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깡!”
[또리도 있네!]
젬이 또리와 메리 앞을 빙글 돌았다. 또리와 메리를 따라오고 있던 인간들도 멈춰 섰다.
아가사와 이브라임의 눈에는 또리와 메리가 허공에 대고 짖는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무슨 일이지?”
“몰라. 기다려 봐봐. 냄새를 찾는 중일 수도 있잖아.”
물론, 메리와 또리는 젬과 대화 중이었다. 젬이는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질 않지만 신수들에게는 보였다.
“캉캉!”
[아, 지금 루시아를 찾으러 간다고? 루시아는 저기에, 저기에서 2번째 문에 있어! 나쁜 사람들이 가둬 뒀어! 나빴어!]
“카르르르! 캉!”
[그치. 메리가 보기에도 그렇지? 아우, 나는 어디 가냐고? 루시아가 나는 대단한 신수래,]
“컁?”
[또리는 아가라 아직 모르는 거야. 대단한 신수는 여러 가질 할 수 있어!]
젬이 손짓 발짓을 했다. 해야 할 일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메리와 또리가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아 젬을 구경했다.
[이렇게 가서! 이렇게 막 찾아! 그리고 이렇게 가지고 오면! 루시아가 이렇게 해! 그러면 나쁜 사람들이 이렇게 벌을 받아!]
젬이 두 팔을 하늘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까아앙!”
“캬앙!”
[너희가 보기에도 내가 대단해? 나도 알아! 젬은 대단해!]
“컁컁!”
[그래, 조금 이따 보자. 나는 바빠서.]
젬이 다시 휙 하고 날아올랐다. 젬이 떠나고 메리와 또리가 다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났다.
두 번째 문, 두 번째 문…….
저기다!
“찾았나 본데?”
“……대체 뭔지 모르겠군.”
물론, 사정을 모르는 인간들로서는 의아할 뿐이었다. 메리와 또리가 전력 질주했다.
메리와 또리가 정확히 루시아가 있는 방문을 앞발로 짚었다.
그것을 보면서 데이먼 백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황후 폐하……!’
데이먼이 초조하게 수염을 꼬았다. 데이먼 백작이 체이스를 재촉했다.
“아직 황성에서 사람은 안 왔느냐?”
“곧 도착할 겁니다.”
그리고 루시아가 있는 방문이 열리려는 순간, 황성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이 왔다.
“여기서 시간을 좀 더 끌어 봐.”
“예, 아버지!”
두 사람이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었다. 데이먼 백작이 모든 일을 장남과 차남에게 미루고 자리를 떠났다. 아주 다급하게.
* * *
“여긴가.”
종이와 잉크 냄새가 진하게 나는 방이었다. 젬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다행히 문이 살짝 열려 있어서 들어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뭘 가져가야 하는 거지?”
젬이 부지런히 책상을 뒤졌다. 낑낑거리며 서랍도 열어 보고. 서류도 읽어 보고.
그러던 와중에 젬의 눈에 띄는 서류가 있었다.
<데이먼 가의 신수에 대한 보고서>
신수?
젬은 신수라 인간 세계의 이익 관계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젬이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서류였던 그것을 집어 들었다.
“나쁜 놈들 혼내 줘!”
서랍에 걸터앉아 있던 젬이 낑낑거리며 서류를 끌어올렸다. 인간들은 너무 크다.
젬이 볼을 부풀리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아아아압!”
서류 끝을 붙든 채로 젬이 힘겨운 날갯짓을 시작했다.
* * *
“공작님……!”
루시아가 나를 맞이했다.
“저를 데리러 오셨군요!”
루시아가 눈물이 그렁거리는 얼굴로 내게 팔을 벌렸다. 금방이라도 내게 달려와서 나를 끌어안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 루시아가 내 품에 폭 하고 안겼다.
어어, 고맙다…….
“어디 다친 데는 없지?”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루시아의 등을 토닥여 주곤 떼어 냈다. 그러곤 곧바로 체이스를 공격했다.
“루시아가 없다더니, 여기에 있군.”
루시아가 내 뒤에 숨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또리와 메리는 단번에 루시아를 찾아냈다.
신수들끼리는 정말로 끌리기라도 하는 건가? 아니면 또리가 강아지라서?
어쨌든 잘되었다. 고생하지 않고 바라던 이들을 찾았으니 말이다.
체이스가 매끄러운 미소를 지었다.
“말씀드릴 수 없었던 중요한 이유가 데이먼에도 있었음을 참작해 주십시오, 공작님.”
체이스가 겁 없이 말했다. 뭔가 믿고 있는 게 있는 건가?
루시아가 내 옷을 붙들었다.
“루시아에게도 동의를 구한 일이었나?”
“그렇지 않습니다만……. 루시아는 하녀고 저는 백작 가의 후계자입니다. 제 말을 들어 주셔야지요.”
이 빌어먹을 신분제.
물론, 나는 특혜를 받는 쪽으로 들어오긴 했다만.
저런 놈이 비열하게 신분제 운운하는 건 못 보겠네.
“아하, 그러면 나는 공작이니 자네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로군.”
잔뜩 비꼬니 체이스의 미소가 굳었다.
“그리고 루시아는 내가 돌보고 있는 아이야. 그건 또한 내 뜻을 거슬렀다는 뜻이 되는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공작님. 그 아이가 슈타디온 공작님을 모신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뿐입니다.”
어휴, 저 얄미운 자식.
머리털을 쥐어 뽑아서 대머리로 만들어 버릴까 보다.
“이젠 알았으니 사과해. 죄 없는 사람을 감금한 죄 말이야.”
“사과할 일인지는 밝혀 보면 알겠지요.”
아오, 정말 저거 한 대만.
그런데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던 데이먼 백작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데이먼 백작은 어디에 갔지?”
“잠시 손님이 찾아오셔서요. 이 일과 관계없진 않으니 함께 이동하실까요?”
대체 무슨 꿍꿍이야.
루시아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놀란 표정을 한 루시아를 보고는 생긋 웃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지킨다, 너.
* * *
로살린이 발코니에 기대섰다. 나른한 오후의 따뜻한 햇볕이 그녀의 위로 내리쬐고 있었다.
지난밤, 데이먼에서 급하게 사람이 들어왔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소식을 가지고.
창백하게 질린 얼굴, 덜덜 떨고 있던 데이먼 가의 집사장을 보았을 땐 ‘또 사고를 친 건가?’ 싶었다.
멜리슨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가문에 수치를 안겨 주고 있었다. 멜리슨 덕에 다친 하인들과 하녀들을 멀리 보내고 사건을 덮은 것도 로살린이었다.
로살린이 제 목에 걸린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로살린의 앞길에 방해물이 된다면 멜리슨을 치울 생각까지 하고 있던 그녀에게 전해진 소식은 좀 더 충격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