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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225)화 (460/486)

제225화

‘차분하고 사람 좋기로는 따라올 사람이 없는 우리 아빠가, 지금 뭘 부수고 있는 거지?’

깡- 깡- 깡-.

날카로운 예기를 자랑하는 검이 벽돌로 쌓아 올린 감옥-겉보기엔 황성의 일부와 다름없는-의 벽면을 두드리고 있었다.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벽을 눈으로 훑은 나는 경악하며 입을 벌렸다.

“아빠……?”

“그래, 리니. 아빠 여기 있다.”

“지,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벽 부순다.”

놀란 내게 다정히 웃어 보인 가스파르가 망설임 없이 금이 간 벽을 횡으로 가른다.

쩌저적.

순식간에 밤하늘 아래 놓인 나는 선선한 공기를 맡기도 전에 다급하게 울려 퍼지는 발걸음 소리에 아이고 두야 머리를 짚었다.

“고, 공작 각하! 그만하십시오!”

근위대장의 복장을 한 남자가 아연실색한 얼굴로 아빠에게 달려든다.

“이곳은 황성의 감옥입니다! 죄인을 가두는 감옥에 어찌 검을 들고 쳐들어온단 말입니까!”

노련한 근위대장의 검을 아무렇지 않게 피한 아빠는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우르르 몰려나온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그대들이 죄 없는 내 딸을 구금하고 있었지 않나.”

‘아니, 딱히 구금이라고 불릴 만큼 고생을 한 건 아니었는데.’

내가 어린아이라서 그런지 병사들은 딱히 내게 위협적이거나 모욕적인 언사를 하지는 않았다.

“내 딸은 울기 직전이었다. 그대들 때문이겠지.”

“아, 아녜요! 아빠!”

근위대장을 비롯한 몇몇 병사들은 오히려 조금만 참으면 재판이 열릴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달래기까지 했었기에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손을 뻗었다.

“죽고 싶지 않다면 물러나라.”

하지만 아빠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자신을 막아서는 근위대를 검으로 압박할 뿐이었다.

“대, 대장님, 미친 곰돌이가 날뛰고 있습니다!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황성에 곰돌이라니!”

“인형술사라도 황성에 쳐들어온 것 같다고요! 서둘러 대피령을 내리십시오!!”

허겁지겁 달려온 병사의 말에 아빠의 검을 간신히 막아선 근위대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뢰-이그니스.”

그러나 그가 도망가기도 전에 새빨간 업화의 불길이 근위대를 휘감았다.

쿠쿵.

콰르르륵-! 콰쾅!

나는 비처럼 쏟아지는 마나의 불길에 눈을 홉뜬 채 주먹을 쥐었다.

“이 미친…….”

이런 광범위한 공격마법을 황성 내에서 시전하다니.

이건 내가 프란츠를 죽이지 않았다는 게 밝혀져도 빼도 박도 못 하게 모반죄를 뒤집어쓸 행동이었다.

“메테오.”

불비로는 만족을 못 하겠는지 허공에 붕 떠오른 루카스가 빙글빙글 돌며 중얼거린 단어에 나는 식겁해 목소리를 높였다.

“안 돼! 메테오는 안 돼!!”

죄 없는 사람 다 죽일 일 있나.

나는 전 세계에서 시전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 봤자 다섯도 되지 않을 최상위 마법을 시전하려는 루카스를 뜯어말리다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내 동생한테서 손 떼, 이 새끼들아!”

‘아빠나 루카스뿐만이 아니었잖아.’

아빠의 그림자에 묻혀 보이지 않던 에녹과 실비가 각각 얼음 기둥과 불기둥을 불러내 병사들을 치우고 있었으니까.

“그 더러운 손, 내 동생에게서 치우지 않으면 얼리겠다.”

“이, 이미 얼렸-!”

나는 실비의 경고에 미약한 반항을 하다 꽁꽁 얼어 버린 병사를 녹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틀렸어, 다 틀렸다고.’

평범한 재판으로 무죄를 밝혀내는 방식이 저 멀리 강 건너 둥둥 떠나가고 말았다.

“성질 좀 죽여, 형. 이러면 내가 병사들을 태울 수가 없잖아.”

자신보다 한발 앞선 실비가 병사들을 죄 얼려 버린 게 불만인지 에녹이 한쪽 볼을 부풀리며 인상을 찡그린다.

“헛소리. 애초에 네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나만 빼놓고 또 리니한테 멋있는 척하려고 하는 거잖아!”

나는 목청을 높이는 에녹의 말에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어깨를 떨었다.

‘너네 아무도 안 멋있어!’

“리니, 괜찮아? 형이랑 내가 구하러 왔으니까 떨지 마.”

부르르 떠는 내 몸을 감싸 안은 에녹이 내 등을 다독인다.

“실비, 에녹…….”

“응응. 많이 무서웠지?”

“쓸데없이 사람들 괴롭히지 마!! 대부분의 병사들은 내게 해코지를 한 적도 없단 말이야!!!”

우직- 쾅!

실비의 얼음 기둥을 주먹 한 방에 깨부순 나는 내 고함에 굳어 버린 가족들-루카스를 포함한-을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쳐들어오면 어떡해요? 진짜 범죄자가 되어 버렸잖아!”

“하지만…….”

나는 변명하듯 윗입술을 달싹이는 가스파르에게 눈을 부라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빠, 뒷일은 생각하고 황성에 쳐들어오신 거 맞아요?”

“아니, 안 했다.”

“그럴 줄 알았어!”

“하지만 너는 늘 내가 생각이 너무 많다고 했지 않느냐.”

나는 가스파르의 변명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엑스트라 신세를 벗어나기 위해 조금 더 화끈하게 행동하라며 아빠를 압박한 건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그렇다고 갑자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뛸 줄 알았겠냐고.’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죠. 어서 도망가요.”

나는 잔뜩 주눅이 든 남자들을 애써 달래며 아빠에게 다가갔다.

“황도를 그대로 가로지르는 건 위험할 것 같은데.”

루카스의 중얼거림을 들은 듯 공중에 도약해 황성 외벽에 오른 실비가 인상을 찌푸린다.

“아버지, 황군이 육로를 폐쇄했습니다. 군대를 해치우지 않으면 북부로 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좋다. 돌파하지.”

‘좋긴 뭐가 좋아!’

시원시원한 아빠의 대답에 기가 막혀 내가 입을 벌리는 순간,

“땅에만 길이 있는 건 아니지.”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온다.

“……노엘?”

나는 밤의 장막처럼 어두운 흑발을 흩날리며 내 앞에 선 여자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공녀가 위험에 처한 것 같아서.”

내 얼빠진 얼굴이 우스운지 피식 웃은 그녀가 내 뺨에 손을 올린다.

“구하러 왔다.”

“제가 위험에 처한 걸 어떻게 알았어요? 황성에 있었던 거에요?”

“아니, 감이라고 해 두지.”

노엘의 대답이 믿기지 않아 미간을 좁히는 나를 빤히 내려다보던 그녀가 어깨를 으쓱한다.

“머리가 쿵쿵 울리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있기에 공녀를 찾아 나섰더니, 황성이 난리더군.”

“내 딸을 도와주러 왔다니 일단 고맙다는 말은 하겠네.”

내 볼을 쓰다듬는 노엘의 팔을 재빠르게 쳐 낸 아빠가 서둘러 말을 덧붙인다.

“하지만 네가 위험에 처한 것 같은 느낌은 나도 느꼈다, 리니.”

“나처럼 정확하고 빠르게 느끼진 못했을 겁니다.”

나는 서로를 노려보는 아빠와 노엘을 번갈아 바라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상황에 왜 둘이 경쟁하고 난리람.’

“노엘, 육로가 막혔다면 수로는 있는 거예요?”

내 물음에 노엘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황도에 가까운 항구에 내 함선을 정박해 놨다.”

“하지만 지금 날 도와주면 반군으로 몰릴지도 몰라요. 아니, 확실히 범죄자로 지명될 거예요.”

자신을 걱정하는 내 말의 어느 부분이 우스운지 노엘은 피식 웃으며 멋쩍은 뺨을 긁었다.

“공녀, 눈치채지 못했다면 미안하다만…….”

“네?”

“난 해적이다. 생트로페의 해적놈들을 이끄는 우두머리 중 한 명이지.”

해적인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 악명 높은 생트로페의 해적이라니.

‘생트로페 해적의 수장이라면 신원만 특정되면 무조건 1급으로 수배되는 자잖아.’

“그, 그래요?”

“그래. 다행이질 않나.”

딱히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러니 나를 돕는데 거리낌이 없다며 씨익 웃는 노엘에게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노엘을, 내 아내를 납치한 패거리를 말하는 건가?”

노엘의 정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얼굴을 일그러뜨린 아빠가 곧 내 시야를 가리고 말았지만.

“나는 당신 아내 얼굴도 모르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나를 등 뒤로 숨기는 아빠의 행동이 불쾌했는지 노엘의 목소리에 노기가 섞여 든다.

‘이러다 진짜 싸우겠어.’

나는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아빠와 노엘의 사이를 가르며 목소리를 높였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배에 오르고 나눠요, 우리!”

내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아빠가 재빠르게 말의 고삐를 쥐었다.

“그래, 내 딸의 말대로 중요한 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일 테니.”

‘내 딸을 굉장히 강조하는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크흠.

나는 따가운 노엘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아빠의 등을 답삭 껴안았다.

다행히 프란츠의 서거-가짜였지만-로 황성이 어수선한 데다 한밤중에 울려 퍼진 굉음으로 사람들이 달아나고 있었기에 우리는 눈길을 끌지 않고 황도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말 범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쉴 새 없이 달려 항구에 도착한 우리는 노엘의 안내를 따라 검은 함선 위에 올랐다.

“출항해.”

미리 대기시켜 놓은 선원에게 노엘이 명령하는 순간,

“아, 잠깐만요!”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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