보지. 이 일에 대해서는 네 확인도 받겠어.”

안 그래도 되는데…….

“두 번째는 뭐지.”

“아. 그게…….”

내가 여태 무릎 위에 올려 두었던 서류를 꺼냈다.

“아무래도 데이먼 백작 가가 신수를 팔아넘긴 모양이에요.”

“하.”

나엘이 머리를 짚었다.

산 넘어 산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 * *

아가사가 돌아가고 나엘에게는 서류만 남았다.

“하아.”

신수의 문제가 지난 100년 동안 쌓여 왔다는 것은 나엘도 알고 있었다.

황실과 신전은 버림받은 신수들에 대해서 일관적인 태도를 취했다. 사실상 위정자들은 이익이 되지 않는 일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으니까.

신수들이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자마자 그들을 저버렸다.

그 일에 대해서 나엘이 통감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히샤 때문이었다.

히샤와 처음 이야기를 나눴던 날.

‘너는 뭐가 다르지? 내가 무엇을 위해 너를 지켜야 하지? 나의 동료들은 차가운 돌바닥에서 윤회를 반복하고 있다.’

신수들은 인간을 위해서 마엘리스가 내려 준 축복이었다. 그들이 돌아갈 수 있는 신의 품은 더 이상 없었다.

그저 죽고 태어나길 반복하며 길거리를 전전하는 것이다.

차갑게 식어 알 속에서 죽어 간 이들도 많았다.

‘인간들은 신수를 제 몸처럼 아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 약속은 우리가 능력이 있을 때만 발휘되던 거였나?’

히샤의 감정이 나엘에게 짙게 전해졌다. 약해진 건 히샤와 나엘 모두 마찬가지였다.

동료들의 죽음을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히샤는 모든 기력을 잃었고, 나엘은 당시에 어머니를 잃었었다.

그랬기에 나엘은 히샤에게 약속했다.

‘절대로 너를 버리지 않아, 히샤. 우리는 평생 함께할 거야. 나는 네 동료들을 지켜 주는 사람이 되겠어. 반드시. 영혼을 걸고 약속할게.’

어린 날의 치기와 열정이 가득했던 다짐. 그리고 나엘은 그 기억을 여전히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나엘이 처음으로 영혼을 걸었던 약속이기도 했으니까.

[뭘 하고 있지?]

그날, 신수들이 착취당한 사건 이후로 기력을 잃었던 히샤가 다가왔다.

“이제 좀 괜찮나?”

[……뭐. 내가 나쁠 게 뭐가 있겠어.]

히샤가 폴짝 뛰어올랐다. 나엘이 이번에는 순순히 무릎을 내어 주었다.

히샤가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웅크리고 누웠다.

“곰 신수의 이름은 푸우라고 하더군.”

[웃기는 이름이야. 꿀을 아주 좋아할 것 같아.]

히샤가 중얼거렸다.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나엘이 히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푸우는 아가사의 축복 아래에서 편안하게 길을 떠났어. 그리고 다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지. 따뜻하고 행복한 곳에서.”

히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곰 신수의 죽음은 이미 그때부터 직감하고 있었다. 생명력이 죄 빠져나갔던 그 무감한 잿빛 눈동자를 마주했을 때부터.

[슈타디온에서?]

“그래.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할 거야. 그리고 사슴 신수의 이름은 밤비.”

[사랑스러운 꽃사슴 같은 이름이로군.]

“맞아.”

나엘이 나직이 웃었다.

아가사가 어떤 생각으로 이름을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같이 따뜻한 이름들이었다.

“그들은 슈타디온에서 편안히 보내게 될 거야. 그들이 다른 선택을 하지 않는 이상.”

[잘됐군.]

기분이 한결 나아진 히샤가 몸을 일으켰다. 나엘의 손바닥에 몸을 기대고선 히샤가 서류를 발로 툭 하고 쳤다.

[이건 또 뭐지?]

“데이먼 백작 가의 죄악에 대해서 적혀 있지.”

[죄악?]

“신수를 돈을 받고 팔았다더군.”

[지긋지긋해. 그리 이상하지 않은 일이야. 내 동료들 중 많은 이들이 그렇게 팔려 갔지.]

나엘이 히샤의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아지길 바라며 좋아하는 곳을 만져 주는 것이다.

“이번에 이 일을 바로잡을 생각이야.”

[어떻게?]

“아가사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더군.”

나엘은 아가사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히샤에게 들려주었다.

제국법상, 신수를 함부로 팔고 버린 가문은 절대로 신수를 소유하거나 키울 수 없다. 또한, 신수들을 범죄에 이용한 자들은 정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신수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뭐,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사실 신수들이 능력을 잃으면서 가문에 내려졌었던 각인도 빛바래 사라져 버렸다. 그 말은 신수들이 더 이상 가문에 매여 있지 않으니 어떠한 선택도 가능하단 말이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히샤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이상적인 사람이야, 아가사는. 나는 아가사가 이상해서 좋아.]

나엘이 미소 지었다.

“그래. 아가사를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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