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27)화 (27/90)

#27화.

나엘의 목소리는 차디찼다.

“언젠가 만날 인연이라면 만나겠지. 위험한 일엔 발 들이지 않는 게 좋아.”

마지막 말에 덧붙인 말은 루시아가 아닌 코델리아를 위한 마음이었다. 루시아를 아끼던 코델리아를 기억하고 있기에.

나엘이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루시아의 뺨을 타고 눈물이 투둑 떨어져 내렸다.

“……코델리아 백작 부인.”

입으로는 코델리아를 부르고 있지만 지금의 서러움이 어느 감정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루시아의 반짝이는 마음도 모르고 외면한 나엘에 대한 원망인지, 정말로 코델리아를 걱정하는 마음인지.

덜그럭, 턱.

그렇게 첫 번째 운명이 어긋났다. 아가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조심스럽게.

* * *

마차엔 내가 먼저 도착했다.

곧이어 루시아가 기가 죽은 얼굴로 도착했다. 눈가가 빨간 것으로 보아서는 코델리아를 찾는 데 실패한 것 같았다.

아니, 아니, 아니이…….

이것으로 주인공만 우리 집에 2명이 거주하게 됐잖아.

이게 말이 돼?

심란한 표정으로 유리창에 이마를 댔다.

열기가 그제야 조금 식는 느낌이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세요, 공작님.”

루시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말에 동감하듯 메리가 내 손을 핥았다.

“깡! 깡!”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는 메리의 등을 느리게 쓰다듬어 주었다.

“아니야. 그냥, 피곤해서 그래.”

사실 나의 피곤은 나엘에게서 비롯되고 있었다.

계약 약혼?

이게 무슨… 아니,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나한테 한 말은 맞는 거야?

슈타디온의 힘이 필요해진 건가. 그럴지도 모르지.

데이먼 백작 가가 나한테 껄떡대는 것 같으니까 그러나? 자기가 먹긴 싫어도 남이 갖는 건 아까워서?

그거네.

딱 그거야!

사실 다른 것도 생각해야 할 게 많은데 자꾸 나엘이 머릿속에서 빠져나가질 않고 있었다.

거기 전세 냈냐고.

아니, 그만 나가 주지?

계약 결혼 같은 소리. 절대로 수락할 일 없을 테니까!

뺨을 툭툭 쳐서 나를 일깨웠다.

“……공작님?”

“아, 좀 졸린 것 같아서. 큼, 큼. 코델리아 백작 부인은 못 찾은 것 같은데…….”

“맞아요. 아무도 행방을 아는 이가 없었어요.”

루시아가 눈을 문질렀다.

울어도 예쁜 여자 여기 있네. 이래서 여자 주인공 하는구나. 니가 다 해 먹어라.

“코델리아 백작 부인이 갈 만한 곳은 없고?”

루시아가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모르겠어요…….”

나도 코델리아 백작 부인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과주 사업을 하는 루시아의 지지자 정도.

소설이 시작되기도 전의 일은 알 수가 없었다.

코델리아 백작 부인을 찾아봐야 하나. 코델리아 백작 부인은 나엘하고 연관이……. 아니, 뭐 하러 이런 고민을 해?

나엘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오늘 나엘과 루시아의 만남은 대실패였다. 역시 운명에도 타이밍이 있다는 건가.

뭔가 두 사람 사이에 스파크가 통통 튀는 느낌이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나엘은……. 미친놈.

사실 나엘이 그런 어처구니없는 발언만 하지 않았더라도 그에게 코델리아에 대해서 물었을 것이다.

역시 다시 나엘을 만나서……. 아니, 너도 미쳤구나. 또 만나긴 누굴 만나?

정신 차려!

나엘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암암. 그래도 코델리아를 찾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고민에 빠져 있는데 루시아가 나를 불렀다.

“공작님, 저는 어떡하죠?”

루시아가 울먹이며 물었다.

“뭘 어떡해. 갈 곳이 생길 때까지 공작 가에서 일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약속했잖아.”

한숨을 삼켰다.

루시아와 이브라임.

아니. 여기가 무슨 주인공 위탁소인 줄 아세요?

다시 머리가 아파 왔다. 창문에 이마를 기댔다.

* * *

내 두통은 사라질 일이 없나 보다.

이브라임과 루시아가 한 프레임에 담겼다.

정말 심장에 해로운 광경이네. 루시아는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면서 빗자루를 들고 정원으로 나왔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비질을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이브라임은 정원에 돗자리 깔고 드러누워서 깃털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루시아는 그런 이브라임이 신기한지 주변을 맴돌고 있었고.

“쟤넨 뭐 하는 애들일까?”

“……글쎄요.”

엠마가 고개를 저었다.

“공작님, 그건 그렇고. 어제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던 거죠?”

아니. 왜 자꾸 기억나게 해?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무슨 일이 있었길 바라는 사람처럼 왜 자꾸 물어?”

“큼. 그게 아니라… 혹시나 하는 거죠, 혹시나. 어제 꿈자리가 뒤숭숭해서요.”

“꿈?”

“네! 어제 글쎄, 공작님이 황태자 전하하고 약혼을 한다고 하시는 거 아니겠어요!”

미아리 가서 돗자리 깔아라.

“커흠흠.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황태자가 싫, 싫다니까?”

“……그런데 왜 편지지를 붙들고 고민하시는 거예요?”

엠마가 맨 위에 황태자라고만 적힌 편지지를 눈짓했다. 불안한 얼굴로 내 주변을 서성거린 게 이 편지 때문이었나보다.

“루시아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그러지. 루시아가 황태자궁 출신이잖아.”

“아. 어제 물어보고 오시지.”

“그럴 정신이 없었어. 싫은 사람이랑 있으니까 막 심장이 막. 무슨 말인지 알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엠마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그래서 물어볼 게 있어서 편지 쓰려는 거야.”

엠마가 뾰로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 누가 상전인지 모르겠네.

자, 편지를 쓰자.

아가사, 루시아라도 이곳에서 내보내야지 심장에 덜 해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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