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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37)화 (37/90)

#37화.

너무 상쾌한 대답이었다. 쟤가 요새 엠마랑 붙어 다니더니 물들었나……. 우리 집 하녀들은 왜 죄다 황태자 안티들 뿐이야?

“공작님한테 한 것만 봐도 최악이에요! 과거엔 그렇게 창피를 주고, 상대도 안 해 주더니. 요새는 갑자기 왜 그러신대요? 정말 이해가 안 가요.”

루시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어?”

“……사실 사용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좋은 분이 맞아요.”

“그, 그렇지! 그렇잖아.”

“그런데 제 남자가 된다고 하면… 싫을 것 같아요.”

루시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무언가 미련 하나 없는 후련한 얼굴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이거 완전 똥망했는데요?

[그러게. 누구 덕에 망한 것 같네.]

음습한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를 아무도 듣진 못했지만.

[정말 대단해.]

비꼬듯 이죽거리던 음성이 점점 잦아들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 * *

나엘이 편지를 펼쳤다. 나엘의 품 안에 당당하게 자리 잡은 히샤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저번에 철저하게 농락당한 이후로 터득한 방법이었다. 이렇게 하면 히샤도 편하게 편지를 볼 수 있었다.

[호오. 이야기를 하자는데? 계약 약혼?]

“……마음이 바뀔 만한 일이 있나 본데. 신전이라. 아가사가 신전에 갈 일이 있었나.”

나엘이 중얼거렸다.

마차 사고 이후로 아가사는 바깥 외출을 대폭 축소했다. 공식 행사로 바깥에 나온 건 고작 두 번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예배에 참석한다니.

[그런데 나엘, 아가사랑 결혼해? 그럼 나 메리를 매일 볼 수 있는 거야?]

사색에 빠지려던 나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건방진 똥강아지가 함께 있는 한 조용히 생각하는 건 글렀다.

[나는 찬성! 아가사가 만들어 주는 사료도 완전 맛있어.]

히샤가 찹찹 소리를 냈다.

[어어, 갑자기 배가 또 고픈 것도 같고. 나엘, 협상을 하지.]

나엘이 가늘게 뜬 눈으로 히샤를 내려다보았다. 품 안에서 고개를 치켜든 히샤가 당당하게 요구했다.

[지금 사료를 주면 저녁에 반절만 먹겠어!]

하.

나엘이 이마를 꾹꾹 눌렀다.

[정말이야. 내가 약속할게.]

“안 먹는 게 아니라 반절. 그리고 지금은 한 그릇을 다 먹겠다고?”

[그렇지! 나는 지금 평균 체중이야.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다고. 그러니까…….]

헛소리도 참 정성스럽게 한다.

[나엘, 이봐! 내 말이 안 들리나? 이봐!]

나엘이 헛웃음을 흘리며 히샤를 밑으로 내려놓았다. 낑낑 소리를 내며 불쌍한 표정을 하던 히샤가 축 늘어졌다.

[그러면… 내가 한발 물러서지. 지금 사료를 주면 안 따라갈게.]

원래도 데려갈 생각이 없었다. 나엘이 히샤를 번쩍 들어서 집무실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마침 서류를 들고 들어오던 보좌관의 품에 떠넘겼다.

“잘 감시해. 사료 보관 잘하고.”

“네? 네!”

[네 이 노오오오오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히샤가 노호를 내질렀지만, 일반인의 귀에는 그저…….

“끼이이이이이잉!”

으로 밖에 들리질 않았다. 보좌관이 히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금방 돌아오실 거야. 너무 겁내지 마. 황태자 전하한테 빨리 오라고 편지라도 써 볼까?”

[그게 아니야! 저놈을 잡아라!]

버둥거리는 히샤를 보좌관이 꼭 끌어안았다.

“그래, 그래. 얼른 안으로 들어가자. 황태자 전하 빨리 오시라고 기도라도 하게.”

히샤가 분노로 눈을 번뜩였다.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겠어!

* * *

슈타디온의 마차가 신전에 도착했다.

신전은 티끌 하나 없는 흰색의 대리석만 골라서 지어졌는데, 그래서 그런지 유독 더 신성한 느낌을 자아낸다.

함께 들어가려던 루시아가 왠지 거북한 기분에 몸을 물렸다.

“루시아?”

“저는… 저는 밖에서 기다릴게요.”

“어디 안 좋아?”

루시아는 고개를 작게 저었다.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었던 데다가, 아가사는 황후의 부름을 받고 왔으니 더 폐를 끼치면 안 됐다.

“너무 힘들면 마부에게 데려다 달라고 해.”

“그러면 공작님은요?”

아가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타고 갈 마차 하나 못 구하겠어? 아픈 사람이 먼저지. 난 이만 들어갈 테니까 꼭 그렇게 해.”

이렇게 친절한 주인이 또 있을까. 루시아가 어설프게 웃었다.

아가사는 루시아가 마음에 걸렸는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루시아가 젬을 꼭 끌어안은 채로 그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젬.”

젬이 귀를 팔랑거렸다.

“아까 공작님이 그런 질문을 하신 이유는 뭘까?”

젬이 고개를 갸웃했다.

“황태자 전하를 남자로 어떻게 생각하느냐니.”

루시아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공작님이 황태자 전하를 마음에 두신 것 같지?”

젬이 루시아의 손바닥에 얼굴을 비볐다.

“공작님이 혼란스러우시니까 내게 그런 질문을 하신 것 같아.”

그러지 않고서야…….

루시아가 나엘에 대해서 인지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은 민들레 홀씨만큼이나 가벼운 마음이다. 바람결에 얼마든지 흘려보낼 수 있을 만큼.

그래서 루시아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가사는 루시아의 은인이었다. 신원 불명인 루시아를 품어 주고 아껴 주는 사람. 루시아는 그런 사람을 배신할 만큼 나쁘지 않았다.

아가사가 나엘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이상 그녀를 불편하게 할 마음 한 줌도 가지고 싶지 않았다.

“젬, 나는 말이야. 절대로 은혜를 모르는 까치가 되지 않겠어.”

젬이 루시아의 손바닥을 핥았다. 그녀를 응원하는 것처럼.

신전 입구에 있던 루시아의 눈동자에 마침 황태자의 문장이 새겨진 마차가 띄었다.

순간 루시아는 신전의 정원수들 사이로 몸을 완전히 감췄다.

대개 한 번 이성을 눈에 담기 시작하면 주변에 있는 다른 이들이 모두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루시아는 황태자의 반경 10m 안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재차 결심했다.

이렇게 흐름은 아가사의 바람과는 완벽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또 한 번 어긋난 채로.

[제기랄.]

새된 목소리가 욕설을 짓씹었다. 창공에 가려진 커튼 너머의 초월적인 존재가 물레바퀴를 빠르게 돌렸다.

툭, 투둑.

그와 동시에 무형의 실들이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이러다 통제권이 소실되겠어!]

다급한 손길이 끊어진 실들을 붙들었다. 하지만, 힘을 잃은 실들은 황금빛으로 타올랐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이다. 침통한 신음 소리가 하늘 가득히 울렸다.

그 순간, 루시아의 거북함이 가셨다. 가슴을 억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옅어진 기분이었다. 루시아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 * *

한편, 황후와 체이스는 신전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보통 중앙 신전의 아침 예배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그런데 황후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신전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황후 뒤에 앉아 있던 체이스가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체이스.”

황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체이스를 불렀다.

“네, 폐하.”

“이번 일로 나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해요.”

“…….”

황후가 느리게 고개를 돌려 체이스를 응시했다. 가라앉은 차분한 눈빛이 오히려 더 두려운 사람이다.

체이스가 침을 삼켰다.

“나를 여기까지 움직였으면 얻는 성과가 있어야겠지요.”

“……네, 폐하.”

“이번이 내가 체이스에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예요.”

체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후가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투명한 레이스 베일을 머리 위에 드리우고 기도를 하고 있는 황후의 뒷모습은 성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게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 뒷모습을 본 체이스의 눈빛이 묘하게 번뜩였다. 항상 황후는 선을 그어 놓고 그것을 침범하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분명 후회할 날이 있을 겁니다, 누님.’

체이스가 입술을 이죽거렸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부탁하는 입장이니 불만을 표시할 때가 아니다.

체이스가 텅 빈 단 위를 응시했다. 순간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곤 단정한 걸음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황후 폐하.”

아가사. 오늘의 주인공이 도착했다.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그 위에 레이스 베일을 드리웠다. 색채가 짙은 머리카락이라 그런지 그 너머로 비치는 검은빛이 좀 더 은밀하게 느껴졌다.

체이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가사를 이루는 빛은 전체적으로 짙었다. 보라색 눈동자는 매혹적인 향기를 내뿜었으며 마치 정제된 자수정을 보는 듯했다.

예전에는 몰랐던 것들이 보였다. 그 누가 아가사를 이성의 의미로 보았던가.

‘내가 왜 이걸 늦게 알아봐서는!’

체이스가 혀를 찼다.

부와 독한 성격에 밀려 아가사의 외모가 대두되지 않았던 탓이리라.

체이스가 마른 입술을 축였다.

아가사 정도의 재력과 작위라면 외모도 모자랄 법 한데… 모든 게 체이스의 입맛에 딱이었다.

“슈타디온 공작, 오랜만이에요. 내 초대가 무례하지 않았길 바라요.”

황후가 제 옆자리를 두드렸다. 뒤쪽을 힐끗 보고는 황후의 옆에 앉았다.

“오늘은 특별한 미사가 있다고 하더군요. 남부 대륙에서 대현자라고 불리는 신관이 중앙 신전을 방문했는데, 그가 설교를 한다더군요. 공작도 들으면 좋을 것 같아서 불렀어요.”

“아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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