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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21)화 (21/90)

#21화.

일단, 나는 주인공들을 최대한 멀리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내기로 했다.

나엘은 사료 배달로 물리쳤고.

요새 찾아오는 빈도수가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공식 일정에서 만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치자고.

내가 그냥 안 나가면 돼.

루시아는 각성하면 신전으로 보내는 게 가장 베스트지만, 다른 방법도 있을 지도 모른다. 신전에 보내려면 각성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건데…….

주인공은 최대한 멀리하자는 게 내 목표 아니었던가.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마지막으로 이브라임.

마탑으로 마법사 파견 요청만 넣으면 달려오는 이브라임이 문제였다. 사실 많은 신수를 보호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그것도 제도에서 말이다.

마법사가 필요할 일들은 아직도 산재해 있었다.

냄새를 제거하는 마법, 신수들의 탈출을 막기 위한 마법, 기타 등등.

이브라임의 난입을 막기 위해서는 역시 입주 마법사를 구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바로 다비드에게 연락을 넣었고 그는 이번에도 열 일 제치고 달려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작님!”

다비드가 환하게 웃었다.

눈 호강 하는구만.

“그간 잘 지냈나?”

“네, 공작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일전에 세일라 대부인의 기일에는 애석하게도 참석하지 못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다비드 경이 나를 대신해서 영지 일을 돌보느라 바쁜 건 알고 있어.”

다비드가 수줍게 볼을 붉혔다.

머쓱해하며 뒷목을 문지르던 다비드에게 말했다.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하나 더 있어서 불렀어.”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공작님.”

다비드의 뒤로 보이지 않는 꼬리가 살랑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다비드가 생긋 웃었다.

“이번에 입주 마법사를 고용하려고 해. 그런 것도 구할 수 있을까?”

“알아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공작님. 하지만, 마법사들이란 게 부르는 게 돈이라…….”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고 진행해도 돼. 필요한 만큼 지원할 거야.”

“그렇다면 열심히 찾아보겠습니다.”

다비드가 내게 두 손으로 파이팅을 해 보였다.

이 모든 건 나의 안락을 위해서다. 휴. 이 정도면 다들 나를 가만히 두겠지?

주인공이 꼬이는 것도 끝날 거다.

그렇게만 되면 처음 꿈꿨던 대로 사랑하는 우리 아가들과 허니꿀잼 라이프를 즐길 수 있으리라.

좋아.

할 수 있어!

나의 파라다이스를… 되찾는 거야!

그런데 다비드가 약간 나를 뭐랄까, 되게 뿌듯한 눈빛으로, 아니다. 복잡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왜 그런 눈으로 봐?”

“공작님께서 황태자 전하 말고 다른 일에 관심을 두시는 게 신기해서요. 요새 황태자 전하에 대해선 전혀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아.”

다비드의 미소가 환하게 번졌다.

“정말로 공작님께서는 벗어나신 거로군요.”

“벗어났다고?”

“네. 그 짝사랑의 굴레 말입니다. 마음이란 뜻대로 되지 않지요.”

“……다비드 경도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나?”

“저는…….”

다비드의 눈동자에 씁쓸함이 맴돌았다. 다비드는 인공위성 같았다. 아가사가 그를 돌아보지 않아도 항상 그녀의 곁을 맴돌았다.

다비드의 감정이 무엇인지 아가사는 알고 있었을까.

“저는… 평생 그 속에 있을 것 같습니다. 노예처럼 발목이 묶인 채로.”

“…….”

“하지만, 저는 불행하진 않습니다. 그분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니까요.”

아가사가 조금만 고개를 돌려 보았어도 이런 애정을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아가사가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지도 않았을 것 같았다.

“그렇군. 다비드 경을 응원할게.”

“……감사합니다.”

물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한 다비드가 표정을 지워 냈다. 감정이 걷힌 그의 얼굴에는 미소만이 남아 있었다.

정말 미안.

* * *

하지만, 인생은 항상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본디 마탑 내에는 동물을 반입하는 게 금지되어 있었다. 털이 날릴 경우에 진행 중인 실험이 엉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브라임은 공사를 마무리 짓고 돌아온 날부터 마탑주, 위원회와 대단한 사투를 벌여야 했다.

젤리를 데리고 오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슈타디온 공작의 허락이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그 허락을 얻어 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먼저 마탑의 인가가 필요했다.

“후우.”

지난 인생 통틀어서 가장 힘든 사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브라임이 얼굴을 문질렀다.

피곤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피곤해 보이는 건 수습 마법사였다.

‘독한 새끼.’

이브라임은 기어이 제 뜻을 관철시켰다.

집돌이, 집순이 마법사들은 외부에서 받은 일을 하는 걸 정말 싫어했다. 그 외부 일정을 한 달 동안 도맡는 대신에 이브라임의 숙소 한정으로 젤리를 키우는 걸 허락받은 것이다.

“대단하세요, 이브라임 님.”

찬탄 반, 비꼼 반이었다.

“후. 뭐가 대단해. 머리가 엉겨 붙은 늙은이들 같으니라고. 연구실에 털이 들어가?”

이브라임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건 젤리에게 마법을 걸어 두면 다 해결될 일이야! 이미 다른 나라 마탑에서는 그렇게들 하고 있다고. 신수가 능력을 잃자마자 제일 먼저 배반한 머저리들 같으니라고.”

“그으…….”

수습 마법사가 하려던 말을 꿀꺽 삼켰다. 저렇게 분노에 들끓고 있는 이브라임에게 무슨 말이 들리겠는가.

“젤리는 자유롭게 살던 신수야. 내 방처럼 코딱지만 한 곳에서 얼마나 답답하겠느냐고.”

“코딱지만 하지는 않죠…….”

이브라임은 마탑에 거주하는 마법사들에 비해서 월등히, 아주 월등히 넓은 방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이건 내 이기심일 수 있어. 내가 젤리를 데리고 오려고 했던 건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 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야. 좀 더 자유롭게.”

사실 이브라임은 젤리만을 위한 유토피아를 상상했었다.

이브라임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길게 늘어진 금발이 하늘하늘하게 흔들렸다.

이브라임은 고양이들 한정으로는 아주 자상하고 배려 넘치는 인간이었다.

“나가서 다른 방법이 있나 찾아봐.”

“네? 제가요?”

“그래! 새로운 집이라도 구하든지. 네 선배가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에 처해 있으면 도와줄 줄 알아야 할 것 아니야!”

인간을 상대로는 아니었지만. 어쩜 저렇게 이기적이고 못돼 처먹었냐. 수습 마법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도 다 운명인 것을.

“……사실, 공작 가에 가 보시는 게 어떠실까 싶습니다.”

“뭐?”

수습 마법사가 고개를 돌렸다.

“수습, 너 무슨 방법이 있는 거야?”

그놈의 수습. 이브라임에게 제 이름으로 불린 날보다 수습이라고 불린 날이 더 많았다. 수습 마법사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에 일간지에 공문이 실렸습니다. 출처는 슈타디온이었고요. 마법사를 모집한다고 합니다.”

그 순간 이브라임은 솜털이 쭈뼛 서는 경험을 했다.

“……마법사를 모집한다고? 입주 마법사를 구한다는 건가?”

“맞습니다. 의뢰할 일이 많으니 그런 거겠지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브라임이 어정쩡하게 얼어붙었다.

“마법사를 구하게 되면 슈타디온에서 파견 요청을 할 일은…….”

“없겠지요.”

그렇게 되면 이브라임이 슈타디온에 갈 일도 없어진다. 어떤 핑계를 대고 공작 가 담을 넘는단 말인가.

젤리의 핑크 발바닥을 꾹 눌러 본다거나, 같이 햇빛 따뜻한 곳에서 낮잠을 잔다거나, 젤리와 하하호호 웃으며 놀이를 한다거나.

이브라임의 모든 꿈은 꿈으로 끝나는 거였다.

“그건 안 돼.”

“네?”

“그 자리에 내가 가야겠어.”

“물론… 그러시면 좋겠지만, 마탑은 어쩌시려고요?”

이브라임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러곤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머리가 꽉 막힌 이 마탑 늙은이들이 뭘 하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제대로 하극상이었다.

“그… 래도, 대마법사님께서는 이브라임 님의 양아버지시기도 하시고……. 그분께서는 이브라임 님이 마탑을 물려받길 바라시지 않습니까.”

수습 마법사가 슈타디온의 입주 마법사 이야기를 꺼낸 건 다른 의도였다. 공작 가와 협상을 할 수 있지 않은가. 무조건 슈타디온의 일은 가장 우선으로 처리할 테니 이브라임을 지정해서 불러 달라.

그런 협상.

그런데 거기에 들어갈 생각을 한다고?

대마법사 뒷목 잡고 쓰러지는 게 보이는 듯했다.

대마법사 또한 마탑주의 자리를 거쳐, 대마법사의 칭호를 받았다. 이브라임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그의 낯을 생각해서라도 이브라임은 그래선 안 됐다.

“그건 아버지 욕심이지.”

이브라임이 차갑게 뇌까렸다.

“내가 바라는 욕심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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