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207)화 (442/486)

제207화

루카스가 사라지던 순간 원작 책은 그의 마나를 흡수했었다.

덕분에 무기인 바주카포로 변했을 때의 위력이 강화되기도 했지만, 책 자체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오픈(Open), 원작.”


미르탄 라일 - 37세

아크레아 출신 소수민족 미르암의 지도자.

주인공인 아이네스에게 종복되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충성하는 조연.

‘청금의 기사’에 버금가는 검술 실력을 지녔다.


현재 아이네스의 시점으로 진행된 사건까지만 볼 수 있었던 전과 달리, 내가 기억하는 ‘진짜 원작’의 등장인물까지 정리된 부록이 생성된 것이다.

‘역시 원작에 등장했던 사람이야.’

부록에서 미르탄 라일의 이름을 찾아낸 나는 마음에 걸리는 문장을 손으로 짚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왜 굳이 종복이라는 표현을 쓴 거지?’

“설마 아크레아 출신이라면 히스랑 비슷한 방식으로 타인에게 종속되는 건가?”

“네.”

내 작은 중얼거림에 언제 방에 들어왔는지 모를 히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깜짝이야! 놀랐잖아, 히스.”

“죄송합니다.”

그는 내 책망에 내가 불러도 대답이 없기에 걱정이 되었다며 짤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미르암 민족의 정신을 제어하는 방법이라면 제가 알고 있습니다.”

나는 히스가 덧붙인 말에 휘둥그레 눈을 뜬 채 소년을 돌아보았다.

‘머리 자를 때 됐나 보네.’

나와 만난 이후로 히스의 키는 조금도 자라지 않았지만, 머리는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덥수룩하게 길어지곤 했다.

“그 방법은,”

푸석푸석해 보이지만 막상 만지면 꽤 부드러운 그의 머리칼에만 집중하던 나는 달싹이는 주홍빛 입술을 틀어막았다.

“아니, 됐어. 안 들을래.”

미르탄 라일이 청금의 기사인 카렌만 한 실력자라면 분명 내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아이네스도 굳이 종복까지 시키며 제 기사로 부렸던 거겠지.’

원작에서는 미르탄 라일을 억지로 끌어들인 아이네스의 악행이 묘사되진 않았지만, 그는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아이네스를 지키는 충성스러운 기사로 등장했다.

“왜입니까.”

내 결정이 의아한 듯 히스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며 입을 연다.

“다양한 문화를 지닌 민족들을 아우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미르암 민족은 특히나 전투력이 뛰어난 집단이라 완전히 제어할 수만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그래선 히스를 이용하던 브리넨 후작과 다를 바가 없잖아.”

나는 히스의 말에 단호하게 대답하며 소년의 부드러운 뺨에 손을 얹었다.

“사람을 물건처럼 이용할 수는 없어. 그렇게 되면 내가 너를 사랑하고 아껴 주기로 결심한 이유가 모순이 되어 버리잖아.”

나는 히스가 병기가 아닌 사람으로 대우받고 살길 바랐다.

미르탄 라일을 아크레아의 주술 따위로 조종해 버리면 나는 아이네스나 브리넨 후작과 다름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거였고,

“나는 네가 의지로 내 곁에 남아 있는 거라고 믿고 싶어.”

히스는 아이네스에게 이용당하는 사람들과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는 거니까.

나는 내 말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입을 꾹 다문 채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는 히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온 김에 차나 마시고 갈래? 티에리가 선물해 준 건데, 향이 무척 좋아.”

홍차를 즐겨 마시는 티에리는 수집한 찻잎 중에 기가 막히게 맛있거나 특별히 향이 좋은 것들을 보내 주곤 했다.

“어때?”

명목상 히스의 양어머니였으니 이미 먹어 봤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히스는 처음 마셔 보는 것처럼 콧잔등을 찡그리며 찻잔을 매만졌다.

“이런 향이 좋은 겁니까?”

“난 좋더라. 계속 맡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향기야.”

“그렇군요.”

짧게 고개를 끄덕인 히스가 찻망에서 찻잎 몇 개를 꺼내 주머니에 챙겨 넣는다.

‘다 우려낸 찻잎으로 뭘 하려는 거지?’

싶었지만, 나는 구태여 소년을 말리지 않았다.

* * *

“서두르지 않으면 공녀를 탐탁지않게 여기는 다른 원로들에게 선수를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파리스의 귀띔으로 초조해진 헤렌은 동동 발을 굴렀다.

‘황제 폐하께 내세울 만한 공을 세우기 위해선 우선 공녀의 계획부터 방해해야겠지.’

황제의 소수민족 말살 정책을 피해 도망 온 사람들을 받아들이겠다는 레오노라의 거창한 계획을 떠올린 헤렌은 기름칠한 콧수염을 매만지며 코웃음을 쳤다.

“흥, 공녀는 아직 어려서 뭘 몰라. 가뜩이나 북부의 자원은 한정되었는데 그걸 불쌍하다는 이유로 다른 영지민들과 나누겠다니.”

물론 그 한정된 자원을 제국 최고 거부 수준으로 끌어올린 인재 또한 레오노라였지만, 어찌 됐든 여유가 있을 뿐 무한한 것은 아니었다.

“원로들이야 고매한 자존심 때문에 북부가 문을 여는데 동의했지만, 아랫것들은 아니지.”

하차니아가 아무리 부유하다고 해도 돈이 궁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즐비한 법이었다.

‘게다가 용병은 특히나 돈에 환장한 놈들 투성이일 테고.’

“자작님,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툭.

최근 레오노라가 고용한 용병대를 제 사저로 불러들인 자작은 용병 대장의 앞에 돈주머니를 던져 주었다.

“백 골드네. 확인해 보게.”

“무슨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의뢰라면 제가 아니라 부대장이 받고 있습니다만.”

돈주머니를 안아 드는 용병 대장의 태도에 확신을 얻은 자작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의뢰가 아니라 자네가 이미 맡고 있는 임무에 대해 할 말이 있는 것이네.”

“제가 맡고 있는 임무라면, 레오노라 공녀님이 부탁하신 일 말씀이십니까?”

“그래. 자네도 알겠지만, 레오노라 공녀님 덕에 공작 각하께서 헛바람이 드셨네. 폐하의 정책에 반발해 다른 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을 받겠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바보 같은 공녀는 신분과 인종을 상관하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겠다며 기사의 도리도 모르는 비천한 용병대를 자신의 측근으로 들였다.

‘원래 이런 놈들은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한다고.’

주인의 뒷덜미를 물어뜯는 일조차 말이다.

헤렌은 혀를 끌끌 차며 레오노라의 선택을 비웃었다.

“제국의 귀족으로 태어났으면 황제 폐하께 충성을 다하는 것이 당연할 진데, 그렇지 않은가?”

“자작님, 용건을 바로 말씀해 주세요. 머리가 나쁜 저는 알아듣기 힘듭니다.”

용병 대장의 대답에 헤렌은 큼,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이끄는 용병대가 타 영지에서 넘어온 사람들의 관리를 맡고 있다고 들었네.”

“네. 공녀님이 직접 하명하신 일인지라 특별히 대장인 제가 신경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만큼 관리가 소홀해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겠나?”

“……네?”

용병 대장이 되묻자, 헤렌은 바닥에 던져 두었던 돈주머니보다 배는 큰 주머니를 안기며 눈을 찡긋했다.

“눈에 먼지가 들어가신 겁니까?”

용병 대장은 투박한 손을 내밀어 헤렌의 머리를 잡은 다음 후후, 입으로 바람을 불었다.

‘이 자식이, 이 정도 돈으로는 모자라다 이거냐?’

하긴 레오노라 공녀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용병대에게 임무를 맡길 때 거금을 지불했으리라.

헤렌은 아까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손에 낀 루비 반지를 빼내어 용병 대장에게 건넸다.

“이 귀한 반지를 제게 주시는 겁니까?”

“그래! 아직도 내 뜻을 모르겠나?”

“아뇨, 알 것 같습니다.”

용병 대장이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이자 헤렌은 만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저까짓 루비 반지 정도야 황제 폐하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몇 백 배가 되어 쏟아질 테지.’

“잘 부탁하네.”

“저희도 잘 부탁합니다, 자작님.”

“내 뜻을 잘 알아들었을 거라 믿네. 공녀가 시킨 임무에 대해서…….”

“잘 알아들었으니 더 말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용병 대장, 아벨은 잘생긴 얼굴에 완연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 * *

“대장, 이런 돈 함부로 받아도 되는 거야?”

제이크의 물음에 아벨은 헐렁한 루비 반지를 허공에 던지고 놀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공녀님이 이런 눈먼 돈은 반드시 챙겨서 핀에게 맛있는 거나 사 먹이라고 하셨다.”

“우와아. 형, 나 그럼 꼬치 먹을래!”

어느새 많이 큰 핀이 폴짝폴짝 제자리를 뛰며 기뻐한다.

전 예비 황녀군 소속, 미남대 대장 아벨은 레오노라가 황실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 자유의 몸이 되었다.

‘진정한 자유가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황녀가 아닌 레오노라에게 매인 자신이 싫진 않았으니까.

미남 용병대의 대장인 아벨은 용병대의 주인 격인 레오노라의 경고를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너는 하차니아 출신의 기사도, 북부인도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의심하는 세력이 생길 거야. 그럼 반대로 네 충성을 의심해 뇌물로 현혹하려는 사람들도 나오겠지.”

“절대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그런 더러운 돈은 한 푼도 받지 않을 겁니다.”

“응? 아니, 그럴 일 있으면 절대 뻗대지 말고 그냥 넘어가.”

“네?”

“용병이니까 챙길 건 챙겨야지. 게다가 넌 핀도 있잖아.”

“…….”

“애 하나 잘 키워서 장가까지 보내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데 뇌물을 거절해? 얘가 세상을 모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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