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40)화 (40/90)

#40화.

“아가사? 이번엔 정식으로 약혼을 진행하겠다고?”

“그렇습니다, 폐하.”

“흠.”

황제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하필 아가사 공작이지?”

“가장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슈타디온과 결혼을 하게 되면 가문의 부와 작위는 전부 황실의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건 군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겠지요.”

“군자금?!”

황제의 눈이 커졌다.

그거야말로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다. 황제는 일을 벌일 줄만 알지 그것을 주워 담는 것은 그의 보좌관들의 몫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신전이나 다른 기구들을 쥐어짜서 군자금을 충당하는 실정이었다.

“그렇습니다, 폐하. 사실 슈타디온 공작이 저를 향한 연심을 내비친 건 모두가 아는 사실 아닙니까. 분명 약혼만 해도 제 뜻을 따라 줄 겁니다.”

나엘이 부드럽게 황제를 달랬다. 황제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충분히 당근을 내밀었으니…….

“폐하, 지금 아가사 공작을 향한 수많은 청혼서가 날아들고 있다고 합니다. 빠른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이번엔 채찍이다. 나엘이 황제를 채근했다. 황제가 입술 새로 신음을 흘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엘의 말에 틀린 데가 없었다. 이내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내가 허락하마.”

됐다.

* * *

아가사가 울면서 돌아온 사건은 여러 가지 새로운 결과를 초래했다.

“델코!”

이브라임이 급하게 델코를 찾았다. 농땡이를 피는 이브라임을 대신해서 보고서를 쓰고 있던 수습 마법사 델코가 고개를 쓱 하고 내밀었다.

“네, 이브라임 님.”

“물어볼 게 있어.”

이브라임이 다급하게 말했다.

“말씀하세요.”

“누가 울었어.”

“……? 그런데요?”

“누가 울었다니까?”

“그래서요.”

“기분 좋아지게 만들어 주고 싶은데.”

“혹시 운 게 젤리예요? 아니면 다른 고양이거나.”

“인간이야.”

델코가 말도 안 된다는 눈빛으로 이브라임을 응시했다. 이브라임이 타인의 기분에 신경을 쓴다고? 하늘이 오늘내일 중으로 무너지려고 그러나.

델코가 창밖으로 하늘이 멀쩡한지 확인하고 되물었다.

“그 ‘인간’이 여자예요?”

델코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맞아. 그게 중요해?”

“……중요하죠!”

드디어 우리 마탑 최고의 히스테리 남이 연애에 눈을 뜬 건가! 이건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었다!

연애에 기운을 소진하고 나면 덜 지랄맞아지겠지!

“흐음.”

델코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서성거리며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여성분이 울었다면… 혹시 이브라임님이 울리신 건가요?”

“날 어떤 사람으로 보는 거야?”

“…….”

델코가 별다른 대꾸 없이 이브라임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걸 몰라서 묻는 거야?

하긴. 자기 객관화가 덜 된 사람이었지. 사회화도 덜 됐고.

“어쨌든. 여성분이라면……. 쉽죠. 선물을 드리는 거예요.”

“선물?”

“마법사라는 이점을 충분히 활용해서요. 작은 정성이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랍니다!”

델코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이브라임에게 자세한 방법을 일러 주었다.

제발, 우리 이브라임 님 연애하게 해 주세요!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 * *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나 좀 내버려 두라니까.

하지만, 끈질기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누구세요.”

“나야, 이브라임.”

이브라임?

이브라임이 내 침실에는 웬일이람. 이브라임을 침실에 딸린 선룸으로 안내했다.

“무슨 일이 있어?”

“앉아서 얘기하지.”

이브라임이 제집처럼 소파를 차지하고 앉았다.

나의 힐링 도우미들이 이브라임 주변을 맴돌았다. 또리와 메리, 젤리가 오랜만에 한 곳에 모였다.

요새 들어 젤리는 이브라임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게 이브라임의 노력의 결실인 거지.

‘젤리도 이브라임하고 함께 가는 게 더 행복할까.’

묘한 심정으로 젤리를 힐끗 보았다. 이브라임의 무릎에 앉아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있었다.

종을 흔들어 엠마에게 간단한 다과를 요청하자 금세 준비되었다. 이브라임은 고상한 찻잔을 사약을 보듯이 노려보다가 단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이브라임답네.

“무슨 일이야?”

“……줄 게 있어서.”

이브라임이 머뭇거렸다.

“줄 거?”

“큼.”

이브라임이 엄지와 검지를 맞부딪혔다.

펑!

아주 작은 소리와 함께 연기가 동반되었다.

“……장미꽃?”

“이게 끝이 아니야.”

이브라임이 이번엔 손뼉을 쳤다. 장미꽃이 사라지고 흰 연기와 함께 무언가가 찰랑 소리를 냈다.

이게 무슨 재롱 잔치야.

이브라임의 손에 늘어진 것은 목걸이였다.

“……?”

“델코가 추천해 준 건데. 여자라면 반드시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뭐?”

이브라임이 혀를 차고는 목걸이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목걸이가 왠지 모르게 웃음을 자아냈다.

“……델코한테 물어보는 게 아니었는데.”

이브라임이 답지 않게 멋쩍은 얼굴로 뺨을 긁적였다. 그 모습에 입 사이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풉.”

“웃었네.”

“이런 건 연인한테나 해 주는 거지.”

“어쩐지.”

이브라임이 피식 웃었다.

“어쨌든, 가져.”

“왜?”

“보고 웃었잖아.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졌다면 저 선물은 어떤 의미든 간에 제 할 일을 다 한 거지.”

이브라임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 기분엘 왜 신경 써?”

“당연히 고용주의 기분을 살피는 건 피고용인의 기본 소양 아니겠어?”

너한테 그런 감성이 있었다니…….

“게다가 집주인이기도 하고.”

이브라임이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너 주려고 산 거니까 네가 아니면 가질 사람도 없어. 비싼 건 아니야.”

비싼 건 아니래도 감회가 남달랐다. 누군가에게 이런 선물을 받아 본 것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었으니.

그리고 날 위해서 이런 이벤트를 해 준 사람도 처음이었고.

“……고마워.”

이브라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운 것 알면 울지 마.”

“안 울었어.”

“그렇다고 쳐 줄게. 아무튼 울지 마.”

참 이상한 일이다.

이브라임은 내게 확실히 위로가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 * *

그리고 아가사의 눈물에 대해 신경 쓰고 있는 이들은 더 있었다.

아가사 공작이 울었다.

왜 운 거지?

루시아가 이를 뽀득 갈았다.

긴장하기는 했어도 당차게 신전으로 들어갔었던 아가사가 울면서 나왔다.

누구랑?

황태자와.

그리고 그 이전에 황후와 황자, 마지막으로 체이스가 나왔다.

‘누가 우리 공작님을 울린 걸까? 대체 누가…….’

루시아가 바닥을 나뭇가지로 득득 긁었다. 루시아 주변을 젬이 맴돌고 있었다.

코를 씰룩거리며.

루시아의 주변으로 먹구름이 피어올랐다.

“공작님이 왜 그렇게 우울해하셨을까……?”

털썩.

루시아가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그녀의 옆에 주저앉았다.

“엠마?”

“니가 같이 신전에 다녀왔잖아, 루시아. 우리 공작님 왜 우셨니?”

엠마가 부릅뜬 눈으로 물었다. 커진 눈에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내가 알 수 있는 길이 있어야지. 거기에 누가 있었던 거야? 황후 폐하랑, 체이스……. 혹시 그 더러운 놈이 우리 공작님한테…….”

“그런 건 아닐 거야.”

“왜?”

“그 자리에 황자 전하하고 황태자 전하도 계셨거든.”

엠마의 귀에는 한 단어만 들렸다.

“황태자 전하? 황태자 전하가 그 자리에 오셨다고?”

“그래, 황태자 전하도 계시긴 했지……?”

맞아, 그랬지.

엠마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고 보니 아가사가 신전에 가기 전에 황태자에게 와 달라고 했었지!

그 자리에 황태자가 있었구나!

맙소사. 결국 일이 터졌구나.

엠마는 여전히 아가사의 감정에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든지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엠마가 눈을 질끈 감곤 머리를 짚었다.

이걸 어떡하냐.

아무래도 아가사가 황태자에게 다시 반한 게 분명했다.

“왜, 왜 그래?”

“황태자 전하가 울리신 게 분명해.”

“뭐?”

“공작님이 또다시 황태자 전하가 좋아지신 거지! 그런데 황태자 전하께서 공작님을 거부하시니까…….”

루시아가 멍하니 엠마를 응시했다.

“그러니까 우신 거야. 원래도 그러셨다고. 황태자 전하 때문에 우신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 매일 멀쩡한 얼굴로 돌아오셔서 혼자 남으시면 펑펑 우셨다고.”

엠마가 음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밖에서 못 참으실 정도로 상처를 받으신 거지.”

아주 제대로 잘못 짚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려 줄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루시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듣다 보니 엠마의 말이 맞는 것도 같다.

“……그럼 어떡해?”

엠마가 눈을 소매로 닦았다.

“어떡하긴! 남은 건 피의 복수뿐이야.”

아주 비장한 얼굴로 엠마가 말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물기가 흥건하던 눈동자가 분노로 번뜩이고 있었다.

“무슨 수로?”

엠마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던 엠마의 입술이 열렸다.

“우리 공작님이 황태자 전하를 만난 게 왜인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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