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191)화 (426/486)

제191화

트레시가 놀라 비명을 지르든 말든, 나는 망설임 없이 소년을 향해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탕-!

총구에서 뻗어 나온 마탄이 바람을 가르며 태양 아래 눈부시게 작열한다.

“끄아악!!!”

순식간에 제 코앞까지 뻗어 나온 마탄의 빛줄기에 놀란 트레시가 주저앉았지만, 마탄은 마치 그의 행동을 예측했다는 듯 궤도를 틀었다.

“아, 안 돼애~!!!”

트레시의 비명에 놀란 새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숲을 벗어나는 소리가 허공을 가득 메운다.

나는 연기가 파스슥 피어오르는 총구를 후, 불며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도 한 건의 쓰레기를 처리했다.

고 할 수 있으면 참 좋았겠지만….

‘이사벨라의 외손자라는데 죽일 수는 없지.’

“헉, 허억.”

나는 급하게 숨을 몰아쉬는 트레시에게 천천히 다가가 비스듬히 총구를 기울였다.

“일부러 빗나가게 한 거예요.”

“…….”

“알죠?”

내 물음에 트레시가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허둥지둥 끄덕인다.

권총은 무기 상점에서 흔히 구입할 수 있는 싸구려 피스톨이었지만, 총알은 제랄드 공방에서 직접 제작한 마탄이었다.

마나의 의지를 따라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꾸는 마탄을 마주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된다.

‘총열이 짧아서 조준이 조금 어렵지만 그래도 쓸 만하네.’

나는 웨스탈로 오는 길에 심심해서 구매한 피스톨의 잠금장치를 달칵거리며 헤헤 웃었다.

“에녹과 저는 이사벨라, 그러니까 공자님의 외조모님 저택을 방문할 생각이에요.”

“어, 어째서?”

“이유는 공자님이 알 필요는 없고.”

의문을 갖는 트레시의 어깨를 총구로 툭툭 두드리자 그가 히익, 질겁하며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 채로 엉금엉금 도망가기 시작한다.

‘가긴 어딜 가.’

나는 도망가는 그의 목덜미를 덥석 붙잡으며 아까보다 조금 더 입꼬리를 찢으며 웃었다.

“그러니까 공자님의 안내가 필요해요. 데려다줄 수 있죠? 우린 이제 친구니까.”

“내, 내가 왜 너 같은 것과 친구-! 헉!”

“친구, 아니에요? 섭섭해지려고 하네. 레오노라는 서운할 때 이상하게 손이 자꾸 미끄러지더라.”

탕!

달그락 소리를 내며 잠금장치가 빠진 피스톨에서 다시 한번 총알이 발사됐다.

주르륵.

여드름 자국이 얼룩덜룩 남은 트레시의 왼뺨에서 그리 크지 않은 핏방울이 흘러내린다.

‘글래스턴의 후계자라면서 기사 훈련도 안 받은 걸까.’

나는 고작 총알이 제 얼굴을 스쳤다고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한심한 소년을 내려다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흐억, 억-! 미, 미안해! 죽, 죽-!”

“죽이지만 말아 달라고요?”

내 물음에 트레시가 욱욱, 괴상한 소리를 내는 턱을 끄덕인다.

“……공자님 손에 죽은 벨네르니인들은 살려 달라고 안 하던가요?”

나는 트레시가 언급한 ‘사냥 놀이’를 떠올리며 매끈한 총의 손잡이를 쓰다듬었다.

“하, 하지만 그들은 인간도 아니라고 프란츠 폐하께서… 모두 척살해야 하는, 매국노들이라고. 윌레닌 제국을 위해서라면 그래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공자님 눈에도 사람처럼 보이지 않던가요?”

“…….”

“총알을 박아 넣으면 살점이 튀고 피를 흘렸을 텐데. 살려 달라고 울며불며 빌었을 텐데도 사람처럼 안 보이던가요?”

내 물음에 그제야 트레시의 더러운 입이 꾹 닫힌다.

‘봐주려고 했더니, 열 받게 하네.’

나는 눈물만 줄줄 울리는 소년의 머리를 빗물이 고인 진흙탕에 처박아 넣으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녹, 얘 오러는 다룰 줄 알아?”

“아니. 못 다룰걸.”

“그럼 마법사의 맹약도 못 하겠네.”

전신의 마나를 대가로 맹세하는 마법사의 맹약은 마법사나 술자, 소울나이츠를 위한 마법이었으니까.

“……귀찮아졌어.”

진흙 속에서 어푸어푸 헤엄치는 트레시의 등 위에 발을 올린 나는 짜증이 어린 얼굴로 에녹을 돌아보았다.

“대충 협박해서 데려가려고 했는데 그냥 죽일까?”

“그래. 처리는 내게 맡겨. 적랑(赤狼)의 정보부 대부분이 내 수하로 들어왔으니까.”

나는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한 에녹의 무심한 대꾸에 조금 놀랐지만, 티 내지 않고 제발 살려달라며 매달리는 트레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살려 주면, 이제 협조할래요?”

“그래! 알겠어! 시키는 건 다 할 테니까 목숨만 살려 줘!”

“그래요, 그럼. 우린 지금부터 친구예요.”

나는 이제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한 트레시의 질퍽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외조모인 이사벨라 님에게 우리를 친구라고 소개해 주면 된답니다.”

“하, 하지만 할머니는 거짓말을 싫어하시는데…….”

“그게 왜 거짓말이에요? 우리, 이제 친구 아니었어요?”

“……뭐?”

“으음. 레오노라, 또 섭섭해지려고 하네.”

내 손이 다시 미끄러지듯 총을 잡자 트레시가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내 무릎을 껴안는다.

“친구지! 반갑다, 친구야!”

“좋아요. 그럼 저택으로 바로 가죠. 이사벨라 님이 지인만 초대한다는 소규모 파티에 참석하고 싶으니까.”

트레시 공자님은 나와 에녹을 어떻게든 그 파티에 초대해 줘야 해요.

내가 눈을 빛내며 하는 말에 트레시의 고개가 절박하게 흔들린다.

* * *

‘이용 가치가 있을 것 같아서 살려 뒀더니, 괜히 그랬나.’

트레시를 따라 이사벨라의 파티에 들어선 나는 도통 이사벨라 근처에 다가가지 못하는 그에게 눈을 흘겼다.

“외조모님이라면서요. 왜 이렇게 안 친해요?”

“공녀가 우리 외조모님을 몰라서 그렇다! 얼마나 무서운 분인데.”

하긴, 서쪽의 마녀라고 불릴 만큼 악명이 높았던 사람이 이제는 은퇴하고 사교계나 드나든다고 해서 어디 가겠는가.

나는 트레시의 말에 고개를 까딱이며 연회장의 중앙에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있는 노인을 힐끔했다.

이사벨라 도노반.

서쪽의 사악한 마녀라고 불린 그녀는 대마법사인 사뮈엘 대공이 인정할 만큼 뛰어난 업적을 쌓은 연금술사였다.

‘딸을 낳고 은퇴했다고 들었는데, 그 딸이 글래스턴 백작과 결혼했을 줄이야.’

나는 꼬장꼬장해 보이는 이사벨라와 전혀 닮지 않은 유순한 인상의 여자를 관찰했다.

‘트레시랑도 안 닮은 것 같네.’

“공자님은 아버지를 많이 닮으셨나 봐요.”

“당연하지. 나는 글래스턴의 유일무이한 후계자다.”

그놈의 후계자 소리 엄청 좋아하네.

나는 내가 연회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를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니는 트레시의 동생, 레미를 턱짓했다.

“동생분은 어머니를 많이 닮으셨는데요.”

“흥. 그야 동생이 약해빠졌으니까.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리 어리석고 나약한 분이다. 전혀 닮고 싶은 구석이 없어.”

서쪽 마녀의 딸이 정말 나약할까 싶었지만, 나는 트레시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오셔서 나는 이만 인사를 드리러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그래요, 공자님.”

나는 내가 웃을 때마다 어깨를 움찔하는 트레시의 등을 토닥이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웃어요. 누가 보면 오해하겠어.”

“…….”

“백작님께 허튼 소리할 생각 말고요. 에녹이 적랑의 정보부를 대거 흡수했다는 거, 아까 들었죠?”

너 같은 건 쥐도 새도 모르게 땅에 묻을 수 있다는 말을 돌려 하자, 트레시가 식은땀을 흘리며 입술을 깨문다.

“알겠다고. 할머님께는 파티가 끝나면 인사를 시켜 주도록 하지.”

“다녀와요, 친.구.”

나는 왼손과 왼발을 동시에 뻗으며 어색하게 움직이는 트레시를 배웅하는 척, 남몰래 그를 따라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협박이 제대로 먹힌 것 같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내가 제 후계자를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이 글래스턴 백작 귀에 들어가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진다.

글래스턴은 서부와 북부에 걸쳐 있는 백작령을 다스리는 가문으로, 영지는 작았지만 황실과의 연이 끈끈해 무시할 만한 가문은 아니었으니까.

“아버지!”

복도 끝에 몸을 숨긴 나는 트레시가 다급하게 달려나가며 맞이한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딱히 눈에 띄는 구석이 없는 중년의 남자가 트레시의 어깨를 두드리며 입에 문 시가를 내려놓는다.

“그래, 트레시. 웨스탈에서 쉬면서 몸은 잘 회복했느냐.”

“네! 오전에 도착하셨다고 들었는데 파티에는 늦게 오셨네요.”

“……웨스탈에 볼 일이 있었다.”

트레시의 말에 대답을 머뭇거린 글래스턴 백작이 제 아들의 뺨에 손을 올린다.

“얼굴을 다친 것 같은데.’

백작의 물음에 흠칫 놀란 트레시가, 우연인지 뭔지 내가 몸을 숨긴 복도를 힐끔 쳐다보았다.

“사, 사냥을 하다가 다쳤습니다.”

“흠. 벨네르니인들은 천성이 야만적이라 사냥하기도 까다롭지. 수고했다.”

나는 트레시의 등을 두드리며 그를 치하하는 백작의 행동에 소리 없이 기함했다.

‘트레시에게 벨네르니인을 사냥감으로 쓰라고 한 사람이 백작이었다고?’

제 아들을 살인자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 아닌가.

“나는 볼일이 남아서. 너는 이만 돌아가 이사벨라님을 모시도록 해라.”

“하, 할머님을요?”

“그래. 내가 시킨 일은 잘 하고 있는 거겠지?”

“네…….”

‘뭘 시켰길래?’

수상한 낌새를 느낀 나는 트레시를 파티장으로 돌려보낸 백작의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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