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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12)화 (12/90)

#12화.

내 평화를 파괴하던 나엘 말고도 내게는 직면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우리 아가들 복지 문제가 그것이다. 다 다른 아이들을 같은 환경에서 지내게 할 수는 없는 거지, 역시.

게다가 우리 귀여운 수달이 기운 없이 축 처져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공작님, 우리 루나가 기운이 없습니다. 축 처져서는 간식도 거부했어요!’

동물이 간식을 거부하다니.

그건 정말로 심각한 적색 경보였다. 수달은 흐르는 하천에서 자유롭게 수영을 하며 유유자적하게 지내야 했다.

하지만, 이 정원엔 하천까지는 없었다. 정원 한쪽의 정원은 수달이 지낼 만한 환경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달, 루나가 들어온 것은 바로 그저께의 일이었다.

로드고가 장미목을 사러 갔다가 발견했다나. 수달의 목에 고급스러운 리본이 묶여 있었던 것으로 보아서 야생의 수달이 아니라 저택에서 지내던 것이 분명했다.

결정적인 증거는 역시, 허브를 먹는다는 거였다.

‘이러다가 신수란 신수는 전부 이 저택으로 모이겠네.’

어쨌든 루나를 위해서는 새로운 공사가 다급하게 필요했다.

“흐음.”

“무슨 고민을 하시는 건가요?”

엠마가 내 책상을 쓱 하고 들여다보았다. 대충 스케치를 한 것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직 낙서에 가깝기는 한데… 동물원을 모티브로 해서 각 동물에게 알맞은 환경을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참고로 울타리는 없이.

신수였기 때문인지 육식 동물들도 모두 채식을 했는데 심지어 곰도 허브를 뜯어 먹다 보니 잔인한 약육강식이 벌어지진 않았다. 내가 여기서 곰이 풀 뜯는 걸 보게 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느냐고.

“루나가 간식을 거부한대.”

“네?”

“아주 심각해. 루나가 간식을 거부한다잖아.”

이 동네 신수들은 하나같이 풀만 뜯어 먹어서 그런지 과일이나 달콤한 맛이 나는 고구마에 말대로 환장을 했다. 그런데 고구마 간식도 거부했다는 것이다.

“루, 루나가 어디 아픈 건가요?”

“우울증 아닐까? 살던 환경이랑 다르니까.”

아무래도 기적을 일으켜야 할 것 같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것!

“다비드 경에게 연락을 넣어 줘.”

“네, 공작님!”

엠마가 씩씩하게 말했다.

* * *

누가 이 상황 좀 설명해 줄 사람?

기다리고 있던 다비드가 아닌 엉뚱한 사람이 갑자기 찾아왔다.

분명 다시는 안 보기로 하고 헤어진 거 아니었나? 왜 내 눈앞에 나엘이 있는 거지?

자꾸만 내 행복한 허니잼 라이프에 재를 뿌리는 평화 파괴자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문 열어, 아가사.”

“거기서 말씀하세요.”

나는 아직 기분 나쁘다고. 억울한 오해를 받았고 사과도 못 받았다. 물론,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기는 했지만.

아무튼 간에 더 이상 나엘하고 얽히고 싶은 생각은 우리 메리 똥만큼도 없었다.

“후우. 내 개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나엘이 한숨을 내쉬자 앞머리가 흔들렸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공짜로 잘 먹이고 잘 재우고 돌려보내 준 것도 죄야? 죄냐고. 그럼, 고소해~!

“내 개가 밥을 안 먹는군. 절대로 편식을 하는 애가 아니었는데 말이야. 사료에 무슨 짓을 한 건가?”

나엘이 피곤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저변에는 아가사가 히샤를 홀리기 위해서 사료에 뭔가를 탄 게 아니냐는 작은 의심이 깔려 있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아가사가 관심을 끌겠다고 했던 짓들을 생각해 보면.

근데 그럴 리가 없잖아. 도끼병 환자야, 뭐야. 아니라고 그만큼 말했으면 알아들을 때도 됐지!

“그럴 리가요. 저는 결백해요.”

난 일부러 더 차갑게 딱딱거리면서 말했다.

오는 말이 안 고운데 가는 말이 고울 이유가 뭐야.

“……중요한 건 히샤가 밥을 안 먹는다는 거지.”

나엘의 품에 안긴 히샤가 눈을 올망졸망하게 떴다. 나를 보는 그 무해한 눈빛을 나는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엠마. 사료 가져와.”

“네, 공작님.”

샐쭉하게 나엘을 쳐다보던 엠마가 금세 사료를 가지고 나왔다.

밥 안 먹는다며?

엠마가 사료를 주자마자 히샤는 절대로 그런 적 없다는 듯이 사료를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그런 히샤를 나엘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챱챱챱─.

아주 그릇을 다 핥아먹을 기세로 식사를 하고 있는 히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짙은 남색 털을 가진 작디작은 강아지였다. 꼬리는 동그랗게 말려 올라가 있었고 귀는 쫑긋쫑긋했다.

사료를 먹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것을 보니 정말 맛있는 모양이었다.

후우, 편식의 피읖 자도 모르는 것 같은데.

“사료를 바꿔 보시는 건 어떨까요?”

사료를 안 먹는다고? 대체 얼마나 이상한 사료를 주길래.

우리 저택 동물들이 먹는 것은 내가 만든 특제 사료였다. 금수저로 재료를 떠서 아낌없이 넣었으니 맛이 없을 수 없었다.

나엘이 팔짱을 끼고 히샤를 노려보고 있었다.

“정 필요하시다면 사료를 팔아 드릴 수 있어요.”

내가 선심 쓰듯 말하자 나엘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나를 쳐다보는 눈동자는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나한테 뭔가를 부탁해서 얻어 내야 하는 상황이 싫은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하긴… 뭘 해. 내가 그런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이해하고 사과해야 해?

“필요하신가요?”

그래서 난 얄밉게 웃으며 말했다.

나엘은 아무 대답도 없이 히샤의 머리꼭지만 노려보고 있었다. 사료를 금세 먹어 치우고 그릇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히샤를 말이다.

“배달 서비스도 해 드릴게요.”

“뭐?”

나엘이 그제야 나를 보았다.

“사료요. 매달 배달도 해 드릴게요. 그러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요?”

내가 널 볼 일도 없을 테고 말이야. 이건 특별히 너만 해 주는 거야.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거라고.

대신 손을 내밀었다.

나엘이 의아한 듯 나를 보다가 제 손을 내 손에 얹었다. 이게 무슨, 어딜 날로 먹으려고!

내가 그 손을 탁 하고 털어내자 묘한 얼굴로 제 손을 보는 나엘에게 다시 이어 말했다.

“돈 주세요, 돈. 설마 횟집도 아니고 날로 드시려고 한 건 아니죠?”

명색이 황태잔데 백성을 벗겨 먹으려고?

나엘의 눈썹이 다시 한번 꿈틀거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 * *

다비드가 묘한 표정으로 아가사가 늘어놓은 스케치들을 살펴보았다. 아가사가 이전보다는 훨씬 더 생산적인 일에 골몰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아가사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정원사와의 협약으로 인해서 숲은 건드릴 수 없어. 하지만, 동물 중에는 숲에서 지내야만 하는 아이들도 있고, 하천이 필요한 아이들도 있거든.”

“……그건 맞습니다만.”

“그래서 정원의 일부를 숲이나 하천으로 바꿔야 할 것 같아. 내가 대충 구상은 해 봤는데 아무래도 전문가가 필요할 것 같아서.”

“아하.”

다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거의 사막에 숲을 창조하겠다는 것과 같았다. 메마른 땅 위에 물이 흐르게 하겠다니.

마법을 갈아 넣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면 차라리 정원사를 자르시는 건 어떻습니까?”

다비드가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대한 아가사의 답이 궁금했다. 아가사는 동물들을 돌보겠다고 엄청난 돈을 지출했다.

그리고 동물들을 돌보는 인부들을 고용하겠다고 추가적으로 지출을 감행했다.

그런데 아가사가 오히려 자신의 저택을 위해서 일해 주는 사람들을 자른다?

슈타디온의 명성과 스스로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일이었다.

다비드가 숨을 죽인 채로 답을 기다렸다.

“그건 안 돼. 이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어떻게 가문을 위해 일해 준 사람들을 관두게 하겠어? 그리고 정원사의 프라이드도 인정해 줘야지. 엠마에게 듣기로는 최고의 정원사라고 하던데.”

아가사가 진지하게 말했다.

“앞으로도 나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거야, 다비드.”

다비드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사람들이 아가사를 악녀라고 손가락질하고 철없는 여자라고 말할 때, 다비드는 믿지 않았다.

아가사가 상처받아 그러는 것이며 언젠가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다비드가 아는 아가사는 다정하고 따뜻한 소녀였다.

길거리 부랑아에게도 손을 내밀어 줄 정도로.

‘갈 곳이 없어? 아버지, 이 애를 데리고 가요. 내 눈동자를 닮은 것 같아.’

아무렇지도 않게 깨끗한 손으로 다비드를 바닥에서 일으키던 소녀였다.

역시 아가사 속에 그 따뜻한 소녀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 다비드의 믿음은 무너지지 않았다.

다비드가 볼을 붉힌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이상하게 볼이 상기되었다.

숨겨 두었던 설렘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다비드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공작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제가 헛된 발언을 했군요. 마법사를 고용하고 일을 도울 인부들을 구해 보겠습니다.”

“고마워, 다비드. 아! 수의사는 찾았어?”

“네. 곧 올 겁니다. 바다 건너에서 유학 생활을 한 이인데 신수와 동물을 연구한 수의학계의 전설이라 하더군요.”

“좋네. 이번에도 고마워, 다비드.”

“아닙니다, 공작님.”

다비드는 아가사가 지금처럼 지낼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아가사를 최선을 다해 보필할 마음을 먹었다.

그녀가 바라는 건 무엇이든 이루어 줄 것이다.

* * *

나엘이 손에 들고 있던 사료 봉투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후우.”

나엘이 책상을 두 손으로 짚었다. 나엘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히샤가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나엘의 다리에 머리를 비볐다.

[같은 허브라도 향이 다르고 맛이 달라. 너도 맛있는 것만 먹으면서 나도 그러면 안 되는 건 아니잖아.]

히샤가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였다. 신수의 위엄은 어느 집 개한테나 줘 버린 건지.

나엘이 보기 좋게 포장한 사료 봉투를 툭 하고 쳤다.

‘날로 드시려는 건 아니죠?’

손이 아니라 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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