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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50)화 (50/90)

#50화.

“예?”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그럼 내가 널 뭐라고 불러야 하는데……?

“마법사는 이브라임, 보좌관은 다비드 경이면서 왜 나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 거지, 아가사?”

나엘이 한 마디, 한 마디를 꼭꼭 씹으며 물었다. 나엘이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이제 그만 화를 풀 때도 된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불렀다고. 나엘이라고 불러. 그 짜증 나는 존댓말도 치우고.”

갑자기 왜 그런 거에 신경 쓰는 거지?

이곳에 다비드와 이브라임이 있어서? 안 그래도 요새 묘하게 부드러워진 나엘 덕분에 불안하던 차였다.

게다가 우리는 계약이기는 해도 약혼까지 하지 않았던가.

“곧 약혼도 하게 될 텐데.”

나엘이 입가를 문질렀다.

“아직도 나한테 화가 난 건가?”

“……제가요?”

“아니라면 대체 왜 그렇게 구는 거지?”

“남이니까요.”

그것밖에 더 있어? 존댓말은 선 긋는 용도로 아주 딱이라고.

“뭐?”

“남이잖아요, 우리.”

왜 요새 자꾸 선을 넘어오려고 하는지 모르겠네.

나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응시했다.

상처… 받은 걸까?

물론, 요새 나엘이 내게 나쁘게 군 건 없었다. 과거의 아가사의 과도한 스토킹도 잘못이라 인정했고.

하지만, 그 이전에 나엘과 아가사가 친구 사이였던 것도 나와는 상관없잖아.

“아가사, 우리는…….”

“왕!”

“멍!”

“캬르르르르르르!”

전혀 다른 세 개의 울음소리와 함께 털 뭉치들이 데구르르 굴러왔다. 히샤와 메리에게 쫓겨온 또리가 내 드레스 끝을 물고 늘어졌다.

“왜, 왜! 무슨 일이야!”

“캬우웅!”

“너네 설마 또리 괴롭히는 거야?”

“깡!”

“캬앙!”

아주 반항기구만.

눈빛부터가 글러 먹었어.

“내가 뭐라고 그랬어! 친구들하고 싸우면 된다 했어, 안 된다고 했어!”

“컁! 캬르르.”

“까아아앙!”

자기들은 잘못한 게 없다는 표정으로 히샤와 메리가 나란히 배를 드러내고 드러누웠다.

그, 그렇게 귀여우면……. 그렇게 코피 나게 귀여우면 내가 봐줄 줄……. 알아, 알지 그럼!

“사이좋게 놀아야 해…….”

이미 전투 의지를 잃어버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언제 싸웠냐는 듯 또리와 히샤, 메리가 금세 사이좋게 달려갔다.

처음 와 본 공간이라 그런지 텐션이 최고치다, 최고치.

모든 게 궁금한가 보다. 우리 귀엽고 깜찍한 댕댕이들.

“이제 하던 이야기, 계속 해도 되나?”

“큼.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조금 멋쩍네.

볼을 긁적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엘이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투두두두둑.

쨍그랑!

“끼이이이잉!”

“잠깐만요. 안 돼, 안 돼!”

안 보이면 무조건 ‘안 돼’를 외쳐야 한다고 배웠다.

안 돼를 외치며 소리를 쫓아간 곳은 그 짧은 사이에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세 녀석이 함께 테이블보를 잡아당긴 모양이다. 그 위에 올려져 있던 식기류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고 샌드위치가 담겨 있던 그릇은 깨져 있었다.

누구랄 것 없이 셋 다 범인이네. 하.

머리를 짚었다.

그래, 인간 잘못이지. 왜 여기서 샌드위치를 먹겠다고…….

먹었으면 치워야지. 뭘 남은 걸 먹겠다고.

“끼잉.”

“깡!”

자기는 아니라는 듯이 결백을 주장하는 히샤와 메리를 옆으로 밀어두고는 몸을 굽혔다.

그런 나를 나엘이 밀어 냈다.

“내가 하지.”

굳이 여기서 옥신각신하며 알콩달콩한 모습을 연출하고 싶진 않아서 깔끔하게 물러섰다.

그래, 니가 해.

나엘이 바닥을 정리하는 동안 한 녀석씩 들어서 다친 곳이 없는지 살폈다.

“그러다가 다치면 어떡하려고 그래. 저거 먹지도 않으면서!”

“끼이이잉…….”

꼬리가 동그랗게 말려서 다리 사이로 쏙 들어왔다.

사고 친 건 아는 거지.

어휴.

다행히 세 녀석 모두 다친 곳 없이 멀쩡했다. 다시 내려놓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장난을 치면서 달려가는 녀석들을 보니 한숨과 함께 웃음이 나왔다.

“정말 귀엽지 않아요?”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나? 이렇게 사고만 치는데?”

나엘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물론이죠. 저 애들은 귀여우려고 태어난 거예요. 할 일 충분히 다 하고 있으니 됐어요.”

“……신수를 두고 그렇게 말하는 것도 처음이군.”

나엘이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자리를 다 청소하고 나니 암시장에 갔던 이들이 상기된 얼굴로 돌아왔다.

나엘을 보았지만 그는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아가사, 우리는…….’

그 뒤에 하려고 했던 말이 뭘까. 소꿉친구? 악연? 알 수 없는 관계? 비즈니스 파트너?

뭔 말을 하려고 한 거야.

궁금하게.

“공작님!”

하지만, 울먹이며 달려온 엠마를 두고서 나엘과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정말, 정말 잔인한 작자들이에요! 어떻게 이런 흉악한 짓을…….”

엠마가 테이블 위에 오로라 빛의 액체가 든 병을 내려놓았다.

예로부터 신수를 야생 동물과 구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피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야생 동물들은 빨간 피를 흘리지만 신수의 삶을 윤회하는 이들은 이렇게 오로라 빛의 맑은 피를 흘린다고.

소름이 팔 위로 오소소 돋았다.

말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직접 보는 게 더 충격적이었다.

엠마가 코를 문지르며 비장하게 말했다.

“꼭 잡아서 혼내 주세요, 공작님.”

“약속할게.”

이를 아득 물었다. 방금까지 했었던 생각들이 전부 날아가 버렸다.

지금 중요한 건 뭐다?

이 개자식들 혼꾸녕을 내 주는 거다!

* * *

나엘이 성큼성큼 앞장서서 가는 아가사의 뒷모습을 묘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아까 나누었던 대화들이 나엘의 머릿속을 끊임없이 배회하고 있었다.

‘남이잖아요, 우리.’

분명한 진실이었다.

두 사람을 묶고 있는 약혼은 계약에 의한 일시적인 관계였고 그것을 벗겨 내고 나면 완벽한 남이었다.

왠지 답답한 기분에 나엘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가사, 우리는…….’

그 말 뒤에 어떤 말을 덧붙여야 했을까. 나엘이 생각하는 아가사와 그의 관계는 무엇일까.

그조차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더 이상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나엘보다 앞선 아가사의 긴 흑발이 햇빛에 반짝였다.

나엘은 햇살 아래에서 가장 빛나는 색은 검은색이라고 확신한다. 아가사는 저만의 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으니까.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어허! 앞을 보고 가야지. 놀기만 하면 안 돼요.”

아가사가 신수들을 달래며 환히 웃었다.

저렇게 환히 웃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가. 저렇게 생기 넘치는 아가사를 본 적이 있었던가.

모든 것이 새롭다.

평생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녀를 봐 왔음에도 이제야 아가사를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엘이 입술을 달싹였다.

왠지 닿지 못할 저 먼 곳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왜…….’

나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가사.”

이유 모를 조급함에 나엘이 아가사를 불렀다. 아가사가 의아한 얼굴로 나엘을 돌아보았다.

“무슨 일 있나요?”

나엘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동그랗게 뜬 청명한 보랏빛 눈동자가 새벽의 빛으로 반짝였다. 이 또한 예전에는 모르던 것이다.

아가사가 옅게 미소 지었다.

“왜 그렇게 멍해요, 전하.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데 억지로 나온 건 아니죠?”

“아니야.”

오늘 이 작전은 끝이 난다. 나엘이 데리고 온 기사들은 암거래 상인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이브라임과 떠났다.

그리고 나엘은 아가사와 정예 기사들과 함께 이동 중이었다. 고된 작전도 아니고 금방 끝날 일이다.

피곤할 리가.

그저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 나엘을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아가사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아가사의 앞에는 세 마리의 신수가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며 가고 있었다.

꼬리를 물며 장난을 치다가 주변의 냄새를 맡기도 하고.

그럼에도 착실히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저기서 아무것도 모르는 짐승인 척하는 히샤가 낯부끄러울 뿐이다. 저건 신수 주제에 부끄럽지도 않나.

나엘이 이마를 짚었다. 매번 왜 부끄러움은 그의 몫인지.

꼬리를 배에 달린 프로펠러처럼 돌리면서 아가사를 졸졸 쫓아다니는 걸 보면 이젠 나엘도 헷갈린다.

저게 신수가 맞나?

* * *

루시아가 입술을 우물거렸다. 이런, 제기랄.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욕 한 번 할 줄 몰랐었는데.

몇 번 멜리슨과 어울리고 나니 욕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루시아의 시선은 멜리슨과 그의 일행들을 향해 있었다.

“너 왜 쟤랑 노니?”

주점의 바텐더가 루시아에게 물잔을 밀어 주며 물었다. 루시아가 찬물로 입 안을 적셨다.

대낮부터 술타령을 하는 멜리슨 덕분에 이러다가 제 명에 못 죽지 싶다.

술에 취하지 않는 체질이라는 걸 이번에 새롭게 알았다. 멜리슨과 친구들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루시아에게 아무리 술을 먹여도 그녀는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패배한 건 그들이었다.

“저 루저들이랑 어울릴 애가 아닌데.”

“제가요?”

루시아가 눈을 깜빡였다.

“그래, 너. 저런 것들이랑 어울리기에는 너무 때 묻지 않고 순수하잖니. 물 더 줄까?”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루시아는 바라던 것을 얻지 못했다. 루시아가 멜리슨과 어울리면서 알게 된 건 그가 집안의 천덕꾸러기라는 것이다.

멜리슨의 여자 친구인 척하면서 저택엘 들어가 보고 싶은데.

루시아가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멜리슨은 집엘 들어가질 않는다.

미친놈 아냐, 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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