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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211)화 (446/486)

제211화

내 비뚜름한 칭찬에 자리에서 일어난 미르탄이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는다.

“공녀님, 오셨습니까.”

“탐지, 온(On).”

나는 미르탄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다음 탐지 아티팩트를 가동했다.

작은 벌레처럼 생긴 아티팩트가 파르르 날개를 떨며 날아오르더니 곧 허공에서 검은 눈이 그려진 마도구를 찾아낸다.

나는 검은 눈 마도구에 얇은 종이를 붙이며 미르탄을 돌아보았다.

“어차피 미르탄이 자기들 뜻대로 잘 움직여 주는지 확인할 목적이었을 테니 더는 감시하지 않을 테지만, 혹시 모르니까 가짜 영상을 붙여 놓을게요.”

이제 아이네스가 이 마도구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자괴감에 빠진 미르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을씨년스러운 광경뿐이리라.

“공녀님이 미리 말씀해 주신 덕분입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미르탄 라일은 오러를 이용하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가느다란 실을 내게 건네며 고개를 숙였다.

“공녀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다스리던 영지도, 제 사람들도 전부 잃을 뻔했습니다.”

아이네스는 내가 원작을 통해 자신의 행보를 파악할 수 있다는 걸 모른다.

‘미르탄 라일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내가 제 계획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걸 눈치챌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기껏 북부에 받아들인 미르암 민족이 몰살당하는 걸 지켜볼 수는 없었으니까.

“미르암은 반드시 은원을 갚는다고 했죠.”

“네. 하명하십시오.”

“명령은 아니고, 부탁이 있어요.”

나는 내 앞에 부복한 미르탄 라일을 내려다보다 망설이며 입술을 달싹였다.

“찾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누구든 찾아내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녀님을 뵐 면목이 없으니까요.”

나는 믿음직스러운 미르탄의 대답에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름은 노엘,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레이첼이라는 여자아이와 붙어 다닐 거예요.”

* * *

한차례 순찰을 마치고 공작성으로 돌아온 나는 중정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미간을 좁혔다.

“공녀를 만나러 왔다질 않나.”

“공녀님은 지금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럼 공녀의 응접실에라도 안내해.”

“당신에 대해 공녀님께 들은 바가 없어 안내할 수 없습니다.”

“뭐? 당신? 내가 누군지 알고!”

누군가와 히스가 실랑이를 하는 듯했다.

“너같이 조그마한 애송이가 공녀의 호위라도 되는 건가?!”

나는 격해지는 상대의 목소리에 걸음걸이를 빨리했다.

“무슨 일이야, 히스?”

마침내 중정에 다다른 나를 발견한 히스의 안색이 조금 밝아진다.

히스는 주인을 맞이하는 강아지처럼 내게 쪼르르 달려와 부슬부슬한 머리를 내밀었다.

“기다렸습니다.”

“미안. 내가 조금 늦었지?”

“공녀를 기다리는 시간은 늘 즐거우니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나는 순식간에 얌전해진 히스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불청객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때 그 란테족이네요.”

“또 보는군.”

“그쪽이 날 찾아왔으니까요. 란테족 구역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요?”

내 말에 한 손을 번쩍 든 소년이 씨익 웃으며 말을 잇는다.

“속여서 미안하지만, 난 란테족 따위가 아니야.”

덥수룩하게 이마를 덮었던 갈색 머리가 바닥에 툭 떨어진다.

‘적금발……?’

나는 드러난 소년의 머리 색을 발견하고 두 눈을 가늘였다.

“이제 날 알아보겠나?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한 번 마주친 사이이긴 한데.”

나는 소년의 느긋한 목소리에 흠칫 몸을 떨었다.

대귀족 앞에서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는 당당한 태도.

제도나 예법에 익숙하지 않은 이민족의 특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얼굴만 봐선 잘 모르겠지만, 적금발에 녹안이라면…….’

“설마 프란츠 황제 폐하이신가요?”

“그래.”

나는 내 물음에 의기양양하게 대답하는 프란츠를 올려다보다 허리를 숙였다.

“공식 석상에는 좀처럼 얼굴을 비추지 않아서 존안을 몰라뵈었어요. 송구합니다, 폐하.”

프란츠는 딱딱한 내 인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사과를 받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나는 그대가 나를 반가워할 줄 알았어.”

내가 아이네스의 오빠 따위를 반가워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프란츠의 투정을 못 들은 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외람되지만, 공작성에는 무슨 일로 방문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내 물음에 프란츠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한쪽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는다.

“그대를 황후 후보 명단에는 올렸지만, 공식적으로 청혼하진 않았던 것 같아서.”

“……네?”

프란츠는 자신의 말에 황당해진 내가 말릴 새도 없이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부디 나의 아내가-”

나는 그의 주머니에서 나온 반지 케이스를 손으로 가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잠깐만요, 폐하.”

“어?”

“뒷말은 하지 않으시는 게 신상에 이로우실 것 같은데요.”

‘아주 살벌한 오러가 여기저기서 느껴지는걸.’

물론 가장 가까운 살기는 히스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

히스, 황족을 함부로 죽이면 안 돼!

재빨리 공명으로 히스를 만류했지만,

휘익-!

나는 서슬 퍼런 도끼날이 프란츠에게 날아드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타악.

다행히 검술 수업을 허투루 받지는 않았는지 프란츠는 제 목덜미를 노렸던 곰돌이, 그러니까 루카스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곰돌이는 뭐지? 인형술사가 다루는 건가?”

휘익-! 휘익-!

나는 잡힌 채로도 프란츠에게 작은 도끼날을 휘두르는 루카스의 몸통을 꾹 붙든 채 어영부영 입을 열었다.

“고, 공방에서 개발한 아티팩트예요. 그냥 움직이는 기능만 있을 뿐이랍니다.”

“하지만 인형이 도끼를 휘두르다니 장난감치고는 위험한걸.”

“전 스릴을 즐기는 편이라서요.”

내 성의 없는 대답에 프란츠는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것도 잊었는지 유쾌하게 웃었다.

“역시 공녀는 나랑 통하는 구석이 있어. 나도 좋아하거든, 스릴.”

“아, 그러세요?”

“응. 원수 가문의 여자에게 청혼하는 것처럼 말이야.”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나는 프란츠의 속내를 파악할 수 없어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폐하, 죄송하지만 저는 황후 후보 명단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올릴 수도, 폐하의 청혼을 받아들일 수도 없어요.”

“나는 그대에게 황후 입후보를 강제할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프란츠의 말대로 황제는 황후를 마음대로 고를 수는 없었지만, 입후보를 시킬 정도의 권력은 있었다.

게다가 첩실인 황비 자리에는 황제가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앉힐 수 있었다.

‘그레고르가 만든 악법이었지.’

“그건 정혼자가 없을 경우죠.”

나는 프란츠에게 또 다른 칼날이 날아오지 않을까 주변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공녀에게 정혼자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비밀 약혼이었으니까요.”

“그대의 약혼자가 누구길래?”

나는 프란츠의 불만 가득한 질문에 대답을 망설였다.

‘막무가내로 구는 것을 보아하니 프란츠가 나를 황후로 삼고자 하는 건 아이네스의 뜻이 아닌 것 같은데.’

누구의 이름을 불러야 프란츠를 돌려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소년의 뒤로 익숙한 인영이 툭 튀어나온다.

“그래, 누구지?”

“누군데?”

“내 딸의 약혼자라니 인사라도 해야겠군.”

나는 살벌한 실비, 에녹, 그리고 가스파르의 목소리에 떨떠름히 볼을 긁었다.

‘눈치도 없어? 거짓말인 게 뻔하잖아!’

하고 호통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프란츠 앞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왜 모르는 척이세요. 트리스탄과 약혼했잖아요.”

나는 결국 가장 만만한 트리스탄 솔로아-굴렘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솔로아 공작이 그대의 약혼자였다는 말인가.”

솔로아는 하차니아와 마찬가지로 5대 귀족 가문에 속한 명문가였으니 황제라도 함부로 그에게 접근할 수는 없을 터였다.

나는 허망한 얼굴로 물러나는 프란츠를 확인하고 오빠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들 허튼짓할 생각하지 마. 황제가 귀찮게 굴까 봐 거짓말한 거니까.”

“난 또, 정말 약혼했다는 줄 알고 깜짝 놀라서 황제 죽일 뻔했어!”

“나는 저택을 날릴 뻔했다.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마.”

아니, 내가 약혼하는데 황제는 왜 죽이고 저택은 왜 날려.

“어휴. 한바탕 난리였네.”

나는 성가신 오빠들을 지나쳐 침실에 들어섰다.

“할 말 있어?”

그러자 나를 따라 들어온 히스가 애꿎은 땅만 노려보며 입술을 내민다.

“왜 하필이면 트리스탄 솔로아입니까? 거짓으로 이름을 댈 자는 많습니다.”

‘유독 트리스탄을 질투하네.’

나는 불만 어린 히스의 얼굴이 귀여워서 웃으며 그를 안아 올렸다.

“트리스탄이 제일 적당하잖아. 지금 이 자리에 없는 데다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니까.”

“안아 올리지 마십시오. 저는 아이가 아닙니다.”

히스는 둥가둥가 자신을 안고 흔드는 내 행동이 불만스러운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이렇게 조그맣고 귀여운걸.”

“공녀!”

“알았어, 알았어.”

나는 내가 자신을 귀여워하는 걸 히스가 무척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놀리고 말았다.

이 별거 아닌 장난의 날갯짓이 어떤 폭풍이 되어 내게 돌아올지 알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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