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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49)화 (49/90)

#49화.

“왜 그런 눈으로 보는데?”

“……아니야.”

이브라임이 어깨를 으쓱했다.

“너 혼자 여기에 남아 있겠다는 거야?”

당당한 자식.

난 공작이고! 너는 마법사야!

어디서 피고용인이 고용주에게.

“그럴 예정인데.”

“위험해질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공작님?”

이브라임이 시니컬하게 웃으며 평소 쓰지도 않던 존댓말을 썼다.

지금 저건 내가 공작이라는 걸 일깨워 주기 위한 발언인 듯한데… 내가 공작인 게 뭐.

“슈타디온 공작을 노리는 검은 손들이 참 많을 텐데. 겁도 없어.”

이브라임이 혀를 찼다. 잠시 볼을 혀로 둥글린 이브라임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돈 달라고?”

이브라임이 눈을 찌푸렸다.

그게 아니면 뭔데?

“손 내놓으라고.”

“아.”

큼.

목을 가다듬고는 손을 올렸다. 이브라임이 마법을 연창했다. 목소리의 울림이 참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그 울림이 가슴에도 닿았나 보다. 기분 좋은 느낌에 웃음까지 새어 나왔다.

“……보호 마법이야.”

이브라임이 말을 이었다.

“위험하다 싶을 땐 나를 불러. 그러면 내가 바로 소환될 거야.”

“고마워, 이브라임.”

이브라임이 멈칫하다가 내 머리를 아주 살살 쓰다듬었다. 마치 바람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이브라임이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야.”

“그래도 고마워.”

이브라임의 뺨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붉어졌다. 고맙다는 말이 낯선 건가.

이브라임이 머뭇거리다가 손을 떼어 냈다. 등을 돌리는 그의 귓불까지 붉었다.

쟤 왜 저래?

진짜 별꼴이네.

* * *

다비드와 엠마가 암시장 앞에 섰다.

“큼.”

다비드가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했다. 이제는 다정한 부부인 척 연출해야 할 때다.

망설이는 다비드 대신에 엠마가 나섰다. 다비드의 팔짱을 낀 것이다.

“자, 이제 가시죠. 다비드……, 아니. 여보.”

다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떨떨하게 엠마에게 끌려 들어갔다.

“여기 보세요, 부인! 이번에 새롭게 들여온 희귀 식물들이 있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죽은 사람도 살려 낸다는 전설의 명약을 팝니다!”

‘전설의 명약’에 혹한 엠마가 방향을 틀려 하자 다비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엠마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건 아닙니다. 신수들의 피를 파는 상인은 단 한 명뿐입니다. 그를 찾기 위해서는 저쪽으로 가야 합니다.”

다비드가 허름한 천막이 있는 쪽을 손짓했다. 이미 암시장의 내부에 대해서는 파악을 끝낸 지 오래였다.

슈타디온의 인맥을 이용하면 이 정도쯤이야. 모두 암시장 상인 한 명은 알고 사는 게 아니겠어?

엠마가 긴장한 얼굴로 다비드의 뒤를 따랐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냥 허름한 천막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꽤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게다가 색이 바래기는 했지만, 색색깔로 칠해져 있었다.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덩치 큰 남자들이 두 사람을 막아섰다.

“무슨 일이지?”

다비드가 엠마의 손을 붙들었다. 아까 망설였던 것과는 딴판인 모습으로.

이곳의 퀴퀴하고 진득한 냄새가 다비드의 기분을 다운시켰지만, 공작님을 실망시킬 순 없었다.

“……거래가 있다고 들었소.”

“무슨 거래?”

신호다. 다비드가 엠마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를 그의 뒤로 숨겼다.

“마엘리스 신의 힘을 빌리고 싶소.”

“그렇다면 제대로 찾아오셨구려.”

엠마가 침을 꿀꺽 삼켰다. 천막이 열렸다.

밖과 달리 안에서는 과하게 달콤한 냄새가 코를 찌르듯이 나고 있었다.

순간 다비드가 엠마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엠마가 그것을 이상한 눈으로 응시했다.

누군가 엠마의 손을 이렇게 잡아준 적이 있던가……?

“손님이 오셨군그래.”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남자가 엠마의 상념을 깨웠다. 남자의 얼굴을 가로지르는 긴 자상이 그의 인상을 좀 더 험악하게 만들었다.

“부인을 참 귀하게 여기시는구려.”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서. 나는 여기에 피를 구하러 왔네.”

마음이 약해……?

‘내가 그런 사람이었구나.’

엠마가 자신의 포지션을 찾았다. 입술을 꾹 깨물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엠마의 아픈 손가락.

‘공작님……!’

엠마의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고였다.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까?”

남자의 질문과 함께 엠마가 펑펑 눈물을 터뜨렸다. 적절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아, 아이가……. 아이가 아파요. 흡, 흐윽……. 우리 아기 좀 살려 주세요…….”

아가사가 식물인간 상태로 한 달간 깨어나지 않았던 시간 동안 매일 했었던 기도를 떠올렸다.

‘제발, 우리 아가사 공작님 좀 살려 주세요……. 우리 아가씨, 우리 공작님……. 그분 좀 살려 주세요!’

* * *

다비드와 엠마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복귀했다. 이브라임이 그 뒤를 따라 돌아왔다.

“어떻게 됐어?”

“내일모레 다시 오래요.”

엠마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잘됐네! 내일모레… 그러면 그 신수의 피를 이용해서 또리가 잡혀 있는 신수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는 거지?”

나엘은 나의 계획에 한 가지를 보완해 주었다.

또리는 강아지 신수다. 특히 후각이 발달해 있다 보니 그것을 이용하면 추격이 더 쉬울 거라고.

“그러면 내일모레엔 황태자 전하도 모셔 와야겠네요.”

엠마가 조금 부루퉁한 얼굴로 말했다. 여전히 엠마는 나엘 안티팬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브라임이 얼굴을 구겼다. 이브라임은 새롭게 떠오르는 나엘 안티였다.

사이 좋게들 지내라니까.

내일모레 엠마와 다비드가 돌아오면 나와 나엘은 그들의 본거지를 추적을 하고, 그사이 이브라임과 나엘의 기사들이 암거래 상인을 체포하기로 했다.

신전에 넘기면 아마 적절한 처벌을 받을 수 있을 거라나.

안 그래도 신전에 매달 거액을 기부하고 있었는데 이럴 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죄인은 벌을 받아야지.

그리고 아무 죄도 없는 신수들은 편안한 파라다이스로 오는 거다. 그리고 생이 다하는 동안 그곳에서 안락하게 지낼 수 있기를.

* * *

긴장되는 이틀이었다. 이곳에서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뛰었다.

이른 아침부터 신수 탈환 원정대는 작전 본부에 모였다.

엠마가 긴장한 얼굴로 바구니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원래 배가 든든해야 안 될 일도 잘되는 법이랍니다.”

엠마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모여 있는 이들에게 간식거리를 나눠 주었다.

샌드위치였다.

나엘과 다비드, 이브라임은 서로에게서 3m 이상 떨어져 있었다. 세 사람을 점으로 해서 이으면 정삼각형이 될 것 같았다.

그래, 개처럼 싸우느니 그게 더 낫지. 서로 다른 차원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한숨을 삼키곤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배고픔을 달래는 데는 제격이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우리를 제외하고 중요한 이들이 더 있었다.

“깡!”

“카르르르르!”

“캉!”

바로 저 친구들이 그 주인공이다. 각자 제 존재감을 과시하며 바닥을 구르며 놀고 있었다.

또리, 히샤, 메리.

오늘의 메인은 또리였지만, 히샤와 메리도 냄새를 곧잘 맡는다고 해서 함께 오게 된 것이다.

뭐가 저렇게 신날까.

좁은 방 안을 쉴 새 없이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하하, 삼총사가 따로 없네.

저 귀요미들을 위해서라도 이 일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가 끝났으면 시작해 볼까요?”

“좋습니다, 공작님.”

다비드가 내게 수긍했다.

“얼른 해치우자고.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브라임이 덧붙였고.

“오늘로 다시는 모일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나엘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나 그 말에 완전 동감. 특히 나엘과 이브라임을 한 프레임 안에 담는 건 지양하고 싶었다.

내 정신 건강에 너무 안 좋아…….

이브라임과 다비드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픽 하고 웃었다. 니들도 싫구나.

“그, 그럼 얼른 출발해 볼까요?”

“네. 그게 좋겠어요.”

다비드가 엠마와 팔짱 꼈다.

“가실까요, 여보?”

“좋아요, 여보.”

이제는 두 번째라고 좀 더 익숙해 보이는 두 사람이 앞장서고 그 뒤에 이브라임이 따라붙었다. 그러다가 이브라임이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보호 마법, 기억하지?”

“위험할 때 널 부르라고? 여기 황태자 전하도 있는데, 뭘.”

이브라임이 눈썹을 씰룩했다.

“내부가 가장 위험할 수도 있어. 내 말 명심해.”

이브라임이 그 말을 끝으로 떠났다. 그러니까. 나엘이 제일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

녀석. 그렇게 나엘이 싫은가.

이브라임까지 떠나자 시끌벅적했던 공간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때, 나엘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아가사.”

“네?”

나엘이 아주 불만스러운 얼굴로 내게 말했다.

“왜 나만 무려 ‘황태자 전하’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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