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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13)화 (13/90)

#13화.

저번에 이어서 또다시 훅 하고 들어온 공격에 머리가 어질했다.

‘황태자 전하가 싫어요! 정말 싫어요!’

그게 진심이었다고.

나엘이 느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사가 변했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항상 그를 진절머리 나게 만들었던 아가사는 더 이상 없었다.

[사료 때문에 화가 난 건가?]

나엘이 복잡한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히샤가 책상 위로 가볍게 뛰어올랐다. 히샤가 애교를 부리며 나엘의 뺨을 핥았다.

[너도 먹어 봐. 얼마나 맛있는지.]

“됐어.”

나엘이 히샤를 번쩍 들어서 책상에서 내려놓았다. 나엘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사료 봉투를 노려보았다.

결국, 하얗고 작은 손바닥 위에 돈을 올려놓고 돌아 나와야 했다. 지갑에서 꺼낸 지폐가 아가사의 손바닥 위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었었다.

“빌어먹을.”

나엘이 안경을 벗어놓고 얼굴을 문질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돈 달라고요, 돈!’

진짜.

창피해서 원.

말 잘 듣는 개도 아니고 그 상황에서 손을.

나엘이 깊은 한숨을 한 번 더 내쉬었다. 아가사를 상대할 때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그가 알던 아가사는 없다.

* * *

아가사의 변화가 당혹스러운 자가 있다면, 반면에 아가사의 변화가 좋기만 한 사람도 있었다.

그건 바로 엠마였다.

엠마는 아가사의 기억을 거둬 간 신께 밤마다 감사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아가사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도 잊었지만, 동시에 반드시 잊어야 할 것도 잊었다.

아가사는 더 이상 황태자에게 목매지 않는다.

사실 아가사는 황태자에 비해서 부족한 게 조금도 없는데, 항상 그의 앞에서 약자인 게 너무 싫었다.

‘지가 황태자면 다야.’

엠마가 불경스러운 생각을 품었다. 감정은 뜻대로 되는 게 아니지만, 아가사가 황태자를 포기하고 그녀를 사랑해 주는 좋은 인연을 만나길 바랐었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가사는 더 이상 비밀의 방에 집착하지 않았고, 황태자를 보겠다고 하루 종일 황성에서 죽치고 있던 일도 그만두었다.

게다가 ‘저는 이제 황태자 전하가 싫다고요!’라니. 엠마는 그 말을 수도 없이 곱씹었다.

나엘 황태자를 싫어하는 아가사라니. 이제 아가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으리라.

엠마는 아가사의 앞길을 막고 있었던 건 나엘 황태자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덕분에 요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 엠마의 앞을 베리타 부인과 케르인 집사장이 막아섰다.

“엠마, 진지하게 논의할 것이 있는데 지금 바쁘니?”

“엇.”

엠마가 주눅 든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베리타와 케르인은 이 저택을 관리하는 실세들이었다. 그중에서 베리타 부인은 집안일을 총괄하는 이로서 슈타디온 공작 가의 충직한 가신 가문 출신이었다.

베리타 부인의 한마디에 엠마의 하녀 인생이 결정 나는 것이다.

엠마가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치 죄를 지어서 끌려가는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내가 뭘 잘못한 게 있었나?’

엠마가 두 사람의 뒤를 터덜터덜 쫓아갔다. 하지만, 엠마가 들은 이야기는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엠마, 일주일 후면 세일라 대부인의 기일이다. 기억하고 있니?”

베리타 부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위압감보다는… 연민과 애틋함이 서린 얼굴이었다. 엠마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데 공작님은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 같구나.”

“그게…….”

사실 그게 맞았다. 하지만, 아가사가 기억을 잃었다는 건 엠마와 아가사만의 비밀이었다. 주종 관계에 존재하는 은밀한 비밀이라니.

이건 엠마를 으쓱하게 만드는 사실이기도 했다. 그리고 함부로 누군가에게 공유해선 안 된다는 건 확실하다.

“아마, 요새 하시는 일이 많아서 잊으신 게 아닐까요? 아니면 잊고 싶으신 걸 수도 있어요.”

엠마가 둘러댔다.

베리타 부인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도 무슨 말인지 안다. 세일라 부인과 공작님의 사이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지.”

베리타 부인이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름이 무르익은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새하얀 뭉게구름이 유유자적하게 하늘을 노닐었다.

한숨이 깊은 건 케르인 집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선대 공작 부인께서는 자식 농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셨지. 항상 바깥일에 치중하셨으니.”

케르인 집사장의 얼굴이 흐려졌다. 세일라에게 정부가 있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세일라는 정략결혼을 한 남편보다는 제 정부에게 골몰했었다. 다행히 그 사이에 자식은 없었던 것 같지만.

세일라에게는 제 자식에게 나눠 줄 애정도 별로 없었다.

“그래도 세일라 대부인께서는 공작님을 사랑하셨어요.”

베리타 부인이 날카롭게 받아쳤다.

“그렇지 않으셨다면….”

베리타 부인이 눈가를 일그러뜨렸다.

“그 독한 피임 풀을 항상 복용하셨을 리 없어요. 죽기 직전까지도 놓지 못하셨죠.”

베리타 부인이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어도 최소한 아가사의 자리까지 흔들 순 없지. 내 자식은 하나뿐이야.”

베리타 부인이 느린 목소리로 말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세일라 대부인께서 하신 말씀이에요. 그 심연 속에는 분명 공작님을 향한 사랑이 있었을 겁니다.”

망자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케르인 집사장이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서 헛기침을 했다. 지금 하려던 이야기는 이게 아니다.

“중요한 건, 일주일 뒤에 중앙 신전에서 세일라 부인을 위한 의식이 행해질 거라는 겁니다. 공작님께서… 큼. 아침 예배에 참석하시고, 그 이후에 있을 참배 의식에…….”

집사장이 말을 흐렸다.

케르인이 엠마의 눈치를 살폈다.

“엠마, 알다시피 공작님께서는 선 공작님의 사후 마차 사고를 당하셨잖니. 그 이후로 한 번도 두 분을 찾아뵙지 않으셨지. 사람들 사이에 말이 나오고 있어.”

“……자기들이 뭘 안다고.”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 떠드는 소리지. 그래도 보이는 게 많은 자리에 계시니 한 번쯤은 양보하는 것도 좋지 않겠니.”

엠마가 부루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는 엠마도 동의한다. 데이먼 백작 가도 아가사를 우습게 보고 망나니 차남을 들이밀지 않았던가!

슈타디온이 어떤 곳인지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제가 공작님께 말씀드려 볼게요.”

엠마가 작게 대답했다.

* * *

「마법사 이브라임은 슈타디온에서 온 요청에 응하라. 반드시 응하라, 반드시.」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이브라임은 다시 슈타디온으로 차출되었다. 가장 할 일 없는 마법사라는 이유였다.

사실 이브라임이 할 일이 없는 것은 출중한 능력으로 맡은 일들을 빨리 해치우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무능력한 것들이 일을 미루지.”

이브라임이 신랄하게 말하곤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능력이 있어서 한가한 것뿐인데 또 이런 일을 이브라임에게 미루다니. 돈을 얼마나 받아 처먹은 거야. 명령서 뒤에 붙은 반드시가 아주 거슬렸다.

신경질적인 이브라임에게 이번에도 가련하게 끌려온 수습 마법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 발언 마탑에서는 하시면 안 됩니다. 아시지요?”

“왜?”

“저는 개구리 눈알이 든 스프를 다시는 먹고 싶지 않거든요.”

마법사들의 보복은 중간이 없었다. 이브라임과 마법사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새우등이 터지는 건 그 밑에 있는 수습 마법사의 몫이었다.

“쳇.”

이브라임이 혀를 차고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내리셔야 한다니까요! 그러고 계실 때가 아니에요!”

이브라임이 버팅기는 것을 수습 마법사가 잡아당겼다. 실랑이를 하면서 슈타디온 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입을 떡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고명한 공작 가가 변했다.

“저게 지금 뭘 하고 있는 걸로 보이나?”

“이번엔 어떤 요청이 왔는지 확인 안 해 보셨군요.”

“오면 알게 될 테니까.”

이브라임이 한숨을 내쉬며 긴 머리카락을 높게 묶어 올렸다. 가느다란 비녀까지 찔러 넣은 이브라임이 느긋한 걸음으로 공사 현장을 향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공사를 진행하고 있던 인부가 쾌활하게 인사를 건넸다.

“지금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이 자리에 작은 하천을 만든다고 해서요. 그래서 땅을 파고 있었습니다.”

이브라임이 표정을 구겼다.

하천을 만든다고?

연못도 아니라 하천을?

“하하. 저도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는데 마법사님이 오신다고 하시더라구요! 길만 만들어 놓으면 물을 흐르게 하는 것은 마법사님이 해 주실 거라고.”

“내가?”

이브라임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이쿠! 마법사님이셨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인부가 귀족들 취향이 참 괴상하다며 껄껄 웃었다. 이브라임이 그를 중심으로 타원형을 그리는 물길을 돌아보았다. 순환되기는 하지만 흘러 들어오고 흘러 나가는 곳이 없으니 필히 물이 썩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정화 마법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브라임이 이를 아득 갈았다.

“대체 이게 무슨!”

“안 돼요, 이브라임 님!”

수습 마법사가 돌아가려는 이브라임을 붙들었다.

“여기 슈타디온이에요. 이번 일로 돈을 얼마나 받았는데요!”

“내가 받은 게 아니……!”

“아니시지만 이번에 실험하시면서 마탑 벽을 무너뜨리셨잖아요. 제발요.”

수습 마법사가 눈을 반짝였다. 이브라임의 턱이 불거졌다.

‘성격 파탄자….’

이브라임 덕분에 수습 마법사가 피곤해지는 일이 자주 있었다. 마탑의 성자라고 불리는 외모와는 성격은 정반대였다.

“이러다가 우리 내일은 길바닥에서 밥 먹을 수도 있어요, 이브라임 님.”

이브라임이 인상을 찌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여기 물만 흐르게 하면 되는 겁니까? 정화 작용이랑.”

“엇, 아직 모르시는군요! 아닙니다!”

인부가 환히 웃으면서 조금 먼 곳을 손가락질했다.

“저기에 숲을 조성한다고 하더군요! 지금 한창 나무를 심고 있으니 그것을 키워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이어지는 말을 들으며 이브라임이 점점 분노 게이지를 쌓아 갈 때였다.

니야옹!

작고 미약한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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