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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47)화 (47/90)

#47화.

“황태자 전하께선 공무를 수행하시느라 바쁘실 텐데. 제가 대신해도 됩니다. 그럴 능력이 되거든요.”

거기에 이브라임까지 나엘에게 말을 덧붙였다. 되게 친절해 보이는 내용이지만, 그렇지 않은 눈빛과 얼굴 표정으로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지만.

‘너 좋은 말 할 때 빠져.’

나엘이 날카롭게 이브라임을 응시했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이브라임과 나엘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그러는 마법사님이야말로 저택 관리만으로도 바쁘실 텐데.”

다비드가 툭 하고 끼어들었다. 신기한 건 다비드가 저 두 사람에게 절대로 밀리지 않는다는 거다.

오히려 기름을 부었으면 부었지.

“내 비서라도 되나? 별 신경을 다 쓰는군.”

이브라임이 부러 다 들으라는 듯 삐딱하게 말했다. 그와 동시에 방의 체감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여기가 시베리아인가요?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너네 서로 말 섞지 마, 제발.

* * *

첫 번째 회의는 다행히 무탈하게 끝났다. 아니지, 무탈한 게 맞나?

한 마디, 한 마디가 고비였는데. 하. 개성 강한 주조연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으니 계속 부딪혔다. 생각만 해도 멀미 나네.

나엘과 이브라임은 유전자에 서로에 대한 경계심이 각인되어 있는 듯했고.

다비드는 두 사람을 불편하다는 표시를 감추지 않았다.

여자 주인공은 나엘과 이브라임 정도는 거뜬히 다루던데. 내가 루시아가 아니라 그런 건가.

조별 과제에서 팀 구성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내가 또 저 조합으로 어떤 일을 벌이면 사람이 아니다. 메리 동생이다, 동생!

아무튼. 암시장이 열리는 인근에 다 낡아빠진 가게를 인수했다. 작전 본부로 쓸 곳이었다.

자, 그다음은.

“엠마, 쇼핑하러 가자.”

“네?”

엠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엠마는 나보다 체구가 작은 편이었다.

“신.흥.부.자가 입을 만한 옷이 필요해.”

“저, 저요?”

고개를 끄덕였다.

엠마를 데리고 평소에 다니는 의상실로 향했다. 따로 예약을 하고 온 것도 아니었는데 마담이 달려 나왔다.

“어머, 공작님!! 오랜만이에요, 그간 잘 지내셨어요?”

“뭐…….”

왜 이렇게 반겨?

“공작님께서 저희 의상실에서 구매하신 물건들이 품귀 현상을 겪었답니다.”

“……그래?”

이거 인센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그 유명한 완판녀?

그러고 보니 의상실뿐만 아니라 거리에도 전에 내가 입었던 옷과 비슷한 걸 입은 이들이 많았다.

“네! 혹시 이번에도 사교 모임에 참석하실 예정이신가요? 약혼을 하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마담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서?”

“약혼식에서 저희 드레스를 입어 주실 수 있을까요? 사랑과 정성으로 한 땀, 한 땀 수놓겠습니다.”

마담이 눈을 반짝였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지. 지금은 다른 용건으로 온 거거든.”

정신이 쏙 빠졌네. 이러다가 목적을 잊을 뻔했어.

“프라이빗한 공간이 필요한데.”

“모시겠습니다, 공작님.”

마담이 나와 엠마를 바로 안쪽으로 안내했다.

“오늘 여기서 있었던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일은 없어야 해.”

“네, 공작님. 저만 믿어 주세요.”

“앞으로 드레스는 자네에게 맡기도록 하지. 후에 내가 연락을 넣으면 찾아오도록 해.”

마담의 얼굴이 환해졌다. 마담은 내가 하는 말을 톡톡히 알아들었다.

네가 바라는 대로 드레스를 너에게 맡길 테니, 너는 오늘 있었던 일을 함구하여라.

마담이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여기에 있는 엠마의 드레스를 맞추려고 하네.”

마담의 눈이 엠마를 향했다.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지만 마담은 프로답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일 비싸고, 돈 쓴 티 나게 3벌 정도를 맞추려고 하는데. 최대한 빠르게 하면 얼마나 걸리겠나.”

“공작님께서 맡겨 주신 일인데요. 3일 안에 한 벌을 완성시키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2벌은 3주 동안 해 보려고 하는데. 충분하실까요?”

“2주. 모든 걸 2주 안에 마무리 짓길 원하네. 돈은 얼마든지 지불하지.”

찰칵, 촤르르르르르.

돈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마담이 두 손을 맞잡았다.

“어쩜……! 그렇게 하겠습니다, 공작님!”

마담이 엠마의 팔을 다정하게 붙들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시간이 없어요.”

엠마가 끌려 들어가다가 나를 향해 다급하게 눈을 돌렸다.

“고, 공작님……!”

“응. 잘 다녀와.”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는 알지, 후후후.

엠마와 역할이 바뀐 나는 편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그간 나를 수 없이 갈아입히며 즐거워하던 엠마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쿠키를 먹으며 잡지를 보고 있자니 엠마가 나왔다.

“이번 시즌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 디자인입니다. 특별한 레이스를 짜 넣었고……. 소매는 살짝 부풀려서…….”

마담이 노랗게 뜬 엠마를 옆에 세워 놓고 설명을 이어 나갔다.

“흠. 다른 걸 보여 주게.”

“네!”

엠마가 다시 끌려 들어갔다.

그 속에서 비명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나 돌아갈래애애애애!’

* * *

엠마가 잔뜩 지친 얼굴로 마차에서 헐떡였다.

“……저는 집 밖이 왜 위험한지 알게 되었어요.”

“큽.”

“그리고 앞으로 공작님에게 쇼핑을 강요하지 않을 거예요.”

“완벽해. 그런 깨달음까지 얻다니.”

입술을 삐죽거리는 엠마에게 달달한 초콜릿을 내밀었다. 그것을 입에 넣은 후에야 엠마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스트리트를 가로지르는 동안 마차는 극심한 정체를 겪었다.

아무래도 오늘이 금요일이라서 그런가.

커튼을 들추고 밖을 보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루시아!”

익숙한 얼굴이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요새 안 보인다 했더니, 뭘 하고 있는 거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게 수상해 보이네.

문을 열고 루시아를 부르려는 나를 엠마가 붙들었다.

“루, 루시아일 리가요!”

“루시아 맞는 것 같다니까? 저런 머리 색이 흔할 리가 없잖아.”

“아니에요! 저는 전혀 루시아 안 같은걸요! 루시아보다 훨씬 뚱뚱하고, 루시아보다 못생겼어요!”

니들…….

뭔가 있구나.

엠마가 어색하게 나를 향해 웃었다.

“뭘 하려는 거야?”

“커허어어엄!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고 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었다.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위험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저렇게 말하기 싫어하는데. 엠마와 루시아 사이에 내가 모르는 비밀이 생긴 듯했다.

그게 약간 섭섭한 것 같기도 하고. 싱숭생숭하네.

엠마가 머쓱하게 대답했다.

“……네, 공작님.”

나는 이날의 안일함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 * *

한편, 체이스가 황후궁에 막 도착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며칠째 황후궁에 알현을 요청했는데 드디어 그 문이 열린 것이었다.

나엘과 아가사의 약혼 기사를 보고서는 제 것을 빼앗겼단 상실감에 어찌나 화가 나던지.

‘분수도 모르는 황태자 새끼.’

체이스가 발을 굴렀다.

“황성에서 무례하게 구시면 안 됩니다.”

그 모습을 본 시녀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체이스에게 주의를 주었다.

“미안하네, 황후께서는 별다른 말씀 없으신가? 요새 황제 폐하하고 사이는 어떠신지…….”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시녀장이 차갑게 잘라 내며 문을 열었다.

“들어가십시오.”

체이스가 그녀를 흘겨보곤 문 안으로 들어갔다.

선룸 안, 황후는 편안한 모습으로 꽃꽂이를 하고 있었다. 황후의 그런 모습을 보니 하루 종일 온갖 감정에 불탔었던 스스로가 우습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황후 폐하.”

체이스가 입술을 이죽이며 로살린의 건너편에 앉았다.

“지금 그렇게 한가롭게 계실 때가 아니시지요! 슈타디온의 부가 황태자에게 넘어가게 생기질 않았습니까! 당장 어떤 계책이라도……!”

“그 계책.”

로살린이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입술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제게 내놓으라 말하지 말고 체이스가 내놓아 보세요. 황태자는 슈타디온을 얻는 대가로 전쟁을 걸었더군요.”

로살린의 말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아니었다. 얼음 결정을 조각해 놓은 것처럼 차가웠다.

“체이스는 무엇을 걸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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