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23)화 (23/90)

#23화.

“네, 이름은 루시아라고 하온데…….”

“렌디아 시녀장.”

“네, 황태자 전하.”

“하녀 루시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나?”

렌디아가 고개를 조아린 채로 머리를 굴렸다. 하녀 루시아, 하녀 루시아.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던가.

사실 코델리아를 투옥시키고 나서 신바람이 난 렌디아는 코델리아와 관련된 인물들은 전부 내쫓았다.

분명 고문을 한 기록을 찾아보면 이름을 찾을 수 있을 테지만 지금 당장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렌디아가 침을 삼켰다.

“그, 그… 찾아보겠습니다. 하지만, 코델리아 부인을 따르던 이들은 전부 궁을 나갔습니다.”

나엘이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황태자 궁이라고는 하나 황태자비가 없는 한 시녀들과 하녀들은 황후의 손에 달려 있었다.

황후는 그것을 파고든 것이다.

코델리아의 얼굴이 흐려졌다.

“황태자 전하, 나가기 전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나엘이 고개를 짧게 끄덕이고는 사람들을 물렸다. 렌디아는 망설였지만 나엘의 서늘한 기색에 물러서야 했다.

“……루시아를 찾아야 합니다, 전하. 그 아이는 특별합니다.”

“자세히 말해 보게.”

“루시아는 돌아가신 황비께서 전하를 위해 준비해 둔 사람입니다. 그 애를 반드시 찾으셔야 해요.”

루시아? 나엘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이름을 주의 깊게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유가 있나.”

“그 애는 첫 번째 성녀였던 성 레시카의 후손입니다. 성 레시카의 성력을 이어받았을 가능성이 높지요.”

성 레시카의 성력은 보통 3세대에 한 번씩 발현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성 레시카?”

“그렇습니다. 그 애를 찾아 제게 보내 주십시오. 그 애는 반드시 황태자 전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엘의 턱이 단단하게 굳었다. 매끄러운 도자기 같은 뺨이 씰룩거렸다.

성 레시카.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인물의 등장이었다. 첫 번째 성녀이자, 마엘리스 신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다고 알려진 자.

“가장 신께 가까운 자를 황후로 맞이하셔야 합니다.”

코델리아의 눈동자는 알 수 없는 열망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희열로 휘었다.

“그 애가 황태자 전하를 가장 위대한 황제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예언을 기억하세요, 전하.”

나엘의 눈매가 은은하게 찌푸려졌다. 이 순간, 어째서 아가사의 얼굴이 떠오르는지 모를 일이다.

‘황태자 전하가 싫어요!’

나엘이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신경 쓰이는 여자다.

* * *

공사가 마무리된 이후로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졌다. 각 신수들은 자신들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갔다.

루시아는 순조롭게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얼른 성력을 각성해서 신전에 들어가야 하는데. 어느 시점에 신전에 들어가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소설이 시작했을 땐 이미 성녀로 각성해 신전에서 생활하고 있던 상태였으니까.

그렇다고 각성까지 신전에 보내기엔……지금도 너무 깊이 엮인 것 같은데. 빨리 내보내는 게 내 안정을 위해서도 좋아 보였다.

만약 지금 당장 루시아를 돌봐줄 사람이 있다면…….

“코델리아 백작 부인.”

코델리아가 황태자의 시녀장이었다고 그랬었고, 알력 다툼에서 져 감옥에 갇혔다 그랬지. 그 과정에서 루시아도 쫓겨났고 그럼 코델리아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코델리아 백작 부인이 사과주 사업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 것은 루시아가 이미 신관이 된 이후였다.

이 사람을 찾으려면…….

“나엘?”

서늘한 얼굴로 내게 말하던 황태자가 떠올랐다. 마차에서 말이다.

‘너는 그것을 대비해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지?’

너무 맞는 말이라서 반박도 하지 못했었고, 동시에……. 정말 잘생겼었지.

게다가 나엘은 분명히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런 사이였다고.

아니, 코델리아 백작 부인에 대해서 알아보려면 아무래도 나엘 쪽을 파 봐야 할 것 같긴 한데…….

왜 멀어지려고 하면 할수록 가까워지는 느낌인지 모르겠네.

부루퉁한 얼굴로 서재 문을 열었다. 오늘의 목적은 서재에 자주 등장한다는 루시아다.

젬이가 서재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덕에 사서는 한바탕 눈물을 지었다. 뭐, 사서를 달래는 건 쉬웠다. 바라는 책이 있다면 얼마든지 사라고 돈을 쥐여 준 것으로 타협했다.

그날 이후로 서재 앞에는 ‘젬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붙었다.

젬이 하나 출입 금지 시킨다고 이게 되겠냐고.

사서의 노력이 가상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루시아, 안에 있어?”

“네!”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물쭈물한 얼굴로 책을 읽고 싶다고 하던 루시아의 얼굴은 활짝 피어 있었다.

나는 최대한 빨리 루시아를 원작으로 돌려보내고 싶었다. 내 파라다이스에 주인공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흑흑.

그나마 루시아가 예뻐서 보는 맛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뭐랄까, 안구 정화에 특화된 외모라고 해야 하나.

“공작님?”

책을 손에 쥐고 루시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제가 도울 일이라도?”

아주 의욕에 넘치는 얼굴로 루시아가 물었다.

“아, 전에 코델리아 백작 부인에 대해서 이야기했었잖아. 루시아가 걱정 많이 했었던…….”

“네!”

루시아가 희망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건 약간의 도박이었다.

“코델리아 백작 부인을 직접 찾으러 가 보는 건 어떨까 싶어서.”

“직접 찾으러……?”

“그래. 황태자 전하를 뵈러 갈 일이 있어.”

사실 그딴 건 없었다.

사료 배달을 내 손으로 직접 할 이유는 없으니까.

“내가 데리고 들어가 줄게. 대신 그다음은 루시아의 몫이야.”

황태자와 루시아가 원작의 흐름보다 좀 더 빠르게 마주치게 하는 것.

사실 두 사람이 빠르게 폴인럽 하는 것만큼이나 안전한 루트가 어디 있어.

이게 바로 내 결론이었다.

소설 주인공이 될 만큼의 운명적인 사랑이면 좀 더 일찍 만난다고 해서 운명이 비틀어지겠느냐고.

왜, 그런 유명한 대사 있잖아.

‘내가 어떤 모습으로, 언제 만났더라도 널 사랑했을 거야.’

그리고 겸사겸사 코델리아 백작 부인도 찾아보고. 이게 바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거지.

나는 계획을 다 세웠는데 루시아는 고민에 빠졌다.

해맑기만 하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내 결심한 듯 답했다.

“……해 볼게요. 제가 할 수 있을 지도 몰라요.”

그래, 넌 할 수 있을 거야.

파이팅!!

내 파라다이스는 너한테 달려 있어!

* * *

다비드가 머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괜히 옷을 만지작거리고 방긋 미소를 지으며 웃는 연습도 했다.

그러더니 심호흡을 하고는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공작님, 저 다비드입니다.”

“아, 다비드 경.”

언젠가부터 아가사는 그를 다비드 경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아주 오만한 얼굴로, ‘다비드’ 혹은 ‘개’라고 불렀었는데.

이건 아마도 아가사가 과거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오늘도 아가사를 볼 생각에 한걸음에 달려온 다비드의 볼이 보기 좋게 익었다.

“오랜만이야, 다비드 경.”

아가사의 반짝거리는 자수정빛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오묘한 청보라색은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눈빛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 다비드는 이대로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감히 해 보았다.

항상 그랬다.

아가사는 다비드에게 빛이며 구원이었고, 거부할 수 없는 경외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작님.”

보좌관인 다비드는 중요한 용건이 있는 게 아니라면 먼저 이곳에 올 수 없었다. 항상 아가사의 부름을 애태우면서 기다리는 거다.

그래서 이따금씩 이렇게 아가사가 그를 불러 줄 때면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가사가 생긋 미소 지었다.

지금 이 미소는 오로지 다비드만을 위한 것이다. 절대로 오르지 못할 나무라는 걸 알지만 이 미소만큼은 간직해도 되는 것 아닐까.

다비드가 애틋하게 미소 지었다.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공작님.

하지 못할 말을 삼키며.

* * *

다비드가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때는 사실 잘 모르겠는데, 다비드를 볼 때면 죄책감이 들곤 했다. 뭐라고 해야 하지. 다비드에게서 아가사를 빼앗은 것 같달까.

그래서 좀 더 친절하게 대하게 된다.

마음이 누그러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큼. 전에 부탁했던 일이 어떻게 됐나 해서.”

“입주 마법사를 구하는 일 말입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

“아!”

다비드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이야기가 잘 마무리되어서 계약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주 안으로 정리하고 공작 가로 들어올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이브라임하고는 완전 안녕인 거네? 후후후후, 이래서 사람이 생각을 하고 머리를 쓰면서 살아야 해!!

“어떤 사람이래? 여자래, 남자래?”

“남자입니다. 그리고 마법 능력이 아주 출중하다고 합니다.”

“직접 본 게 아니야?”

“아, 보좌관이 다녀갔습니다. 마법 실력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우와!”

손뼉을 쳤다.

그 정도면 너무 좋지!

“그리고 또?”

“맡은 바는 확실히 수행하며… 마법사답게 약간 까칠하기는 하다고 하더군요.”

“약간 까칠!”

완전 까칠한 이브라임보다야 훨씬 낫지. 그 정도면 마법사계에서는 양반 아니냐고!

“네, 보좌관의 인상이 선해 보이는 게, 그 윗사람의 인성도 알 것 같았습니다.”

“다비드 경이 하는 일이니 확실하겠지.”

희망찬 미래가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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