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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223)화 (458/486)

제223화

프란츠의 몸을 압박하고 있는 검붉은 마기와 비슷한 것이 아이네스의 손끝에서 뻗어 나와 내 목을 노린다.

“진심이야?’

나는 서늘한 칼날 같은 마기를 노려보다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나보고 네 오빠를 죽이라고?”

내 물음이 이해 가지 않는다는 듯 내 코앞까지 다가온 아이네스가 커다란 눈을 끔벅인다.

“왜 아이네스가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어.”

천진하게 말하는 아이네스는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같았다.

내 목을 노리는 마기를 거두지 않은 채 활짝 웃은 그녀가 말을 잇는다.

“아이네스, 마지막으로 황제가 해 보고 싶어졌는걸. 이제 곧 이 세상은 종말을 맞이할 테니까.”

종말, 에티모스의 부활만 떠올리면 황홀하다는 듯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 아이네스는 제자리에서 폴짝 뛰더니 곧 미친 사람처럼 갑작스레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제국은 그레고르나 프란츠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아이네스에게는 기회를 안 준단 말이야!”

내가 훅 높아진 아이네스의 목소리에 살짝 인상을 찡그리자, 미안하다는 듯 손짓한 아이네스가 우물우물 입술을 움직인다.

“아이네스가 아무리 강하고 위대한 헬리오스라고 해도 말이야……. 아이네스, 너무 억울해.”

나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울망울망 눈을 빛내는 그녀가 우스워 입꼬리를 올렸다.

“핑계 대지 마, 아이네스.”

“뭐?”

“네가 황위에 오르지 못하는 건 그레고르나 프란츠 때문이 아니잖아.”

내 말에 허를 찔린 아이네스가 눈을 홉뜨며 고개를 든다.

나는 마기로 칭칭 감긴 프란츠를 힐긋하며 피식 웃었다.

“내가 황실 도서관에 꽁꽁 숨겨져 있던 제국법의 원본을 읽었다는 거 잊었어?”

제국법에 따르면 아이네스는 단순히 프란츠가 장남이라서 황위에 오르지 못한 게 아니었다.

“제국법은 섭정을 인정하고 있고, 프란츠가 황위에 걸맞지 않은 인간이라는 게 판가름 나면 언제든 넌 황위에 오를 수 있었어.”

황위를 수행하는 데 문제가 없는 황제를 끌어내리고 황위를 이으려면 대다수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귀족들의 동의까지 얻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겠지.”

그 누구도 아이네스가 황제의 그릇을 품은 후계자라고 생각해 주지 않았을 테니까.

“황위에 걸맞지 못한 인간은 프란츠가 아니라 늘 너였을 거야, 아이네스.”

내 말에 아이네스의 예쁘장한 얼굴이 단숨에 일그러진다.

“입 닥쳐, 레오노라.”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내게 경고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꼿꼿하게 고개를 치켜세웠다.

“넌 황제로서 국민들을 돌보긴커녕, 네 욕심 채우기에 급급했을 거잖아. 사람들은 늘 네 본성을 알아봤을 거야.”

내가 자신을 부러 자극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네스는 고운 미간을 좁히며 내 쪽으로 허리를 숙였다.

“레오노라, 너는 아무것도 몰라.”

촉촉하게 젖어든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아이네스가 말을 돌린다.

“이 망할 책 속 세상에 갇혀 같은 삶만 끊임없이 반복하는 내 고통을, 넌 모른다고.”

그녀가 주장하는 바는 늘 똑같았다.

본인만 괴롭고, 본인만 힘들다.

나는 자기 연민에 빠진 비련의 여자주인공을 올려다보며 짜증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미안하지만, 개 같은 인생을 겪은 건 너뿐만이 아니야.”

“꺄악!”

가녀린 팔뚝을 내 쪽으로 잡아당기자 아이네스의 가벼운 몸이 휙 앞으로 고꾸라진다.

쿵!

나는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아이네스의 등에 잽싸게 올라타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내 무기가 고작 원작 책뿐인 줄 알았어?”

레오노라로 태어나기 전, 나는 평생을 연구실과 전장만 오가며 보냈다.

‘술자의 재능에 눈을 떠 마법을 배우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육체파라고.’

이능을 쓰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아이네스의 여린 몸이라면 단숨에 목을 부러뜨릴 수 있는 기술을 알고 있었으니까.

“이, 이거 놔아!!!”

마법이나 이능의 기본은 체내에 흐르는 마나에 집중해 움직이는 것이었다.

아이네스가 마나에 집중할 수 없도록 기도를 막자 그녀가 커억, 거친 호흡을 흘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놔, 커억, 놔아아-! 이 미친 계집-!!”

아이네스는 잔뜩 쉰 목소리로 나를 욕하며 고개를 뒤틀었다.

뱀처럼 돌아간 목이 거의 180도에 가까웠기에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힘을 풀지 않고 아이네스를 노려보았다.

“프란츠를 놔줘.”

쾅, 콰콰콰콰쾅-!

자신과 신체가 맞닿아 있는 내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할 수는 없는지, 아이네스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마기가 천장을 뒤흔든다.

콰르르르.

나는 내 뺨을 치고 떨어지는 대리석 가루를 맞으면서도 아이네스를 놓아주지 않았다.

“프란츠를 놔줘, 아이네스.”

“커헉! 억!”

더는 목소리를 낼 수도 없을 정도로 손에 힘을 주자, 아이네스는 결국 프란츠를 감싸고 있던 마기를 풀었다.

“말 잘 듣네.”

나는 그녀가 또다시 프란츠를 인질로 잡지 못하도록 재빨리 바닥을 도약해 프란츠를 붙잡았다.

“그러게 진작 듣지 그랬어, 황녀 전하.”

“이, 이이-!!!”

내게 밀렸다는 사실이 분한 듯 발을 구른 아이네스가 뾰족한 눈초리로 나를 노려본다.

“고작 하찮은 엑스트라 주제에! 나와는 눈도 못 마주치던 벌레 같은 계집이, 감히!!”

아이네스는 다시 나를 위협하기 위해 마기를 일으켰지만, 목을 졸라 정신력을 흩트린 영향이 컸는지 쉬이 이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숨만 헐떡였다.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라고!!”

“그만, 이제 그만하거라!”

악을 쓰는 그녀에게 달려나간 프란츠가 팔을 높이 치켜든다.

짜악-!

갑작스러운 프란츠의 공격에 황망한 얼굴을 일그러뜨린 아이네스는 하, 차가운 비소를 터뜨렸다.

“프란츠, 지금 네가 아이네스를 때린 거야?”

“그래, 내가 너를 때렸다.”

붉게 부푼 아이네스의 흰 뺨을 안타깝다는 듯 힐끔한 프란츠는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네가 도대체 무슨 경위로 이런 인간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조심해, 프란츠.”

“네 고통에는 분명 내 책임도 있을 테니까.”

프란츠의 말이 의외라는 듯 눈을 홉뜬 아이네스가 입술을 꾹 깨문다.

“나는 선황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너를 질투해 동생인 너를 제대로 보살피려고 하질 않았다. 이 모든 건 나와 선황의 죄다.”

프란츠는 입을 다문 아이네스의 어깨를 짚은 채 한숨처럼 입을 열었다.

“그러니 공녀는 보내 주거라.”

“……뭐?”

“가족 싸움에 애꿎은 그녀를 끼어 넣으려고 하지 말란 말이다.”

아주 찰나 얌전해졌던 아이네스는 프란츠의 말에 졸음에서 깬 것처럼 팔을 펄럭이며 눈을 부라렸다.

“가족? 지금 네 입에서 가족이란 말이 나왔어?!”

악 깨문 그녀의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 나온다.

“이제 와서 나를 보살피겠다고? 수많은 기회를 그토록 어이없이 흘려보내 놓고!!”

프란츠는 아이네스의 억울함을 들어 주겠다는 듯 무릎을 굽혔다.

“그래. 내가 미안하다. 사과하마.”

그런 그의 머리채를 쥐어 잡은 아이네스가 히죽 웃으며 말을 잇는다.

“프란츠, 아이네스가 아빠 손에 몇 번이나 죽었는지 알려 줄까?”

“…….”

“내가 너무 뛰어나서, 프란츠나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까 봐, 그것도 아니면 내 얼굴이 엄마를 떠올리게 해서!”

퍽!

아이네스는 자세를 바꿔 프란츠의 가슴에 못을 박듯 손을 올렸다.

“혹은 성가셔서, 해적이 보낸 내가 자신의 친딸인지 알 수 없어서!”

퍽! 퍽!

내가 제자리에서 맞기만 하는 프란츠를 바라보다 걸음을 옮긴 순간, 그가 손을 들어 나를 저지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겠지.’

아이네스는 움직임을 멈춘 나를 힐끔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 같잖은 이유로 내가 죽어 나갈 때, 프란츠는 늘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미안하다, 아이네스.”

“너는 늘 겁에 질린 채 숨을 거두는 나를 지켜보고만 있었다고. 그런데 이제 와서 날 돕겠다고? 고작 공녀가 위험에 처해서?”

프란츠의 사과가 와닿지 않는 듯, 날카롭게 인상을 찡그린 아이네스가 손가락을 튕긴다.

“아이네스, 정말 프란츠가 죽여 버리고 싶어졌어. 퀴리오스가 만류하든 말든 그냥 죽여 버릴래.”

지금 느껴지는 살기는 진짜였다.

“안 돼!!!”

나는 희번득 눈을 빛내는 아이네스의 마기를 피해 프란츠를 향해 달려 나갔다.

쿵!

겨우 펴낸 옅은 보호막이 아이네스의 마기를 튕겨 낸다.

“도망가셔야 해요, 폐하.”

나는 프란츠를 돌아보며 재빠르게 속삭였다.

“하지만 저런 상태의 아이네스를 두고 갈 수는,”

나는 안절부절못하는 프란츠의 말을 툭 자르며 인상을 찡그렸다.

“우선 살아남는 게 먼저예요. 소름 돋는 살기가 느껴지지 않으시는 건가요?”

‘아이네스는 진심으로 당신을 죽이고 싶어해요.’

애써 삼킨 말을 알아들었는지, 얼굴을 굳힌 프란츠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인다.

“제 손 잡으세요.”

요리조리 마기를 피하며 몸을 날린 우리가 창문에 다다른 순간,

“꺄아악!”

아이네스의 비명이 사방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아악! 아아악!! 공녀가! 공녀가, 폐하를 시해했어요!!!”

황군이 몰려드는 건 순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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