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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44)화 (44/90)

#44화.

“……어, 딸꾹. 대, 대……. 딸꾹.”

“무슨 사고를 쳤길래 그 모습이십니까?”

이브라임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대마법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마법 반동이지, 뭐.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일에 관여했거든.”

“잘하셨습니다.”

대마법사가 키득키득 웃었다.

하얀 얼굴에 볼우물이 파이자 가뜩이나 어린 얼굴이 더 어려 보인다. 마법 반동을 일으킬 만한 일이면 스케일이 컸다는 건데…….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브라임이 혀를 짧게 찼다.

“여기는 무슨 일이야, 아들? 절대로 안 올 것처럼 굴더니. 얼마 전에 마탑을 뛰쳐나갔다며? 마탑주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찾아왔더라고.”

“그럴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마탑주 말로는 뭐에 홀린 것 같았다고 했는데. 정말로 뭐에 홀리기라도 한 거야?”

대마법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은 대마법사보다는 철부지 10살에 더 가까워 보였다.

“……아닙니다.”

이브라임의 대답에 델코가 입술을 삐죽였다. 입이 돌아갔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 고양이한테 홀려서 슈타디온엘 들어갔다가 이제는 그 주인에게 홀리고 있는 중이었다.

“뭐, 아무래도 좋아. 젊은 애들이야 이것저것 경험해 보면서 사는 거지. 그래서 왜 찾아왔다고?”

대마법사가 뭔가 다 아는 것 같은 표정으로 물었다.

“……전에 주신다고 했었던 대마법사의 칭호, 그게 필요합니다.”

“뻔뻔도 해라.”

대마법사가 생긋 웃었다.

“어린 인간아. 그건 쉽게 받아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 세계에는 규칙이 있어.”

“압니다. 하지만, 편법도 존재한다는 걸 압니다.”

“그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데는 이유가 있겠지.”

대마법사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 바람에 이브라임이 대마법사에게 끌려갔다.

가볍게 허공으로 떠오른 대마법사가 이브라임의 턱을 들어 올렸다.

이브라임이 지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대마법사의 눈을 맞받아쳤다. 초월적인 존재의 힘에 숨이 막히는 듯했다.

이브라임이 이를 악물었다.

아가사 앞에서 이브라임은 다짐했다. 아가사가 필요로 하는 게 힘이라면 그것을 가져 보겠다고. 이게 가벼운 변덕일지, 아니면 운명의 장난일지는 이브라임도 모르겠다.

3시간 동안 아가사를 보면서 아무리 고민을 해도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아가사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건. 그 여자가 무력하게 황태자에게 끌려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이브라임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부탁드립니다.”

델코가 코를 훌쩍였다.

대마법사가 이브라임의 얼굴을 샅샅이 살피고 있었다. 무언가를 찾는 듯이.

“네게는 원래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 그걸 아느냐?”

대마법사는 인간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그래서 예전부터 이브라임은 대마법사가 하는 말의 대부분을 이해 못 했다.

대마법사도 이브라임이 그의 말을 이해하길 바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대마법사가 빙긋 웃었다.

“…….”

“너는 이미 그중에 하나를 선택한 것 같구나. 세상은 이미 뒤집혔어.”

“대체 무슨 말씀을…….”

대마법사가 기분 좋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대마법사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모든 건 실타래처럼 얽혀 있길 마련이란다. 운명이란 건 더욱 그렇지.”

뚱딴지같은 소리만 늘어놓던 대마법사가 이브라임의 턱을 놓았다.

“새로운 운명에 굴복한 자여.”

대마법사의 눈동자가 금빛으로 응축되었다.

“바라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시련을 피하지 못하리라.”

이브라임이 이를 악물었다. 그 길이 쉽지 않으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거대한 금빛 덩어리가 이브라임을 향해 돌진했다.

그를 집어삼킬 것처럼.

* * *

잠시 뒤, 델코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브라임을 등에 업고 대마법사의 저택을 빠져나왔다.

들어갈 때보다 나올 때가 더 힘들었다. 결계를 비집어 벌렸던 이브라임의 힘이 없었던 탓이다.

“흐어어어엉, 제가 말렸어야 했는데……. 제가 말리질 않아서……. 이브라임 니이이이임……. 저 마법사 만들어 주신다면서요……. 정신 좀 차려 보세요.”

델코에 비해서 장신인 이브라임의 다리가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브라임을 업고 나온 것은 대마법사에게 쫓겨난 덕분이었다.

‘오늘 치는 끝났다. 일주일 후에 또 오라고 그래.’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이브라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원래도 속을 알 수 없는 사수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게다가 아버지라면서!

‘죽진 않았어.’

그런 태평한 말이라니!

델코가 힘겹게 걸었다.

“……업고 가는 거냐, 끌고 가는 거냐.”

“이브라임 님!!”

그간 이브라임과 함께하면서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을 정도로 얄밉다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사직서도 수십 번이나 작성했다. 하지만, 하늘에 맹세코 이브라임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이브라임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쪼그라들어 있던 델코가 허리를 펴고는 이브라임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정신이 드셨어요? 괜찮으세요? 어지럽거나…….”

“휴우. 하여튼 노친네, 적당히를 몰라.”

이브라임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몸을 들쑤시는 힘들 덕분에 여기저기가 쑤셨다.

이브라임이 콧잔등을 긁적이고는 가볍게 스트레칭했다.

“크, 크허어어어엉……. 말투를 보니까 멀쩡하시네요.”

델코가 엉엉 눈물을 터뜨렸다. 저 재수 없는 말투가 이렇게까지 반가울 날이 오다니.

이브라임이 달려드는 델코의 이마를 밀어 냈다.

“……그, 그런데 대마법사님은 대체 몇 살이세요?”

델코가 누르지 못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몰라. 자기도 나이 세는 걸 잊어버려서. 몇 살이랬더라.”

“……대체 뭐 하시는 분이시길래……?”

“몰랐어? 대마법사, 드래곤이잖아.”

이브라임이 그것도 몰랐냐는 듯이 대꾸했다.

드래곤?

드래곤이요……?

세상에…….

델코가 거품을 물곤 스르륵 쓰러졌다.

그렇게 이브라임과 루시아가 새로운 운명으로 접어들었다.

* * *

약혼은 약혼이고.

언제까지 이렇게 끌려다니기만 할 순 없지. 더 이상 땅만 파고 있을 수가 없어서 털고 일어났다.

세상은 항상 힘 있는 자들의 편이다. 이전에 생각했었던 대로 어떻게 해야 나의 ‘힘’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아니, 그런데 사업이 처음인데 그게 쉽겠느냐고. 사업의 시작을 ‘물건을 파는 행위’에 놓고 보더라도 그 범위가 정말 넓었다.

뭘 팔 건지.

어디서 팔 건지.

시작 지점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다비드 경하고 논의를 해 봐야 하나…….”

바쁜 사람 귀찮게 하기 싫었는데 맨땅에 헤딩하려니 골만 깨지는 느낌이었다.

역시 사업은 아이템이야.

창의성 없이는 뭣도 하기 힘들다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옛날 기록이라도 뒤져 볼까.

음?

이거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온고지신이라는 사자성어도 있잖아?

과거로부터 배움을 얻을 수도 있는 거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별안간 눈이 마주친 엠마가 깜짝 놀랐는지 뒤로 물러섰다.

“엠마.”

“네, 공작님.”

엠마가 생긋 웃었다.

“내가 뭘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시는 건가요?”

엠마의 목소리가 살짝 격앙되었다.

“역시! 공작님께서는 기억을 잃으셨어도 슈타디온의 핏줄이신 게 분명해요!”

뭐, 슈타디온에는 사업적 DNA라도 있는 건가. 왜들 이렇게 호들갑이야?

“슈타디온의 지난 기록들을 볼 수 있을까? 신문 기사도 괜찮고……. 어, 아무튼. 슈타디온의 발자취 같은 거?”

“음……. 사업 쪽으로 보시려는 걸까요?”

“그렇지!”

역시 말하면 딱 알아듣는다니까. 엠마 같은 유능한 하녀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제가 가져오는 것보다 공작님이 가시는 게 나으실 거예요.”

처음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리고 나는 비밀의 문을 열었다.

거대한 슈타디온의 비밀을.

“이, 이게 다……?”

“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싹 다.”

팔랑.

어디선가 떨어졌을지 모를 종이가 머리 위로 날아왔다. 기록서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꽂을 자리도 모자랐는지 터질 것처럼 보였다.

책장을 두고 터질 것 같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저기는 첫 사업이었던 방직 사업에 대한 기록. 그리고 여기는 광산 사업, 그리고 저쪽은…….”

엠마가 친절하게 여기저기를 짚어 주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업체를 축소하였지만요.”

“그, 그래?”

“네! 재산이 더 이상 감당 안 되기 시작했을 때 선선대 공작님께서 정리하셨어요.”

“아, 아하……. 그럼 그 사업체들은 어떻게 됐는데?”

“매각하셨지요. 그것으로 또 부를 이만큼.”

엠마가 손끝을 휘둘러 커다란 원을 그렸다.

“아, 아하…….”

와우.

사업 DNA가 정말로 흐르고 있었네……. 나, 잘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러다가 완전 대박 나면 어떡해?

“작게 취미 삼아 하시려는 거지요?”

사업을 취미 삼아서 해……?

나는 떨리는 눈으로 엠마를 응시했다.

“어, 음… 굳이 하실 필요 없는 일을 하신다고 하시니 설마 해서요…….”

“아, 아하…….”

이게 바로 망해도 3대는 간다는 재벌들의 비결이로구나.

“무엇이든 공작님은 잘 해내실 수 있을 거예요! 슈타디온의 핏줄이시니까요.”

엠마가 내게 파이팅을 외쳐 주었다. 그래, 파이팅…….

하지만, 인생에는 타이밍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내게 제동이 걸리는 일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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