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9)화 (9/90)

#9화.

이번 결혼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전부 얻었다. 데이먼 백작 가에도 그럴듯한 상단이 생겼으니 말이다.

“무슨 수를 쓰려는 거냐.”

체이스가 빙긋 미소 지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어머니께서 남겨 주신 게 있지 않습니까.”

그녀는 죽었지만, 로살린과 체이스에게 가르친 것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체이스는 그것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버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데이먼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만 믿는다. 멜리슨은 어떻게 해야 좋겠느냐.”

“그놈은 좀 더 놀게 두십시오. 큰일에 쓰일 날이 있을 겁니다.”

황자의 나이가 15살을 넘길 때가 되자 누나이자 황후인 로살린은 새로운 대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체스판을 펼쳤으니 말들이 제 자리를 찾아갈 때가 되었다.

* * *

그 데이먼 가의 장녀, 로살린은 황자와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로살린이 알뜰살뜰하게 사일러스 황자의 뺨을 쓰다듬었다.

“사일러스 황자. 오늘도 열심히 공부했나요?”

“네, 어머니.”

사일러스가 순하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머니.”

“응?”

“저도 이제 어른입니다. 이렇게 볼을 쓰다듬는 건 어린이에게나 하는 겁니다. 그러니…….”

“으이그.”

로살린이 사일러스의 뺨을 꼭 꼬집었다.

“귀여운 우리 사일러스. 그런 말을 하는 게 더 어려 보인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가요?”

사일러스가 부루퉁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너무 저를 어린애 취급하세요.”

로살린이 환하게 웃었다.

“나는 우리 황자가 평생 어린아이였으면 좋겠습니다.”

“어째서요? 저는 얼른 자라고 싶습니다.”

“황자가 자라면 많은 일을 하게 될 겁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친구도 생기겠죠. 그뿐일까요? 사일러스 황자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거예요.”

“에이…….”

사일러스가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건 말이 되질 않는다.

“황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 세상엔 경험해 볼 가치가 있는 것들이 참 많답니다. 그런 걸 마주하게 되면 이 어미는 보이지도 않겠지요.”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요.”

사일러스가 똘망똘망한 얼굴로 로살린 황후를 응시했다. 하얗고 말랑한 아들의 뺨을 톡톡 쳐 준 로살린이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요. 사일러스 황자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항상 황자의 곁에 있을 테니까.”

로살린이 사일러스의 이마에 키스했다.

“자, 이제 가요. 사일러스 황자도 다음 일정이 있지요?”

“네, 어머니. 그런데요, 어머니.”

“네.”

“이번 주말에는 형님을 만나러 가도 될까요?”

“그건…….”

“형님을 보고 싶어요, 어머니. 제가 어떤 선택을 하던 응원해 주신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똑똑하게 방금 한 말을 복기하는 아들을 보는 로살린의 눈이 따뜻하게 물들었다.

“그렇긴 하지만……. 이번 주는 안 돼요, 황자. 이번 주에는 할아버님이 황성에 오는 날이잖아요. 형님이 좋아서 할아버님을 외면할 건가요?”

사일러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다음 주는요?”

“다음 주에는 황태자에게 일정이 있어요, 사일러스. 형님께서는 다음 주 주말에 외교 행사에 참석하실 예정이시랍니다.”

“그러면 그다음 주요!”

사일러스가 눈을 반짝였다. 로살린이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좋아요. 그때 황자와 황태자의 일정이 맞는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우와!”

로살린이 사일러스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만 돌아가 보라는 의미였다. 사일러스가 상기된 얼굴로 로살린의 방을 나갔다.

사일러스가 사라진 곳을 보는 로살린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사랑하는 우리 사일러스.”

다정한 속삭임이 바닥에 깔렸다.

* * *

「슈타디온에서 방음 마법을 걸어 달라는 요청이 왔으니 마법사 이브라임은 그에 응하라.」

마탑에서 파견된 마법사 이브라임이 손에 들린 명령서를 구겼다. 이브라임이 질린 얼굴로 혀를 내둘렀다. 이브라임과 함께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논란의 중심에 있는 슈타디온 공작 가에 온 수습 마법사가 말했다.

“저 마차들은 지금 슈타디온으로 식자재 및 건초와 사료 같은 것들을 싣고 들어가는 중이랍니다.”

“슈타디온 공작 혼자 산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마차가 수십 대가 필요할 일이야?”

“요새 슈타디온에서 동물을 수집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수집? 돈 많은 작자들은 별짓을 다 하는군.”

이브라임이 차갑게 내뱉었다. 본디 이브라임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 중에서도 특히 귀족들을 싫어하는 편이었다.

귀족들은 기행을 일삼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면서 그것을 수치스러워하거나 미안해하지 않는다. 자신이 누리는 것들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거였다.

이브라임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길거리 출신인 이브라임은 귀족들에게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을 많이 보았고 그게 이브라임이 귀족들을 혐오하는 이유였다.

그는 개중에서도 슈타디온의 아가사를 가장 혐오했다. 들려온 소문에 아가사는 제가 가진 권력과 힘으로 타인을 괴롭히는 데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브라임 님! 누가 들으면 어쩌시려고.”

수습 마법사가 발을 동동 굴렀다. 이브라임은 마탑에서도 괴짜로 유명했는데 하고 싶은 말은 절대로 참는 법이 없어서 마탑 내에서도 그와 부딪히는 동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나마 신께서 이브라임에게 사람들의 호감을 살 수 있는 외모를 내려 주셔서 천만다행이었다.

성스럽게 느껴지는 짙은 금발과 녹음을 조각내 옮겨 놓은 것 같은 초록색 눈동자, 벌꿀에 담갔던 것처럼 매끄러운 음성, 독설만 내뱉는 것과는 다르게 아름다운 외모.

덕분에 저 인성에도 불구하고 곁엔 사람이 많은 편이었다.

‘신도 불공평하시지.’

수습 마법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전혀 모를 이브라임이 뇌까렸다.

“그래서, 이 저택 전체에 방음 마법을 걸어야 한다고?”

이브라임의 말에 수습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택 전체가 맞습니다. 이미 지불은 끝났습니다.”

“돈지랄도 가지가지군. 그렇게 돈 쓸 일이 없대?”

“그…….”

수습 마법사가 하려던 말을 삼켰다. 무슨 말을 해도 이브라임의 귀에는 닿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시끄러워?”

이브라임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담장 너머에서는 알 수 없는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꽥꽥!”

“깡! 아르르르르, 왈왈!”

“크허어어어어엉!”

뭐, 그런 소리들이 말이다.

“정말로 별종이로군.”

“니야아아옹.”

아주 작게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에 이브라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담장 위를 보았다. 하얀 몸체에 얼룩덜룩한 무늬를 가지고 있는 고양이의 예쁜 노란색 눈동자가 이브라임을 보고 있었다. 그리곤 이내 앞발로 세수를 하듯이 얼굴을 문지른 고양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

“니야아옹.”

세수를 마친 고양이가 식빵 굽는 자세로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에 젤리! 이리 내려오렴. 쥬르 먹어야지?”

“니야옹!”

졸고 있던 고양이가 눈을 번쩍 뜨고는 슈타디온 안으로 뛰어 내려갔다. 이브라임이 침을 삼키고는 수습 마법사에게 물었다.

“……공작이 고양이도 키우나?”

“수도 각지에 버려진 동물들은 다 여기로 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걸요. 고양이뿐만이 아닐 겁니다.”

이브라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젤리, 젤리라고 했지.

‘하, 참. 이름도 참 저 같은걸…….’

그 핑크색 발바닥에 잘 어울리는 바람직한 이름이었다.

* * *

마법사가 다녀갔다더니 방음 마법은 탄탄하게 잘 걸렸다. 사용인들에게 밖에 나가서 동물들 소리가 들리나 확인해 보라고 했는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역시 돈 들인 보람이 있는 거지.

그리고 이 파라다이스를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조심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첫째, 우리 아가들 괴롭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출입 금지야.”

“네!!”

“둘째, 유기된 동물들은 발견 즉시 조심스럽게 모셔 오도록 하고. 잡아 오는 게 아니라, 모셔 오는 거야.”

“네, 공작님!”

버림받은 것도 서러운데 거칠게 대하면 얼마나 속상하겠는가. 한 번 상처받은 이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길 바란다.

“셋째,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도록 하고.”

사용인들이 목을 떨어뜨릴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동물들의 복지를 챙기겠다고 사용인들의 복지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필요한 게 있을 때도 언제든지 찾아와도 돼.”

“네!”

그리고 마지막. 가장 중요한 게 남아 있었다.

블랙리스트.

이곳에 절대로 출입하면 안 되는 사람!

나엘이 여기에 오지 않게 하려면 방법은 하나였다.

“아! 그리고 절대로, ‘히샤’라는 이름의 강아지는 여기 출입 금지야.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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