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161)화 (396/486)

제161화

나는 답지 않게 입술을 달싹이며 대답을 망설이는 루카스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리니가 위험해요? 왜요?”

“…황궁에 가면.”

“가면?”

“먹을 것이 너무 많다.”

“?”

미쳤나?

“네가 다 주워 먹고 돼지가 될 수 있다.”

나는 루카스의 말도 안 되는 설명에 기가 막혀 입을 벌렸다.

“…지금 시비 거는 거예요?”

레오노라 하차니아, 이제 거의 아홉 살 생일에 가까워지긴 했지만 방년 여덟 살.

나는 아직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랄 어린이였다.

“어쨌든 황궁에 드나드는 배동이 되는 건 위험하다.”

내가 미간을 찌푸리든 말든, 루카스의 단호한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나도 황궁이 위험하다는 그의 의견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선발되어도 특전만 받고 배동 노릇 안 할 방법까지 다 생각해 놨단 말이야!’

하지만 지금 루카스를 포함한 가족들에게 말해 버리면 계획이 전부 틀어져 버린다.

‘또 어떻게 설득하지.’

토끼 같은 분홍색 눈으로 어울리지 않게 엄한 눈빛을 보내는 루카스를 뚱하게 바라보던 나는 느릿느릿 입술을 벌렸다.

“선황자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리니….”

“설마 또 배를 곯는다고 협박할 생각은 아니겠지.”

앗. 들켰다.

머쓱해진 내가 뒤통수를 긁는 사이 루카스가 오른손을 움직여 설렁줄을 흔든다.

“네, 선황자 전하.”

미리 대기라도 하고 있었던 건지 힐다가 거실에 바로 들어선다.

공손히 읍하는 힐다를 지켜보던 나는 그녀의 손에 들린 해괴한 물건을 힐끔하며 미간을 구겼다.

“…저게 뭐야? 아니, 뭐예요?”

“밥을 먹지 않아도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채워 주는 의료용 마도구다.”

‘…링겔?’

“너 때문에 개발했지.”

나 때문에 아직 3대 영양소가 뭔지도 모르는 세계관에서 링겔을 개발했다고?!

콰콰쾅.

저 멀리서 들려오는 개연성 무너지는 소리에 나는 기함하며 자그마한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그냥 밥 먹을게요…. 배동 선발전도 안 나갈게.”

* * *

“에녹…. 오늘 훈련은 쉬어도 돼….”

터덜터덜 거실을 나서는 레오노라의 뒷모습을 안절부절못하며 바라보던 에녹이 입술을 질끈 깨문 채 가스파르를 돌아본다.

“아버지, 리니가 저렇게 나가고 싶어하는데 그냥 내보내는 게 맞지 않을까요?”

에녹의 말에 레오노라 앞에서는 가스파르 편을 들었던 실비마저도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쁘띠 플뢰르에도 별 무리 없이 선출된 아이입니다. 황녀의 수발이나 드는 자리를 탐내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부득불 반대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못된… 아버지….”

가스파르는 자카리가 힘없는 목소리로 자신을 탓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지끈지끈 아파 오는 관자놀이를 손끝으로 눌렀다.

“공작. 알레테이아가 레오노라를 노리고 있다.”

“이유는.”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르지만 황성이 레오노라에게 무척 위험한 곳이라는 자각 정도는 그대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가스파르는 마치 삶을 마무리할 준비가 된 사람처럼 초연한 얼굴의 루카스가 건네준 교단에 관련된 서류를 떠올리며 두 눈을 감았다.

“왜 내게 이런 걸 말해 주는 겁니까.”

“이제 나는 레오노라를 지켜 줄 수 없을 테니까.”

가스파르와 루카스가 주고받은 대화를 아들놈들에게 전부 전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이야 그저 레오노라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내 말을 믿고 다짜고짜 반대한 모양이지만, 막내에게 미움받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녀석들이니….’

그가 자리를 비운 5년 동안 형제들의 막내사랑은 더더욱 지독해져 있었다.

이제 막 레오노라를 만났을 뿐인 자카리마저도, 무심한 성정에 맞지 않게 아이를 아낀다는 게 눈에 띌 정도였다.

“레오노라가 황성에 가면 안 되는 진짜 이유는….”

이유를 지어내려던 가스파르는 입술만 달싹이다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거짓말에는 영 소질이 없었으니까.

“루카스 전하께서 설명해 주실 거다.”

결국 가스파르는 루카스에게 책임을 떠넘겼고, 레오노라가 자리를 박차고 나간 곳만 멍하니 바라보던 황자는 그제야 미적미적 고개를 돌렸다.

“공녀도 곧 아홉 살이 되지.”

“그게 황성에 가면 안 되는 이유랑 무슨 상관인데요?”

“귀족들의 약혼은 열 살 전후로 시작된다.”

루카스의 덤덤한 말은 간단했지만, 그 파장은 엄청 났다.

“우리 막내는 이제 겨우 아홉 살인데 그게 무슨 개소리세요, 전하?”

“아홉 살 어린아이를 며느릿감으로 생각하는 파렴치한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죽여.”

루카스는 이제껏 자신을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삼형제가 일제히 눈을 부라리는 모습에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무감한 얼굴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전하.”

자신이 대충 변명을 둘러댔음을 뻔히 아는 가스파르가 진지하게 얼굴을 굳히기 전까지는.

* * *

다음 날 아침부터 온 가족에게 둘러싸인 나는 ‘네게 결혼은 너무 이르다.’는 쌩뚱 맞은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리니, 넌 너무 어려. 시집가려면 적어도 열여덟, 아니, 스물여덟, 아니! 일흔여덟은 되어야지.”

‘윌레닌 제국에서 도대체 어떤 귀족 여자가 일흔여덟 살에 결혼을 해…?’

물론 지금 나는 결혼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지만, 나는 에녹의 말도 안 되는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실비를 돌아보았다.

“실비, 에녹 왜 이래?”

그러나 내게 상황을 설명해 주리라 믿었던 듬직한 차남마저 에녹에게 물이 들었는지 단호하게 개소리를 지껄인다.

“에녹 말이 맞다. 게다가 지금 너를 넘보는 놈들은 필시 놈팽이일 게 분명하다.”

‘아니, 고작 여덟 살 응애를 누가 넘보겠느냐고?’

“…죽여.”

나는 거실을 유령처럼 배회하며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는 자카리를 힐끔한 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죽여…. 아동성애자….”

‘도대체 누가 아동성애자라는 거야?’

에녹은 물론이고 가스파르까지-

도대체 누구에게 무슨 희한한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차니아 공작가는 합심해서 내 배동 선발전 참가를 반대하고 나섰고,

나는 극성맞은 가족들을 설득하는 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굶는다는 협박도 안 먹히는데 뭐 어쩔 수 없지.”

아이네스의 배동이 되는 일을 포기하겠다며 두 손 두 발을 다 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렌이 조심스레 입술을 움직인다.

“정말 포기하실 겁니까?”

“말했지, 카렌. 리니 사전에 포기는 없다고.”

밤이 되자마자 카렌을 이끌고 수도저택의 담벼락 앞에 선 나는 주머니를 뒤져 자그마한 삽 두 개를 꺼내 들었다.

“파자.”

“네?”

“개구멍 파자고.”

‘공작성처럼 경비가 삼엄한 곳이라면 모를까, 수도 저택은 탈출하기 쉬운 편이지.’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단정한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카렌에게 삽을 쥐여주며 결연하게 입을 열었다.

“삽 들어, 카렌. 내일이 배동 선발 예선전 주제를 발표하는 날이잖아.”

오늘 얼굴을 내비치지 않으면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비쳐져 실격 처리가 되어 버린다.

‘어린이도 자존심이 있지!’

싸움에 진 개는 할 수 있어도, 지레 겁먹고 도망가는 버릇은 미친개에게 없다고.

* * *

- 리니, 황성 다녀올게요.

새벽같이 일어나 짧은 쪽지를 남긴 후 저택을 탈출한 나는 후드를 깊게 눌러쓴 채 마차까지 대여해 기어코 황성에 당도했다.

아이네스라면 껌뻑 죽는 그레고르가 배동으로 뽑힌 아이의 가문에게는 작은 영지까지 하사하겠다고 약조했기 때문인지, 배동 선발전에 참가하는 아이의 수가 어마무시했다.

나는 운동장만 한 본궁 정원을 가득 메운 아이들의 향연에 멋쩍은 턱을 긁었다.

‘어쩌면 쁘띠 플뢰르보다도 치열하겠는걸?’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쁘띠 플뢰르는 애초에 내 또래 귀족 여자아이들만 참가할 수 있는 대회였지만, 이번 아이네스의 배동 선발전은 교육받은 아이라면 평민도 참가 자격이 주어졌으니까.

‘그러니까 노엘이 참가할 수 있는 거겠지.’

나는 멀리서도 확연히 눈에 띄는 헌칠한 노엘을 발견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순간,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중앙에 집합시킨 시종장이 커다란 양피지를 손에 든 채 목소리를 높인다.

“예선전 주제를 발표하겠습니다! 황녀 전하의 배동은 전하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자리인 만큼, 탁월한 순발력과 재치, 그리고 행동력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시종장이 팔을 번쩍 들자 정원의 후문이 천천히 열리며 어린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도열한다.

나란히 서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엉성한 자세로 짐작하건대 황군 중에서도 기사 서임을 받지 못한 예비 황군병인 모양이었다.

“제 앞에 선 이 예비 황군병을 각각 1분대씩 맡아 훈련시키십시오! 정확히 일주일 뒤, 모의 전쟁으로 본선 진출 후보를 가리겠습니다!”

‘병사들을 훈련시키라고?’

나는 시종장의 말에 자그마한 미간을 좁혔다.

‘지휘관을 뽑는 자리도 아닌데, 갑자기 무슨 군사 훈련?’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에 나는 서둘러 무리에서 빠져나와 원작 책을 펼쳐 들었다.

‘그럼 그렇지…!’

아이네스, 이 사이코패스 여자주인공이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런 주제를 선정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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