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163)화 (398/486)

제163화

“다들 꼴이 말이 아니군.”

가스파르의 집무실에 당도한 루카스는 각각 책상, 소파, 바닥에 널브러진 남자 넷을 발견하고 짧게 혀를 찼다.

“도주 위험이 있으니 방에 결계를 쳐 두자는 내 말을 들었어야지.”

긴 다리를 꼬며 루카스가 하는 말에 범죄자도 아니고 감금을 시킬 수는 없다며 그에게 반기를 들었던 실베스테르가 인상을 찌푸린다.

“선황자 전하는 저희 심정 이해 못 하십니다. 원래 레오노라는 저희 말이라면 결국 들어주는 아이입니다.”

“맞아요! 리니가 얼마나 착하고 심성이 고운 애인데요. 그런 애가 우리가 그렇게 뜯어말리는데도 결국 황성에 가 버리다니….”

루카스는 에녹이 절망스럽다는 듯 마른세수를 했다. 그러나 루카스는 에녹이 말하는 레오노라와 자신이 아는 레오노라가 같은 사람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자의 말을 잘 듣는다고 확신한다면 가서 데려오면 되는 것 아닌가.”

루카스의 뚱한 말에 에녹이 투덜거리며 작은 쪽지 하나를 불쑥 들이민다.

“이거 보시면 그런 말 안 나오실걸요.”

쫓아오면 미워할 거예요. -레오노라-

“쫓아오면 미워한다라….”

그게 지금 장정 둘, 장정에 가까운 소년 둘이 집무실에 밀짚 인형처럼 힘없이 누워있는 이유인 모양이었다.

“겨우 공녀에게 미움받는 게 무서운 건가.”

“선황자 전하는 이해 못 하십니다. 가족이 아니시니까.”

루카스의 질책에 에녹의 손에 들린 쪽지를 힐끔한 실베스테르가 단정한 미간을 좁히며 대답한다.

“레오노라는 한다면 하는 아이입니다. 정말로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형, 리니가 이제 나랑 훈련 안 하겠다고 하면 어떡해?”

막내에게 미움받는 건 죽어도 싫은지 끙끙 앓던 에녹의 화살이 결국 루카스에게 향한다.

“애초에 전하가 이상한 말만 안 했어도 리니를 말리지 않았을 거예요!”

“한심하군.”

투덜거리며 대드는 에녹의 이마를 손끝으로 퉁 밀어낸 루카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덟 살 딸아이가 가출을 감행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은 가스파르는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 이 사태를 해결할 사람은 본인뿐인 것 같았으니까.

“내가 가서 데려오겠으니 걱정 마라.”

“정말요?!”

“그래.”

루카스는 눈을 반짝이는 에녹에게 짧게 고개를 끄덕인 후 등을 돌렸다.

레오노라를 위험에서 지킬 수만 있다면 그 아이에게 미움받는 일쯤이야 코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어린애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다니, 공작가 남자들은 하나같이 한심한 놈들뿐이군.’

가스파르를 위시한 하차니아의 남자들을 무시하며 방으로 돌아온 루카스는 창가에 떡하니 붙어 있는 쪽지를 발견하고 턱을 쓸었다.

루카스, 나 말리지 마. 다 계획이 있단 말이야! -레오노라-

추신. 루카스는 내가 미워하든 말든 상관 안 하겠지만, 나를 못 믿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좀 아파.

‘멀리서 지켜보다 위험해지면 구하러 가는 게 낫겠군.’

그래, 그게 더 좋은 방법인 듯싶었다.

꼬물꼬물 작은 손으로 써 내려갔을 쪽지를 소중하게 품에 안은 루카스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이 있다 하질 않나.

자신은 아이의 계획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 마음이 아프다는 말에 휘둘린 것이 아니었다.

* * *

무겁기만 한 낡은 갑옷을 벗어 던진 채 연무장을 뛰고 돌아온 병사들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지었다.

‘…잘생겼잖아?’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와중에도 뒷배경에 꽃이 휘날리는 것처럼 보일 만큼 다들 외모가 휘황찬란했으니까.

‘아니, 근데 다들 너무 잘생기기만 했잖아.’

나는 기본적으로 훈련받은 소년병 체력의 반의반도 되지 않는 것처럼 지치고 낡은 병사들의 상태를 훑으며 이마를 짚었다.

‘병사들을 얼굴 보고 뽑은 게 아니면 말이 안 되는데.’

“너 이리 와 봐.”

나는 병사들 중에 그나마 내 말에 빠릿빠릿하게 반응하는 병사에게 손짓했다.

그 신호에 헐레벌떡 뛰어오는 소년마저도 이제 막 무대를 끝마치고 내려온 아이돌처럼 청량한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투구 벗기기 전에도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싶었는데….’

다들 병사를 시킬 게 아니라 벨루치에게 보내 배우 데뷔라도 시켜 줘야 할 것 같은 미모들이다.

“제이크, 너네 분대 별칭이 뭐라고 했지?”

“미남대(美男隊)요.”

“…….”

나는 냉큼 튀어나오는 제이크의 대답에 다시금 원작책을 펼쳐들었다.


“후훗. 우후훗~!”

아이네스는 예비황녀군을 모집해도 좋다는 그레고르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전국에 사람을 풀어 미소년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아빠도 하는 짓을 아이네스라고 못 할 이유 없잖아?’

“아이네스는 황녀군으로 하렘을 완성할 거야. 그중 몇은 푸른 독수리로 훈련을 시킬 거고.”

아이네스가 활기찬 목소리로 떠드는 계획에 흠칫 몸을 떤 아멜리아는 주춤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전하, 푸른 독수리는 본디 제국의 황실을 수호하고 제국민을 지키기 위해 마련된 특수 부대 아니었나요?”

아멜리아는 황녀인 아이네스를 위해 꾸려진 푸른 독수리 132기 부대원이었고, 윌레닌 제국을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인 단체에 속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진 기사였다.

제가 속한 단체에 들어올 사람의 기준을 고작 외모로 둔다는 황녀의 터무니없는 말에 자신의 기사가 실망하든 말든, 아이네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기사들이 예쁘지 않을 필요는 없잖아.”

아이네스의 단호한 말에 아멜리아는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 기준에 맞는 소년들이 지원했을까 모르겠네요.”

아이네스는 미에 대한 기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으니까.

염려 섞인 아멜리아의 말에 황녀는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지원을 안 했으면 하게 만들어야지. 아빠가 괜히 황실모독죄를 강화했는지 알아?”

“…….”

“예쁘면 무조건 참가시켜. 거절은 사형이다.”

“…예, 전하.”

‘나라가 이렇게 돌아가도 되는 걸까.’

아멜리아는 회의감을 느꼈지만, 입만 벙긋해도 목이 날아갈 수 있다는 현실을 알았기에 울컥하는 마음을 꾸욱 참았다.


“…너네 중에 강제로 징집된 사람들도 있는 거야?”

떨떠름한 얼굴로 원작 책을 덮은 나는 제이크를 힐긋하며 입을 열었다.

“네. 저랑 아벨, 그리고 핀이요.”

핀은 내 무릎 위에서 잠든 쪼꼬미였고….

“아벨이 저 멀대 같은 놈이지?”

아까 왜 내 명을 따라야 하냐며 기싸움을 벌인 소년을 턱짓하자 제이크가 냉큼 고개를 끄덕인다.

‘검 실력이 꽤 괜찮아서 자원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

“아벨은 원래 황녀군이 아니라 황실 근위대에 지원했고, 붙기까지 했어요.”

“근데 왜 예비 황녀군으로 이런 배동 선발전 따위에 참가하게 된 건데?”

“이유는 모르겠는데, 황녀 전하가 아벨을 꼭 예비 황녀군에 넣으라고 하셨대요.”

제이크가 덧붙인 말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뜬 나는 아이네스의 검은 속내를 떠올리며 짧게 혀를 찼다.

‘잘생겨서 끌려왔구나.’

그러니까 내게 반발이 이렇게나 심한 모양이었다.

아이네스 또래 귀족 여자아이들이 자신을 장난감 취급한다고 생각해서.

“아벨.”

나는 병사들 중 가장 여유를 부리며 연무장을 돌고 있는 아벨에게 손짓했다.

“왜… 요.”

아까 다른 소년들에게 내게 함부로 하대를 했다간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는 경고를 들었기 때문인지, 아벨은 어쭙잖게 말을 높이며 잘생긴 미간을 찌푸렸다.

“너, 오러를 쓸 수 있는 자질이 있는 것 같은데 알고 있었어?”

“…네?”

내 말에 그제야 제 나이처럼 보이는 순진한 얼굴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던 아벨이 놀란 고양이처럼 발톱을 세우며 뒤로 물러난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거짓말 아니야.”

병사들은 느끼지 못했겠지만, 나는 그들이 훈련관에 들어선 순간부터 탐색 마법을 발동해 마력의 흐름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마력 운용이 원활하지 않아서 그렇지, 양 자체는 방대해.’

방대한 마력은 오러 사용자의 기본적인 조건이나 마찬가지였다. 마력을 응집해서 날카로운 검기로 발현시키는 게 오러였으니까.

“또 무슨 이상한 말로 저를 현혹하시려고….”

“또라니?”

나는 오늘 아벨을 처음 봤고, 나처럼 아벨이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는 걸 알아볼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도 에녹 훈련시키려고 트리스탄 외전이며 오러 관련 서적이며 전부 탈탈 털어 공부해서 겨우 알아본 건데?’

“그런 말이라면 이미 황녀 전하께도 들었습니다.”

“네가 오러 사용자의 자질이 있다는 말을 아이네스, 아니, 황녀 전하가 했었다고?”

“정확히 그런 말은 아니었지만 좋은 걸 알려 줄 테니 밤에 찾아오라 하시던데요.”

히익.

나는 아벨이 툭 던지듯 내놓은 대답에 기겁하며 그의 손목을 붙들었다.

“너, 절대 가지 마!”

‘아이네스, 아무리 회귀자라지만 이제 겨우 일곱 살이잖아!’

근데 벌써부터 미소년을 침대로 불러들이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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