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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55)화 (55/90)

#55화.

루시아가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지독하게 피곤했다.

안락한 보금자리로 돌아가 자고 싶었다. 그리고 엠마와 수다를 떨고 편안한 정원에서 젬과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그리고 가서 젬의 활약상을 이야기하는 거다.

물론, 루시아가 바라는 대로 평화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잃어버렸던 신수가 능력을 되찾았으니 다시 한번 소란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슈타디온이라고는 해도 그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미 변해버린 자신을 아가사가 놓지 않고 지켜 줄까. 루시아를 낳은 부모조차 그녀를 버렸는데.

루시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무언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것을 손에 쥐게 된 자의 공포였다.

거대한 운명의 흐름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 * *

이브라임과 케르인 집사장은 금세 데이먼 백작 가에 도착했다. 서로 이웃하고 있었던 덕에 오는 길은 멀지 않았다.

이곳에서 돌아갈 길은 요원해 보이지만.

“아무도 없다니까 그러네.”

멜리슨이 건들거리며 말했다. 멜리슨의 옆에는 체이스와 데이먼 백작도 있었다.

“아무도 없다면서 이렇게 다 개미 떼처럼 나와서…….”

이브라임이 이죽거리는 것을 집사장이 막았다. 케르인이 간절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브라임이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입을 꾹 하고 다물었다. 이브라임이 데리고 온 또리와 메리가 백작 가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이만한 적의를 보건대 저들은 결백하지 않다.

“왜 가만히 있는 건데?”

“문제를 일으키면 공작님이 곤란해지시니까요. 공작님을 최대한 기다려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들은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귀족들 간의 생리 관계에 대해서는 이브라임이 알 바가 아니라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이브라임이 알아들었다는 걸 확인한 케르인 집사장이 다시 데이먼 백작의 앞에 섰다.

“백작님께서 보증하시니 그렇겠지요. 하지만, 공작님께서는 사용인들 모두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아주 할 일 없는 작자로군. 그래서 이렇게 검도 못 쓰는 자들을 잔뜩 보내셨나?”

데이먼 백작이 우습다는 듯이 말했다. 변방의 영주들을 제외하고는 사병을 가질 수 없었다.

각 가문이 데리고 있을 수 있는 기사의 수는 한정되어 있었다. 그들은 호위의 역할을 할 뿐이었다.

슈타디온을 지키는 기사들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각 가문 간의 다툼을 저지하고자 허락 없이는 가문의 기사들이 다른 가문의 문턱을 넘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집사장이 생긋 웃었다.

“법을 지켜야지요. 이들은 그저… 루시아가 걱정돼서 함께 온 것뿐입니다.”

“아하. 이 많은 인원이?”

멜리슨이 피식 웃었다. 무언가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표정? 분명 뭐가 있는데.

데이먼 백작 가의 사용인들에게 이야기라도 들어 보고 싶은데…….

다행인 건 케르인의 역할은 그저 시간을 끄는 것일 뿐!

그리고 아가사는 너무 늦지 않게 도착했다.

항상 그렇듯이 고고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데이먼 백작, 오랜만이오.”

“공작님. 여기까지 찾아와 주시고. 전에 만나 뵙고 싶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었는데요.”

데이먼 백작이 말했다.

그 말도 안 되는 청혼? 응했을 리가 있겠는가.

“일이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내 하녀가 이곳에 있다고 하던데?”

루시아가 어떤 앤데!

당장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여자 주인공을 괴롭히면 니들도 절대 말년이 행복하진 않을 거다.

“오해이십니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웃기고 있네.

“하지만, 여기로 루시아가 들어가는 걸 보았다는 증인들이 있소. 백작이 결백하다면 수색을 할 수 있게 해 주시오.”

“그건 불가합니다. 이 저택이 저들의 발에 짓밟히는 걸 보고 싶지 않습니다, 공작님. 리모델링한 지 얼마 안 돼서요?”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나와 이 사람만 들어가서 찾아볼 수 있도록 해 주게.”

“나?”

이브라임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러면 여기에 너밖에 더 있냐. 자기 한 몸을 지키는 걸로도 모자라 나마저 지켜 줄 텐데.

“……그건…….”

데이먼 백작이 우물거렸다. 변명 거리가 떨어진 것이다. 사실 공작의 신발을 더럽다고 말할 수 있는 자가 여기에 있겠는가.

“왜. 내 구두도 더럽다고 말할 텐가?”

새로 산 구두를 척 하고 내밀었다. 흙이나 먼지 대신에 아름다움과 반짝임을 붙이고 있었다. 땅 한 번 디뎌 본 적 없는 것 같은 신발을 본 데이먼 백작이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들어가도 되겠지?”

“저 사람은…….”

“정말 귀찮게.”

이브라임이 짧은 마법을 연창했다. 그의 신발이 바로 깨끗해졌다.

“마법사님이셨군요. 그런데 왜 슈타디온에……? 그리고 마탑은 귀족들의 관계에 껴선 안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별걸 다 가지고 난리군. 나는 슈타디온에 속한 마법사야. 슈타디온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을 해도 상관없어.”

“그럼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지?”

데이먼 백작이 멜리슨과 체이스를 돌아보았다. 체이스는 나를 향한 욕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쟤들이 하는 생각이 다 보였다. 데이먼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괜찮습니다. 두 분께서는 안에 드시지요.”

* * *

“아씨, 안 되네.”

루시아가 창문에 매달린 채로 중얼거렸다. 저택에서 신분이 높을수록, 가주의 총애를 살수록 높은 층에서 거주한다.

멜리슨은 가문에서 내놓은 자식이라고는 해도 직계 자손. 3층에 있는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서 떨어지면 다리 하나는 부러지겠는데.’

루시아가 침을 삼켰다. 오싹함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왔다. 벌써부터 다리가 부러진 기분이랄까.

루시아가 얼른 창문을 도로 넘어 안으로 들어왔다.

“거봐! 젬이가 안 된댔잖아. 위험하댔잖아! 내 말 왜 안 들어! 나빴어!”

루시아가 목을 가다듬었다.

“될 줄 알았지. 하,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혼란도 잠시뿐. 루시아는 이곳에서 탈출할 방법을 고안하는 중이었다.

여기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는 건 루시아의 취향이 아니다. 게다가 데이먼 백작 가의 까만 속을 보면 다른 속셈이 있는 게 분명했다.

탈출이 불가하다면 다른 걸 해 볼까. 루시아가 방 안을 서성거렸다. 그러고 보면…….

어차피 루시아의 목적은 데이먼 백작 가의 정보를 터는 거였다. 이건 어쩌면 기회?

‘그래, 호랑이한테 물려 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댔어.’

그리고 원래 위기는 기회라고도 하지 않나.

루시아가 젬을 향해 손짓했다.

“음, 음… 젬.”

“웅?”

젬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모습을 안 보이게 할 수 있어?”

“어려운 일은 아니지! 젬은 대단한 신수인걸! 이야압!”

젬이 손바닥을 활짝 펼치자 창틀에서 꽃이 뿅 하고 피어났다. 아주 작은 꽃이었지만.

그 꽃을 본 젬이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봉인석 때문에 젬이는 안 대단해졌어.”

사실 방 한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는 굵은 줄기에 비하면 이건 약소하긴 했다.

루시아가 젬을 간지럽히며 살살 달랬다.

“아니야, 젬. 나는 그것도 못하는 걸? 그리고 젬이가 대단한 건 나도 알아! 젬이가 날 구했잖아?”

젬이의 귀가 씰룩거렸다.

그…… 런가?

“이야아아압!”

뿅뿅뿅!

꽃이 이리저리 피어나는 걸 보면서 루시아가 까르륵 웃었다. 역시 젬은 귀엽다.

보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면 우리 대단한 젬이가 스파이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

3층이라 루시아는 창문으로 나가기 힘들지만 날개가 있는 젬은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스으파아이?”

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스파이. 중요한 서류 같은 걸 훔쳐 오는 거지.”

루시아가 검지를 치켜세웠다. 젬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나쁜 사람들을 혼내 줄 수 있는 자료를 찾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았어. 젬이 할 수 있어! 나쁜 사람들 혼내 줘!”

젬이 엉덩이를 쭉 빼고 두 주먹을 치켜올렸다.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다는……. 루시아가 간신히 웃음을 삼켰다. 루시아가 창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길 안 잃고 다녀올 수 있지?”

“그럼! 젬이는 대단해!”

“으응. 파이팅이야! 나는 여기서 기다릴게.”

젬이 루시아의 응원을 받으며 방을 빠져나갔다. 방을 빠져나온 젬은 봉인석의 영향력에서 벗어났고 지금 쓸 수 있는 능력의 최대치를 되찾았다. 젬의 몸이 점차 투명해졌다.

젬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열려 있는 다른 창문으로 쏙 들어갔다.

젬이 코를 씰룩거렸다. 그리고는 열려 있는 다른 창문으로 쏙 들어갔다.

‘신수가 있었던 곳인가 봐. 누구지? 너구리? 곰?’

젬이 고개를 갸웃했다.

냄새는 나는데 아직 능력이 완전하지 않아서 확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젬이 뽈뽈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엇, 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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